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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92화 (1,092/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92화

패밀리아 (2)

“나가. 주십시오.”

순간적으로 강한 압박감이 느껴진 것은 당연지사. 윌근본이 뿜어내고 있는 이형의 기운이 방안을 꽉 채운 것이 느껴진다.

‘하….’

심지어 이쪽으로는 여파가 닿지 않도록 한 모양, 레벨 5에 랭크되어 있는 강자인 만큼 한 수가 있을 거라 예상하기는 했지만 마력을 다루는 게 생각보다 더 익숙하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강자가 약자를 찍어 누를 때 자주 사용하는 위압.

너와 나의 힘 차이가 이 정도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단순한 위압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온몸이 벌벌 떨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몸의 통제가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심한 경우 실금까지 하는 경우도 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모르긴 몰라도 우효 놈은 현재 수많은 송곳이 자신을 찌르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 터.

작아 보였던 윌근본이 거인처럼 커다랗게 보이고 있을 거고… 어쩌면 녀석이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장에라도 자신을 물어뜯어 한입에 삼켜 버릴 것만 같은 포식자.

녀석에게는 윌근본이 그리 비치고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효 새끼는….

“싫으면….”

“…….”

“싫으면 어쩔 건데.”

라고 말하며 녀석의 압박감을 흘려넘기고 있었다.

‘레벨 3?’

튜토리얼을 끝난 직후에 곧바로 레벨 3이라는 것은 놀라운 성과이기는 하지만… 녀석이 회귀자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도 않은 성장세. 오히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레벨 3과 레벨 5의 격차는 크다.

우리 대륙 기준으로 말하자면 희귀등급에서 영웅 등급으로 가는 목전에 두고 있는 것과 전설 등급의 차이.

튜토리얼에 나온 직후의 김현성과 이미 어느 정도 경지를 이룬 차희라 정도의 차이.

단언하건대 윌근본은 지금 이 자리에서 우효열에 모가지를 비틀 수 있다. 우효열 역시 윌근본이 자신을 죽일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싫으면 어쩔 거냐고.”

“당신….”

“왜. 때려죽이기라도 하시게?”

‘이 새끼 생각 없이 움직이는 타입 아니었나?’

분명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패밀리아 꽃과 풍요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는 가정하에 움직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아니면 그 예쁘장한 장식용 검으로 내 목을 꿰뚫기라도 하실 건가 봐? 응?”

‘진짜… 진짜 레알루 죽이고 싶겠다.’

시바 나였으면 진짜 튜토리얼에서 막 나온 초보자고 나발이고 곧바로 단매에 쳐 죽였을 텐데….

적어도 윌근본은 그럴 수 있는 위인이 아니다. 녀석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녀석의 근본이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아마 이것은 패밀리아 꽃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특성일 것이다.

질서 그리고 선.

현대인들 중에 이딴 새끼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의를 숭상하고 옳은 일에 몸을 던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곳에서 고구마 한번 먹었다고 우효의 피로 사이다를 마실 정도의 위인이 아니라는 거다.

‘답답한 스타일이야.’

회귀자인 우효열은 녀석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 머릿속이 꽃밭인 잡종이라는 표현도, 이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도 꽃과 풍요와 윌근본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 쉑… 생각보다 마음에 드네.’

아니나 다를까.

“저는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하는 윌리엄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

“다만. 당신의 버릇을 고쳐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거 재미있네.”

“매 기수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나타나더군요. 초보자의 시련을 높은 성적으로 마무리한 이들에게 특히 두드러집니다.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닫고,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로헨 대륙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적응하는 플레이어들.”

“…….”

“하지만. 이들 중 살아남는 이들은 10할 중에 2, 3할도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과신한 나머지 어처구니없는 곳에서 목숨을 잃는 이들이 부기지수더군요.”

“그래서. 뭐.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 대륙에 먼저 발을 디딘 선배로서 당신에게 작은 교훈들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한번 붙어보자고? 맞짱 떠보자 이거야?”

‘내가 시바 맞짱 뜬다는 워딩을 언제 들어보고 안 들어봤더라.’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물론 윌근본 같은 놈을 언제 보고 보지 못했는지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는다.

‘사람이 좋은 것도 정도가 있지.’

실제로 이 건방진 놈을 대련을 빌미 삼아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우효 놈의 교육에 더 관심이 있는 모양새였으니 오죽할까.

