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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33화 (1,03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33화

뒷정리 (16)

“그래서.”

“뭐가 그래서예요?”

“아까의 실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거다. 무슨 의도였지?”

“아니, 의도는 무슨 의도야. 사람이 살다 보면 잔 좀 깨 먹을 수도 있는 거지. 그냥 손이 미끄러졌다니까요. 교국의 성자는 테이블에서 실수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만… 상대가 네놈이다 보니… 부자연스럽….”

“뭐요?”

“아무것도 아니라 하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지.”

“…….”

“…….”

“사람 무안 주는 것도 아니고… 그 잔 비싼 거였어요? 아니면 공화국 윗대가리들이 함께 자리해 있는 자리여서 짜증 나기라도 했나? 자기가 초대한 사람이 잔 좀 깨 먹으면 그게 평판에 영향이라도 가? 걱정일랑 하지 마요. 이제 그 정도 레벨은 지났으니까. 이미 다 지난 식사 때 일어난 해프닝 가지고 아직까지 물어뜯으려고 그러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멍청한 놈.”

“…….”

“아무튼 별일 아니라니 다행이겠지. 방금 말은 신경 쓰지 마라. 내가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군.”

“자기 마음대로야. 아주. 방금은 무슨 의도가 있었냐면서 지금은 신경 쓰지 말래.”

“…….”

“…….”

“흠… 흠… 그나저나 공화국도 참 살기 좋아졌네요.”

“뭐?”

“공화국도 참 살기 좋아졌다고요. 여기가 그래도 군사님 나오기 전까지는 좀 이상한 놈들이 많았거든. 근데 군사님이 자리 잡은 이후로는 크게 신경 안 써도 되니까 얼마나 좋아. 제대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거예요. 치워야 할 놈들도 안 보이고 규율이랑 질서가 잡혀 있는 것도 그렇고 역시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기는 한가 봐. 얼마나 좋아요? 군사님이 묵직하게 자리 잡아주니까. 알아서. 전부 잘 돌아가잖아.”

“사실 공화국 내부에서도 여론이 썩 좋지만은 않다.”

‘대충 예상은 했었어.’

왜 저번에 그 이상한 놈 하나 있었잖아. 초신성 패거리랑 어울려 다니는 젊은 놈 하나.

“공화국과 교국에서 해주는 투자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고 있는 자들이 많아. 공화국 정책에 대놓고 반문을 제기하고 있는 놈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 말이다.”

“그럴듯하네요.”

“왕국연합이라면 몰라도 연방은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됐다. 일부 대도시와 소도시를 제외하면 무법천지라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망가졌지. 특히나 대륙법상으로 블랙마켓을 강경하게 규제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뒤쪽의 거래도 완전히 끊겼다고 하더군. 괜히 연방에 용병업이 성행하는 게 아니야. 썩은 대지는 복구가 불가능해 농사조차 지을 수 없고… 부패한 관료들은 자기 잇속 챙기기에만 바쁜 것이 현실이다.”

“…….”

“연방의 재건 따위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미 그곳에는 그곳만의 법칙이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다.”

“…….”

“물론 이번이 큰 기회가 되겠지만, 사실 나는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지.”

“공화국 쪽은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라면서. 말이랑 행동이 다르네.”

“공화국과 연방은 다르다. 나는 놈들을 내버려 두고 있는 것뿐이야.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개들이다. 굳이 손을 댈 필요가 무어 있나. 중앙기관을 견제하는 것처럼 보이는 용도로 쓸 수 있으니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지.”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겠네.’

공화국 쪽은 이런 문제에 더 예민할 테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공화국 쪽이야 그림자 영웅이 꽉 붙잡고 있는 형국이었고, 이제 막 정계에 진출한 병아리들 몇 마리가 삐약거린다고 흔들릴 정도로 물렁하지도 않았으니까.

컨트롤 할 수 있을 정도라면 여러모로 내버려 두는 편이 이득이라는 셈.

굳이 쳐내며 경계심을 키우느니 중앙기관에 태클을 걸어 줄 수 있는 햇병아리들을 키우겠다는 심산처럼 느껴졌다.

‘여차하면 바로 써먹을 수도 있을 테고….’

신성한 민주주의로 하나가 되어 한 길을 걸어가는 교국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보는 것이 맞으리라.

‘우리는 정치싸움 안 한 지 꽤 오래됐으니까.’

어쩌면 저 미친놈이 공화국의 갈등을 그저 지켜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통제할 수 있는 견제세력이니 뭐니 말은 그럴듯하게 해도 그냥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갈 것 같아서 망아지들 고삐를 풀어준 건 아닌지 의심이 된다는 거지.

갈등도 컨트롤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컨트롤 프릭, 혹은 정치싸움도 게임의 일종으로 여기고 있는 미친놈.

어찌 됐건 간에 공화국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진청 역시 자기 잇속을 챙기는 부패한 권력이라는 것에는 다른 것이 없었지만 최소한 돈이랑 권력 가지고 장난질을 하지는 않으니까.

“흐음….”

나름대로 내실에 힘을 쓴다고 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쪽은 교국과 공화국뿐이었다.

왕국연합과 연방 쪽의 내실을 다지는 것은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나 명예추기경의 신분으로는 힘에 부치기도 했고, 어느 정도 자정작용이 되기를 기대하기는 했지만 기대가 무색해질 정도로 몇몇 놈들이 개판을 쳐 놓은 상황.

뿌리부터 뜯어고치거나, 괜찮은 인사를 박아넣지 않는 이상은 변화의 여지가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 괜찮단 말이지.”

“?”

