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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83화 (1,08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83화

로헨 대륙 (3)

‘시발….’

망했어.

‘김현성 시바.’

완전히 개 망캐야.

살인검술이고 검술의 재능이고 전부 개 구라였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슬그머니 아래를 내려다보자 완전히 넝마가 된 옷이 시야에 들어온다.

구멍이 뚫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매끄러운 피부에 남은 상처에서는 피가 꾸역꾸역 튀어나오는 중.

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얼굴 쪽에 든 멍은 방금 전에 일어난 혈투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당장 숨을 고르기도 쉽지가 않다. 계속해서 숨을 거칠게 내뱉게 되고 손이 덜덜덜 떨려온다.

‘초보 검사?’

초보 검사?

‘게니우스를 선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직업을 받게 되는 구조였나?’

그걸 알았다면 김현성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검사로 대성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지만 튜토리얼 잡몹과 영혼의 한판 승부를 벌이고 난 이후에는 이쪽으로는 도저히 활로를 뚫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물론 직업이나 성장 방향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기영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전투에 참가하는 캐릭터가….

‘아니지.’

어디까지나 후방지원업무에 특화되어 있는 캐릭터였으니 검사 루트를 타든 마법사 루트를 타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몸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마저 사라졌다는 것이 아닐까.

연금소환마법이나 빛의 연금술사, 연금술에 관련된 직업을 얻었더라면 분명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됐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샤넬리아 에르메스에게 듣기로는 생산직의 대우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마법사는 또 어떤가. 머릿속에 있는 마법 지식을 활용하면 빠르게 궤도에 올라갈 수도 있었고 그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어차피 나중 가면 검을 휘두를 일도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고기 방패들이 주변에 없는 지금, 내 한 몸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 검 한 자루라는 건….

‘죽여 달라는 거나 마찬가지자너.’

위험한 건 괴물 새끼들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최악의 상황에 도달했을 때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물이었고, 한순간에 이세계로 떨어진 놈들의 인간 군상은 언제나 예측을 불허한다.

살아남고 싶다는 감정은 현대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도덕심마저 무너뜨리는 모습을 많이 목격하지 않았던가.

동정심이나 윤리 같은 것들은 공포와 불안 속에 매몰되고 그런 배경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죽했으면 둘둘 현성도 거기에 쳐 박혀서 도와달라는 사람들 무시하고 그랬겠어.’

가정교육 제대로 받은 현성이도 그러할 진데, 본래 짐승같이 살던 놈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뻔했다.

‘일단 캠프부터 만들어야 돼.’

방금처럼 갑작스럽게 습격당하면 안 되니까.

[노을빛의 검신이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

[노을빛의 검신이 당신이 괜찮은지 걱정합니다. 지금 당장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노을빛의 검신이 울음을 터뜨립니다.]

‘무슨 시바 울음을 터뜨려. 얘야?’

[하늘의 문지기가 검사로서 성장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넌 뭐야. 근데. 하늘의 문지기? 뒈질려고 진짜.’

[가죽을 만지는 부드러운 손이 당신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심연 속의 가장 낮은 심연이 당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계속해서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 들이 들려오기는 했지만 일일이 답변해 줄 시간은 없다. 지금은 안전지대를 만드는 게 먼저였으니까.

주변은 온통 수풀과 나무로 뒤덮여 있는 숲속. 흔적을 읽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눈에게 불가능은 없다.

나무에 긁힌 손톱자국이나 선명하게 자리한 발자국부터, 일반 사람들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작은 흔적들을 머릿속에 넣어놓는다.

‘힘들어.’

이럴 줄 알았으면 체력 단련이라도 좀 해놓을걸.

덕구가 있었다면 저 무거운 나뭇가지들을 대신 옮겨줬을 것이다.

솔직히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하고 있지 않은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야전생활을 해본 경험은 있지만… 생각해 보니 덕구가 모든 잡일을 도맡아 했었던 것 같았다.

‘점점 어두워지는데.’

