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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19화 (1,00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19화

뒷정리 (2)

‘얘도 참….’

잘 생각해 보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대륙에서의 삶이 있는 것처럼 지구에서의 삶도 있었던 게 당연했으니까.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이다.

물론 김현성에게 같은 의미로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놈에게는 지구에서의 일이라는 게 까마득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테니 말이다.

녀석은 남들보다 배 이상을 이쪽에서 살아왔고,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사건들을 경험했다.

지구에서의 기억은 풍화되었을 확률이 높고, 지구보다는 대륙이 조금 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직도 지구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녀석의 사고방식은 지구보다는 대륙에 더욱더 가까워졌다. 냉정히 말해 지구인이라기보다는 대륙인으로서의 자신이 더욱더 커진 상태.

지금 이렇게 놀란 표정을 보이는 것도 갑작스레 지구에서의 삶을 깨닫게 돼서인지도 모르겠다.

지구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지 않았던 것 역시 그러한 이유.

아예 그곳을 잊고 싶어 하는 정하얀과는 경우가 꽤 다르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지구에 관한 이야기를 피하고 있지만 김현성 같은 경우에는 아예 떠올리지도 않는 상태.

내 예상대로 김현성이 제법 귀하게 큰 도련님이라 가정한다면 대륙에서의 일이 얼마나 김현성의 정신을 뒤흔들어 놨는지 알 만했다.

“그렇군요… 네. 지구에서 친구분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꼴이 조금 당황스럽다.

“당연한 이야기겠죠… 네. 친구분이….”

말 그대로 김현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중.

“그… 친구라고 한다면….”

“정말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그냥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는 친구의 범위는 뛰어넘었다고 봐야지. 막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진짜 친구 있잖아.

‘너는 없었던 거.’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김현성이 지구에 있었을 때 어떤 타입이었을지는 대충 감이 온다.

조금 심하게 정의하자면 잘생겼는데 사회성 없는 찐따.

가족관계도 문제없었고 부족함 없이, 아니, 오히려 풍족하고 무난한 학창시절을 보냈었지만 크게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는 거에 이쪽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기는 하고 어떤 집단에도 환영받기는 했지만 정작 친구라고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상대방 쪽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확률도 높다.

몇몇 개의 단톡방 안에 착실히 자리 잡고 있지만 정작 김현성이 빠진 단톡방이 더 활발할 것이다.

조금 슬프기는 하지만 얘는 왠지 그런 타입 같어.

김현성도 틀림없이 문제를 가지고 있었겠지만 김현성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을 거야.

‘뭔가 자기들이랑 다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거지.’

얼굴 훤칠하고, 성격 좋고, 순진하고, 욘나 잘생긴 주제에 여자 친구는커녕 이성도 껄끄러워하고, 청춘 드라마에 나와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힘차고 활기차게 살아갔을 것만 같은 스타일.

운동 잘하고, 누가 봐도 남자애들 사이에서 서열이 높을 것 같은데 얘가 모난 데도 없어.

일단 연예인보다 잘생긴 거에서 게임 끝나. 공부 열심히 하고 착실하고 매번 헤헤거리면서 웃고 말이야.

이온 음료 광고에서 수돗물 틀고 꼴깍꼴깍 마시면서 물에 젖은 머리 촤하! 하면서 얘들아! 하고 무리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그림이 그려진다고.

‘이 새끼는 순정 만화책에서 튀어나왔다고 해도 사람들이 구라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저 그런 가정에서 그저 그런 삶을 가지고 있거나 하는 이들은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성인이 아니고서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는 법이다. 아, 얘는 우리랑 다른 인간이구나 하고 느낀 이들이 녀석을 어떻게 대했을지는 너무나도 뻔하다.

‘같이 놀면 이득이 있으니까 친하게 지냈겠지만 정작 마음을 터놓지는 않았을 거라고. 얘가 괜히 나한테 집착하겠어.’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존재는 소중한 법이다.

인간관계 수준이 유아기에 머물러 있는 녀석에게는 자신 외에 다른 친구의 존재가 불편할 수밖에 없겠지.

너 왜 걔랑만 놀아. 너 왜 나랑 안 놀고 걔랑 놀아. 너 왜 나 말고 걔랑 더 친하게 지내.

물론 김현성은 어린애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말들을 대놓고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불안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표정이 눈에 띄었다.

“현성 씨는 없었나요?”

“아… 네… 저… 저도 친구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

“…….”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저도….”

“그… 그 친구라는 분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이 새끼 왜 말 끊어.’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었는고… 무엇보다 마음이 잘 맞았었는데… 갑자기 여러 가지 생각이 드네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보면서 이야기 나누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동안 너무 급하게 달려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템플러 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부자였고. 돈도 잘 썼고. 얘가 좀 이상한 데서 찌질한 게 템플러 젠이랑 닮기는 했었다.

“…….”

“물론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건 알고 있어요. 어차피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아… 네. 그렇죠. 이제 지구로 돌아갈 방법은 없으니….”

“또 여기서도 새로 친구를 사귀었으니까.”

‘입꼬리 올라가는 거 봐.’

잠깐이지만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까 그럴 만도 하네.’

빛의 성자의 입장에서나 템플러 젠이 자신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한 사람이었지.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도 그런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에 가스라이팅은 기본, 악질적으로 사람을 조종하고 쥐락펴락하는 쓰레기.

정체불명의 친구 라이벌 때문에 불안한 얼굴을 했던 것도 잠시,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얘 또 이런다.’

지구에서의 이기영의 참혹한 삶에 대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템플러 젠과 닮았다는 건… 기영 씨 혹시… 지구에서….”

