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94화
우효열 (1)
애초 우효 녀석이 가지고 있는 강점은 윌근본의 검술을 알고 있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재기발랄한 움직임과 비열하고 야비한 술수로 윌리엄의 근본에 흠집을 내기는 했지만, 윌리엄이 놈의 비겁한 트랩을 벗어난 순간부터 이점은 그것 하나였을 것이다.
‘굳이 쓰로누스의 검술이 아니었어도 됐을 거야.’
말 그대로, 어떤 것이었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윌리엄에게 필요한 것은 우효열이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한 수였으니까.
이 경우에는 그 의외의 한 수가 수준 높은 검사의 검술이었으니 결과가 너무나 뻔하게 느껴졌을 정도, 채 1분도 걸리지 않은 시점에서 승부가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우효열은 발악하듯 소리치기는 했지만 윌리엄의 공세를 버텨내지 못했고, 더욱더 집요하게 달라붙기는 했지만 거리를 좁히지도 못했다.
그 이후 녀석이 비 오는 날 먼지 날 것처럼 얻어맞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윌리엄 님. 이분… 치료실로 옮겨도 괜찮을까요?”
문제가 있다면 어째 쓰로누스의 검술을 펼쳐낸 윌리엄이 더욱 충격받은 듯한 모양새였다는 것, 기절해 있는 우효열보다 더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윌리엄 님?”
“…….”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얼굴이 파르르 떨리기까지 하고 있다.
분명 본인의 손으로 펼쳐낸 검술이었지만….
‘이질감을 느끼기는 했을 거야.’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대해서도, 그 목소리에 따라 몸을 움직이던 자신에게도.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웠겠지만 간신히 이쪽을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이쪽을 의심하는 듯한 눈치였지만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
윌리엄에게 나라는 걸 숨겨서 이득을 볼 수 있는 것도 없거니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대형 패밀리아인 만큼 어느 정도 잘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막말로 우효열을 폐기해야 한다면 그다음으로 쓸 수 있는 건 이 녀석 정도였으니까.
‘미리미리 잘 보여야지.’
“윌리엄 님. 우효열 님을 치료실로 옮겨도 괜찮을까요?”
“네… 물론… 입니다. 아니, 저희가….”
“그렇다면 옮겨주시면 감사할 것 같네요. 도저히 혼자 옮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딱 봐도 무거워 보이자너.’
“한… 한데….”
“네?”
“이기영 님, 방금은….”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 제가 도움을 드린 게 맞아요.”
상상도 못 한 정체.
쿠웅 하는 묵직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기분 탓일까. 그만큼 윌리엄의 눈은 혼란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념을 어떻게 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것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검술 그 자체에 의문을 느끼고 있는 듯한 모습.
녀석의 얼굴에 드러난 것은 도저히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도 않은 상승검술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었다.
“건방졌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기영 님.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어떻게 알았냐고?’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을 전해드렸을 뿐이에요.”
“…….”
“…….”
천재.
두말할 필요가 무어 있겠는가. 어떻게 날카로운 송곳이 주머니 속에 숨어 있을 수 있겠는가. 본래 천재는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말… 말도 안 돼….”
녀석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린다. 그래.
녀석의 눈앞에 있는 이기영은 그야말로 불세출의 검술천재라고 불릴 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제…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되겠습니까?”
“아니요.”
“…….”
“윌리엄 님에게는 맞는 옷은 아니에요. 당장 급하게, 혹은 변수가 필요할 때 사용하시면 좋겠지만 그것뿐이에요. 저도 머릿속에서 구상하던 검술이기는 하지만… 아마 관절이나 근육에 무리가 갈 거라고 생각해서….”
“속일 수 없겠군요. 마력을 운용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몸에 부담이 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없을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그 정도로 맞지 않는 옷이었을 줄은….”
애초에 인간이 사용하는 것도 아니니까. 쓰로누스의 근밀도나 관절을 생각해 보면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는 흉내 내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윌리엄이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종의 차이라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제가 주제넘게 조언 드리자면, 윌리엄 님은 윌리엄 님의 강점을 더욱더 다듬는 게 좋아 보여요. 물론 방금 느낀 것을 잊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참고하시면 얻어 가실 게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라고 감사 인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벽을… 눈앞에 두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을 줄은….”
“…….”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이기영 님.”
“네. 잘 정리되셨으면 좋겠네요.”
얻은 게 있으니 혼자 정리를 좀 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실례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윌근본은 몸이 달아오르는 모양.
근처에 있는 다른 인원들이 윌리엄에게 전후 사정을 묻자 그들에게 무어라 중얼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 이제 막 튜토리얼에서 넘어온 이기영과 윌리엄이 검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느냐에 대한 의문이었겠지만 아마 평생이 가도록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 꽃과 풍요의 여신이 그렇게 이기영이라는 자에게 집착한 것인지, 그 단편을 들여다본 것이라 판단할 수밖에 없겠지.
