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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53화 (1,05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53화

피크닉 (16)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감각이 느껴졌다.

이전과는 다른 힘이 안에서 솟구치는 듯한 느낌은 분명 생소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를 분명히 느끼고 있지 않은가.

황금색의 일렁이는 기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아 제대로 제어할 수조차 없는 힘.

이상함을 느낀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다.

찬란한 황금색의 검이 펼쳐진 이후, 자신을 바라보는 형제들의 표정이 눈에 띄었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

꿈을 꾸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듯한 얼굴들이었다.

“세… 세라핌….”

“이번에는 내가… 지켜줄게. 케루.”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이다. 실은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억지로 태연한 척하면서 입을 열었을 뿐이다.

하지만 하늘을 수놓고 있는 황금색 검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는 용기가 생겨난다.

하나하나 완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검들을 보고 있노라면 눈앞에 있는 적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거… 정말로… 네가 한 거야?”

“응. 그런 것 같아.”

“말도… 안 돼. 세라… 넌….”

“권능을 깨달은 거야. 그렇지? 세나?”

“응. 도미. 사실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아버지가… 기뻐하시겠네. 축하해. 세라.”

아마 기뻐하시겠지. 어쩌면 안아 주실지도 모른다. 정말 잘했다면서 머리를 토닥여 주실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 하늘이 날아갈 것같이 기쁘다. 어서 빨리 저 황금색 검들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심정, 머릿속을 꽉 채웠던 혼란과 공포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정도였다.

이렇게 권능을 깨달았다는 것을 보고 계시다면… 분명히… 분명히 칭찬해 주시겠지. 물론 전제 조건이 존재한다.

“응. 이곳에서 살아남으면 말이야.”

[재미있는 힘이구나. 꼬마야. 인상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 조금은 놀랍구나.]

“천벌.”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검들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보였다.

눈앞에 있는 적을 향해 쏟아진 것은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

검들을 하나하나 컨트롤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할 수 있어. 아니, 해야 돼.’

무조건 성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야아아아아!!”

[시도는 좋았다만… 너무나도 약해….]

그녀가 말한 것처럼 떨어지는 검들은 너무나도 허망하게 그녀의 손짓에 막힌다.

반쪽짜리 신이 일으킨 충격파에 튕겨 나가기도 하고, 그녀의 주변에 쳐 있는 희뿌연 막에 가로막혀 전진하지 못한 검들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손을 뻗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황금색의 검들이 조금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천벌!!”

[게다가… 아직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모르는구나.]

“흥.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이제 막 깨달은 것 같은데.”

[넌.]

“내가 끝난 줄 알았어? 막스! 시작해!”

“네! 누나!”

-전술 변경합니다. 목표는 탈출이 아니라 공략입니다. 세라를 필두로 한 작전을 전송할 테니 모두들 집중해 주세요. 작전 시작 시각은 정확히 30초 뒤에요.

파티 통신채널로 넘어온 메시지가 머릿속에 들어온 이후, 모두가 서로의 시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디아루리아 누나님과 막스 형아님이 느끼기에 공략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면….

‘희망이 있어.’

아마 확률이 올라갔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막스 형아님의 계산은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골렘들이 순식간에 그를 둘러싸고 이내 튼튼한 방어막이 겹겹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의 계산에 불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차단하기 위한 작업.

아마 저 안은 여신의 거울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정확히 20초가 흘러갔을 때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부담감은 느끼지 마세요. 실패하더라도 괜찮으니까. 우리들을 믿어요.

할당받은 임무는 권능으로 소환된 검을 컨트롤하는 것.

-그럼 갑니다.

“네!”

-세라야. 대답은 하지 않아도 돼.

“네!”

눈으로 셀 수 없는 수많은 검이 계속해서 떨어진다.

어떤 것은 빠르게. 어떤 것은 느리게. 어떤 것은 수직으로, 어떤 것은 점점 빨라지게.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들을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대로 움직인 검의 개수보다 자신이 놓친 검의 개수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스 형의 말대로 실패해도 괜찮다. 불필요한, 불확실하게 명령을 전달받은 검을 도미니온스가 계속해 이동시키고 있었으니까.

루트에서 벗어난 변수들을 그녀가 조정해 주고 있었으니까.

상황실 안에 있는 막스형이 실시간으로 루트를 변경해 전송하고 도미니온스가 떨어진 임무를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재조정하기 위해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는 저들보다 확실한 길이 보이는 자신의 임무가 훨씬 더 간단하다.

길을 잃은 검은 도미니온스가 설정해 놓은 길을 통해 공간을 넘어 다른 위치로 전송된다. 그리고 그곳에는 쓰로누스와 케루빔, 디아루리아가 기다리고 있다.

전위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불완전한 신에게 닿지 못하거나 그녀에 의해 튕겨 나온 검들을 다시 잡아 밀어 넣는 간단한 작업.

당연하지만 실제로 보면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서로 위치를 바꾸거나 불완전의 신의 공격을 피한다거나, 가끔은 도미니온스에게 도움을 받는 세 명의 근접 전사들의 모습은 화려하다는 말로 부족할 정도.

쓰로누스와 케루빔은 서로를 도우며 전진하고 있었고 디아루리아는 검으로 모든 것을 튕겨내며 이동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저들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쉼 없이 떨어지고 있는 황금색의 검 사이로 이동해 적에게 당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어.’

불완전한 신이 귀찮다는 듯이 휘두른 팔, 그 팔에서 쏘아져 내린 갈색의 창.

케루빔과 쓰로누스를 향해 쏘아진 창을 막은 것은 디아루리아의 거대한 몸이었다.