“그레고리 있잖아요. 턱수염 산적. 연방에 꽂아 넣기 괜찮지 않나?”

“아아… 그놈 말이군. 나쁠 것 같지는 않다만… 유능한 것과 부지런한 것은 다르지. 그 밑에 유능한 행정관이 있다면 그럭저럭 쓸 만해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니야. 군사님. 원래 그렇게 힘든 시기에는 능력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무식할 정도로 부지런한 놈이 제일 좋아요. 공화국 놈들이 갑자기 정신 차린 게 뭐 때문인지 알아요? 농담같이 들릴지는 몰라도 그림자의 영웅이라는 상징이 있었기 때문이라니까. 연방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사람이라는 게 은근히 단순해서 집단의 자존감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 은근히 중요하거든.”

바깥에서 똑똑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파란 길드에서 명예추기경님께….”

“아.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연락 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네.’

곧바로 손거울을 들자. 메시지가 계속해서 화면에 뜨기 시작했다.

‘시바.’

괜스레 인상을 구기며 박중기 팀장의 채널로 연결한 것은 당연지사.

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온 메시지도 많았지만 가장 맨 위에 떠 있는 채널이 박중기 팀장의 채널이었기 때문이다.

-박중기 팀장님?

-실례하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오랜만이네요. 그보다 무슨 일… 혹시 현성이가 또….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철거작업 도중 갑작스레 몬스터가 난입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근방의 작업원들을 즉시 철수시키고 곧바로 전투 인원들이 진입했습니다만… 그레고리 님께서는 실종, 그 외 11인은 전원 사망했습니다.

-…….

‘무슨 소리야.’

-정확한 구역이 어떻게 되죠?

-C45 구역입니다. 그레고리 님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사망한 11인은 레인저들이 제대로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현재 검은백조의 조사단이 파견을 나가 있는 상태지만….

그레고리 이 멍청한 새끼.

-창은요?

-네? 창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박중기 팀장님. 아. 거기 혹시 그레고리 파티 말고 다른 놈들도 있었나 봐요?

-네. 사실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만… 파란 길드에서는….

-그 새끼들이 범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죠?

-네. 하지만… 아직 물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어이가 없네.’

-…….

-…….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어.’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있나봐.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를 못하고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스퀴어트가 베니고어의 창을 가져가는 것은 계획한 그대로였지만 그 과정에서 그레고리에게 문제가 생겼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작업이 C45 구역까지 진입하기 전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판단하고 있었고 스퀴어트에게 작업을 치는 것 역시 조금 더 공을 들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그레고리는 휴일도 없이 밤낮으로 작업을 진행시키다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C45 구역에 진입했고 질투심에 미친 스퀴어트가 그레고리의 뒤통수를 쳤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몬스터한테 죽었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심어놓은 몬스터는 그레고리 파티 정도라면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

주요 전력 12명이 시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 박살이 났다는 건 코미디나 다름이 없다.

김현성이 박덕구에게 한 수를 허용했다는 것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부길드마스터?

-…….

-뭔가 조치를….

-그 새끼들 잡아 쳐넣어요.

-네?

-스퀴어트랑 같이 그 자리에 있었던 초신성인가 뭔가 하는 놈들 있잖아요. 당장 박덕구랑 김예리 데리고 가서 그 새끼들 잡아 쳐넣으세요. 아니다, 박덕구 김예리 데려가지 말고… 하얀이랑 희영 씨 보내요. 죽이지는 말라고 전해주시고요. 꼭.

-말씀드렸다시피 물증이 부족합니다. 부길드마스터. 혹시….

-팀장님. 제가 잡아넣으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증거가 필요해요? 감이 많이 떨어지셨나 봐. 우리 팀장님.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아직 모르겠어요? 내가 분명히… 잡아서 쳐넣으라고 했는데… 물증이 필요해요? 그게 중요해?

-…….

-그냥 잡아넣으라고요.

-무슨 말씀이신 건지 잘 알아들었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죄송합니다. 제가….

-…….

-…….

-후… 아니요. 제가 죄송하네요. 잠깐 머리에 열이 올라서….

-아닙니다.

-팀장님 좀 쉬세요. 휴가라도 드릴 테니까. 좌천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이번 일은 제가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짜증 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부길드마스터.

진청 이 새끼가 웃고 있는 게 더 기분 나빠.

“일이 잘 풀리지 않았나 보군.”

라고 지껄이며 차를 한 잔 들이켜는 걸 보니 차를 얼굴에 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시바 잘 안 풀렸다. 잘 안 풀린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나가리 됐어.’

나도 참 너무 착해졌나 봐.

이빨을 으득으득 갈고 있을 때 다시 한번 손거울에 진동이 오기 시작했다.

‘참 염치도 없네. 이 새끼는.’

-명예추기경님….

-…….

-늦게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명예추기경님. 너무 경황이 없었던 터라… 혹시 전해 들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안식처에서 큰 사고가 났습니다. 최소 전설 등급으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난입해….

-…….

-저희가 최대한 빨리 진입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레고리 님을 포함한 파티원들은… 구할 수… 없었습니다.

-야.

-네?

-…….

-혹시… 명예… 추기경님 맞으십니까?

-그래. 나야. 이 또라이 새끼야.

-네… 네?

-스퀴어트야. 스퀴어트야… 우리 불쌍한 스퀴어트야. 너 내가 마음에 안 들지? 내가 막… 병신으로 보이고… 그렇지?

-네… 네? 네? 잘… 못 들었… 습니….

-하라는 대로 다 해주고… 가만히 웃어주니까… 내가. 개. 병신으로 보이냐고….

-…….

-…….

-…….

-응? 이. 악마.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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