회귀자 사용설명서 1000화
뿌린 대로 거둔다 (7)
[우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바… 시바….’
[우우으으으으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곧바로 몸을 돌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저런 걸 보면 이쪽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 틀림없다.
“드… 드락타리스 님….”
-예언의 사제를 지켜….
콰드드드드득!
손짓 한 번에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휩쓸려 나간다.
손으로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것마냥 저 역겨운 괴물의 손이 닿은 곳은 형체도 남아 있지 않고 사라진다.
귀를 시끄럽게 하는 굉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몸을 마비시킬 것만 같은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발을 멈추게 만든다.
마치 거대한 폭풍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몸이 날아갈 것만 같은 바람과 함께 폭력의 잔해들이 날아온다.
박덕구가 방패를 들어 올려 후폭풍에 대비하지만 녀석조차도 밀려나며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녀석의 일격으로 드락타리스 사제단의 반 이상이 휩쓸려 나간 상태, 망령들이 아니었다면 대부분이 부상으로 리타이어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일격.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일격이었다. 여기에서 허무하게 잃어야 할 병력이 아니었으니까.
‘후방에 배치했어야 했었나?’
시바. 저 사제들은….
‘더 잃으면 안 돼.’
“라파엘!”
“네!”
당황한 상황에서도 머리는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게 된다.
녀석의 목적은 망령들이 아니다.
어처구니없게 생을 마감한 템플러 거미의 시신을 아직까지도 으깨고 있는 것을 보면, 녀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뻔하다. 보물창고에 고이고이 숨겨둔 깃털이겠지, 뭐.
회색 날개를 펼친 채로 빠르게 차희라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라파엘에게 깃털을 넘기자….
“라파엘 님만… 라파엘 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곧바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동안 멈칫한 녀석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중.
“네… 네!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이… 이걸….”
물론 깃털과 함께 의지할 수 있는 것을 건네주는 것도 잊지 않아야겠지. 자칫 잘못하면 뒈질지도 모르는 임무였으니 마음을 기댈 수 있을 만한 곳이 필요하다.
벌레처럼 짓이겨질 때는 짓이겨지더라도 자신이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은 주고 싶다.
깃털과 함께 건넨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작은 로자리오.
화들짝 놀라며 그것을 받아 든 녀석의 눈에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도 이 임무를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서려 있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굳이 죽을 필요는 없지만 그런 정신 좋아.’
라파엘의 임무야 뻔하다.
자기 자신도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미끼.’
아니나 다를까 라파엘 파티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녀석을 붙잡았지만.
“라파엘! 그건!”
“라… 라파엘.”
내 동생, 내 믿음직스럽고 소중한 동생, 라파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쉽게 잡히지는 않을 거야.’
아니, 내가 쉽게 잡히게 만들지 않을 거야.
라파엘은 깃털을 입으로 물었다. 이후에는 내가 건넨 로자리오를 자신의 목에 천천히 채운다.
마치 녀석을 도발하듯 회색 날개를 펼치고 정면으로 녀석을 바라본다.
[우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혹여라도 녀석이 이쪽을 볼까 싶어 희라 누나의 품에 더 꼬옥 안기며 내 모습을 숨기기는 했지만 아무리 봐도 바하무트는 이성이 남아 있는 상태로는 볼 수 없다.
그래도 사고는 미연에 방지하는 게 좋으니 최대한 이쪽의 몸은 보이지 않게 하는 게 낫겠지.
어느 정도 의식이 남아 있던 템플러 시몬이나 템플러 엑스트라와는 다르게 놈은….
‘본능만 남은 것 같은데….’
말 그대로, 그저 본능만 남은 괴물, 그게 바로 지금의 템플러 바하무트였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결과물이었고 수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깃털 하나에 의지하며 스스로를 갉아먹고 상처 입힌 괴물의 모습이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내 알 바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 하나는 알고 있다.
녀석이 역겹게 생긴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것 하나. 아니… 저 깃털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 하나다.
[우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녀석이 몸을 움직인 것은 눈 깜짝할 사이, 저 거대한 덩치가 이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라파엘을 향해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날개를 뻗으며 녀석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라파엘 역시 마찬가지.
