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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39화 (1,03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39화

피크닉 (2)(삽화)

꽤 오랜만에 모두가 함께 분주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건 이쪽으로 옮기라니까! 기모 형씨! 그건 여기요!”

“네. 그… 그런데 이게 제법 무겁습니다.”

“엄살 부리지 마. 기모 아저씨.”

“아니. 거 이쪽으로 줘보쇼. 내가 들어줄 테니까. 참… 아침밥도 안 먹고 왔나. 사람이 힘이 없다니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멍청이.”

박기리 삼남매는 언제나처럼 서로 투닥거리면서 짐을 옮기는 중.

‘쟤네들도 참….’

김예리와 박덕구가 마음 한편에 걸렸었는데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은근슬쩍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자니 완전히 마음이 편해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마 김예리에게도 박덕구에게도 이번 피크닉은 마음을 다잡을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힘들었으니까.’

우리 돼지야 워낙 단순하니까… 맛있는 거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전부다 잊어버리겠지만 감수성 예민한 김예리는 저런 게 필요하기는 했지.

“갑자기. 무슨 피크닉. 바보 같아. 진짜.”

“…….”

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묘하게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 마치 골골대는 고양이 마냥 웃음이 삐져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투복 이외에 다른 옷을 입었던 적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장비로 온몸을 둘둘 두르고 있었던 이전과는 다르게 제법 멋을 낸 옷차림도 눈에 띄었다.

어제 황정연과 함께 광장으로 나갔던 이유가 있었던 모양,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짧은 원피스에 라탄 소재의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꽤나 잘 어울렸다.

“무장은 놓고 가시죠.”

“안 그래도 놓고 왔어. 기모 아저씨.”

“품속에 숨기고 계시는 단검을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 말에 주섬주섬 품에서 단검을 꺼내는 것을 보니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것 같았지만….

‘쟤가 저래서 문제야.’

“그, 그래도….”

“아마 전투가 벌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예리 양. 외부업체에서 호위병력을 지원해 주기로 하기도 했었고 주변은 이미 한참 전에 정리가 끝났으니까요. 이번에는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즐기고 오는 게 목적이니… 어제 설레여서 잠도 자지 못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뭐? 누가? 그랬는데?”

“그냥 때려 맞혔….”

“이익!”

그 말을 끝으로 안기모는 반대쪽으로 뛰어 들어갔고 김예리는 눈에 불을 켜며 녀석을 쫓아가는 중.

사실 김예리가 그나마 나이대의 일반인처럼 행동하는 것은 박덕구와 안기모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저쪽 무리랑 얽히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는 하니까 다행이지 뭐.

‘그래 봐야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한참 학교 다니고 인생 즐길 나이에 무기 다루는 법부터 배웠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속이 썩어 문드러진 부분이 있을 거야.

우리 애 멘탈 케어는 꼭 해줘야지. 저 나이대는 그래야 돼.

“아영 언니! 기모 아저씨 좀 잡아줘!”

“아? 으… 응!”

“죽었어! 아저씨 진짜!”

김창렬과 대화를 나누던 유아영은 김예리의 외침에 엉겁결에 안기모를 꽉 잡았고, 속도를 이기지 못한 안기모는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잠깐… 잠깐! 뼈 맞았습니다! 뼈!”

“웃기지 마! 뼈는 안 때렸으니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게 맞는 거겠지?’

다른 무리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수녀복을 벗은 선희영은 개인 짐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었고, 황정연도 커다란 가방에 짐을 쑤셔 넣고 있다. 어째서 저렇게 짐이 많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짐이 많네요. 생각보다….”

그녀와 대조적으로 알프스와 벨리에는 개인 짐을 챙길 시간도 없이 빠릿빠릿하게 짐을 옮기고는 것이 보인다.

‘쟤네는 그냥 일하는 것 같자너.’

심지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이다.

‘우리 길드는 꼰대 문화 없는데.’

막내 몇 명 더 들이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사실 신입 길드원들이 선임 길드원보다 한발 먼저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관례는 파란 길드에는 없다.

제법 군기가 빡센 검은백조에서는 저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들은 적이 있지만… 파란 길드는 수평적인 구조를 지향하고 있지 않았던가.

누군가가 알프스와 벨리에에게 저런 모습을 강요했다기보다는 아마 본인들이 알아서 눈치를 보고 있지 않을까.

“이거… 저쪽으로 옮기는 거 맞아요? 알프스 선배님?”

“응, 맞아. 벨리에. 혹시 언제 출발한다고 들은 적 있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이것부터 옮기고 한번 알아볼게요.”

신입 길드원들이 대여섯 명은 더 들어왔으면 좋을 거야. 새로 길드원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지만 그게 경력직 스미스 대령일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거라구.

혜지니는 지혜 누나랑 이야기하고 있고… 하얀이랑 소라는 내 옆에 붙어 있고….

박리안은 언제 왔는지 마차의 이곳 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정리해도 정리해도 끝이 없는 듯한 느낌.

‘이래서 그냥 워프 게이트로 가자니까.’

떠나는 길도 여행의 일부라는 여론이 형성돼서 개고생 하고 있는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벨리에와 알프스보다 더 고생하고 있는 이들은 사실 길드의 직원들이었다.

‘괜히 눈치 보이자너.’

고작해야 길드원들이 떠나는 휴간데… 김현성 얘가 너무 스케일을 크게 잡았어.

‘커도 너무 크게 잡았어. 진짜.’

몇몇 직원들의 눈은 마치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를 눈앞에 둔 이들처럼 보인다.

마치 앞으로의 직장 생활이 이번 한 번에 걸려 있는 것 같은 분위기, 그냥 짐을 챙기거나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의 길드원들과는 전혀 다르다.

