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03화
뿌린 대로 거둔다 (10)
-작전 성공.
-작전 성공이에요.
-42부대 작전 성공. 피해자 전무. 고무적이네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순조로워요.
-…….
-7부대도 임무 완료했어요.
-…….
-라파엘 지하 6층 진입했어요. 루트 벗어난 것 같은데 재조정 부탁드릴게요.
-알겠어. 누나.
-군사님도 마찬가지고요.
-이미 확인했다.
-나도 이미 확인하고 있었어. 누나.
-부대 재배치.
-루트 재안내 시작.
-지하 4층 부상자 수습 필요해요. 혹시 까먹으셨을까 봐 말씀드리는 거예요.
-확인.
-현재 진행 중인 작전 성공률 98% 정도네요. 오류가 난 부분 지금 전송해 드릴 테니까. 수정안 가지고 와주세요. 곧바로 현장 지휘관들한테 전송할 테니까. 2분이에요.
-나는 바빠. 누나.
-내가 하지.
‘그래. 네가 해야지. 누가 봐도 네가 싸질러 놓은 똥인데.’
-애초에 저 모자란 놈에게 이쪽을 맡긴 건 실수였다. 어떤 게 잘못됐는지 정확히 파악해야겠군. 아직 실행되지 않은 작전에도 도입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
-뭐? 그건 군사님 실수였는데요? 뚫린 입이라고 아무 소리나 지껄이시면 안 되죠.
-어처구니가 없군. 현장을 직접 컨트롤하고도 네놈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몇 번이나 중요하다고 말했던 임무였다. 네놈이 아끼는 파란 놈들에게 쏟을 시간을 여기에 쏟았다면 작전을 실패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르지.
-여기서 파란 길드 이야기는 왜 나와? 판이 깔려야 뭘 할 수 있는 거예요. 썩은 땅에 좋은 씨앗을 주고, 좋은 비료를 넣어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애초에 작전 기획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이 양반아. 당신 기획서가 쓰레기였단 말이지.
-웃기지도 않는군. 차근차근 다시 한번 설명해 주지. 물론 네놈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은 되는지 궁금하지만 말이다.
-또 그러네. 둘 다 싸우지 마요.
-이건 싸우는 게 아니라.
-아 좀 싸우지 말라고요! 티격태격하지 좀 마. 누구 잘못인지 가려내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예요? 지금 두 사람 다 여유롭나 봐? 그러고 놀 시간은 있어요?
-여유로운 정도는 아닌데. 충분히 컨트롤 가능한 상황이야. 물론 우리 진 군사님은 그렇지 않을 테니 내가 져주는 게 좋겠네. 지금 한계죠? 군사님의 조막만 한 뇌로는 이걸 따라오는 데 무리가 있을 테니까. 이 악물고 있겠지?
-대답할 가치도 없는 멍청한 소리. 딱 한 마디만 해주지.
-아, 그만 좀 하라고!
‘시바 어디서 여유로운 척하고 자빠졌어?’
이 악물고 계산기 두드리는 게 보이는데. 눈에 실핏줄 다 터지고 있는 게 딱 보이는데. 어디서 여유로운 척을 하고 그래?
‘이건 내가 이긴 거야.’
녀석은 이쪽의 상황을 볼 수 없지만 나는 진 군사를 볼 수 있으니까.
조금 유치하기는 하지만 이 악문 녀석의 상황이 우습게 보이기도 했다.
솔직히 다른 잡담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여유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알량한 자존심 좀 챙겨 보겠다고 무리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전부 제 살 갉아먹기밖에 되지 않겠지.
이기지도 못할 싸움에 자존심부터 들이미는 것을 보니 놈 말대로 콩알만 한 여유가 있기는 한 모양. 한 손으로 코피를 닦아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재수 없기는 해도….’
확실히 능력이 없지는 않아.
인정하기는 싫지만 녀석이 제대로 일해주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정말로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
적재적소의 위치에 항상 쓸 수 있는 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전체적인 설계는 함께 준비하기는 했지만 모든 게 계획대로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리가 책정한 확률과는 다르게 변수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실수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일어날 변수에 얼마만큼 실시간으로 반응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시점, 레일에서 이탈한 열차를 얼마나 빠르고 확실하게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지가 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이건 재능의 영역이야.’
