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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10화 (99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10화

뿌린 대로 거둔다 (17)(삽화)

삐이.

하는 이명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후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저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를 내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순식간에 폐 속으로 들어오는 흙먼지 때문에 기침을 하게 된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도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몸이 누군가에게 안긴 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몸에 이상이 차츰 가시기 시작한 것은 얼굴에 차가운 감각이 느껴진 이후.

입안으로 들어오기 청량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목을 길게 내빼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무작정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흐릿했던 의식은 점점 또렷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손에 잡힌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마시자 그제야 주변 상황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사제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부상자들을 챙기고 있었고 여기저기에서는 비명 소리와 함께 신음이 들려오는 중이다.

“여기 아직 살아 있어요.”

“일단 응급처치라도….”

“포션 남은 것 있나?”

“빨리 움직여. 빨리.”

자신이 있는 곳이 완전히 달라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히… 분명히… 황소를 사냥하고 있었는데.’

단편적으로 기억이 사라진 듯한 느낌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 떠올린다.

물론 금방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분명히 레이드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갑자기 위층이 붕괴하며 바하무트가 떨어져 내렸고, 그 이후에는….

‘명령을 따르기에 여념이 없었지.’

갑작스러운 변수에 순식간에 시작된 탈출 작전, 루트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한번 굉음이 울리며 파편들이 대원들을 덮쳤다.

분명히 스미스 대령님과 함께….

“아….”

‘스미스 대령님은… 스미스 대령님은 어디 계시지?’

“소피아 대위님?”

“…….”

“괜찮으십니까?”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함께 행동하던 단원의 모습이 들어왔다. 여기저기에서 상처를 입었지만 그나마 성한 편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보, 보고드리겠습니다. 대위님. 명령을 받고 황소 레이드를 진행 중인 도중, 위쪽에서….”

“그건 알고 있다.”

“이후 부대에 퇴각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지휘부에서 내려온 루트에 따라 현장을 탈출하던 도중, 갑작스레 다시 한번 알 수 없는 충격이 원정대를 덮쳤고….”

“고립된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지원 부대가 찾아왔군.”

“네. 그렇습니다.”

“스미스 대령님은 어디 계시지?”

“현재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십니다. 사실 대령님께서 이, 이곳까지 대위님을 안고 뛰어오셨습니다.”

‘스미스 대령님….’

연방에서의 인연에게 다시 한번 도움을 받은 모양이다. 씁쓸한 웃음을 보이자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보다 움직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현장 지휘관은 중상이며….”

“보고 문제로군.”

“네.”

절차였다. 이미 지휘부 쪽에서 상황을 전부 파악하고 있겠지만 직접 보고를 올리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스미스 대령님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 현장 지휘관이 중상이라면 그다음 책임자가 보통 보고를 올리게 된다.

우정 길드라고 했던가. 위로 몇 명이 더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지만 자신에게 차례가 돌아온 것이라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겠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뼈마디가 욱씬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고통에 인상을 찡그렸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힘드시다면….”

“아니, 내가 가도록 하지. 의무를 저버릴 수는 없으니까.”

“제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위님.”

“아니, 조금 더 쉬도록. 명령이다.”

“네.”

간이로 지어진 지휘관 캠프 역시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발걸음을 올리자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이 떨어진다.

“신원.”

“소피아 단장입니다. 소속은.”

“확인했습니다. 소피아 단장. 안으로 들어가시죠.”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색욕과 영면의 군주가 강림합니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피가 머리로 쏠리는 것 같은 느낌, 압도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정체불명의 에너지가 온몸을 휩쓸고 가는 것만 같다.

지휘관 막사의 안에 있는 인원들의 시선이 전부 한 곳을 향하는 것이 보였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눈에도 그들과 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뭐지?’

“명… 명예추기경님.”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머릿속까지 닿지 않는다.

‘저게… 도대체 뭐야….’

여신의 거울에 비치고 있는 것은… 백사의 머리카락, 마찬가지로 백사로 이루어진 날개를 달고 있는 인형, 뱀들이 서로서로 꽈리를 틀어대는 모습은 마치 짝짓기를 하는 것만 같다.

기이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그것들의 모습은 기묘하다는 것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질적이다. 이질적인 모습이라고 봐야 함이 옳다. 저게 교국의 명예추기경, 이번 원정대의 총사령관이라는 것은 넘겨두더라도 누가 보기에도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도 명확히 인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것이 살짝 입을 벌리자 기다랗고 갈라진 혓바닥이 보인다.

기괴한 미소.

기이한 일이었다. 눈에서는 끊임없이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가 입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운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아름다워….’

“아아… 아름다워….”

너무나,

아름답다. 그래. 저건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저 생명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것은 아름다운 생명체였고 아름다운 존재였다.