순식간에 변신을 끝낸 용의 몸에 창들이 박혔지만 쓰로누스와 케루빔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넘어 한 발자국 앞으로 전진한다.

그리고 그들이 붙잡은 검이 불완전한 신에게 닿는 순간.

“지금이야! 세라!”

“네! 누나님!”

진짜 천벌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멈추지 마!! 멈추지 마! 세라!”

“이야아아아아아아!! 천벌! 천벌!”

“퍼부어! 퍼부어! 총공격! 총공격!”

“네… 네!”

“전부 다! 쏟아부어!”

“…….”

“죽어! 죽어! 이 빌런 새끼! 이 싸가지 없는 새끼! 용의 숨결 맛을 봐라! 진짜 용 숨결의 맛을 봐라!”

‘이길 수 있어!’

“이야아아아아!!”

‘이길 수 있어!!’

몇 분이나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을까.

“공격 중지! 공격 중지!”

거대한 폭음과 흙먼지가 걷힌 곳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 있는 불완전한 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 말도 안 돼.”

“시이바….”

“누나?”

“시바! 제길! 다음 작전으로 간다. 막스!”

“…….”

“…….”

눈 앞에 있는 여인이 활짝 웃으며 입을 연 것은 누나님이 다시 인간형으로 변신해 검을 집어 들었을 때였다.

“…….”

“…….”

[라베하!]

“어?”

[우리 꼬마 손님들. 합격이에요.]

“네?”

“아!”

[아무리 그래도 던전은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훌륭하게 공략을 성공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아… 그… 그런 거구나.”

“네?”

“그런 거였구나. 휴… 다행이다. 후와… 진짜 다행이다.”

[여러분들의 용기, 그리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 결단력과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은 모습까지! 모든 부분들이 합격점이라고 희생과 부활의 신님께서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아쉬운 부분 역시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말씀하셨죠.]

“아….”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던전은 희생과 부활의 신님이 계시지 않아요. 하지만….]

“네.”

[여기까지 당도한 여러분들을 위해 저 상사이신 이기영 님께서 선물을 준비하셨어요. 파란 길드의 배지!]

“어? 근데 이건… 이건 배지가 아니잖아요!”

[정확히 말하면 배지의 일부예요. 라베스 사막 어딘가에 흩어져 있는 파란 길드의 배지 조각을 모으는 것이 여러분들의 임무. 이제 고작 첫 번째 배지를 찾았을 뿐이니 앞으로 여러분들의 앞에 어떤 고난과 험난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저로서는 그저 앞날을 기도드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네요. 아마도… 아니, 확실하게… 지금보다 더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죠….]

“대박! 대박이야! 대박이라구!”

[그리고….]

“네!”

[희생과 부활의 신님께서 여러분들께 직접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시네요.]

“아빠가요?”

순식간에 긴장이 풀린 것 같다. 환호성을 지르는 남매들 사이에서 혼자만 울컥하는 게 부끄럽기는 했지만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케루빔이 등을 두드려 위로해 주자 괜스레 더 울컥하는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이후에 들어선 감정은 기대감이었다.

‘보고 계셨나 봐.’

“우와아아아아아!!”

‘진짜로 보고 계셨나 봐!’

“아빠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진짜로… 진짜로 보고 계셨나 봐!’

자신이 각성하고 새로운 권능을 사용해 공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떠올리자 안도감보다 기대감이 더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

어떤 칭찬을 받을지, 어떤 응원의 말을 해주실지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렵다.

“아빠!”

이윽고 커다란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생했구나.]

“아빠! 아빠! 아빠!”

“아버지!”

[그래. 디아루리아. 막스. 정말로 고생 많았다. 그리고 쓰로누스, 케루빔, 도미니온스, 세라핌, 너희들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무척 인상적이었고… 너희들이 여기까지 성장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쁘구나. 특히 디아루리아.]

“네.”

[동생들을 아끼는 모습이 너무 감격스러웠단다. 특히나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다음을 플랜을 생각하는 게 어머니를 닮았더구나.]

아니나 다를까 한 명 한 명씩 부르면서 공을 세워주며 칭찬해 주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루빔 너는….]

“감사합니다. 아버지.”

[도미니온스 네게도 할 말이 있다.]

“감… 사합니다.”

이윽고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을 때,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한 발자국을 내디딘다. 누나, 형, 그리고 다른 형제들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축하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더욱더 기대감이 차오르기는 했지만….

[세라핌….]

“네!”

[너는… 넌 정말… 아니….]

“네!”

[후우… 아니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

[그럼 다음 퀘스트를 내려주는 게 좋겠지? 너무 오래 걸리는 것도 안 좋으니까. 다음은 사막엘프의 토속신 사하가의 유산을 가지고 오는 것이란다. 다른 힌트는 겔라에게 듣는 게 좋겠지. 그럼 행운을 빈다. 재미있게 즐기고 힘내서 임무를 완수하도록. 어서 보고 싶구나. 아이들아.]

‘어….’

“네!”

“아마 보지 못하셨나 봐. 세라.”

“으… 으응….”

“너무 상심하지 마. 던전로그가 올라가면 아버지가 분명히 따로 확인한 이후에 칭찬해 주실 거야.”

“응.”

“자자! 이제 다음은 사하가의 유산이야. 모두 집중하라고.”

“네. 언니.”

“일단은 남은 퀘스트를 해결해 파란 길드의 배지를 얻고 아빠를 찾는 것이 먼저야. 다 같이 파이팅 한번 하고 갈까?”

“네!”

“하나 둘 셋! 파이팅!”

“파이팅!!”

* * *

“신나기는 했네….”

“…….”

“…….”

“신나기는 했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