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40화
피크닉 (3)
‘이 미친놈.’
이 새끼… 진짜 제정신이 아니야.
막말로 김현성의 부모님이 지구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약 김현성이 어머니의 사업을 물려받았다면… 이 새끼가 부모님의 평생에 걸친 노력을 1년 안에 말아 먹었을 테니 말이다.
관련 업계 사람들은 잘나가는 중견기업이 순식간에 망한 이유에 대해 매일매일 떠들어대고 새 대표의 얼굴이랑 분위기 믿고 투자한 개미들의 통곡 소리도 계속해서 들려올 거야.
‘금전 감각이 어떻게 된 거 아닌가?’
부모님이 얘를 너무 순수하고 자유롭게만 키우셨어. 너무 세상에 때가 묻지 않도록 키우셨다고.
자유로움을 주셨으면 그 자유로움을 책임질 방법도 가르쳐 주셨어야죠.
어머님. 아버님. 우리 아들 행복한 세상만 보여주고 싶다고 그것만 보여주니까 얘가 이렇게 되죠.
이제 막 세상의 냉혹함에 대해서 가르쳐 주려고 했을 때 얘가 이쪽으로 소환된 거죠? 그렇죠?
하다 못해 정하얀도 제대로 된 금전 감각을 가지고 있다. 지구에서 힘든 삶을 살았을 테니 그 금전 감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김현성 보다는 나은 수준.
이 새끼는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는 걸까. 매일 밤 금화 요정이 창고로 찾아와 금화를 쌓아주는 줄 알고 있는 걸까.
지구에서도 화폐 요정이 매일 자기 집에 들르는 줄 알고 있었나?
“혹시… 내가 말실수했나?”
“아니야. 누나 잘 말해줬어. 이걸 모르고 있을 뻔했네. 이걸 모르고 있을 뻔했어….”
사실상 이번 한 번으로 파란이 무너져 내리거나 쇼크가 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파란 길드야 워낙 내실이 탄탄하기도 했고, 벌이기로 한 사업 몇 개 접으면 손해를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야. 타격을 입고 안 입고가 중요한 게 아니지.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게 중요한 거지.’
혹시나 김현성이 나에게 앙심을 품고 경제보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놓고 쥐어박을 수는 없으니 이렇게 복수를 해서 내게 엿을 먹이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충분히 그럴듯해.’
죽음이나 육체적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주려고 하는 거지. 그게 아니면 이럴 수가 없어.
이미 사막을 안정화시킨 것만으로도 맨땅에 골드를 쥐어박은 상황, 그 외에 준비에 들어간 골드도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이 새끼가 혼자 이 모든 걸 기획하거나 파란 길드의 도움만 받았다면 그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겠지만 문제는 이 새끼가 여러 전문 업체에 도움을 받은 것에 있다.
파란의 길드 직원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파견된 이들도 눈에 띈다.
어디 어디 디자인 업체라든가, 여행이나 캠핑 전문, 파티 플래너나 이벤트 기획자들.
대륙 최고가 아니면 취급하지 않았을 테니 저 인력들을 고용한 자금이 만만할 리 만무하다.
‘린델 건설?’
건설회사는 시바 왜 여기로 들어오는데. 건설회사가 갑자기 왜 튀어나오는 건데.
김현성 너 이 새끼는 왜 드워프 장인이랑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기분 좋을려고 떠난 여행이 시작부터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출발은 언제였지? 자기?”
“한 40분 뒤… 근데 더 늦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계속 길드 안으로 들어오네. 심지어….”
“…….”
‘흑마법사는 왜 들어오는 거야.’
눈에 띄는 것은 한 무리의 흑마법사들이었다. 마음의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놓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한쪽 구석에서 굉장히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녀석들은 최대한 무리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음습한 공간에서 썩어 있던 습관은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인지 어두운 낯빛을 하고 있었다.
“소라 씨.”
“네? 네. 부길드마스터.”
“저기 저 흑마법사들한테 여긴 왜 왔는지 좀 물어봐 주세요. 저기 보이는 거 흑마법사들 맞죠? 이야기 안 해주면 이단 심문관들 들먹이면서 협박 좀 해도 상관없고요.”
“네. 정하얀 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응. 다, 다녀와. 소라야. 아! 오, 오, 오빠 그러고 보니까….”
한소라가 돌아온 것은 정하얀과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의뢰 때문에 찾아온 거라는 하네요….”
“의뢰?”
“파란 길드마스터에게 직접 의뢰를 받았다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테니 의뢰만 완수하고 돌아간다고 했어요.”
“그게… 뭔데요?”
“강령술… 그러니까 네크로맨시… 로….”
“…….”
“샤넬리아 에르메스를… 잠깐 동안 이나마 현세로 불러오는 게… 자기들 임무라고….”
‘에반데….’
“…….”
‘진짜 에반데….’
“…….”
“…….”
“가능은 해요?”
“네?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예요. 부길드마스터. 그가 현생에 미련이 있다면… 그리고 그의 혼을 불러올 수 있는 촉매도 있으니까요. 사실 강령술이라는 게 아직까지도 제대로 정의가 되어 있지 않아서… 조금 불안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
“그리고… 혹시 선금부터 먼저 지급해 주실 수 없는지 넌지시 물어보는 것 같아서… 자기들도 가족이 있다고… 이번 여행의 끝에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니 최소한 가족들이라도 안전하게… 선금을 전하고 싶다고.”
