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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26화 (1,02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26화

뒷정리 (9)

‘뭐야, 뭐야?’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얘 왜 이래? 뭐야? 뭐야?’

콰아아아아아앙!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망둥이가 벽 쪽으로 처박힌 것은 당연한 수순,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성큼성큼 다가간 박덕구가 녀석의 머리를 붙잡고 벽으로 처박았다.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그 소리를 덮을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욕설과 울부짖는 소리가 뒤섞인 목소리.

내가 알던 박덕구가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평소에 듣던 목소리와는 거리가 꽤 멀어서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 망둥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손으로 얼굴을 막는 것이 전부였다.

“잠… 잠깐… 아아악!”

‘우리 덕구가 많이 세지기는 했네.’

그냥 얻어맞는 것만 할 줄 아는 돼지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꽤 강해. 많이 성장했어. 진짜.

아예 저항을 못하자너. 저 망둥이 그래도 전사 타입인데….

밸런스가 나쁘지 않은 전형적인 근접 딜러. 기술이나 특성도 괜찮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강자.

소도시의 권력자로 활약할 정도라면 최소 영웅 등급 이상은 벗어났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전설 등급에 가까워진 만큼 전투 센스나 기술이라면 박덕구를 앞설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한 대 처맞기 전의 이야기다.

애초에 애매한 검술이라든가, 권법이라든가, 하는 종류의 잡기술은 무지막지한 내구 앞에서 무용지물, 스펙의 차이도 있다 보니 매번 아쉬운 근력도 녀석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휘두른 주먹 한 방에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이후에는 들이닥치는 주먹에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일 터, 이미 이빨은 다 나갔을 것이다.

그냥 개싸움을 하는 것처럼 막무가내로 주먹을 뻗는 박덕구에 의해 녀석은 점점 피떡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냐니깐! 이 후레자식 놈! 은혜도 모르는 개자식!”

“아악… 아아아악!”

“육시럴 놈! 네놈이… 네놈이 뭘 안다고!!”

“크헉!”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뭘 안다고!! 꼭 그렇게 해야지! 속이 시원했냐!! 이 개자식! 그렇게 하니 속이 시원하냐니깐!”

“끄으윽….”

“이 더럽고 야비하고 치졸한 노옴!!!”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말리는 것이 늦었다.

하지만 우리 돼지의 주먹질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 녀석이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리 만무.

‘조금 속 시원하기도 해. 그래. 때릴 거면 더 확실하게 때려.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말라구.’

조금 더 이 사태를 두고 봐도 될 것 같다는 마음과 말려야 한다는 마음이 상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녀석의 영혼을 베니고어 곁으로 보내버리고 싶었지만….

‘여기서 죽이면 곤란한데….’

당연히 박덕구에게 튀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녀석을 잡아당기는 것이 먼저. 녀석의 위에 반쯤 올라탄 채로 망치질하듯 주먹을 휘두르는 돼지의 등을 잡아당기며….

“덕구야. 박덕구!”

라고 애타게 녀석을 불러봤지만 흥분한 녀석에게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더러운 새끼! 이 때려죽일 놈! 우리 형님이… 그동안… 그동안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걸… 그걸….”

‘왜 또 울고 그래.’

분에 못 이겼는지 눈물이 왈칵 튀어나온 것 같았다.

‘누가 보면 지가 맞고 있는 줄 알겠어.’

“허으윽… 살… 살려….”

‘야. 시바 진짜 죽겠다. 얘 진짜 때려죽이려고 그러나 봐.’

저항할 생각도 못 한 채로 꿈틀거리는 녀석의 모습은 마치 육지 위로 올라온 망둥이.

‘여기서 죽이면 안 돼. 여기서 죽이면 안 되는데. 쟤는 본보기로 보내버려야 하는데.’

결국에는 박덕구의 팔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대로 팔을 휘두른 녀석 때문에 내 몸도 땅바닥에 나뒹군다.

다소 드라마틱하게 녀석의 앞으로 넘어지고….

“아아아악!”

하는 소리도 한 번 내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돼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 어… 형님?”

“…….”

“형님….”

단호한 한마디가 필요할 때.

선을 넘어버린 녀석에게 마냥 친절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나가.”

낮게 깔린 목소리가 적막이 감돌고 있는 방 안을 채웠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냉정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나도 깜짝 놀랐을 정도.

조용히 망둥이의 상태를 살피며 박덕구를 올려다보자 아니나 다를까 당황하는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방금 전까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던 녀석에게 조금씩 조금씩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 들어오는 모양이다.

형편없이 땅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희생의 성자와 피떡이 된 망둥이.

“나는… 그냥… 나는….”

“나가라고. 이 돼지새끼야.”

“나는….”

“너 이 새끼. 누가 너보고 사람 때리라 그랬어? 내가 너보다 사람 마음에 안 드는 놈들 때려죽이라고 말한 적 있어?”

“…….”

“방금 건 뭐야. 내가 너 이러라고… 챙겨준 줄 알아? 이 돼지 새끼. 이제 좀, 시바 세지니까 주변에 아무것도 안 들어와? 이렇게 막무가내로 방에 들어와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니까. 시바. 기분 좋아지디? 이제 눈에 뵈는 게 없다 이거야?”

‘기분은 내가 좋기는 했어. 솔직히 한 대 후려치고 싶기는 했는데. 덕분에 속이 시원했다구.’

“그… 그자가 말이요. 그자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들었어. 애초에 이런 걸 숨겼다는 게 이해가 안 되거니와… 너는…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매번….”

