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51화
피크닉 (14)
-신화등급의 촉매 말씀이십니까?
-네. 물론 말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전설 등급의 촉매가 통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
-단순히 영혼을 불러오는 거로 괜찮으시다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완수시키겠습니다만….
-그저 영혼을 불러오는 거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이미 설명드리지 않았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가 잠깐이나마 이승에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샤, 샤… 넬리아 에르메스의 혼이 일반적인 육체에 접신하는 걸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조금 더 격이 높은 육체를 준비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제발… 저는 처자식이 있습니다. 노을빛의 검신이시여… 한 번만 자비를….
-굳이 신격이 아니더라도 일단 격이 높은 소재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온전한 육신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이를테면 유해나… 하다못해 흔적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후우….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김현성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알타누스의 육신은 사라졌는데… 후우… 제길….
-…….
“…….”
현성아 너….
‘사이코패스 아니야?’
흑마법사들이 들었어도 기겁할 정도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이후에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상황 자체가 워낙 당황스러워 싸구려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지만 김현성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다.
‘저거 시바 흑마법사들이 괜히 못 할 것 같으니까 크게 부른 거 아니겠지?’
물론 전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연금술, 흑마법, 마법과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정설이었으니까.
만약 샤넬리아 에르메스의 혼이 일반적인 영혼에 비해 격이 높다고 가정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김현성이 소재로 뭘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정하고 준비한 만큼 격이 낮은 소재를 준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예술가라서 그런가?
‘혼의 성질이 까다롭다면 더 어렵겠지.’
문제는 전설 등급 이상의 촉매, 그러니까 현재의 대륙에서 샤넬리아 에르메스가 깃들 몸을 구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김현성의 말대로 알타누스의 육신은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고 그 비슷한 것도 찾을 수가 없다.
몬스터의 소재 같은 경우에는 남아 있는 게 있겠지만 인간의 영혼을 몬스터 사체로 빙의시킨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 장담할 수 없거니와 그들의 소재를 인간형으로 공정하는 작업도 쉬운 것이 아니다.
나 정도의 연금술사가 아니라면 아마 소재를 변환할 수조차 없지 않을까.
물론 김현성은 내 도움을 받기 싫을 테고… 사실 저들의 속사정이 어떻든 간에….
‘이 새끼 아마 사고 칠 거야.’
서둘러 손거울을 집어 든 것은 당연지사.
[현성 씨?]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쉬고 있던 김현성이 손거울을 향해 손을 뻗은 것이 망원경에 비쳐왔다.
[네. 기영 씨. 휴가는 재미있게 잘 즐기고 계십니까?]
‘순식간이자너.’
[그럼요.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셨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해서. 대륙에 온 뒤로 처음으로 푹 쉰 것 같은 느낌이네요. 이 이상… 여한이 없을 정도로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노력할 수 있도록….]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가요? 더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ㅎㅎ 너무 만족스럽다고… 이야기한 건데….]
[죄송합니다….]
‘아니, 뭐가 죄송한데.’
[사과를 받으려고 한 건 아닌데… 죄송한 게 아니라 정말 감사해서… ^^;;]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니, 만족한다니깐요.]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믿어주셔도 됩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있는 건데….]
‘아니, 그게 아닌데….’
얘가 너무 갈굼만 당하다 보니까 이것도 갈구는 거로 보이나 봐.
‘내가 그동안 너무 심하기는 했나 봐.’
실제로도 망원경 속에 비친 김현성은 초조해 보인다. 모든 걸 망쳤다는 듯이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정말 기쁘다는 감정이라도 전해줘야 하나? 굳이 진짜 감정을 말해줘야 알아듣나? 아니, 이 새끼 그것도 의심하고 있는 거 아니야?’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어 재낀 것은 바로 그때였다.
“큰일 났습니다!”
“뭐야! 뭐야! 시바! 뭐야!”
“큰일 났단 말입니다. 디아루리아와 막스가… 아이들이 사라졌습니다.”
눈가를 붉히고 있는 디아루기아였다.
“…….”
“…….”
“아니, 이렇게 갑자기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아이들이 사라져 버렸단 말입니다. 갑자기… 분명히 잘 감시하고 있었는데… 깜빡 존 사이에…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도시 곳곳을 찾아다니고… 아이들이 있을 만한 곳… 심지어 라베스 사막도 한 바퀴 돌아봤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황급하게 말을 잇는 그녀의 모습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 여전히 머리 위에 커다란 뿔 두 개가 자리하고 있었고 검은색 흑발에 약간은 지치고 억울해 보이는 특유의 표정까지.
약간의 침묵이 침실 안에 감돈 것은 그녀가 이쪽의 모습을 확인한 이후였다.
“…….”
“…….”
“혹… 혹시 제 디아루리아의 아버지 되시는 분이 맞으십니까?”
“네. 맞아요.”
“지금 모습은… 도대체… 아. 인, 인간들 중에서는 간혹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 다른 이들이 태어난다고….”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까. 굳이 캐묻지 마세요.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먼저 찾아오셨네.”
“아.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디아루리아와… 막스가….”
“아이들 위치라면 제가 알고 있어요.”
“네? 그게 정말입니까? 지금 어디 있는지 보고 계시는 겁니까?”
“잠깐만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고 있었는데. 아무튼 굳이 걱정할 상황은 아니니까. 진정하세요.”
“어떻게 진정할 수 있습니까! 아직 어린아이들이란 말입니다!”
‘말이 어린애들이지. 솔직히 저 정도로 걱정할 정도는 아니잖아.’
-누님.
-보고 있어. 케루. 혼자 처리할 수 있겠지?
