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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08화 (99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08화

뿌린 대로 거둔다 (15)

감정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아아아… 제니… 제니!!”

“…….”

“젠…. 흐윽… 흐으윽… 아아아아아아아!!”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슬픔이 온몸을 뒤덮은 것은 당연지사.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템플러 젠의 몸을 살펴봤지만 녀석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지 오래였다.

괴물의 모습으로 죽은 녀석의 얼굴에는 나에 대한 걱정과 희미한 만족감이 서려 있었다. 자신의 끝은 이래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템플러 젠은 자신을 혐오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임무를 위해서였다지만 녀석은 빛을 등진 사제였으니까.

예언의 사제가, 희생과 부활의 신의 옆에 서기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부정하다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마지막은 이런 형태여야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희미한 만족감은 분명 그런 의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추악하고 역겹게 오염된 자신의 마지막이 가장 밝게 빛나는 빛을 위해서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직접 선택한 행동에 대한 최소한의 면죄부를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

어느 날,

어느 날… 지상에서 내려온 사제가 녀석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것이다.

“아아악… 아아아아아아!!”

녀석을 지금까지 지탱시킨 것은 예언의 사제가 남기고 간 그림자였다.

지상으로 올라가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받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믿으며,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믿고… 녀석은 수없이 많은 시간을 지상에서, 혹은 지하에서 배회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흑… 제니….”

그 마지막이 이런 형태라니. 이런 것이라니….

녀석의 몸을 끌어안은 채로 시작된 본격적인 오열,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뒤죽박죽 올라가고 내려가는 마력.

너무 집중했나 싶을 정도로 통제가 되지 않는 감정, 계속해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으로 모자라 심장이 계속해서 두근거린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호흡이 가빠진다. 주변의 것들이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다.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도 인지할 수가 없다. 내가 녀석을 붙잡고 계속해서 오열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제니… 흐으윽… 흐으으으으윽….”

물론 그것은 한순간, 갑작스레 통제를 잃은 몸을 붙잡은 것은 이성이다.

이러지 마.

솔직히….

솔직히….

‘그렇게 슬프지는 않아.’

어차피 얘는 쓰고 버릴 말로 생각했었으니까.

기획을 그렇게 했었는데 뭐. 굳이 슬퍼할 이유는 없어.

템플러 젠, 템플러 제니는 장난감 이었지.

그 누구보다도 내가 그걸 더 잘 인지하고 있었다. 젠을 쓰려면 이렇게 쓰는 게 최선이었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어차피 교단의 개혁을 위해서는 쓰고 버려야 할 장기 말.

어떻게 생각하면 최선의 결과지. 김현성도 살릴 수 있었고 나도 한목숨 부지할 수 있었으니까.

“흐윽… 하으으윽….”

내가 죽는 것보다는 녀석이 죽는 게 나아. 이기영이 없어지면 우리 현성이가 무너지니까. 레이드 자체가 쫑 난다고 봐야지 뭐.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흐윽… 흐윽… 아아아아아….”

덕구 때, 혹은 둠둠현성 트라우마가 생각난 것 같기는 하네. 현성이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슬픈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저절로 그렇게 됐나 봐.

“정말로… 흐윽… 흐으으윽….”

솔직히 쟤는 장난감이었거든. 안 좋은 기억도 많고 잘됐다 싶어.

“아아… 흐으윽… 흐윽… 흐으윽….”

솔직히 쟤는 장난감이었자너. 꿀꿀이죽 생각하면 부관참시해도 모자라는데.

소리 버럭 질렀을 때도 마찬가지고 오물 뒤집어쓴 모포는 또 어떻고, 빗물 들어오는 방구석 청소하느라 진이 다 빠졌었는데.

제니는 살짝 귀엽기는 했는데 많이 답답하기는 했지.

“아아아아아… 미안해요. 제니. 미안해….”

솔직히 쟤는 장난감이었지. 근데 시바. 장난감도 가지고 놀다 보면 더 가지고 놀고 싶어질 때도 있자너.

솔직히 말하면 내가 버리고 싶은 타이밍이 아니기는 했어.

막 버리려고 하기는 했는데. 거의 다 먹은 아이스크림이 땅에 떨어진 것 같은 찝찝함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그게 기분 나빠.

역설적으로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 같았다.

누가 보더라도 완벽하게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처럼 보일 테니까.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모습이야.

계속해서 시체 붙잡고 오열하면서 말이야. 김현성 보란 듯이 더 붙잡으면서 눈물 질질 흘리고….

솔직히 내가 젠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다들 대충 알고 있는 설정이었지?

김현성은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떠올리고 있다. 붉은 전신과 정하얀이 잠깐 녀석의 시선을 끌어주는 가운데, 김현성은 애매한 손으로 나를 위로하며 자신도 누군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템플러 젠이 사라진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내 슬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은 모습, 순식간에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친우에 대한 걱정, 혼란, 동조.

‘이건 좋아.’

조금 더 품고 싶었던 장난감이든 아니든 간에 이미 녀석은 내 손을 떠났다.

남은 건 어떻게 활용할지.

‘이걸 어떻게 사용할지야.’

“기영 씨… 기영… 괜찮….”

“흐윽… 흐으으윽….”

위로하는 현성이의 안락한 품에 저도 모르게 기대다가 곧바로 이 새끼 뿌리치고.

‘솔직히 너도 잘못 없는 건 아니잖아. 네가 날 위로할 자격이 있어?’

녀석의 탓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김현성 자격 박탈! 시바!

깜짝 놀라며 한발 물러서는 녀석. 멈추지 않고 분노와 원망의 눈빛을 쏘아 보낸다.

‘받아줘. 원망의 눈빛.’

애초에 네가 내 말을 들었더라면…. 너만 아니었다면 템플러 젠은 죽지 않았을 텐데….