캠프가 완성이 되기 전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남은 상황.

‘개 오반데. 이거….’

저 멀리서 짐승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 쪽 튜토리얼도 그렇기는 했지만 언제나 낮보다는 밤이 더 위험한 법이다. 특히나 이런 종류의 숲속에서는 더욱더.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자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잡몹 몇 마리가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적어도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안심할 수 있었다.

몸이 추워 모닥불을 켜고 싶지만, 혹여나 괴물 새끼들에게 발견될까 함부로 불을 킬 수도 없는 상황.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은 나뭇잎 집에 들어간 이후에는 가방에서 모포를 꺼내 몸을 꽁꽁 싸매기 시작했다.

함정 같지도 않은 함정 몇 개. 당장은 쓸모없는 기초 연금술 키트, 이기영 특제 포션 세트, 빛 폭탄 물약은 사용 불가능.

갑작스레 느껴진 허기에 가지고 온 요깃거리에 시선이 닿았지만 튜토리얼 잡몹들의 후각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가 없어 마음껏 쳐먹을 수도 없었다.

[마경의 주인이 당신에게 감춰져 있는 가능성을 내다봅니다. 그 끈질긴 생명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마경의 주인이 5백 코인을 후원하셨습니다.]

‘지랄하고.’

[심연 속의 가장 낮은 심연이 1천 코인을 후원하셨습니다.]

[심연 속의 가장 낮은 심연은 당신을 응원하고자 합니다.]

‘자빠졌네.’

몇몇 위엣 놈들이 이쪽을 지켜보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지만 이 상황이 무엇인지, 어떻게 배상을 하겠다느니 하는 놈들은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잠깐 동안 인상을 찌푸렸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니 금방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에도….

‘파벌이 있는 거구나….’

아마 희생과 부활의 신이 로헨 대륙에 입장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놈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소수 정예가 대륙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 이쪽과는 다르게 로헨은 기본적으로 위에 놈들이 모래알마냥 포진되어 있다.

설정상 게니우스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 코인을 후원해 가능성이 있는 인간들을 포섭하고 후원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며 함께 성장하는 설정.

아마 자신의 관리하에 놓여져 있는 인간들이 성장하거나 업적을 달성할 경우 녀석들에게도 떨어지는 콩고물이 있겠지.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타 대륙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을 파벌이 존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당연하지.’

샤넬리아 에르메스의 파벌에서는 희생과 부활의 신이 로헨 대륙에 넘어온 것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겠고….

어쩌면 우효열의 회귀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심지어 하위나 중위 신 같은 경우에는 회귀했다는 사실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해관계가 걸쳐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이 하나가 되어도 모자랄 판에 수호신들을 갈라놓을 수는 없으니 샤넬리아 쪽에서는 이쪽의 진입 사실을 일부 VIP들에게만 알릴 테고….

눈에 띄는 후원이나 편의성은 봐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김현성이 날 선택하고 후원한 것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거룩한 밤의 여주인이 1천 코인을 후원합니다.]

[거룩한 밤의 여주인이 노을빛의 검신을 주의하라고 충고하며 그를 게니우스로 선택한 것이 실수라고 이야기합니다.]

[거룩한 밤의 여주인이 수호신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인간을 돕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 그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것이 있을 테니, 결과적으로 그의 손을 잡은 건 자신의 몸과 영혼을 파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여지는구나.’

[마경의 주인 역시 노을빛의 검신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보잘것없는 하위 신일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마경의 주인은 노을빛의 검신 같은 이들을 혐오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지금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도 이후에는 여러 가지를 바랄 것이라 조언합니다.]

[심연 속의 가장 낮은 심연은 신에게 몸과 영혼을 팔아넘긴 인간의 최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무슨 상황으로 보이는지 대충 알겠네.’

자신의 커리어를 쌓기 바쁜 이들도 있는 반면에 그냥 인간들을 가지고 노는 걸 즐기는 놈들도 있을 테니….

