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02화
뿌린 대로 거둔다 (9)
“부상자는 놔두고 간다!”
“하지만….”
“제기랄! 명령이다! 부상자들은 내버려 두고 이동해!!”
“…….”
“이동하라고 이 새끼들아!!”
망설이는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자꾸만 뒤를 되돌아보는 모습들도 보인다.
명령을 내리고 있는 나 역시 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너진 잔해에 깔려 움직이지 못하는 부대원, 얼굴을 부여잡고 나뒹굴고 있는 동료, 몸통의 반이 으깨진 채로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있는 이들을 내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아주 오랫동안 함께해온 이들이었기에 더욱더 내버려 둘 수가 없다. 하지만 애써 고개를 돌려 그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군인이니까.’
정확히 말하면 군인이었다. 27군단 소환사태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연방의 군인, 오래전이라면 오래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연방은 아직도 당시 입었던 대미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도 회복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연방은 그 과정에서도 많은 것들을 포기했어야 했다.
나라의 인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군인이었던 이들이 용병으로 떠밀린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명령에 따라야 돼.’
군인이기 때문에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연방 출신의 용병으로서 고용된 것이기 때문에 명령에 따라야 했고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우리가 아니더라도 대륙에 유능하고 내로라하는 모험가들은 많다. 전 대륙에 퍼져 있는 연방 출신 용병들의 신용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뒤가 아니라 앞을 바라봐야 했다.
[우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콰아아아아아앙! 콰드드드드드드득!
굉음은 계속해서 들려온다. 사실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저절로 발길을 멈추게 된다.
1초, 단 1초였다.
아니,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놈의 시선을 끌기 위해 병력의 반 이상이 휩쓸려 나갔다.
“방패 위로 들어! 방패 위로 들고 이동한다!”
“네… 네! 소피아 대위!”
“대답할 시간에 더 재빠르게 움직여, 이 새끼들아! 더 빠르게!”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전투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걸 전투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방패 위로 계속해서 떨어지는 잔해들을 맞으며 병력을 이동시키면서도 계속해서 방금의 장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폭력을 위해서 태어난 것만 같은 몬스터 바하무트와 그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원정대원들 말이다.
쾅! 콰아아아아앙!!
“움직여! 더 빠르게! 이 새끼들아!”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솔직히 말해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이 지하신전에 있는 모든 병력들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자신들의 위에 실이 달려 있고, 누군가가 자신들을 조종이라도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마치 누군가가 미리 짜놓은 것 같은 각본처럼, 아니,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모든 게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건 정상이 아니야.’
“소피아 대위님! 길이 막혀 있습니다.”
“지휘관?”
“루트는 그대로예요. 소피아 대위님! 계속 전진하셔야 해요.”
“그대로 간다.”
“네? 하지만 길이….”
“내 눈에도 보여.”
“죄송합니다.”
자신의 눈에도 다리가 무너진 것이 시야에 비친다. 아마 계속된 전투로 인해 지하신전 곳곳이 저런 상태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표에 찍힌 루트는 저 다리를 건너라고 말하고 있었다. 잠깐 움찔했지만 멈출 필요는 없다.
“쏴! 쏴!”
거대한 발리스타를 장전하는 타 부대의 모습이 눈에 보였으니까.
밧줄을 달고 있는 화살이 반대쪽 벽으로 날아가 박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에서 벽에 묵직한 화살이 박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밧줄을 타고 가면 된다는 거겠지.’
움직이고 있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다. 다른 부대나 파티 역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밧줄을 타고 움직이고 있다.
[우으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위층에서 다시 한번 건물의 파편들이 떨어진다.
외줄을 타는 가운데 떨어진 거대한 파편들에 움찔거리는 이들이 시야에 들어왔지만 이윽고 커다란 보호막이 위에서 떨어지는 파편들을 막아준다.
다른 부대는 자신들을 막아주기 위해 생성된 보호막을 그대로 타고 올라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다.
“빨리 움직인다! 더 빠르게!”
“움직여!!”
“이동한다! 이동!”
“주문 외워! 좌표 조정한다!”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표물 접근! 목표물 접근 중! 더 빨리 움직이세요! 시간 없습니다! 시간….”
‘무슨 시간….’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다리를 거의 다 건넜을 때였다.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익숙한 인형이 시야에 비친다.
‘김예리?’
눈에 보이는 것은 파란의 딸이라고 불리는 김예리.
이윽고 그녀의 뒤로, 거대한 황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쿵! 쿵! 쿵!!
“움직여!!! 움직여!!!!”
“바하무트 님이… 네놈들을 벌하시리라!”
‘제길.’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김예리는 아슬아슬하게 녀석의 공격을 피하며 다리로 이동한다.
마치 곡예를 선보이는 것처럼 몸을 이리저리로 움직이는 그녀는 미리 연결되어 있었던 밧줄에 발을 놓는다.
거대한 황소는 어떻게든 그녀를 잡으려고 하지만 파란의 딸은 녀석의 행동이 무색해질 정도로 순식간에 밧줄을 타고 반대쪽에 당도했다. 심지어 자신의 위를 지나치며 말이다.
보호막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간 이들이 녀석을 향해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
노린 것은 녀석이 아니라 녀석이 디디고 있는 바닥.
콰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황소는 지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건 정상이 아니야.’