-네. 믿어주십시오.
-누나는 좀 쉬어야겠어. 그렇다고 너무 안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지금 던전로그들 전부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으니까. 공략에 누가 얼마만큼을 기여했는지 전부 아빠한테 보낼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너희들 실수하는 것도 전부 잡히고 있다는 거 명심해!
-그 말씀은….
-뭐. 나야 모르지. 이번 아빠를 찾아라 퀘스트가 단체 미션인지, 아니면 개별 점수가 있는지. 우리가 이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는 해도… 누구는 파란 길드 배지를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야. 도미니온스를 제외한 너희 세 명. 지금 너희들이 얼마나 못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 특히 케루. 너는 정말로 실망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개인적으로 너한테 거는 기대가 컸는데 말이야.
-그… 그건….
-누나도 웬만하면 다 같이 합격하고 싶지만… 글쎄… 아빠가 과연 이 정도 실적을 가지고 돌아가는 거로 기뻐하실까? 설사 아빠가 동정심으로 너희들에게 정식 길드원 배지를 넘겼다고 한들. 자랑스럽게 그걸 가슴에 달고 다닐 수 있겠어?! 지금 이런 모습을 보면 과연 자랑스러워하실까?
-아, 아니요. 절, 절, 절대로 싫어요!
-그렇다면 제대로 하란 말이야! 세나!
-세… 세라예요. 누… 누나님.
‘전설 등급 던전이라자너.’
날개를 펼치며 사방팔방을 싸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썰어 재끼는 외신 아이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디아루리아는 그걸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중, 누가 봐도 평범한 아이들이라고 볼 수 없다.
던전 공략에 절대라는 없다지만 저 정도의 던전에 아이들이 고전하는 일 따위는 없다.
유능한 지휘관으로 막스가 붙어있고, 파티원들을 채찍질해 주는 디아루리아는 이미 인간과 드래곤을 넘나드는 독자적인 전투 방법을 고안해 성장한 지 오래.
훌륭한 어머니와 선생님의 밑에서 매일매일 수련하고 있는 외신 아이들의 경우에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외관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숙련된 모험자로서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저 정도 파티면 대형길드 전력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애들 던전에 있네요.”
“네?”
“던전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무난하게 공략하고 나올 것 같은데….”
“갑자기 무슨… 혹시… 던전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라베스 사막 남쪽에… 정확한 좌표는 잠시만….”
시시각각 일그러지는 디아루기아의 표정이 시야에 비친다.
솔직히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기에는 너무 심각해 보이는 표정에 오만가지 생각이 전부 들기 시작했다.
디아루기아에게 굳이 결론을 듣기 전에 내 머릿속에서는 꼬인 상황을 가정하기 시작한다.
‘어째서 던전이 발견되지 않았던 걸까.’
막스가 유능한 것은 맞지만, 붉은용병이 라베스 사막을 안정화시키는 과정에서 어째서 저 던전을 쉽게 발견하지 못했는가가 의심스럽다.
‘특정 조건이 있었나?’
간혹 던전이 열리는 특정 조건이 있다. 이를테면 특정 아이템을 놓아야 열리는 던전이라거나, 달이 태양을 가릴 때 열리는 던전이라거나, 자연현상이나 대륙의 법칙에 적용받는 일부 던전들.
어쩌면 아이들이 들어간 던전 역시 그런 종류의 던전일 수도 있다.
“비가… 비가 내렸었죠. 오늘… 분명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디아루기아의 말이 뭘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라베스 사막에 내려오는 설화.
사막의 유랑종족들의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전설.
“악신 겔라.”
“…….”
“겔라가 봉인되어 있는 던전. 사하가가 들어온 길로… 들어간 거구나.”
‘그래 봤자 등급 외 판정도 아니라. 고작 전설 등급 판정이야.’
봉인되는 과정에서 손발이 잘렸다고 판단하면 아이들끼리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확실한 모험은 거르고 싶은 게 부모 되는 사람의 심정이 아니었던가.
“흐윽… 흐으으윽… 흐윽….”
벌써부터 흐느끼고 있는 디아루기아의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헤프닝이야. 당황할 필요는 없어.’
[베니고어?]
[응? 왜? 무, 무슨 일이야?]
[혹시 겔라 라는 얘 알아?]
[겔라? 겔라… 겔라? 겔라가 누구였더라… 아아! 기억난다! 기억나! 나보다는 벨 이사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걔 악마들이랑 엄청 친했던 거로 기억했거든.]
[그래? 근데 왜 나는 들어본 적이 없지? 보고서에서도 본 적 없는데.]
[아… 그, 그게… 너무 오래된 일이고… 이미 해결된 파일이기도 해서… 문서함 깊숙한 곳에 처, 처박아 놓은 것 같은데… 잠깐만… 너무 오래된 거고….]
[우리 일자리 부족하지?]
[새 사원으로 들이게? 걔… 걔는 좀 그런데… 실력은 있기는 한데….]
[왜 좋잖아. 여기 봉인되어서 좌천당했던 거면 아직 소속도 비어 있다는 거고… 아무튼 연결해 줘.]
[으응… 잠깐만. 걔 연락처가 어디 있었더라… 로렌! 혹시 겔라….]
[사하가한테도 연락해 주고.]
[사… 사하가는 지금 다른 차원에 소속되어 있는데?]
[상관없으니까. 빨리.]
[로렌! 혹시 사하가 채널!]
[그냥 로렌한테 연결해 줘.]
그렇게 시간이 지난 직후, 처음 듣는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왠지….
‘협상이 쉽지는 않을 것 같네….’
악신이라 불렸던 겔라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