‘우리 그런 길드 아니야.’
골드를 벌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벤트에 참여한 어둠의 용사들. 김현성이 자신들을 찾아왔을 때 얼마나 당황했을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녀석은 이미 한 번 흑마법사를 청소한 전적이 있으니 자신들의 삶의 마지막이 도래했다고 생각했겠지.
거기에 샤넬리아 에르메스를 다시 이곳으로 불러오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물론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함정, 혹은 일이 끝난 이후에 자신들이 폐기처분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이곳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마 길드의 흑마법사인 한소라가 말을 걸어주자 안심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불안감이 다 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상 초월이다. 진짜.’
샤넬리아 에르메스 강령술은 진짜 상상도 못 했네.
그게 숨겨진 이벤트였나 봐.
해골 상태로 부활시켜서 마지막 역작을 만들라고 부탁하려고 했나 봐. 그 마지막 역작을 위해서 모르긴 몰라도… 준비하고 있는 재료값도 많이 들었을 거야.
허망한 눈으로 김현성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희라 누나는 어색한 얼굴로 정하얀을 쓰다듬은 이후 선희영에게 향했고 한소라는 흑마법사들에게 선금을 치러도 되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금이… 얼마….”
“네. 그러니까.”
“아니. 말해주지 마세요. 알고 싶지 않으니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 기영 씨!”
“…….”
“이제 곧 출발할 것 같습니다.”
눈에 띄게 흥분한 것 같은 얼굴. 어릴적 부모님과 함께 떠났던 캠핑이 생각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쓴 골드의 결과물들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던 것일까.
‘돈 쓰는 게 재미있지?’
원래 쓰는 건 재밌어. 그건 인정해.
“혹시 준비는 끝나셨습니까? 필요한 게 있으신지 체크를….”
“준비요?”
“네.”
“제가 뭘 알아야 뭐가 더 필요한지 준비를 하죠.”
“네?”
“자기 혼자 이렇게 다 처리해 놓고 준비가 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되나요? 내 의사가 중요하기는 했나?”
“아… 기… 기영 씨가 준비는 분명히 맡기신다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혼자 다 해놓고 이제 갑시다. 하면 끝입니까?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정확히 뭘 하는지, 얼마가 들어갔는지 대략적으로 이야기를 해줘야지 이쪽도 마음의 준비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누구를 위한 휴가….”
“아… 네….”
순식간에 불안해진 얼굴이 눈에 띈 것은 당연지사.
당연히 김현성의 뇌로는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변명할 생각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녀석이 지금 걱정하는 것은 딱 하나.
‘지긋지긋해.’
김현성의 가슴을 난도질했던 그 발언이 나올 것 같은 타이밍이라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터.
아니나 다를까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꽉 다문 입술, 흔들리는 동공, 어떻게 하면 그 발언을 회피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는 시그널.
‘이 새끼는 지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를 거야.’
돈을 얼마나 썼는지 알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냥 무조건 좋은 걸로 전부 때려 박으면 좋다고 생각했겠지.
업체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가격을 깎거나 보너스로 뭘 받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는지, 스폰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지원받을 수 있을지도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기영 씨.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까?”
“제가… 제가….”
“이럴 거면 혼자 다녀오시지. 도대체….”
“…….”
“이러라고….”
“…….”
‘아니야.’
이러지 말자.
본격적으로 쏘아붙이려고 했지만….
‘그래. 다 좋은 뜻이 있었던 거잖아.’
얼마 만의 휴가야. 자기도 많이 설레고 있을 거야.
대륙 던전화 끝난 이후로 질릴 정도로 놀기는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각 잡고 준비한 적은 없잖아.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일 수습하랴, 뒷정리하랴 정신도 없었고…. 어디 가겠다. 가겠다. 말만 했지 실제로 떠난 적도 없고….
사실 허락까지 받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지긋지긋해로 공격받으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
이미 나갈 돈 전부 나간 상황이고… 지금 와서 드잡이질 해봤자 기분만 더러워지고… 의미만 퇴색될 테니까.
‘돈은 또 벌면 돼.’
린델에 투자한 돈은 다시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래. 이왕 쓰는 거 화끈하게 쓰자.’
사막이라는 장소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최소한 돈을 쓴 보람은 있을 것이다.
‘제발….’
이왕 제대로 정리되기도 했으니 어쩌면 써먹을 수 있는 방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부지는 넓으니까. 대놓고 관광업으로 밀어도 되고….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기영 씨.”
“아니요. 저도 좀 예민했네요. 오늘 같은 날.”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경솔했던 것 같습니다.”
‘너는 너무 경솔해. 경솔의 아이콘이야.’
“그럼 출발할까요?”
이를 갈면서 떠난 여행길.
그리고.
“라베스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베스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커다란 오아시스를 끼고 있는 도시가 시야에 비쳤다.
“이게… 뭐야?”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여기 왜… 도시가 있어?”
“…….”
“왜 도시가 여기서 나와? 오아시스도… 없었잖아.”
“…….”
“여기에… 도시를 어떻게 세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