심지어 재능 있고 패기 넘치는 녀석에 대한 감명까지 보이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 막 초보자의 시련을 돌파한 애송이가 레벨 5의 위압을 견뎌내다니, 이 플레이어가 제대로만 커준다면 로헨 대륙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지, 이 혼란스러운 대륙에 얼마나 큰 힘이 될지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얘가 커서 지 목을 물어뜯을 거란 생각을 왜 못 할까.’

머릿속이 꽃밭이라는 우효 놈의 발언이 거짓이 아니다.

예상하건대 윌근본 이런 성향은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교화가 불가능한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용서하고 로헨 대륙의 힘이 되어 달라 삼고초려 할 수도 있고… 죽일 놈을 제때 죽이지 못해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물론 나야 미래를 모르니 단순 뇌피셜에 불과하지만 우효 놈의 적대적인 시선을 보고 있자니 놈이 마음에 안 드는 짓을 벌이기는 하는 모양.

아니면 원래부터 윌근본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충 보기에도 둘은 상극이었으니까.

“이기영 님. 무례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아니요.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윌근… 리엄 님.”

어차피 미팅 시간도 거의 끝나가던 차였고….

“오늘 못들은 이야기들은 다음에 들으면 되니까요. 그럼….”

“잠깐. 내가 너한테 가도 된다고 이야기했었나?”

“…….”

“엄밀히 말하면 여기 멍청이들한테 볼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너한테 있었던 건데….”

“당신.”

“윌리엄 님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이분께서 저한테 볼일이 있으신 것 같으니… 물론 그 전에 두 분이 해결해야 될 일이 있으신 것 같지만… 조금만 더 함께 있어도 괜찮을까요?”

“네. 물론입니다.”

갈 땐 가더라도 싸움 구경은 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복잡한 이야기는 없었다.

우효열이 이죽거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윌리엄 역시 조용히 몸을 일으킨다.

중간중간에 꽃과 풍요의 근본들이 윌리엄에게 타 패밀리아에서 보낸 설계일지도 모른다는 충언을 하고 있었지만 애송이의 버릇을 고쳐주고 싶다는 윌리엄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모양.

“마력과 한쪽 팔은 사용하지 않는 걸로 하지요.”

“그 말이 왜 안 나오나 했네. 마음대로 하든지 말든지, 어차피 내가 손해 보는 것도 아니고.”

‘이거 방송 켜야겠다. 컨텐츠 각이다.’

아마 우효열도 방송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순식간에 여러 가지 인사들이 들려왔지만 모조리 무시, 소통 방송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윗놈들도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꽃과 풍요의 여신♥이 저 건방진 놈을 내 아이가 혼쭐을 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신님은 근데 왜 여기에 들어와 있으세요?’

[초승달 아래에서 우는 늑대가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거라고 합니다. 플레이어 우효열을 튜토리얼 동안 지켜봐 왔으며 페널티가 있으니 충분히….]

[노을빛의 검사♥가 나쁜 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합니다.]

내가 시바 애야?

‘얘는 뭘 걱정하고 있어. 나쁜 애들이랑 안 어울려요.’

물론 상황이 좀 그렇기는 해. 애들 맞짱 뜨는데 괜히 끼어서 따라가는 거자너. 우효 놈이 자꾸만 장르를 학원물로 만들려고 그래.

전체적인 여론은 뜨겁다. 굳이 상황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이, 갑작스러운 이벤트 전에 모두가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윌근본이야 애초에 로헨 대륙에서 알아주는 모험가고 우효열이야 모두가 눈독 들이고 있는 신예였으니 이 둘의 이벤트 전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아마 모두가 결과를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당장 나조차도 우효열이 이기는 그림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마력과 한쪽 팔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페널티를 걸더라도 스탯 차이는 이미 압도적.

상대가 그저 그런 레벨 5의 플레이어라면 또 모르겠지만 대충 봐도 눈앞에 서 있는 윌근본은 그저 그런 모험가가 아니다.

단순히 스탯빨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검술, 전투, 그 자체에 일가견이 있는 플레이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우효 놈과 종목이 다를 뿐, 녀석 역시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인간인 것이다.

“만약 발리면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시려고 그러시나?”

“…….”

“추잡하게 소문 같은 거 낼 생각은 없지만 네가 존경해 마지않는 꽃과 풍요의 여신의 속이 쓰라릴 텐데 말이야.”

