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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15화 (1,00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15화

뿌린 대로 거둔다 (22)

‘내 새끼들 왔네.’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가장 먼저 들어온 김현성이 멍한 얼굴로 이쪽을 응시하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무언가 말을 건네려고 하는 것일까. 입을 뻐끔뻐끔거리던 녀석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성에 젖은 듯한 얼굴, 그 맑은 눈이 벌써부터 변화를 일으키려 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미안한 감정들이 샘솟기 시작했다.

“기… 기영….”

아마 목이 메이는 모양이다. 물론 녀석은 말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

녀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순식간에 파란 길드원들이 들이닥쳐 왔기 때문이다.

“형님? 형님… 일어난 거요? 우리 형님 일어났구만! 끄윽… 거 걱정했다는 거 아니요! 아니, 사람이 무슨!”

“부길드마스터!”

“조금 어떠십니까?”

‘누가 보면 5년 동안 기절해 있는 줄 알겠네.’

“부길드마스터… 잠깐….”

“잠깐만요. 상태 좀 체크해 볼게요.”

뭔가 감회가 새롭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리라. 매번 목소리들을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었으니까.

사교회에 한번 다녀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상할 정도로 반가운 느낌이 든다.

안심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조금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은 장내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다행히 엘레나와 선희영 덕분에 파묻히는 꼴은 면할 수 있었다.

“다행히… 괜찮아 보이십니다. 아직 안정을 더 취해야 하셔야 되는 건 맞지만… 그보다 조, 조금 진정들 좀 해주시겠습니까. 다들 기쁘신 심정은 이해하지만….”

여기저기에서 한꺼번에 들려오는 목소리들도 확실히 잦아지기 시작. 이제야 본인들이 환자의 앞에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 같았다.

“부길드마스터? 기분은 조금 어떠십니까.”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끝난 이후에 가장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조혜진. 걱정스러운 얼굴로 건넨 첫 마디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글… 글쎄요.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평소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너랑 엘리오스 소식 때문에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

그다음은 중얼거리는 김예리.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네.”

슬그머니 팔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자.

“뭐. 뭐 하는 거야.”

라고 말하며 손을 탁 쳐내는 모습이 보인다.

꼬맹이가 솔직하지 못하자너. 너 질질 짜는 거 내가 다 들었음.

길드의 원념 멤버들부터 차례대로 인사를 건네거나 근황을 전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한마디 한마디 전부 답변해 주는 것도 일.

뒤쪽에서 알프스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김현성이 보였는데. 잠시 후에는 요깃거리를 들고 오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형님 5일 동안 굶은 거 아니요. 근… 근데 식사가 좀 부실한 것 같은데.”

“이 이상 드시는 건 몸에 부담이 되실 겁니다. 일단….”

“아아. 그렇구만.”

“부길드마스터. 빨리 드세요.”

‘정신이 하나도 없자너.’

“오, 오, 오빠. 제가 먹여 드릴까요?”

아니, 무슨 동물원 원숭이라도 된 것 같아. 모두가 내가 스프 한 수저 뜨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민망하기 그지없다. 괜스레 눈치도 보이고….

솔직히 방금 일어나서 입맛도 없는데. 결국에는 몇 수저 뜨지도 못하고 숟가락을 놓아버렸다.

“그, 그만… 먹겠….”

“드셔야 합니다.”

아니, 진짜 입맛이 없다니까.

“기영 씨. 드셔야 합니다.”

“그… 그럼 조금만 더….”

“전부 드세요. 오, 오, 오빠.”

‘시바.’

솔직히 먹기 싫자너. 무슨 3살짜리도 아니고. 밥 먹는 걸 감시당해야 돼?

화제를 돌릴 수 있는 발언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조용히 숟가락을 놓은 이후에 길드원들 한 명 한 명을 응시한다.

“바하무트… 레이드는 잘 끝난 모양이네요.”

“…….”

“…….”

라고 한마디. 이후에는 곧바로 살을 붙인다.

“혹시… 템플러 젠은….”

대답한 것은 김현성이었다.

“템플러 젠… 그는 죽었습니다.”

“…….”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템플러 젠을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길드원들은 조금 눈치를 보기는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녀석의 최후를 환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 됐건 간에 녀석은 사상 최악의 범죄행위를 저질렀던 전적이 있었으니까.

이기영이 스톡홀름 신드롬 때문에 그를 아끼고 있다고 판단한 길드원 들에게 템플러 젠의 생사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것이겠지.

눈치가 보여 물어오지 못하고 있었지만 방금 대화의 흐름으로 대충은 깨달은 것 같은 느낌. 둠기영 때와 마찬가지로 이기영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자너.’

색기영 때의 기억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수습하기 어려울 때는 모르는 척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 당황한 듯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오래된 멤버들이야 표정 관리를 잘하고 있었지만 알프스나 벨리에 같은 경우에는 표정이 전부 눈에 보인다.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레이드는 어떻게 된 건지… 전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대답한 것은 조혜진.

“현재 보고서를 작성 중입니다. 부길드마스터. 완료되면 정식적인 절차를 걸쳐 보고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일단은 회복에 집중해야 하니까. 머리 아픈 이야기 하기 싫겠지.

“…….”

“추가로 아직 던전은 공략 중이며….”

“던전을 공략하는 방법이라면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건….”

“말씀드려도 모를 겁니다. 제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아마 알타누스가 갇혀 있는 곳으로 가서 철의 처녀를 열어야 끝날 거야.

“일어나죠.”

