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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24화 (1,02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24화

뒷정리 (7)

여기서 태세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병신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 그렇군요. 제가 그만….”

“…….”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명예추기경님.”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괜찮습니다. 굿맨 길드 마스터님. 혹시… 가지고 계신 의문이 풀리셨는지요. 조금 더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여기서 더욱더 결례를 범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어째서… 어째서 명예추기경님의 공적을 생각하지 않았을 수가 있었는지.”

‘너는 그나마 사람이었네. 100점짜리는 못 되고 60점 정도는 되겠어. 기억해 둘게.’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명예추기경님.”

“그리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굿맨 길드 마스터. 그럼… 다른 의견이 없으시면 드락타리스의 지팡이와 바하무트의 방패는 파란 길드에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말이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리라. 망둥이 집단들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처럼 보였지만 저번 회의의 실수를 반복할 염치는 없었다.

‘이미 충분히 배려받았잖아. 그렇지?’

논공행상이 끝난 이후에 교섭할 여지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아니다. 같은 의미로 내 공적치로 얻은 신화등급의 아이템에 대해서도 발언하지 못하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애초에 막을 권리도 없었거니와… 어째서 내가 신화등급의 아이템을 원하고 있는지 물어볼 권리도 없다. 성자의 이미지를 지키고 싶은 만큼 말할 수 없다는 분위기를 풍기면서 입 다물고 있으면 상황은 일단락된다.

암튼 속 시원하기는 하네.

‘희생만 하다 보니까. 진짜로 희생만 하는 줄 알더라니까.’

사람들이.

‘나도 욕심 있다 이거예요.’

애초에 이기영의 공적은 논공행상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은 부분이 우스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 물론 빛의 성자가 대륙에 강림한 이래의 행보를 생각해 보면 저런 착각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참 지들밖에 생각 안 하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굿맨 길드마스터처럼 단순히 의아해하는 듯한 느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는 고맙다. 쟤들한테는 죄가 없었으니까. 그저 그동안 자신의 몫을 포기했단 명예추기경의 의외의 행보에 놀란 것뿐이지. 나쁜 뜻은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고마운 줄 모르는 쪽. 명예 추기경님이 어째서 그럴 수 있냐고. 실망했다고. 자신들의 주장을 이해한 것이 맞냐고 말할 것 같은 적폐 놈을.

‘이 새끼들은 진짜 염치도 없는 놈들이야.’

여기 모인 놈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물론 연방과 연합의 모험가들이 교국에 비해 상대적 약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각자의 바운더리 안에서 그들은 엄연히 강자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모험가들의 평균 능력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소도시 안에서는 왕처럼 지내고 있을 거야.’

붉은용병, 검은백조, 파란, 린델의 삼대 길드처럼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도와주며 함께 나아가는 구조가 흔한 것은 아니다. 보통의 자유도시들은 대표 길드나 클랜이 존재했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대표 집단들은 도시 안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장담컨대 녀석들 역시 자신들이 속해 있는 소도시 안에서… 달콤한 권력 맛을 느껴봤을 확률이 높다.

‘막말로 니들이 그 달달한 권력으로 먼저 모범을 보였으면 내가 말을 안 해요.’

연방이나 연합에서 성자나 성녀가 등장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어. 원래 그런 얘들은 버림받은 자들의 성녀 같은 이름으로 알려진다고.

스스로를 희생해 소외된 이들을 구원해 주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나… 가슴 따뜻해지는 훈훈한 이야기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다.

‘너희 같은 놈들이 제일 악질적인 놈들이야. 정작 자신은 베푼 적도 없으면서, 남에게만 베푸는 걸 강요하는 거.’

나름대로 진보적인 움직임을 꾀하려고 하는 만큼, 남의 눈치도 살살 보면서 나름의 복지활동을 이어나가고 있겠지만 인상적인 정도는 아닐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나 하는 만큼의 반만 해도 진짜 인정해 준다.’

“그리고….”

“네. 명예추기경님.”

“미리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만….”

“예.”

“던전의 뒷정리는… 연방이 단독으로… 맡는 것은 어떨지…. 그리고… 이후 정비사업 역시 연방에 맡기고 싶습니다.”

“아….”

“…….”

“물론… 대륙보호관리 위원회와 교국 이단 심문관들이 참관하는 아래에서 말입니다.”

“끄응… 연방의 업체에 넘기자는 말씀이십니까?”

“네.”

‘이 정도면 진짜 내 능력 아래에서는 최선을 다한 거지. 여기서 더 어떻게 양보하겠어?’

입을 연 것은 진청의 왼쪽에 앉아 있는 녀석.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진청의 부관으로 알고 있는 인사 중 하나. 진군사의 허락도 없이 당돌하게 입을 여는 것을 보니 꽤 신뢰 받고 있는 놈이 확실해 보였다.

“죄송합니다만…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일단 발언하기에 앞서… 연방을 비하할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명예추기경님의 제안이… 큰 뜻과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배려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큼… 개인적으로는… 연방이… 이번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연방의 상황은… 네….”