“…….”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는 우효열과는 다르게 윌리엄은 조용히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을 박찬 우효 놈이 짧은 검 두 개를 들고 놈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시작이었지만 당황했다는 느낌은 없다. 한쪽 팔을 허리 뒤쪽에 고정시킨 채로 검을 들고 있는 윌리엄의 모습은 멀리서 봐도 근본 그 자체.

찌르기에 특화되어 있는 검의 강점을 살릴 생각이었는지 돌진하는 우효열에게 그대로 검을 내뻗는다.

카운터 개념으로 찔러본 느낌이었지만 단순히 간을 보기 위한 스킬이 아니다.

맞으면 리타이어. 자신의 속도를 이기지 못해 그대로 검에 처박히는 놈의 모습을 상상해 봤지만 아마 우효열은 맞지 않을 것이다.

우효 놈의 현 신체 스펙으로 반응하기 불가능한 영역이었지만 녀석은 윌리엄의 검술을 알고 있었으니까.

‘영악하네.’

아마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윌리엄이 뭘 할 수 있는지, 녀석의 습관이 뭐고 어떤 고유능력과 스킬들을 가지고 있는지.

분석할 필요도 없다. 얕은 지식으로, 단순히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놈의 몸이 본능대로 움직일 테니까.

바닥을 몸으로 쓸 듯이 미끄러지며 윌리엄의 검을 피하고 곧바로 한쪽 손에 있는 검을 집어 던진다.

윌리엄을 당황시키려는 개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것 하나만으로 흔들리기에는 놈의 경험이 많다.

윌리엄이 몸을 옆으로 돌려 검을 피한 사이 우효열은 그대로 발로 녀석의 얼굴을 노리기 시작.

윌리엄은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다시 한번 검을 치켜 올려 자신을 노리는 우효열의 발을 향해 검을 놀린다.

‘발에 구멍 뚫리겠자너.’

녀석의 발이 기묘한 방향으로 꺾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차고 있는 도중 방향을 바꾼 발은 마치 채찍처럼 휘어 들어가는 모습은….

‘말도 안 돼.’

인간의 관절이 맞는지 싶을 정도, 단순히 유연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진다.

물론 희한한 방향으로 궤적을 그린 발은….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윌리엄이 들어 올린 무릎에 막혀 버렸다.

‘시도는 좋았는데.’

신체 스펙이 낮았어. 같은 조건이었다면 윌리엄에게 한 방 먹여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좋은 시도라 해봐야 우효 놈은 레벨 3에 불과하다.

그리고 피슉, 피슉, 피슉, 하는 구멍이 뚫리는 소리와 함께 피투성이가 되어 뒤로 나가떨어지는 우효열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턴을 한 번 잘못 써버린 게 치명적으로 작용한 것이리라.

‘저 병신 새끼.’

추해도 이렇게 추할 수가 없는 모습. 칭찬할 만한 점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는 것 정도.

‘역시 윌근본이야. 믿고 있었다구. 젠장.’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뛰쳐나간 육체. 강자에게 어쩔 수 없이 굴복해 버리고 마는 DNA는 내 몸을 우효열이 아닌 윌리엄에게 이끈다.

“윌리엄 님! 괜, 괜찮으신가요?”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것은 우효열이었지만 지금 내가 걱정되는 것은 우리 윌리엄 님의 무릎뿐이다.

“윌… 윌리엄 님.”

“괜찮습니다.”

“아까 분명 공격이… 아… 윌리엄… 님? 아!”

그제야 쓰러져 있다는 우효열을 확인했다는 듯 안심하는 모습은….

‘나 점수 딴 거야?’

점수 따기에 충분하겠지?

“이… 이기신 거군요. 이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치료를.”

“그의 치료라면 패밀리아의 사제가… 저는 괜찮습니다. 이기영 님.”

‘나도 다 알지. 근데 걱정이 되는 걸 어떻게 하니? 우리 근본이….’

“에밀리야. 그의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수마드, 이기영 님을 모셔….”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시발. 누가 끝이래.”

“…….”

“누가 이대로 끝났다고 이야기했어? 나 아직 안 끝났어. 시발 놈아.”

분했는지 피가 나올 정도로 이를 악문 우효 놈의 모습이었다.

“아직 안 끝났어.”

마치 짐승처럼 보이는 녀석의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 이 새끼 추하게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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