여신의 손거울을 바라보며 물품들을 계속해서 체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토론이라도 벌이고 있는 집단들이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 김미영 팀장은 인이어를 끼운 채로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중, 뭐 보지도 못한 물품들이 눈앞에 등장한다.

‘커다란 수조.’

거울연어들이 커다란 수조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무지개 솜사탕? 나 이제 저거 질렸어. 시바.’

커다란 수레에 달려 있는 솜사탕 기계.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천막. 어째서 건물의 골조들이 함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 이사 가는 건 아니지? 왜… 도대체 왜… 짐이 성녀의 안식처 갈 때보다 많은 것 같아?’

어쩌면… 어쩌면 이번 피크닉에 사용된 예산이 원정 예산보다 더 많이 나가는 건 아니지?

사치품처럼 보이는 것들을 실은 마차도 등장하고 있다.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것 같은 마차. 누군가 본다면 천도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규모가 웅장하다.

기자들이 이 꼬라지를 보고 있으면 파란 길드가 본거지를 옮긴다는 소문이 돌지도 모른다.

“우리 왔어. 자기.”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청바지와 민소매 한 장을 걸치고 등장한 것은 붉은 용병의 차희라.

“아. 희라 누나.”

붉은용병에서도 함께 가기로 한 인원이 있는 모양인지, 가벼운 옷차림을 한 인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희라 누나의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최영기 정도가 끝.

나머지도 전부 얼굴을 알고 있는 이들이었지만 이쪽보다는 박덕구와 인연이 더 깊다.

“아이고 오랜만이라니까!”

“잘 지냈습니까?”

“잘 지냈어?”

근육으로 꽉 찬 덩치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

다시 한번 시야를 돌리자 정하얀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희라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하얀 님께서 반갑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 잘 지냈지?”

“정하얀 님께서 잘 지내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차희라 님께서도 잘 지내셨는지 물어보시고….”

“뭐야? 대변인이랑 이야기해야 돼? 한소라라고 했던가?”

“네…? 아… 네.”

“흐음….”

“…….”

“너. 붉은용병으로 올 생각은 없니?”

“네? 갑자기요? 저… 저는….”

그 말에 정하얀이 입술을 꽉 깨물고 차희라를 밀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밀쳐질 리가 없는 희라 누나였지만 슬그머니 한 발자국 물러난 이후에는 정하얀의 머리를 쓰다듬는 중, 하얀이는 싫다는 듯이 발버둥 치면서….

“이익… 놔, 놔… 놔!”

라고 중얼거렸다.

“인사를 건넸으면 직접 인사를 받아야지. 그렇지?”

차희라의 품에서 빠져나간 정하얀은 한소라와 나를 동시에 잡고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희라 누나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만 같다.

오히려 히죽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파란한테 빚진 게 많네.”

“응? 뭔 소리야.”

“우리 애들이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더라고. 왜. 이번 피크닉 때문에 우리 애들이랑 전속계약 했었잖아.”

“…….”

“…….”

“파란이? 아. 호위업무 맡기로 한 곳이 붉은용병이었어?”

“아니. 그쪽은 아니고… 우리는 토벌 업무 맡았는데… 뭐야. 자기는 모르는 일이야?”

‘완전히 모르는 일인데….’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인데….

“휴가 장소. 그쪽에 있는 몬스터들 싹 다 쓸어버리라고 했던 거….”

진짜 완전 모르는 일인데.

“길드 내에 못난 놈들이 사업을 몇 개 말아먹어 가지고… 자금을 끌어올 만한 곳이 필요했는데. 마침 딱 파란에서 의뢰를 해줬지 뭐야. 덕분에 몇 년은 걱정 없겠어.”

얼마를 줬길래 붉은 용병에서 몇 년은 걱정 없겠다는 소리가 나와?

“마탑에서도 지원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확실히 붉은용병이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제조업 못 따라가더라. 포션 사업이 든든하기는 해. 대륙 전체에 유통되고 있으니 골드를 아주 쓸어 담잖아. 그걸로 린델 여기저기 뿌려주니까 경제도 활성화되고… 사실상 자기가 린델을 먹여 살리고 있는 거야.”

붉은용병 말고… 다른 길드에 의뢰까지 했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확히 무슨 의뢰를….”

“라베스 사막 원정.”

“어?”

“거기로 피크닉 간다며? 그쪽 몬스터들 싹 다 쓸어버리느라 고생 좀 했지. 나도 스트레스 좀 풀었고… 이 종족 연합에서도 고마워하고 있더라고.”

거기 완전… 완전… 미개발 지역이잖아.

면적은 웬만한 사냥터 두 개를 합쳐 놓은 면적. 사막 엘프들과 리자드맨 같은 유랑 종족들조차 기피하는 마굴이었다.

영웅 등급 이상의 모험가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일 정도로 난이도 높은 지역이기는 했지만 모두에게 버림받은 사냥터였다.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워낙 빈곤해서 재료값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

딱히 그곳에서 사냥을 할 이유도 없거니와 지역 자체에 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라 원정을 갈 이유도 없었다.

투자 가치가 너무 낮아 사실상 내버려 두고 있는 지역.

사막. 사막.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

박아 봤자 아무런 이득도 보지 못하는 적자 사업에 발을 들인 게….

‘우리… 길드라고?’

그것도 고작 이번 휴가 때문에… 발을 담근 거라고?

“김현성….”

“…….”

“이… 또라이 새끼….”

이가 으득으득 갈리기 시작했다.

*다음 페이지에 이기연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흙수저 : 한복 이기연 일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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