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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67화 (1,06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67화

피크닉 (30)

[정말로 뭐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아이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사하가 님. 오히려 사하가 님께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직하는 데 고려할 것도 많으셨을 텐데… 이렇게 흔쾌하게 승낙해 주실 줄은….]

[사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겔라의 옆이 제가 있을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제 피조물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제는 그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큼….]

[…….]

[큼… 큼… 아무튼 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약 10년 안에… 겔라 님의 신전이 유랑종족들에게 발견될 예정입니다. 겔라의 신전 안에는 사하가 님의 상징물과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배치해 놓을 예정이고요. 아마 라베스는 두 분을 운명공동체라고 여기고 있을 겁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과거 자신들의 해석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새로운 서사와 신화가 정립되겠네요. 모든 배후에는 벨 이사가 있었던 것으로 될 테고… 그가 겔라 님과 사하가 님을 갈라놨다는 걸로… 어떻게 해석될지는 저도 알아봐야겠지만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벨리알 님께 폐가 되는 건 아닌지… 아니,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니요. 벨 이사님은 아마 좋아할 겁니다.]

[…….]

[그리고…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앞으로 수만 년 이상을 이어나갈 신화인데… 애매하게 처리하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맞습니다. 오히려 다행이네요. 가끔 꽉 막힌 양반들은 이런 유연하고 탄력적인 작업에 경기를 일으키기도 하던데….]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희생과 부활의 신께서 배려해 주신 대로… 다시 한번 겔라와 함께 이 대륙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그 열정을 부디 대륙을 위해 사용해 주셨으면 하네요. 안 그래도 최근에 일이 바빠져서 걱정했었는데. 아! 겔라 님이랑 베니고어 님은 잘 지내죠?]

[사실… 조금 부딪치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사하가 님께서 잘 컨트롤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괜찮은 사람 있으면 연락 좀 넣어보세요. 대우는 섭섭하지 않게 해드린다고 꼭 말씀해 주시고요.]

[네. 이기영 님.]

[이기영 후배! 이기영 후배! 나 할 말 있는데! 겔라 있잖아?! 아니, 글쎄! 걔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이기영 후배!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시바 머리 아파질 뻔했자너.’

황급하게 통신채널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겔라와 사하가를 위로 데려간 것은 좋았지만 아직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인물들 사이에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한꺼번에 들어간 거니까.’

다행히 둘 모두 이쪽에게 우호적이라는 건 안심할 만했지만 사하가라면 몰라도 겔라는 벌써부터 베니고어와 부딪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외에도 처리해야 할 문제가 몇 가지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꽤 괜찮게….

‘일이 마무리됐지.’

엘리오스를 조혜진에게서 떨어뜨려 놓을 수 있었고, 디아루리아와 아이들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파란 길드 배지를 손에 넣었다.

누나도 이기연과 이지후의 엔딩에 꽤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고….

결정적으로 겔라와 사하가를 영입했으니 갑작스럽게 계획한 일치고는 얻은 게 꽤 많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쪽도 나름 즐거웠으니 여러모로 이번 삼 일을 알차게 사용한 듯한 느낌.

일이었음에도 재미있게 쉬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명예추기경님은 행복하십니까?’

그럼. 행복하자너. 사막의 길잡이야.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뭐겠어.

카페에 앉아 남은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영 씨. 맛은 어떠십니까?”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만 같은 목소리.

자연스럽게 고개를 올리자 파란의 길드마스터, 노을빛의 검신, 붉은 실이 아니라 회귀자 사용설명서로 연결된 친우.

김현성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소풍을 가는 어린아이처럼 설레여 잠을 자지 못했는지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대체적으로 평소와 변함이 없어 보였다. 버터를 바른 것같이 느껴지는 엘리오스와는 다르게 이온음료 광고를 떠올릴 만한 상쾌한 얼굴도 여전했고.

회귀자 사용설명서로 인해 변한 눈도 변함이 없었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매번 걸치는 갑주 대신 평상복을 입고 왔다는 것.

아싸가 함께 노는 인싸 무리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안 맞는 옷을 일부러 걸치고 온 것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키 되고 어깨 되고 얼굴이 되다 보니 숨길 수 없는 특유의 아싸 냄새를 필사적으로 지우고 있었다.

물론 그 특유의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 녀석이 숨 쉬는 공기가, 어색한 몸짓이, 긴장한 표정이 녀석이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으니까.

물론 저게 김현성답기는 하다. 오히려 지나치게 날 티 났으면 좀 짜증 나지 않았을까.

아무튼 간에 저것도 필사적으로 고민한 흔적이리라. 누구한테 도움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도움을 많이 받았겠지.

‘그만큼 기대하기는 했을 거야.’

오죽했으면 시바 사막의 길잡이들이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찾아와.

아무리 그래도 업무 중인데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조금 그렇지.

내가 분명히 시바.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는데.

“기영 씨… 맛은 어떠십니까.”

‘괜히 생각하니까 또 화나네.’

“맛은… 어떠십니까?”

‘아니야. 화내지 말자. 오늘은 진짜 화내지 말자.’

“기영 씨?”

당연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조금 산미가 있어서 마음에 드네요. 딱 제 취향이라….”

