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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12화 (99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12화

뿌린 대로 거둔다 (19)

언제나 그렇듯 찬란한 노을이 공간을 감싸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노을빛의 궤적이 점점 퍼져 나가는 것은 마치 꿈에서나 본 것만 같은 광경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은 바하무트의 몸이 양단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껍고 거대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녀석의 검은색 몸체가 천천히 갈라진다.

두 손으로 검을 붙잡고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었지만 녀석의 추악한 숨결을 뱉어내기 전에 마침내 노을빛의 검신이 놈의 몸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당도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당연지사.

깔끔하게 베어냈다기보다는 힘으로 찍어 누르면서 밀어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모습.

순식간에 주변에 충격파가 퍼져 나가며 흙먼지들을 비롯한 파편들이 둘을 중심으로 흩어져 나갔다.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충격에 잠깐 동안 의아해하기는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아니었다.

단순히 검이 몸통을 가른 것이 아니다.

노을빛이 부정하고 역겨운 검은색의 힘을 이겨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저항하는 힘이 거셌으니 힘과 힘의 충돌이 일어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

밀어내려고 하는 자와 버텨내려고 하는 자의 싸움의 승리자는… 사랑스러운 회귀자 김현성이었다.

[시바! 시바! 이거야! 이거라고! 현성아아아!! 현성아아아아아!!]

‘우리 현성이 시바 내가 해낼 줄 알고 있었어.’

[개 멋있어. 진짜! 개 멋있었어! 시바!]

‘내가 괜히 김현성 코인을 탄 게 아니자너.’

[영웅! 노을빛의 검사! 믿고 있었다구 젠장!]

‘시바. 이거지. 이래야 우리 회귀자지!’

[이래야 김현성이지!]

‘이 정도는 해줘야 우리 회귀자지!’

[현성아아아아아아아!!]

‘저 늠름한 모습 좀 보라구! 저게 바로 우리 회귀자야!!’

결과는 놈의 몸이 갈라진 것뿐이었지만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일루와! 일루와 현성아!]

‘사람들이 왜 스포츠에 환장하는지 알겠어. 진짜 이해 못 했었는데….’

이기영한테는 완전 딴 나라 이야기였는데. 진짜 이게 닿을락 말락 하니까 사람 미치게 만들자너.

대륙에 모의 전투를 기반으로 한 스포츠 리그를 론칭할 생각을 잠깐이나마 해볼 정도였다. 아마 꽤 인기 있지 않을까?

‘심장이 다 벌렁벌렁거린다니까.’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 이렇게 하이한 상태가 된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말 그대로 결과는 놈이 누워 있게 된 것뿐이었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바하무트가 암흑의 씨앗에 먹힌 것이 유효했고, 드락타리스와 템플러 제니가 이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역시 유효했다.

누나, 그리고 진 군사와 함께 했었던 작전에서 사전에 놈의 체력과 내구를 빼놓지 않았었더라면, 녀석이 마지막 일격을 허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간발의 차이, 녀석이 틈을 내보인 그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허억허억거리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김현성이 이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말해주는 것만 같다.

노을빛의 거신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한계였는지, 순식간에 흩어진 마력과 함께 바닥에 떨어지는 녀석.

그대로 떨어지며 땅바닥으로 나뒹구는 김현성은 계속해서 커다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를 반복하고 있다.

방금 전에 일어나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기는 했지만 갓 태어난 사슴마냥 중심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정신없이 뛰어가 중심을 잃은 녀석을 얼싸안고 잘했다고 머리 한 번 토닥여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바! 시바! 시바! 잘했어! 현성아! 시바!]

“아… 감… 감사합니다.”

물론 이쪽을 긴장하게 만든 정적에 대한 모욕도 잊지 않는다.

[퉤! 이 역겨운 새끼! 이 구역질 나는 새끼! 왜 갑자기 이딴 새끼가 튀어나와서는 사람 짜증 나게 만들고 난리야. 시바!]

내가 너 때문에 마음고생을 얼마나 심하게 했는데. 침을 시바 천 번을 더 뱉어도 모자라.

“하아… 하아… 허억….”

[현성이 힘들어?]

“아니요… 아닙니다. 아직….”

[아니야. 아니야. 힘들면 쉬어도 돼. 우리 현성이. 마음껏 쉬어. 마음껏. 형이 잠자리도 깔아 줄까?]

“저… 저는 괜찮….”

[편하게 누워서 쉬어요.]

“해치운… 겁니까?”

[어허!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쉬어요.]

허락이라도 떨어진 것마냥 제자리에서 풀썩 허물어지는 녀석, 서 있었던 것만으로도 한계였을지도 모르겠다.

“허억… 허억….”

아니나 다를까 아직도 숨을 쉬기 힘들어 보인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도 한계를 맞이한 김현성에게 질책보다는 따뜻한 응원을.

[오늘 정말로 수고 많으셨어요.]