“저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 현성 씨는 어땠나요?”

“저… 네. 저는… 엄격한 어머니와 가정적인 아버지….”

“그게 아니라… 조금 더 자세히.”

“아버지는 교단에 서시던 분이셨고….”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나요?”

“대… 대학교였습니다.”

그래?

“어머니는 작게 사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기업 이름이?”

“…….”

“빨리 말해봐요.”

“아웃도어 용품을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혹시… 현성캠핑?”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니 시바 니 이름이잖아. 그리고 거기가 어떻게 작은 사업체야 나름 국내에서 괜찮은 중견이잖아. 인지도도 꽤 있고. 너는 지구에서도 나랑 친구 할 수 있었겠다. 야.

얘 이거 금수저였네.

“부자였네요?”

“아니요. 부자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너 부자였어. 네가 그렇게 느끼는 건 네 부모님이 소박하게 살아서 그랬던 건가 봐.

“외동이었고요?”

“네. 외동이었습니다.”

“부모님 두 분이 좋으셨던 분이셨던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현성 씨가 지구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그러는 경우를 잘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아! 그건….”

“네?”

“저도 처음에 이곳에 떨어졌을 때는 자주 울고… 엄마… 가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지내다 보니 조금씩 잊혀지더군요. 두 분께는 죄송하지만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요. 물론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부모님들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습니다. 제가 이상해진 건지 아니면 이 상황을 받아들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

“조심스럽지만 제가… 느끼기에도 저는 어딘가 좀 망가진 인간처럼 느껴져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립기는 합니다만 눈물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두 분 다 잘 지내고 계실 거라고… 저 때문에 슬퍼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입니다.”

“…….”

“기영 씨랑은 조금 다를 겁니다. 생각해 보면 기영 씨는 이곳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구가 그리워….”

‘아냐, 사실 그렇게 그립지는 않아.’

가끔 율하도 생각나고 하기는 하는데…. 지구 자체는 그다지 그립지는 않다. 어차피 이율하야 나 없어도 알아서 밥 잘 먹고 잘살 테고, 아니, 오히려 더 잘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보고 싶지 않냐고 묻는다면 보고 싶다 말하겠지만… 현재도 신경 쓸 게 많았으니까.

계속 이 짓거리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안부 정도는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아요. 현성 씨. 저는 현성 씨가 망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인데…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그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지냈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거예요. 오히려 그 많은 사건을 겪고도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을 보면 현성 씨는 제가 본 그 누구보다도 가장 인간적인 사람일 거예요.”

“감… 사합니다.”

“그보다 뭐 재미있었던 일 있었으면 말 좀….”

“사실 생각나는 게 많지 않습니다. 기억에 남는 추억이라고 한다면… 아! 주말마다 가족들과 함께 나가서 캠핑을 하고는 했었습니다.”

“그래요?”

“네. 정말로 이곳저곳 다녔던 터라… 그러고 보니 캠핑을 하면 꼭 아버지가 카레라이스를 해주셨습니다. 맛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간혹 다른 걸 해주시려고 할 때면 카레라이스를 해달라고 졸랐던 게 기억이 나는군요. 어머니는 사진을 자주 찍어주셨는데… 사실 저는 사진 찍는 걸 귀찮아해서 피해 다니기도 했습니다.”

“하하.”

호응을 잘해줘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은 신난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사진을 더 남기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언젠가 한 번은 호숫가 앞에서 캠핑을 한 적도 있었는데….”

말 많아졌네.

꽤 즐거워하는 것 같은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굳이 묻지 않아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 모습,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에 빠진 것이다.

“그렇네요.”

“그리고 또….”

물론 이쪽도 즐거운 시간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솔직히 나도 놀라울 정도로 다운되어 있는 기분을 푸는 데 도움이 되고 있었으니까.

김현성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와서인지는 몰라도 이쪽도 함께 추억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

당시 김현성이 느꼈던 감정의 편린을 느끼게 된다.

즐거움, 행복, 따뜻함, 김현성은 자기 자신이 그걸 잊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다.

“언제 날을 잡아서 캠핑이라도 가야겠는데요. 카레라이스도 해 먹고요.”

여기서 비슷한 향신료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입니까?”

“네. 정말이죠. 이번 일만 마무리하고 말이에요.”

“정말로….”

“네. 정말로 가자니까요? 오랜만에 그리폰들도 데리고 나가고… 길드원들… 그리고 지인들이랑 전부 함께 가요. 안 그래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네. 그럼 빨리 성과 분배 문제를….”

“아니요. 그건 제가 처리하는 게 낫겠네요.”

‘이 새끼 또 개판 칠 거 생각하면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나아.’

사정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이미 충분히 늦은 시각. 이 새끼는 조금 더 놀고 싶었겠지만 아쉽게도 이쪽은 시간이 없다.

‘누나가 보내준 것만 보고 자야지.’

내일부터는 다시 일해야 하니까.

‘내일부터 열심히 해야겠어.’

조용히 침대에 누워서 슬쩍 영상을 확인한 이후.

나는 통신 채널을 열었다.

“김미영 팀장님. 늦은 시간이지만 회의 소집 부탁드립니다.”

-아… 부길드… 마스터…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깨웠나 보네요. 그럼… 오늘 근무자가….”

-아니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

“한 시간 뒤에 진행하겠습니다.”

-네.

그새 잠이 깼는지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각은 새벽 1시 48분.

단잠을 자고 있었던 관계자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지들이 어쩌겠는가.

‘오라면 와야지.’

급한 것은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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