“임무 완수했습니다. 이동하겠습니다.”
“임무 완료. 지령 확인.”
“이동하겠습니다.”
‘이건… 이런 건 정상이 아니야.’
“도착하셨군요.”
“응. 기모 아저씨.”
공중에서 단검을 휙휙 돌리며 한 손으로 저글링을 하고 있는 김예리에게 말을 건넨 것은 깨진 안경을 쓰고 있는 전투 사제.
“임무는 뭐야?”
“5분 동안 대기입니다.”
“조금 쉴 수 있겠네.”
“…….”
“…….”
“거기 힘내. 그러니까. 거기.”
“소, 소피아입니다.”
“힘내. 소피아.”
“네. 네….”
‘어째서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거야.’
히히덕거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은 더욱더 이질적이다.
‘뭔가 다른 감흥은 없는 건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황소 형태의 레이드 몬스터에게 쫓겼던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전투사제의 농담에 그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모습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움직이셔야 해요. 소피아 대위님.”
“아. 죄송합니다. 지휘관.”
자신이 멍하니 파란의 딸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흔들고 곧바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발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머리가 복잡해진다.
“해당 위치로 도착한 이후 대기하시면 돼요.”
“네.”
[우으아아어어어어어어!!]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멀어졌다고 느낀 굉음이 어느 순간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오고 있는 거야.’
회색빛의 용사가 놈을 이끌고 근처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리라.
마법이 떨어지는 소리, 비명 소리, 명령을 내리는 소리, 여러 가지 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상황을 보지 않았음에도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 방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방금처럼, 부상자들을 버리고 왔던 아까 전처럼 모든 원정대원들이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사제들은 회색빛의 용사를 지원하고 자리를 옮길 테고, 마법사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회색빛의 용사의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준비되어 있는 창과 공성무기는 녀석의 외갑을 뚫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지하신전에 퍼져 있는 각 부대와 파티원들은 마치 서로를 보호하거나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각각의 부대가 맡은 임무들은, 아니, 심지어 그 임무를 행하는 과정이나 병력들이 움직이는 과정 역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이건… 정말로 정상이 아니야.’
아마 우리들의 임무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회색빛의 용사가 녀석에게서 더 멀어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 분명히 아까와 같은 임무일 터.
“위치에 도착했어요.”
교국에서 파견한 현장 지휘관이 조용히 입을 여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을 뚫고 들어온 폭력의 괴물, 바하무트와 부대는 다시 한번 조우했다.
회색빛의 용사는 순식간에 위로 솟아오르지만 녀석의 시선은 이쪽에 고정되어 있다.
‘기억하고 있어.’
아까의 1초.
병력의 반을 리타이어하게 만들었던 아까의 1초.
[우….]
녀석은 그 1초를 기억하고 있다.
녀석은 손을 들어 올린다.
‘도망쳐야 할까? 아니, 이미 늦었어.’
내려온 명령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방패… 방패 들어!”
이를 악문 사이에 거대한 손은 부대를 덮친다.
분명히 도움이 올 것이다.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는 마법사나 사제, 혹은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네임드가 올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곳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실패한 건가?’
아니야. 실패한 게 아니야.
어쩌면 자신들의 역할은 여기까지일 것이다.
‘시간을 얼마나 끌었지?’
연방에서 온 용병대가 원정대 전체에게 필요한 시간을 벌어준 셈.
아무것도 아닌 자신들이 놈의 시선을 끌었고, 결국에는 놈이 회색빛의 용사를 따라갈 수 있는 시간을 지연시켰다.
부상자들을 만들어 1초를 번 것처럼 이번에도 연방의 용병들을 이용해 몇 초 남짓한 시간을 번 것이리라.
별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커다란 일을 한 셈. 병력의 희생시킴으로써 전투의 우위를 가져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던가.
“하….”
밟고 있는 바닥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
내가 무언가를 인식하기도 전에 지면이 무너져 내린다. 거대한 괴물의 손은 허공을 가로지르고 자신과 부대원들은 지하층으로 떨어진다.
“뭐야! 뭐야!!”
바하무트가 괴성을 내지르고 다시 한번 회색빛의 용사를 쫓아 위로 솟구치는 것이 보인다.
갑작스레 부대원들 전체에 부유마법이 걸리고… 빠르게 추락할 줄 알았던 부대원들은 지하층으로 천천히 발을 내디딘다.
“작전 시작. 10초 전.”
“…….”
“작전 시작 10초 전 입니다! 소피아 대위님!”
그리고, 아까 전 다리에서 떨어졌던 황소형 몬스터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는 원정대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마력탄을 쏟아 붓는… 익숙한 콧수염을 한 얼굴도 말이다.
“스미스… 대령님?”
“오랜만이군. 소피아 대위.”
‘이건… 이건 정상이 아니야.’
“인사는 나중에. 안 그래도 전위가 부족한 참이었는데… 소피아 대위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군.”
“천장을 뚫어주신 것이 대령님이십니까?”
“나는 명령에 따른 것뿐이라네.”
“…….”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이건 어떻게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야.’
온몸에 소름이 돋아왔지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공포감과 이질적임.
마치 조종당하는 듯한 느낌에 얼굴을 구겼지만.
-작전 시작.
나는 어느새 방패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