아주 작은 사냥감을 쫓기 시작한 맹수와 도망 다니는 새의 싸움, 밀폐된 공간이라면 라파엘의 패배였겠지만 이곳은 밀폐된 공간이 아니다.
사용할 수 있는 공간과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은 넓다.
‘지하신전 전체를 사용하면 돼.’
녀석과의 일전을 위해 선택한 장소는 이 지하신전 전체.
콰아아아아앙!!!
벽이 무너지고 사방이 굉음으로 흔들린다. 녀석은 손을 뻗고 라파엘은 녀석의 손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벗어난다.
두 사람, 아니, 내 소중한 동생과 역겨운 괴물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 전열을 대비할 시간을 만들기는 했지만 내게 여유는 없다.
라파엘의 눈이 되어줘야 했으니까. 루트를 찍고 탈출할 곳을 지정하고 가장 효율적인 루트를 안내한다.
거대한 손이 허공을 가른다.
-지하로 내려갈 겁니다.
-네… 넷!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라파엘 님. 상대에게만 집중하세요.
-네.
-조심.
-넷!
동시에 선희영에게 눈빛을 보내자.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병력의 정비와 현 상황에 대한 보고, 아직까지도 나를 품에 안고 있는 차희라는 당장에라도 저 괴물에게 뛰쳐나가고 싶은 듯 보였지만 상처 입은 희생의 성자를 내버려 둘 수 있을 리 만무.
그녀 역시 선희영과 함께 후방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리라.
‘잘됐어.’
희라 누나는 할 때는 하니까.
당연히 역겨운 괴물에게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족보행을 하고 있는 거대한 사자처럼 보인다. 아니, 솔직히 사자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특징이라고 꼽을 수 있는 것은 머리와 목 주변에 이어지는 갈기뿐이었으니까.
4개의 징그러운 눈을 가지고 있었고 날카로운 것으로 모자라 징그럽게까지 보이는 이빨이 검은색 타액을 질질 흘리고 있다.
온몸이 마치 썩어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를 상처입히기라도 한 것일까.
몸 여기저기에서는 검은색 피가 흘러내린다. 날카로운 꼬리 부분에는 뱀 같은 형태의 괴물이 자리 잡고 있었고 꼬리 부분에도 역시 두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악마처럼 생겼다는 표현 말고는 다른 수식어를 찾기 어려울 정도, 영혼이 썩어가는 듯이 느껴지는 악취와 터질 것만 같은 근육,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근육의 구조는 징그럽다는 표현을 넘어 기괴하다.
악신으로 추앙받아도 모자란 모습, 어째서 템플러 시몬이 녀석에게 맹목적인 복종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외관.
‘둠둠현성은 잘생긴 축에 속하는 거였어.’
저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괴물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희망적인 사안은 있네.
‘최소한 뎅겅 엔딩은 피한 거야.’
한꺼번에 원정대의 목을 날릴 수 있는 기술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한꺼번에 짓이겨지는 엔딩이 이쪽을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높다.
녀석이 가지고 있는 역겨움만큼이나 녀석은 강했고, 당장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다른 수를 떠올리지 못했다.
-루트 변경하겠습니다.
-……
-지금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셔야 해요. 4분, 일단은 4분만. 그다음부터는 지원할게요. 라파엘 님.
-네… 네. 윽!
콰아아아아아아앙!!
‘학습했네.’
자신의 공격으로 일어난 풍압으로 라파엘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학습했지만 이건 이용할 수 있다.
내 눈은 바람이 흐르는 방향도 볼 수 있었으니까. 공중에서 허우적거렸던 것도 잠시, 순식간에 바람을 탄 녀석은 금방 녀석에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도 한순간이다. 거치적거리는 것을 모조리 몸으로 밀며 들어온 녀석은 금방 내 동생에게 따라붙는다.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좁은 공간을 통과하는 라파엘, 그걸 몸으로 밀고 들어오며 팔을 뻗는 괴물.
다시 한번 들려오는 굉음과 울음소리, 지하신전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이 술래잡기는 폭력적이다.
라파엘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은 순식간에 달라지지만 사냥감을 쫓는 거대한 팔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하로 내려가자. 천장에서 거대한 팔이 내려온다.
