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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71화 (1,07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71화

피크닉 (34)

“…….”

“…….”

나보다 더 당황한 것은 김현성의 반응이었다. 순식간에 이쪽을 바라본 녀석은 지금 무슨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인지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품을 의뢰하기 위해 소환한 샤넬리아 에르메스가 갑작스레 차원 운운을 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려달라니, 녀석에게 있어 이렇게 황당한 소식이 또 어디 있을까.

질러본 나 역시 당황했을 정도였으니, 녀석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후우….”

김현성의 반응을 살피던 샤넬리아 에르메스 역시 이쪽으로 눈치를 보내는 중.

아마 그녀 역시 이런 방식으로 알리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그녀를 강림시킨 것이 김현성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녀도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 모르긴 몰라도 적당한 타이밍에 말을 꺼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가방이 거의 완성되기 직전에 은근슬쩍 운을 띄우면서, 충분히 가까워졌다고 판단했을 때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을 것이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 자신의 작품에 기뻐한 직후라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겠지.

‘얘도 운이 좋은 편이네.’

정말로 샤넬리아 에르메스가 관리하고 있는 차원에 문제가 있다면, 이곳으로 소환된 것은 행운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이쪽으로 먼저 접선을 생각하려고 했던 타이밍에 우연치 않게 김현성이 자신들을 부른 것이다.

‘문제가 있기는 있을 거야.’

그녀가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머릿속으로는 대강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녀의 차원이 희생과 부활의 신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위쪽은 제한이 많으니까.’

우리 쪽 대륙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은 적이 있다. 정확히는 희생과 부활의 신과 노을빛의 검신이 등장하기 전 말이다.

베니고어도 그녀와 같은 심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원 요청을 해도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고, 문제가 곪아 썩어 터져 버릴 때까지 방치하기 일쑤.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은 채, 관리 기관을 계속해서 돌려대고, 승인이나 규칙 때문에 제대로 된 지원업무가 쉽지가 않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위쪽은 전형적으로 관료제의 역기능이란 역기능은 죄다 가지고 있는 부패 정권이나 다름이 없다.

‘위쪽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 비빌 곳이 어디겠어.’

독립한 우리 쪽밖에 없자너.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봐야 겠네요.”

“그, 그것보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일단 작품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누셨으면 합니다.”

“네. 기영 씨. 일단은.”

‘넌 좀 가만히 있어.’

“현성 씨야말로 일단 좀 가만히 계셔주시겠어요?”

장내에 감도는 차갑고 싸늘한 목소리.

“…….”

“…….”

샤넬리아 에르메스 역시 몸이 굳어버릴 정도로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김현성은 이쪽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작품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네요. 물론 제가 샤넬리아 에르메스 님의 작품을 좋아하고, 또 수집하는 것을 즐기기도 하지만… 어떻게 다른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신 것을 모른 척하고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정말로 다,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제가 이곳에 소환된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으로, 물론 저희 쪽에서 접선을 시도하려고 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알리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근데 제가 지금 알게 됐군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리건대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결코 당신을 기만하거나 모욕할 의도가 없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계약서에서 편의를 봐드린 것 역시, 당신에게 빚을 만들거나 압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네. 감안하고 듣도록 하겠습니다.”

“진심입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진짜 똥줄 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네.’

그만큼 급박한 상황일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봐야 하기는 할 거야.’

“이야기만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물론 상담 비용은 따로 청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일을 맡기 전에 미리 상담하는 것 도 비용에 청구하겠다는 내용입니다. 계약서에 사인을….”

“아…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난 이후, 장내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판단한 직후였다.

“그렇다면 정식으로 다시 한번 자기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현재 88차원, 로헨의 관리자와 가죽세공의 신으로 근무하고 있는 샤넬리아 에르메스입니다. 임관한 지는….”

“아니요. 그런 세세한 프로필까지는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아. 네. 그러니까… 현재 88차원은 내외부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로헨 대륙은 균열에서 나온 이형의 존재들과 악마들로 인해 멸망에 근접할 정도의 대미지를 입고 있습니다.”

“…….”

“균열을 봉인하기 위해 선배님들이 시간을 비운 사이 몇몇 악마 대군주들이 차원의 문을 열었고, 현재는 총 3명의 대군주들이 대륙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하위 악마들은 그들을 소환을 유지하기 위해 악행을 자행하고 있으며 자연스레… 대륙은 지옥과도 같은 곳으로 변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심각하네. 어딜 가나 균열이 있기는 한가 봐.’

우리 쪽은 메텔 수호자가 봉인해 줘서 정말 다행이자너.

균열이 얼마나 심각하게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악마 대군주 3명이 대륙에 소환되어 채류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심각한 상황임은 부정할 수 없다.

‘벨리알 같은 악마들이 3명이나 있다는 거잖아.’

급진파 녀석들 말이야. 벨리알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라면 상황은 더욱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겠지.

벨리알의 반대 성향에 있는 군주들의 목적은 인간들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리는 족속들이고, 대화가 통하지 않은 종류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인간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기를 바라는 일차원적인 악마 세 마리가 자리 잡았다면….