녀석들의 눈에는 노을빛의 검신이 신성을 축내는 양아치로 비치는 모양인 것 같았다.

[하늘의 문지기가 당신을 창놈이라 모욕합니다.]

이 개새끼. 넌 뒤졌다 아까부터 진짜.

[심연 속의 가장 낮은 심연은 당신을 위로합니다.]

심지어 이 새끼들은 노을빛의 검신에 대해서도 들어보지 못한 모양이다.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외부 정세에 그만큼 아는 게 없다는 게 놈들이 얼마나 고여 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을 지경.

그만큼 로헨 대륙의 규모가 크다는 생각도 든다. 악마 대군주 3명이 떨어졌는데도 아직까지 완전히 먹히지 않은 이유는, 대군주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아마 로헨의 크기 때문이 아닐까.

‘토지도, 수호신들의 숫자도, 대륙 인구도 로헨 대륙이 월등히 앞서고 있는 건가.’

물론 단순히 덩치다 크다고 해서, 이쪽보다 더 나으리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여러 가지 부작용을 안고 개판 칠 가능성도 충분하니까.

아니, 이미 충분히 개판이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

튜토리얼 담당자였다.

[조, 조심스럽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이거… 어떻게 배상할 거예요?]

[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책임자한테 이거 어떻게 보상할 거냐고 물어봐요. 계약서에도 분명히 썼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

[사기 치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 여기서는 안 가르쳐 주나 봐?]

[저는 말씀드릴 입장이 아니라… 현재 윗분들이 알아보는 중입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들었던 거랑 이야기가 조금 다른데. 물론 파벌이 없는 걸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이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것이 아닙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그… 파벌은….]

[…….]

[…….]

[여기 파벌이 몇 개 정도 돼요?]

[저, 저는 말단이라 그런 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아, 아마 대여섯 개… 파벌은 아니지만 혼자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개 막장이네 리얼루다가.’

[너는 샤넬리아 쪽 인사겠고….]

[…….]

무언의 긍정.

[이미 시간이 꽤 지나지 않았나? 위쪽에서도 나름 정리가 된 것 같은데… 샤넬리아 에르메스 쪽에서 해줄 수 있는 직접적인 투자가 뭔지 들어봐야겠네. 아니, 투자도 투자인데 보상이 어떤 것인지 좀 알아야겠어.]

‘사람 너무 호구로 봤어.’

희생과 부활의 신이라고 하니까 정말로 희생만 하다 갈 줄 알았나 봐.

[먼, 먼저 샤넬리아 에르메스 님께서는 희생과 부활의 신님을 속일 의도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시스템 보안이 걸려 있는 정보들이 많아 정확히 승인을 받은 이후에 공개하실 생각이셨다고… 마법의 신님과 함께 입장하시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지만 일,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그건 그쪽 사정이고요. 별 같잖은 놈한테 창놈 소리 들어가면서… 내가 그쪽 사정까지 들어줘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 지금 이 대화 전부 위쪽에 전송되고 있지? 시바 똑똑히 전해. 차원 하나 말아먹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

[똑바로 처신하는 게 좋을 거라고.]

[일… 일단. 샤넬리아 에르메스 님께서….]

“…….”

[가죽을 만지는 부드러운 손이 10만 코인을 후원합니다.]

“…….”

“…….”

‘뇌물인가 봐.’

성에 차지는 않을지 모를지언정, 당장 자신의 성의를 표현하는 것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노을빛의 검신이 11만 코인을 후원합니다.]

‘근데 넌 또 왜 쏴. 시바.’

[가죽을 만지는 부드러운 손이 15만 코인을 후원합니다.]

“…….”

[노을빛의 검신이 20만 코인을 후원합니다.]

이거 경매 아니야. 이 미친 새끼야.

[노을빛의 검신이 안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거 경매 아니라고 시바.

[노을빛의 검신이 미소 짓습니다.]

“…….”

“…….”

[하늘의 문지기가 영혼을 파는 놈이라고 당신을 모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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