천장은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파편들이 쏟아지지만 탈출구는 있다.
녀석이 꼬리로 라파엘을 따라가려고 하지만 라파엘은 다시 한번 천장으로 치솟는다.
녀석의 몸은 다시 한번 위로 올라가고 라파엘은 다시 한번 지하로 꺼진다.
‘이제 50초.’
불과 50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 역시 체력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었다.
라파엘 역시 한계에 가깝다.
-군사님. 지금 병력 전원 후퇴시키세요.
-또 무슨 개소리.
-템플러 엑스트라 레이드는 여기서 종료입니다. 현재 템플러 바하무트와 조우했고, 라파엘이 미끼로 녀석을 달고 다니는 상황입니다. 현 시간부로 바하무트 레이드를 진행할게요. 퇴각까지 정확히 4분, 첫 병력배치는 4분이에요. 그 이후에는 순차적으로 진행할 시간을 드릴게요.
-뭐? 지금 그게….
-병력배치는 군사님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라파엘 탈출 루트 전송했어요. 정보와 관련 영상도 같이 보냈으니까 확인 부탁드려요. 누나. 누나도 화난 거 알지만 이번에는 조금 도와줘. 머리가 모자라.
-…….
-…….
-누나 제발.
-…….
-이지혜 님? 귀엽고 아름다우신 이지혜 님.
-…….
-지혜야….
-…….
-내 사랑?
-…….
-주인님? 이… 이지후 님?
-뭐… 손은 얹어 줄게요.
-…….
-잘못하면 내 님이 비명횡사하게 생겼는데. 이 정도는 도와줘야죠. 대신 이번에도 소원권 하나 적립해 놓을게.
-고마워, 누나. 아! 군사님은 소원권 없어요.
-바란 적도 없다. 모자란 놈.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탈출루트를 보면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라파엘을 탱커로, 이 지하신전 전체를 이용해 레이드를 진행하면 돼.’
나는 길을 만들고, 진군사는 녀석의 이동경로를 기반으로 해 각 층과 구역에 병력을 배치한다.
인간을 체스 말처럼 밀어넣는 것은 나보다는 녀석이 나으니까.
누나는 오류나 변수를 차단하고,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계획의 최종결정을 승인.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 군사도 나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작전의 승인을 누나에게, 아니, 누나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각자의 계획은 온전히 각자의 것 이어야 했고, 변수의 수정 역시 각자의 손을 거쳐야 했다.
말하자면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
아주 조그마한 톱니바퀴가 틀어져도 원정대는 전멸이다. 나만 녀석의 위험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류가 있으면 안 돼.’
모든 톱니바퀴가 들어맞아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어.
곧바로 거울을 띄운다. 순식간에 주변을 꽉 채운 화면이 앞을 감싼다.
아마 다른 쪽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악마 소환사는 지하신전을 3D로 본뜬 것만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고,
누나는 사무실에 틀어박혀 화면을 띄운 채로 다리를 꼬고 있을 것이다.
“…….”
“…….”
-작전 시작.
-동의하지.
-확인했어요. 오빠.
“셋이서 한번 놀아보자구.”
눈앞에 펼쳐진 화면을 제외한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흙수저입니다. 이렇게까지 오래 외전을 쓸 계획은 분명히 없었는데… 쓰다 보니… 결국 1,000화까지 오게 됐네요.
너무 길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함과 함께 그래도 기념할 만한 일인 것 같아 이렇게 등장하게 됐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지만 긴 이야기는 나중에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일단 쓰고 있는 챕터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외전까지 끝나면 다시 인사드리러 찾아오겠습니다.
항상, 매화 드리고 싶은 말씀이지만 회귀자 사용설명서를 읽고 사랑해 주시는 모든 여러분들에게 항상 감사함을 표하고 싶어요.
특히나 1,000화나 되는 분량 동안 변함없이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아서… 언제나 회귀자 사용설명서를 사랑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 감사드립니다. ㅜㅡㅜ
항상 읽어주시는 만큼 언제나 더 열심히 쓰고 발전하는 흙수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P.S. 여건이 된다면 1000화 기념 일러스트들을 투척할 수 있도록 할게요! 모두 다시 한번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