박덕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죄송하다는 말을 꺼내기도 차마 민망했던 모양. 본인이 어떤 사고를 쳤는지, 녀석이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내 손님을 때려?’

물론 망둥이가 계약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계약을 위반할 경우 상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명시되어 있을 리가 없다.

김예리가 단검을 휘두르려고 한 것은 파란 길드 내에서의 자체적인 판단이었을 것이고… 외부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계약 내용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박덕구가 사고를 친 셈.

물론 언론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내가 있기 때문에 큰 사건으로 번지는 것은 막을 수 있겠지만, 파란 길드의 박덕구가 소도시 오하이오의 길드마스터를 먼지 나게 두드렸다는 소식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는 거다.

애초에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녀석도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두들겨 놓지만 않았어도.’

망둥이의 정치 생명은 알아서 끝장날 예정이었다. 계약을 위반한 사실이 그리 간단하게 해결되지는 않을 테니까. 오히려 박덕구가 난동을 부림으로써 망둥이에게 명분이 생긴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어차피 상관없기는 했어.’

어떤 방식으로든 이 망둥이는 끝장낼 예정이었으니까. 이미 씨앗도 뿌려놨고… 사실 좋게좋게 넘어가도 별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박덕구를 다그치는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어떻게 됐든 간에 난동을 부린 걸 감싸줄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 그건….”

실망감을 담을 수밖에 없는 눈빛.

깡패마냥 방에 쳐들어와서 행패를 부린 것에 실망 1 스택. 너무나도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에 대한 실망 2 스택.

‘내가 아는 덕구 맞는 거야?’

네가 정말 내가 아는 그 돼지 새끼가 맞는 거야?

방금은 시바. 돼지 새끼가 아니었어. 너 혹시 분노조절장애 있는 거 아니지?

계속해서 실망했다는 스탠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나는 그저… 형님이 걱… 걱정이 돼서… 그… 그리고… 무엇보다… 그게….”

“…….”

“이… 이놈은….”

“너는….”

“…….”

“너는 날 실망만 시키는구나… 정말로….”

끄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끄윽….”

‘울지 마. 왜 울어.’

“나가.”

“끄윽… 끄으윽….”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한 모습.

“나가라고! 이 돼지 새끼!”

가만히 서서 눈물만 닦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불쌍해 보이기야 한다.

이대로 나가자니 뭔가 찜찜하고… 아니, 나갈 수 없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겠지.

물론 녀석과는 다르게 나는 계속해서 내가 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망둥이가 맞아 죽었는지 확인하고… 무늬만 신성력을 조금씩 뿌려주고. 사제들을 부르는 게 먼저.

그 와중에도 돼지는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중, 손에서 아직까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 괜스레 눈에 밟힌다. 내구도가 워낙 튼튼하니 다치지는 않았겠지만….

“끄으윽….”

‘아 신경 거슬리게 진짜.’

“손… 줘봐.”

“…….”

가방에서 포션을 꺼내서 뿌려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거… 미안합디다….”

“다음부터 이러지 마라.”

“그래도….”

“쓰읍.”

“…….”

“현성이한테도 말하지 말고. 예리 입단속 잘 시켜. 내가 왜 이런 말 하는지 알고 있지? 별로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아서 그래.”

“그, 그리고 형님. 그… 바하무트 원정 중에 생긴 일 말인데… 그건….”

“그래. 나도 알고 있어. 별거 아니라는 거지?”

“바로 그거요. 뭐… 별일 아니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라니까. 저놈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별일 아니요. 굳이 형님이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이제는 다 끝난 이야기니까. 또 혼자 고민하고 마음에 담아둘 필요 없다 이 말이요.”

별일 아닌데. 이렇게 쳐들어와서 염병을 떨어? 그게 말이 돼?

“그래. 알겠다.”

“그… 그리고 미안하다니까. 내가….”

“다음부터 안 그러면 돼. 그러니까. 여긴 나한테 맡기고 쉬어.”

“그럴 수는….”

“내가 해결할게. 그러니까. 예리나 잘 챙겨.”

‘어차피 시바 네가 여기 있어 봤자 할 수 있는 거 없자나.’

“적어도….”

“빨리 나가.”

그제야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아. 시바… 진짜 난리 났네.’

태풍이 지나간 것 같은 장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망둥이를 바라보니 통쾌한 기분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물론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자리를 떠나지 못한 박덕구와 뒤늦게 온 김예리가 벌어진 문틈 사이로 이쪽을 훔쳐보고 있었으니까.

조용히 한숨을 내쉰 이후에는 어깨를 들썩거리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너희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마음고생 한다. 그래. 예리야. 너랑 박덕구. 그래, 너.’

경지에 이른 배우만이 할 수 있다는 등으로 하는 연기. 훌쩍거리며 눈물을 쓱 닦은 이후에는 곧바로 통신 채널을 열었다.

[베니고어.]

[……]

[베니고어?]

[응? 아! 나… 나 있어! 이기영 후배! 응! 잠… 잠깐 밀린 업무 좀 하고 있었어. 왜, 왜 불렀어?]

[창 좀 빌려주라.]

[…….]

[창 있잖아. 네가 장식용으로 가지고 있는 그거… 그것 좀 빌려줘.]

[어? 어? 창? 내… 창? 그건… 왜?]

왜긴 왜야.

약 한 달 후에….

베니고어의 성물이 던전의 뒷정리 도중에 발견될 예정이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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