‘그건 그래.’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는 일반적인 던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만큼… 충분한 협의와 회의를 통해서….”

보통 일은 아니었으니까. 쟤 말대로 개미 코딱지만 한 던전의 뒷정리라면 누가 맡아도 상관없겠지만 지하신전은 대도시나 다름이 없는 부지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의 연방이 이걸 소화할 인력과 자원이 있는지 의심된다는 발언.

녀석은 비하할 의도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누가 봐도 비하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연방이 아니꼬워 보일 테니 말이다.

가진 능력도, 인력도 부족한 집단, 그렇다고 원정에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고, 물적 자원을 지원해 준 것도 아니었다. 착하고 순수한 명예추기경에게 동정심을 이끌어낸 것 정도의 사업을 거저 얻게 됐으니… 녀석이 얼마나 아니꼬워 보일까.

‘그래. 막말로 이건 사업이나 다름없으니까.’

대도시와 같은 규모, 어쩌면 더 커다란 규모를 가지고 있는 던전의 뒷정리다. 굳이 예를 든다면 규모가 큰 도시사업, 국책사업을 아무 조건 없이 던져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게 일자리 창출이지 뭐야.’

전문 업체의 힘만으로는 부족할 테니, 직원들을 고용하기 시작할 테고, 교국으로부터 임금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임금은 그대로 연방에 있는 대도시와 소도시에 금고로 들어가게 되고… 간단히 골드가 풀린 연방의 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건 자명했다. 심지어 뒷정리 도중에 발견된 아이템도… 공적치 어쩌구 하면서 일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되겠지.

골드가 부족해 몇몇 인원이 용병 일로 나라를 먹여 살리는 연방으로써는 로또를 맞은 격, 정비사업까지 생각해 보면… 슈퍼볼을 맞은 격이다.

교국의 인사들 역시 불편하다는 얼굴들. 특히나 이번 사업을 노리고 있었던 중견 길드의 입장으로써는 그저 아쉽다는 말로 이 상황을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맡…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벌떡 일어난 고개를 숙인 것은 처음에 일어나 개소리를 지껄인 망둥이가 아닌 턱수염이 난 중년이었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력은 그럭저럭, 하지만 소환된 지 꽤 오래된 녀석이었고, 나름 인망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심지어 녀석의 주변에 있던 인사들 역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명예추기경님! 부디… 맡겨주신다면….”

‘그래. 이게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벌떡 일어나 인사를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해 보이는 얼굴들, 혹시나 명예추기경의 제안을 다른 이들이 철회하면 어쩌나 하는 듯한 표정들. 그렇기 때문에 선수를 친 것이다.

이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고. 자신들이 살아날 길은 이것밖에 없다고…

“고개를 드세요. 다른 분들의 동의를 먼저….”

“부디… 부탁드립니다.”

“이를 어떻게….”

“부탁드립니다! 명예추기경님!”

‘사람 하나 충신 만드는 데 1분도 안 걸려요. 벌써 충신이야.’

슬그머니 진청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 물타기 좀 해달라는 눈빛을 보내자.

“동의하겠습니다.”

라고 짧게 손을 들어 올린다.

“좋은 생각입니다. 명예추기경님. 만약 인력과 자원이 모자라는 것이 문제라면 이종족연합에서 이 지원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명예추기경과 친해지고 싶은 엘리오스 역시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대세는 넘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붉은용병도….”

“검은백조도 파란과 뜻을 함께하겠어요.”

“여러분들….”

기영이. 감격했어.

“…….”

“저도 함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희생과 부활의 성자, 빛의 성자마저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 이후에 양해를 구한다.

어디까지나 감성에 의지한 어처구니없는 설득.

물론 믿는 구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찬성표를 던진 이들은,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의 이득을 얻을 수는 없을지언정, 교국의 명예추기경, 대륙의 상징, 파란의 부 길드 마스터에게 빚을 지울 수 있다.

어쩌면 단순한 던전의 뒷정리와 사업보다는 이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인원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명예추기경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었고… 언제나 받은 것을 배로 돌려주려고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명, 명예추기경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명예추기경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교국의 일원으로서… 따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연방을 위한 일입니다.”

일부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껄이기도 하고…

“후우….”

또 일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명예추기경님의 뜻이 그렇다면… 저희들도 따르겠습니다.”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은 느낌.

물론 이 건에 관련하여 세부 협의 사항은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다.

벌써부터 연방의 인원들에게 접근하는 일부 권력자들이 어떻게든 한 발자국 걸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도움을 받거나 하청을 두라는 것까지는 막을 생각이 없었으니 이제부터는 저들의 재량에 달려 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명예추기경님.”

턱수염이 난 산적은 나이에 맞지 않게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고.

“감사합니다.”

그의 동료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 개소리를 지껄인 망둥이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결단을 내렸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명예추기경님….”

“아… 네! 스퀴어트 님.”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네?”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

“…….”

“잠깐이라도…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명예추기경님.”

“잠… 잠깐이라면 괜찮겠지만….”

“…….”

“스퀴어트 님.”

“네?”

“…….”

“…….”

“혹시 체스 두실 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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