“감… 감사….”

[그러니 푹 주무세요.]

“네. 감… 감사 합… 니다.”

‘진짜 바하무트 이 새끼 해도 해도 너무한 새끼였어.’

아직도 믿기지가 않자너. 이 새끼가 등분돼서 이렇게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게 말이야.

[이 새끼 진짜 질겼….]

고생 끝 행복 시작, 대륙을 위협하던 유일한 적이….

“…….”

[우으… 아….]

[어… 현성아?]

“…….”

[지금 자니?]

괴물의 손가락이 살짝 꿈틀거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순간적으로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 것은 당연지사.

분리된 하체에 저절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검은색 혈액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인다.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그것은 양단된 하체와 천천히 연결되기 시작.

아까까지 방정을 떨었던 게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피가 식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시바. 시바. 이게 뭐야. 이게 갑자기 뭔 일이야. 이게….’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뭐….

[우으어아아아어….]

[현성아?]

다시 한번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말이 돼? 이게… 뭐 이런 놈이 다 있냐고.’

재생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기는 했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서둘러 김현성을 바라본다. 쉬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완전히 정신을 잃은 모습, 억지로 깨더라도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김현성의 안은 현재 텅텅 비어 있다. 녀석은 방금 있었던 전투에 모든 것을 비워냈다.

이 이상 몸을 움직이면 몸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올 가능성이 높다.

‘희라 누나는?’

지금 보고 있나? 이거 보고 있는 건가?

아마 꽤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정하얀도, 다른 원정대원들도 마찬가지다.

잠깐 동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이미 하체와 상체가 달라붙고 있다.

놈도 여력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얼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이 끈질긴 새끼.’

이 새끼 하나 때문에 진짜….

‘이 역겹고 구역질 나는 새끼.’

남은 포션이나 촉매가 있나?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저걸… 막을 수 있나?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때였다.

[예언의… 사… 제… 님….]

희미한 목소리.

[……]

[사제… 님….]

무척이나 슬프게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기억을… 되찾으셨어. 바하무트 님이….’

정신을 차려주셨어.

[이번에는… 이번… 에는….]

[바하무트… 님?]

[우으… 어… 사제… 님….]

부활하지 마. 시바. 이 새끼야. 부활하지 마.

[바하무트 님… 바하무트 님! 정신을… 정신을 차리셨군요… 흐윽….]

[주황… 빛의… 악마는….]

바하무트 님의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마지막 전투를 떠올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녀석이 내 목소리에 반응을 보였던 그때, 김현성이 녀석의 몸통을 가르기 직전 말이다.

커다란 충격파가 둘을 덮쳤고, 전후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녀석이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자신의 몸이 분리되어 있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심지어 눈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는….]

[어떻게… 사제님은….]

[…….]

[제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

[바하무트 님… 흐윽… 바하무트 니임… 흐윽… 흐으윽….]

일단은 울자. 한없이 울자.

괴물의 역겹고 커다란 얼굴에, 아니, 악마의 씨앗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악마의 얼굴을 있는 힘껏 껴안는다.

애절하고, 진실되게.

죽지 말라는 듯이, 당신은 죽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말이다.

안 그래도 검은색 눈물이 계속해서 뚝뚝 떨어지는 중, 혹여나 놈의 입으로 들어갈까 조심조심하면서도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시켜 준다.

촉감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자신의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사건은 마무리됐다.

주황빛의 악마는 죽었고, 희생의 천사, 예언의 사제는 악마의 손에서 해방됐다.

물론 아무 희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템플러 바하무트 역시, 그 전투의 마지막 끝에 죽어가고 있었다.

최소한 바하무트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세계관이 만들어질 확률이 높다.

[그보다 바하무트 님… 흐윽… 바하무트 님이….]

예언의 사제나 멀쩡히 자신을 껴안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겠지.

내가 지켜냈다고, 이번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고. 이번에는 해냈다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몸이 천천히 떨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감격스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녀석은 들릴 리가 없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순간적으로 긴장하기는 했지만 녀석의 손이 이쪽을 향해 뻗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라도 쓰다듬을 것 같은 느낌에 불안해져 내가 먼저 녀석의 손가락을 꽉 안는다.

[울지… 울지 마십시오… 사제님.]

[흐윽… 흐으으윽… 흐아으으으으으윽… 흐윽….]

[저는… 저는 괜찮….]

[죽지 마세요. 바하무트 님… 제발….]

[저는… 괜찮습니다. 사제… 님….]

괴물이 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 목소리는… 그 목소리는 틀림없이 죽기를 각오한 목소리였다.

[이제는… 전부… 이 모든 걸 끝낼 시간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발언.

예언의 사제의 마음을….

희생의 천사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버리게 만드는 발언이었다.

[아흐윽… 흐으으아악…. 흐으으으으윽… 아아아아아….]

[이제는… 끝낼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아아아아아아아… 흐으윽… 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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