‘미안. 사실 여기 엘리오스랑 한 번 와봤어.’

“박물관도 즐겁게 관람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기영 씨.”

‘미안. 거기도 이미 엘리오스랑 한 번 다녀왔어.’

물론 기대하던 김현성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우와. 라든지.

대단해. 라든지.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라든지.

여러 가지 감탄사와 함께 김현성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기 위한 대사를 장착한 것은 당연지사.

애초에 설계부터 이쪽이 관람하게 편하게 설계했으니 몬스터 박물관의 공은 엘리오스가 아니라 김현성에게 돌아가는 것이 맞았다.

무엇보다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다면 이 새끼가 실망할 게 뻔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장단을 맞춰주는 연기가 필요했다.

‘오늘은 진짜 맞춰줘야지.’

“특히 여러 가지 촉매를 볼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사막에서 서식하는 몬스터의 생태를 자세히 알 수 있는 것도 좋았고… 붉은용병의 로그를 읽는 것도… 특히 라베스 사막의 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레스토랑이라니….”

“모두 기영 씨가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나 미리 다녀오시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동안은….”

“방에서 푹 쉬고 있었거든요. 하얀이와 함께 근처 카페나 식당에 자주 들리기도 하고… 조금 밀린 일거리가 있어서 그걸 해결해야 해서.”

“왠지 그러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

“그래도 정말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더군요.”

“물론 라베하에 몬스터 박물관이 정말 훌륭해서인 것도 있지만.”

“네.”

“오랜만에 현성 씨랑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거니까요. 뭘 하든 즐겁지 않겠어요.”

“아….”

“그동안 너무 바빴으니까요.”

“네. 정말로….”

“잠잠해질 만하면 사건이 터지고, 또 잠잠해질 만하면 다른 사건이 터지고… 그렇다 보니 이렇게 쉴 수 있는 여유가 뭔지도 까먹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이런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까 다녀왔던 박물관에 들어가서 정신없이 구경한 것도… 또 현성 씨랑 이렇게 함께 있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요.”

“네. 그렇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요.”

“…….”

“물론 현성 씨 백수 시절 때야 가끔 같이 나간 적은 있었지만 저는 워낙 정신없는 상황이었거든요. 대륙던전화의 후처리를 계속해서 해야 했고… 사실 길드 근처랑 린델을 돌아다닌 것 정도가 전부 잖아요.”

‘그래. 너 백수 시절. 아무것도 안 하던 백수 시절.’

“그 이후에는… 템플러….”

“기영 씨.”

템플러 젠 사태가 터져서… 김현성과 냉전상태 아닌 냉전상태 들어가게 됐었지.

사실상 백수 시절 이후로는 둘이 제대로 된 시간을 보낸 게 손에 꼽힐 정도였다.

태어나서 이기영 이외의 친구와 놀아본 적이 없는 김현성은 사실 이번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여겨질 정도.

김현성이 인싸의 몸놀림을 장착한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현성 씨는 뭐 하고 지내셨나요?”

“여러 가지로 준비할 게 많아서…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힘듭니다. 지금 바로 말씀드리는 것 보다는 나중에 말씀드리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새끼 기세등등한 표정 봐.’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한데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말고요.”

“정말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뭐 대단한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만… 아무튼 움직이시죠.”

“다음은 어딘가요?”

“라베하 사막 투어를 준비했습니다.”

‘그것도 이미 엘리오스랑 했어. 시바.’

“그것보다는….”

“네?”

“그리폰을 타는 게 어떨까요?”

너무 나만 재밌으면 좀 그러니까. 너도 좀 재미있어야지.

“네? 정말입니까?”

“그럼 정말이죠. 아무래도 같이 라이딩한 지도 오래됐으니까요. 가끔 스트레스가 풀리기는 했었거든요. 혼자 타면 위험하기도 하고… 재미도 없지만… 같이 타는 건 좀 다르니까.”

“네. 기영 씨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또 혼자 타면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잖아요.”

너랑 같이 타면 네가 다 알아서 해 주자너. 장비 얹는 것부터 시작해 가지고. 안전점검까지 전부다.

물론 날개가 있기 때문에 추락할 위험이 없기는 하지만, 라이딩은 최대한 안전하게 해야 한다는 게 녀석의 지론이었다.

이쪽 역시 그런 부분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닌 터라, 김현성과 함께 나가면 라이딩도 즐겁게 느껴지기야 한다.

“물론 현성 씨는 저랑 나가면 지루하겠지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나 즐거운지 굳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임?’

“아무튼 가시죠. 그리폰 승강장에 미리 연락해 놓겠습니다.”

“화이트 폴은 린델에 있지 않나요?”

“화이트 폴 주니어들이 라베하에 와 있습니다.”

“아. 벌써….”

“네. 마침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훈련을 시켜놓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라이딩을 나가지는 않았으니까요. 아마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걔네 내 얼굴 알고 있나. 완전 어릴 때 빼고는 본 적 없는데.’

“아마 주니어들도 기뻐할 겁니다.”

녀석의 말대로,

오랜만에 만난 주인을 반기는 그리폰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바! 현성아! 이 새끼가 나 물었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