너무나도 약하고 너무나도 쉽게 부러질 것만 같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다.

투명해 보이기까지 하는 하얀색 피부는 그 어떤 것보다도 매끄러울 것만 같다.

가는 손가락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극적인 연주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붉은 눈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는 눈물은 그 어떤 것보다도 달콤한 과즙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딱 한 번만… 조금만 저 과즙을 맛볼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텐데.

저 존재의 눈을 단 한 번이라도 마주 볼 수 있다면, 저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텐데.

그 아름다운 생명체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숨이 멎을 것만 같다.

‘가지고… 싶어.’

불현듯 떠오른 감정은 소유욕이다. 이후에는 온갖 추악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처럼 머릿속을 헤집는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면들이 계속해서 뇌를 갉아 먹는다.

머리 쪽으로 피가 쏠리고 어디에선가 뚝뚝 피가 떨어져 내린다.

그것이 자신의 눈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직후였다. 이해하지 않으려 해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시야가 점점 붉어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기이하게도 저 존재의 모습은 점점 더 또렷해진다. 붉은색의 시야임에도 불구하고 저 인외의 색은 변하지 않고 있다.

‘가지고 싶어. 저걸 소유하고 싶어. 내 것으로 하고 싶어.’

저게 내 것이라면 너무나도 행복할 텐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꼭꼭 숨겨놓고 달콤한 과즙을 마음껏 마실 수 있을 텐데.

마음속에 있는 공허함과 목마름이 전부 채워질 텐데. 저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저 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부 확인해 볼 수 있을 텐데.

조금 더 자세히 저것에 대해 알아볼 수 있을 텐데.

‘저건 내 거야.’

아무한테도 줄 수 없어.

저건 내 거야.

한 발자국 발걸음을 옮긴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귀에서도 피가 흘러내리는 것만 같다.

[어서 와주세요~]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가 뇌를 어루만지는 것 같다. 부드러운 손길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주름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훑어주는 기분이었다.

찌릿찌릿 울리기 시작한 감각은 정신을 뒤흔든다. 아이스크림. 뇌가 마치….

‘아이스크림이 된 것 같아.’

목소리가 귀에 울릴 때마다 누군가 한 입씩 아이스크림을 베어먹는 것 같은 기분.

“나… 나….”

시선을 가로막고 있었던 거한이 옆으로 쓰러진다.

쓰러지기 직전의 확인한 그의 얼굴은 눈과 귀, 코와 입 전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정신을 잃은 듯 부들부들거리고 있었지만 입꼬리가 올라간다.

울컥울컥 계속해서 피를 토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서도 계속해서 미소 짓게 된다.

그 역시 기괴한 웃음을 짓고 있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보이고 있다.

저 존재와 만난 것일까? 혹시나 저 존재와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아아….”

“아아아아아!”

“성역화.”

어지러운 생각들이 순간 사라진 것은 맑은 목소리가 들려온 이후,

파란 길드의 엘프여왕 엘레나가 모습을 드러낸 시점이었다.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하이엘프, 신성주문과 함께 캠프 안으로 그녀를 향한 감정은 고마움보다는 분노, 그 분노가 제정신을 차리게 해줄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실제로 접촉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니… 후우… 정신이 드시나요?”

“…….”

“…….”

‘내가… 내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저도 모르게 다시 한번 여신의 거울 안을 바라본다. 거울 안에서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이질적이다.

노을빛의 검사가 거대한 거신을 꺼내고, 바하무트라 불리는 괴물의 팔을 잘라냈을 때도, 팔을 잃은 괴물과 거신이 몸을 부딪쳤을 때도, 괴물의 팔이 재생되기 시작하고, 거신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을 때도.

시선은 여전히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계….’

능력, 아니, 능력이 아니라 권능, 혹은….

혹은 저주….

방금 전까지 자신은 홀려 있었던 것이리라. 멍한 얼굴로 검을 휘두르는 저 노을빛의 검사처럼 말이다.

“감사합니다. 엘레나 님… 저는….”

“지금 여기서 보고 들은 것들은 전부 잊으셔야 합니다.”

“…….”

“이곳을 나가는 순간, 전부 잊어주셔야 해요.”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정말로… 사령관일 줄이야.’

“부탁이 아닙니다.”

“…….”

“제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지 잘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순하기로 소문난 파란 길드의 엘레나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

‘정말로… 파란 부길드 마스터였어.’

대륙은 이번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저들은 바하무트라고 불리는 악마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건….’

“저… 건… 도대체… 도대체 저건 뭐냔 말이야….”

어쩌면 대륙은 더 큰 적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꽉 잡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페이지에 정하얀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흙수저 : 정하얀 웨딩드레스 일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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