‘너만 아니었다면… 네가 날 과거에서 데려오지 않았다면….’

“기영… 기영 씨… 저는… 그게… 그런 게….”

당연하지만 당황한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비쳐왔다. 직접적인 원망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물론 녀석의 그런 표정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지금은 전투 중이었으니까.

바하무트는 우리들이 찍을 드라마를 기다려 줄 만큼 호의적인 몬스터는 아니다.

덮치듯 달려들어 온 녀석을 붉은 전신이 몸통 박치기로 밀어버렸고 불가항력으로 김현성 역시 전투에 참여해야만 했다.

북 치고 장구 치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마치 삶을 포기한 것처럼 조용히 천장을 바라본다든가, 눈물을 흘리고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한다.

누가 봐도 주변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은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회귀자 사용설명서를 켠 이후에 계속해서 내 상태를 보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슬픔, 혼란, 좌절, 두려움.

그리고 분노.

내 장난감을 부숴 버린 나쁜 아이에 대한 분노.

김현성에 대한 분노.

활활 타오르는 분노.

머릿속에 분노 외에 다른 감정을 배제하고 있을 때,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물론 이기영이 분노했다고 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각성한 다음에 검을 들어 올린 것도 아니고 동료의 죽음을 양분 삼아 계단 하나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김현성 입을 다물게 만드는 효과 정도일까.

‘아냐.’

이걸로 끝나면 안 돼.

이 새끼는 더 쓸 데가 있을 거야.

최소한.

이 검은색 혈액은 쓸 만할 거야.

다소 충동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번쯤은 할 법한 생각이기도 했다.

템플러 바하무트는 황소를 씹어먹고 3단 진화를 거쳤으니까.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봐야지.

검은 혈액은 부정의 힘이다.

아마도 루키페르가 만든 악마의 씨앗. 바하무트가 할 수 있다면 나 역시 할 수 있다.

비위가 상하기는 몸에 고여 있는 혈액을 두 손으로 뜬 이후, 조용히 입으로 가져다 댈 준비를 한다.

‘템플러 젠은 죽었어.’

이젠 더는 없어.

하지만 내 안에, 내 피에, 하나가 되어 살아가.

이쪽 진화 루트도 하나 더 뚫을 때가 되기는 했어.

사실 이런 의식조차 필요하지 않다. 이건 신성에 가까웠으니까.

거부반응도 없다. 나는 직업전환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이런 힘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게다가 이 힘은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다.

바하무트도 그랬지.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어. 살짝 무섭기는 했지만 시도해 볼 만하기는 해.

물론 내 행동은 반대에 부딪힌다.

“기영 씨… 기영 씨!! 안 됩니다!”

“자기…? 뭐 하는 거야! 지금! 빨리 거기서 떨어져!”

“오빠….”

하지만 타이밍 좋게 날뛰는 바하무트 덕분에 내 쪽에 손을 뻗을 여유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안 돼… 안 돼!!!”

조심스레 입을 가져다 대는 모습은 슬로우모션으로… 급하게 나를 바라보다 바하무트의 공격에 반대쪽으로 튀어나간 김현성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두근.

비명을 지르지 않아야 한다. 그게 분위기 있잖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릎을 꿇고 양팔로 어깨를 감싸고 괴로워한 순간,

뿌득뿌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등 뒤로 날개가 돋아난다.

문제가 있다면….

시바 문제가 있다면… 평범한 날개가 아니었다는 것 정도.

등 뒤에서 계속해서 쉬익, 쉬이이익,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수많은 백사들이 서로 난교를 벌이는 것 마냥 짝짓기를 하고 있다. 뱀들이 서로 꼬이고 꼬아 만든 형태의 날개는 그로테스크한 것을 넘어 괜스레 몸을 떨리게 만든다.

‘시바 이거 뭐야. 시바. 시바. 시바. 이거 뭐야.’

머리를 붙잡자.

머리카락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한다.

‘시바 뱀이잖아. 시바.’

머리카락도 뱀이잖아. 시바.

머리카락 역시 붉은 눈을 한 백사들로 변해버렸다.

눈동자는 붉은색. 피부는 조금 더 매끈매끈해진 것 같은 느낌, 왠지 모르게 윤기가 흐른다. 마치 뱀처럼 말이다.

혓바닥도 엄청 길어진 것 같아. 시바. 괴물 됐나 봐. 나 어떻게 해. 현성아. 하얀아. 희라 누나. 나 어떻게 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볼 수 없어서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눈에서 끊임없이 검은색 눈물이 떨어졌다는 것.

멈추려고 해도 멈추어지지 않는다. 바하무트가 타액을 흘리는 것처럼 나 역시 부정한 눈물을 계속해서 떨어뜨리게 된다.

‘눈물은… 좀… 멋있을 것 같기는 하네.’

언제나 뿜어져 나오던 찬란한 빛 대신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것만 같은 하얀색 어둠이 퍼진다.

내 주변으로 마치 패시브마냥 하얀색 어둠이 공간을 일그러뜨린다.

하얀 어둠은 계속해서 공간들을 끈질기게 탐닉하며 천천히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백사들은 계속해서 서로를 위로라도 하는 것처럼 몸을 뒤엉키며 움직이는 중. 쉬이이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말이다.

위안이 있다면 그리 무겁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언제나 등장은 임팩트 있어야 되거든.

‘한 발자국.’

보라.

하등한 인간들아.

‘그리고 또 한 발자국.’

기억하느냐.

필멸자들아.

너희들의 악몽이자 두려움.

역병의 군주가 강림했노라.

[신화 등급]

[색욕과 영면의 군주]

‘어?’

[색욕과 영면의 군주가 강림합니다.]

‘뭐야. 나 이거 싫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