“조금 더 휴식을 취하고 움직이는 게 어떻습니까? 기영 씨.”

“이미 충분히 쉬었어요. 이제는 위로 올라가고 싶네요.”

여기서는 너무 안 좋은 추억이 많거든.

그런 의미를 담은 쓸쓸한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는 시점.

명예추기경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과거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바하무트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드락타리스는 또 무엇인지, 템플러 젠과는 어떤 유대감을 쌓았는지 길드원들이 알 수 있을 리 만무.

다른 이들에게는 평소보다 어려운 원정일 뿐이었겠지만 명예추기경에게는 원정 이상의 무언가였다.

소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고 그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너무나 허무하게 말이다.

아마…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하겠지. 평생 동안 그들을 가슴 안에 품고 살아가겠지.

사제님 사제님 외치면서 쫓아다녔던 템플러 젠, 자상했던 바하무트. 아직도 그들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

“…….”

갑작스레 잡힌 분위기에 딴지를 걸 정도로 무신경한 이들은 없다.

“기영 씨. 그, 그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마음이 정리가 되면 전부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할게요. 현성 씨.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일단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요. 그러니… 일어나요.”

대답은 듣지 않는다. 다른 의견 역시 묻지 않는다. 슬픔에 빠진 이기영이 어서 이 장소를 나가고 싶어 하는데 다른 의견을 던질 수 있는 이가 누가 있을까.

분위기.

압도적인 분위기.

식사를 더 하는 게 좋겠다고 말 한마디를 건네기 어려운 분위기.

지하신전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온 이기영의 눈은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몸이 잘 안 움직이기는 하네.’

옷을 좀 갈아입어야 될 것 같은데.

“신전의 사제들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예복으로 갈아입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혜진 씨는 남아주세요. 긴히 드릴 말씀도 있으니.”

“네.”

눈치를 보며 빠져나가기 시작한 파란 길드원들, 김현성은 뭔가 불만이 있는 눈치인 것 같았지만 다른 말을 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녀석은 아무 말 없이 슬쩍 인사를 건넨 뒤에 밖으로 빠져나갔고, 뭔가 눈치를 보는 정하얀이 괜스레 눈에 띄어 손짓한 이후에 꽉 안아주자 안심한 듯 총총거리며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윽고 교단의 사제들이 들어와 의복을 가져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평소라면 시중을 받겠지만 괜찮다는 신호를 하자 조용히 뒷걸음질 치며 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의복을 대충 입은 이후에는….

‘혼자 입기 힘드네.’

“혜진아. 이것 좀 도와줘. 뒤에 좀 묶어주고 소매도 처리해 주고. 장신구는 대충 아무거나 해주고.”

정리는 혜진이한테 맡겨야지.

“…….”

“어떻게 하는지 대충 알지?”

“그렇습니다.”

“…….”

“…….”

“삐졌어?”

“제가 왜 삐졌겠습니까.”

“삐졌는데?”

“…….”

“화난 것 같은데?”

“…….”

“누가 봐도 그런데?”

“적당히 해라.”

“화났네.”

“…….”

“화났자너.”

“그래. 이 나쁜 새끼야. 말 나온 김에 묻자. 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

“…….”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을 거야.”

“내가… 내가 말을 말아야지.”

괜스레 요상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살짝 무릎을 꿇고 예복을 정리해 주던 조혜진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

조금씩 들려오는 흐느낌은 내가 듣기에도 서럽게 들릴 지경이었다.

‘그래. 얘도 마음고생 많이 하기는 했어.’

아마 다들 다르지는 않겠지만 얘는 특히나 혼자 꾹 눌러 담는 성격인 만큼 갑작스레 터져 나온 감정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기절해 있었을 때 들었던 것처럼 갑작스레 이쪽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

나였어도 무서웠을 것이다. 어느 순간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그것을 직접 자각하고 있다니….

‘얘가 정도 많은데 얼마나 무서웠겠어.’

마음을 기댈 곳이 필요했다는 것도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게 엘리오스였다는 것이겠지.

“혜지나. 울어?”

“닥쳐라.”

“울어?”

“이 나쁜 새끼야. 안 운다고. 흐윽… 흐으윽….”

“혜진아.”

조금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지금 말해야 얘가 멈추겠네.

“…….”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엘리오스 걔는 안 된다.”

“뭐?”

“그 엘프 늙은이는 안 된다고.”

“…….”

“걔는….”

“네… 네가 그걸 어떻게.”

“만나기로 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네, 네가 뭔 상관… 아니, 그보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아직 만나기로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친구 이상 애인 미만 정도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연애나 결혼 같은 건 아직 먼 이야기고… 그냥… 간단하게… 아니, 그것도 아니고 그냥… 더 친해진 정도로….”

‘얘가 진짜 엘프 무서운 줄 몰라요. 시바. 걔가 그냥 인간을 좋아하는 이상성욕자면 어떻게 하려고. 엘리오스에 민낯을 보면 어떻게 하려고 진짜.’

아직 순진해가지고… 네가 너무 순수해서 세상을 몰라서 그래.

사람이 약해진 틈을 타서 기어들어 오는 놈들이 뻔하지, 뭐.

아니, 정 연애를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근데 인성 테스트는 통과해야지.

수단이야 간단하다.

이기연으로 한번 부딪쳐 보면 이 새끼의 순정이 얼마나 진실 된 건지 확인할 수도 있겠지.

단언하건대 그런 놈들은 3일이면 넘어올 것이다.

꼬시는 데 3일, 약혼식장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은 한 달이면 충분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딱 한 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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