눈을 가지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순수하게 대가리에서만 나온 것으로 이 병력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놀랍지.
녀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나와 다르게 한정적일 테니까.
심지어 녀석은 망원경으로 현장 상황을 둘러볼 수 없다. 야전지휘관들의 보고와 맵에 찍힌 파란 점들로만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오빠 라파엘 루트 변경 확인했어요. 각 부대 임무 업데이트했습니다. 군사님 확인해 줘요.
목소리와 동시에 병력들이 이동하는 것이 맵으로 보인다. 파란 점으로 움직이는 병력들은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꿔 본인들에게 할당된 지령을 확인한다.
-알겠다.
파란 점들이 흩어졌다가 뭉쳤다가를 반복한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병력이 뒤섞이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한다.
공화국 전쟁에서의 전술 김현성 때와는 다르다. 전쟁터처럼 사용할 수 있는 말들이 언제나 존재하지만 이 넓은 지하신전에서는 말들을 직접 준비해야 한다.
평범한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이동하는 바하무트와 라파엘의 술래잡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녀석의 여파가 미치지 않을 루트를 찾아 계속해서 움직이고 움직이며 순환시켜줘야 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동선을 많이 짜 놓은 이유 역시, 타 병력들이 움직일 최단 루트를 안내해야 했기 때문.
변수는 전투에 들어갈 때뿐만이 아니라 이동할 때도 생겨난다. 가장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녀석이 하는 일은… 전체적인 계획이라는 토대 아래 쌓아 올린 테트리스 게임에, 조각들을 만들어 보내주는 일.
적어도 지금까지는 내가 받은 조각 중에 맞지 않은 조각들은 없었다.
길다란 작대기만 계속해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필요한 부품들이 보인다.
가끔은 본인이 직접 조립하기도 하고, 설계도를 보내오기도 한다. 정확한 업무 분담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사실 명확하게 구분할 수도 없었다. 나는 누나를 이해하고 있고, 누나는 녀석을 이해하고 있다.
계획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리라.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계획, 전술을 공유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또한 그것들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방안을 발견했다. 이 시스템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이 시스템에 익숙해질수록 점점 더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다.
오류와 변수를 제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업데이트를 계속해 나간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이 전장을 편하게 굴릴 수 있게 만들어준다.
‘편리하기는 해.’
[우으어어어아아아아!!]
녀석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계속해서 생겨난다.
전장과 상황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활용할 수 있는 카드는 많다. 변수가 나타나지만 수정안이 곧바로 도착한다. 구멍이 뚫리는 부분이 스스로 메워진다.
내가 크게 손을 대지 않아도 이 확률 그래프는 스스로 움직인다. 톱니바퀴와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커다란 지하신전을 굴러가게 한다.
맵 안의 점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호작용하고, 저마다의 목표를 위해서 움직인다. 물론 종착지는 같다.
“임무 완수. 다음 지령 확인합니다.”
“타 부대와 합류한다.”
“임무 완수했습니다! 대장!”
“지휘관! 다음은 어디로….”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부상자 확인. 구출 임무 진행하겠습니다.”
“움직여! 움직여!!”
“적과 조우! 적과 조우했습니다!”
[우으어아아아아아어어!! 우으… 우아아아아!!]
화면은 계속해서 전환된다.
임무 성공과 다음 임무를 내리기 위해서 계속해서 손과 눈을 움직인다. 한쪽 시야는 라파엘을 바라보고 있지만 나머지 시야는 녀석을 느끼기 위해 집중할 수밖에 없다.
---우정 길드에서 보고 드립니다. 현재 전투 인원 과도한 마력 사용으로 인해….
-우정 뭐시기 후위들은 세이프티 존으로 이동시킬게요. 여기에서 리타이어할 애들은 아닌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퍼졌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력을 전부 사용한 마법사, 신성력이 바닥난 사제, 화살이 떨어진 궁수들, 체력적으로 한계를 맞이한 전위들이 생겨난다. 초조하지만 불안하지는 않다.