‘거기는 지옥이겠네.’

“위에서는여?”

“위쪽에서는 혹여나 로헨이 분쟁지역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악마 측에 공식적으로 서신을 보내 로헨 대륙에 머물러 있는 대군주들의 귀환을 촉구하고 있고… 실제로도 협상을 나아가고 있는 도중이지만 그 협상이 언제 끝날지는 미지수입니다.”

“굳이… 말하면 어느 정도 될 것 같아요?”

“약 100년입니다.”

100년이면 대륙 멸망하고도 남겠다.

“이미 대군주들이 소환됐을 시점부터 분쟁지역이 된 거 아닌가요?”

“위쪽은 전면전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악마들이 협상에 응하고 있으니, 100년을 기다린다면 다시 로헨 대륙을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판단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고… 정말로 로헨이 분쟁지역이 되어버린다면 100년이 아니라 1천 년, 1만 년이 지나도 계속해서 로헨은 썩어갈 테니까요.”

“…….”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협상 기간을 기다릴 수는 없는 시점입니다. 이미 대륙은 붕괴되고 있고… 무엇보다 대륙에 사는 신도들의 고통 받는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

“무언가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

“위가 아니라 로헨을 관리하는 신들이 현 상황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그래야지.’

“힘든 순간이었지만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래.’

“많은 것을 고려했습니다. 이를테면 직접 강림이나, 용사 혹은 신물을 내리는 방식으로 여러 가능성들을 시험해 봤지만 그 어떤 해결책도 저희에게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나도 답을 못 주겠다. 야.’

“그때… 그때… 들려온 것이 베니고어 님께서 주신으로 계신 이 대륙의 이야기였습니다. 위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역경을 극복한 인간과 대륙의 이야기였습니다. 악마대군주를 몰아낸 것으로 모자라 외신을 소멸시킨 인간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스스로 자격을 얻어 희생과 부활을 통해 대륙의 상징이 된 이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즉시 저희는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으며, 이 대륙을 로헨의 롤모델로 삼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는 하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주변에 극복한 사례가 먼저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정석이기는 하지.

아마 눈 앞에 있는 샤넬리아 에르메스의 고향이기도 했을 테니, 더욱더 접선하기 쉽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단순 접선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베니고어 님의 은혜로 인해 약간의 정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대륙을 있게 한 사건들과 서사들을 말입니다.”

그 와중에 베니고어는 얘랑 만나서 이야기까지 했었대.

콧대를 높이며 잘난 척하는 베니고어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지기는 했지만 일단은 그 생각을 한쪽으로 치워 버렸다. 샤넬리아 에르메스의 이야기에 흥미가 동했기 때문이다.

“저희는 타 차원에서 버림받은 인간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고.”

“…….”

“그들에게 특별한 능력과 아이템들을 제공했습니다.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고 했으며, 그들을 전문적으로 케어하기 위해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륙은 최악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부패한 상황이었지만 악마 대군주들이 서로 영역 다툼을 하기 시작하면서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좋은 상황이었지만….”

“…….”

“저희들이 인지하지 못한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전부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들끼리 서로 세력을 만들고 싸우던가요?”

“네.”

“악마 쪽에 붙은 놈들도 있을 거고.”

“네.”

“로헨 대륙민들과 부딪치는 쪽도 있을 거고… 직접 들어봐야 알겠지만 상황이 최악이라면 여러 가지가 떠오르기는 하네요. 정확히 대군주들의 영향력이 닿지 않은 지역의 비율은 어느 정도 되나요?”

“대륙의 약 42.1%만을 지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까지 대군주들의 영향력이 강하지 않지만….”

‘뭐 걔네들이 소환됐다고 하면, 함부로 돌아다닐 수는 없을 테니까.’

벨리알도 그랬다.

소환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대군주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영역을 넓히려고 한다면, 그만큼 소환 시간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더 오랫동안 체류하기 위해서는, 그저 잠자코 수족들에게 맡기는 방법이 가장 현명하다는 거지.

“아. 그래서 그 실패를 좀 수습해 달라는 거예요?”

“희생과 부활의 신께 부탁드리고 싶은 내용은 그것이 아닙니다.”

“…….”

“일, 일단 앞서 말씀드리던 것부터 마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잇단 실패의 문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것이 이곳과 다른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말입니다.”

“네.”

“몇 가지 결론에 도달하기는 했지만 결국 정답과 가장 근접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

“인간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구심점, 회귀자의 존재였습니다.”

“?”

“저희는 많은 희생 끝에 한 영웅을 회귀시키기로 결정했고. 결국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 회귀자를….”

바로 그때였다.

책상을 치는 소리와 함께 고함 소리가 들려온 것은.

“웃… 웃기지 마!!”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눈을 시뻘겋게 붉힌 채로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김현성이었다.

‘얘 왜 이래?’

너 왜 그래? 왜 발작 일으키고 그래?

“웃기지 말라고! 제기랄!”

살의마저 담겨 있는 그 눈은, 이 새끼가 뭘 잘못 먹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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