‘좋은 거야.’
죽이지 않고 마지막까지 사용했다는 거니까.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연료는 정해져 있다. 가장 효율적인 방향으로 녀석들의 연료를 소모시켰다면… 기뻐할 만한 일이다.
물론 마지막까지 알차게 써먹는 게 좋겠지. 우정 길드의 전위는 아직까지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였으니까.
---스미스 대령?
---스미스… 대령입니다.
---전투 인원 23명 내려갑니다. 방법은 소피아 대위 때와 같습니다. 정확한 지령은 1분 뒤에, 작전 시작은 약 5분 뒤가 될 예정이니 대기하세요.
---알겠습니다. 명예추기경님. 윽. 죄송합니다. 현재 전투 중입….
---이번 일만 잘 끝나면 파란에 들어오시는 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건….
---나 누구한테 두 번이나 입단제의 한 적 없는데….
---…….
---왜 두 번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할 필요가 없었던 건 아닐까? 가지지 못하면 부숴 버리려고 하는 못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거라 믿을게요.
---네.
템플러 엑스트라 레이드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중, 전력이 깎여나간 부대를 재활용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황소에게 계속해서 마력권총을 손으로 뿜어대는 멋진 콧수염의 스미스 대령의 얼굴이 구겨지기는 했지만 사실 쟤도 파란으로 들어오기를 원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변수는 곧바로 보고.
---…….
---작전 완료까지 앞으로 두 시간입니다.
---최선을… 다….
세상에 유능한 사람이 참 많아서 다행이야.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전장은 계속해서 뒤바뀐다.
스미스 대령과 인재들 몇몇이 힘든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템플러 엑스트라 쪽은 서브 스테이지. 메인 스테이지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마력 탈진 현상을 겪고 있는 마법사들이 많아요.
-내구를 제대로 벗겨내지 못한 것 같은데….
-전투 데이터. 전송했어요. 오빠. 패턴 분석도 완료했고요. 별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시간을 끄는 일, 정보를 모으는 일, 내구를 벗겨내는 일, 녀석이 한 턴을 사용하면 이쪽에서는 녀석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얻어간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행될 작전의 확률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원정대가 목적으로 했던 방향으로 더욱더 빠르게 이동한다.
-작전 시작.
-임무 완수.
-임무 완수했습니다.
-작전 성공, 나쁘지 않군.
-작전 전달.
-수정 필요 없어요.
맵에 보이는 파란색 점들이 녀석을 중심으로 원을 그린다. 완벽한 원은 아니다.
너무나도 먼 거리가 떨어져 있어 포위했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
엄폐물이나 벽에 가로막혀 녀석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부대, 혹은 다른 층에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도 있었지만 나쁘지 않다.
녀석 역시 원에 손을 대기 위해서는 많은 턴을 소비해야 할 테니까. 아마 쉽사리 턴을 내줄 수 없겠지.
‘지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야.’
체력적으로는 지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대미지를 입고 있을 것이다.
짜증, 불안감, 분노, 초조함, 이런 종류의 장기전에서는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소위 불필요한 감정들 말이야.
녀석은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단순하고, 알기 쉽지만 인간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실제로 한 가지에 엄청 집착하고 있는 걸 보면 더욱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게 네 목을 조를 거야.’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를 맞은 라파엘은 지상층으로 올라간 것은 바로 그때.
-작전 시작.
공중으로 치솟은 라파엘은 빛나는 깃털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우으어어어어어!!!]
사방에서 마법들이 쏟아진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녀석이 아니라,
공중에서 힘없이 떨어지고 있는 작은 깃털을 향해서라는 것.
“푸하헤헤헤하하하핫하하핫!!”
-지독하군.
“푸흐헤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
“약점이 있으면 공략하기 쉽다니까.”
그 커다란 몸으로 작은 깃털을 보호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맞기 시작한 놈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천사의 깃털.
그것이 악마의 움직임을 봉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