패밀리아 내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한 회의나 의견 조율이 필요하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계속해서 평정심을 유지하던 윌리엄은 똥 마려운 강아지가 된 것마냥 발을 동동 구르더니, 에밀리아라고 불리는 부관에게 상황을 인계하기 시작했다. 친절하게 다시 다가와 필요한 게 있으면 에밀리아에게 말씀해 달라는 말까지 남긴 녀석.
‘검술에 욕심이 있기는 한가 봐.’
그렇게 녀석이 발걸음을 옮기자. 남은 꽃과 풍요의 패밀리아는 우효열을 옮기기 시작했다.
“조심히 옮겨주시겠어요?”
이쪽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은 것 같았지만 차마 먼저 말을 걸어오지 못하는 모습.
따지고 보면 이기영은 이제 막 튜토리얼을 졸업한 애송이에 불과하다.
그들의 여신이 나를 아끼고 있다고 한들, 이 정도까지 저자세로 나올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 내게 무언가를 느끼고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뭐긴 뭐겠어. 시바 이게 가만히 있어도 뿜어져 나오는 권력자의 아우라고 권력자의 냄새지.’
“이쪽으로….”
“네. 알겠습니다. 이기영 님.”
명령을 내리는 게 자연스럽자너. 건방지지 않은데 기품도 느껴져.
윌근본만 귀족적인 게 아니에요. 나도 귀족적인 사람이야. 예법이라는 예법은 전부 다 몸에 익혀 놨다니까.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몸짓이라구.
더군다나 이해할 수 없는 한 수까지 가지고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 그들의 리더라고 불리는 윌리엄마저 내게 한 수 접어주지 않았던가.
이미 자연스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패밀리아 꽃과 풍요는 나를 윗사람 모시듯 모시고 있었다. 당장 여기 안주인을 자처한다고 해도 커다란 반발이 나오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마치 사원들이 외부에서 온 CEO를 자연스레 대접하는 듯한 광경. 외국물 먹고 등장하신 CEO가 패밀리아에 대해, 로헨이라는 곳에 대해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할 수 있는 사람인가가 중요한 거지.’
“그럼 필요한 게 있으시면 바로 불러주세요. 이기영 님.”
“네.”
“…….”
“아. 그리고 아까 회의 때 나온 자료들 좀 보내주시겠어요?”
“그건….”
“부탁드릴게요. 에밀리아 님.”
“후우… 네. 알겠습니다.”
아마 몇 가지 컨설팅을 더 해준다면 호감도가 하늘을 찌르지 않을까.
내 오른팔 김미영 팀장이 없는 건 아쉽지만 행정업무야 본업이었고….
“꽃과 풍요의 전술지침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건… 도대체….”
“부탁드릴게요.”
“죄송합니다만….”
“안 될까요?”
“리더에게 여쭈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밀조약에 서명할 의향이 있으니 계약서도 같이 가지고 와주시겠어요?”
“비밀조약이 문제가 아니라… 무리한 요구입니다.”
“아니. 부담되신다면 안 가져오셔도 돼요.”
‘새로 하나 만들지 뭐.’
어차피 패밀리아의 스쿼드는 보여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병과 구분만 확실하게 되면 만드는 건 일도 아니고.
‘아직까지는 외부 사람이라 이거네.’
이쪽이 대충만 손봐도, 이 새끼들이 몇 년 동안 머리 굴려 만들어 놓은 걸 쓰레기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패밀리아 내에 있는 썩은 부분을 도려내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몇 단계는 더 업그레이드시켜 줄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왜 이렇게 직원들을 많이 써?’
외부 CEO가 나타나면 회피할 수 없는 구조조정.
‘구조조정은 무조건이지.’
자금의 순환 과정에서 쓸모없이 빠져나가는 자금들, 잉여자금을 돌릴 수 있는 아이디어.
‘제대로 된 전술 팀도 없나 보네.’
대인전, 패밀리아전처럼 여러 가지 전투를 분석해 줄 수 있는 전술 분석가들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모양.
많게는 수십 명이 달라붙어 있는 이쪽 대륙과는 상황이 다르다. 던전 어쩌구, 전술 분석 어쩌구, 대인 전략 어쩌구, 전쟁 전문 어쩌구저쩌구 하는 지휘관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패밀리아 내에 머리 좀 굴린다는 놈이 전술팀장 패를 달고 있는 것이 전부. 당연히 원숭이들 영역싸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던전 공략은 왜 또 이딴 식으로 해?’
조사 안 해?
이 원시인 새끼들 이거 보면 아주 뒤집히겠다. 진짜.
이게 바로 문명이자너. 레알루.
너무 자세하게 고치는 것은 시간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대충 배운 놈이라고 해도, 지금 내가 작성하고 있는 간단한 보고서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근본이는 이거 보면 진짜 뒤집히겠지.
가치 있는 사람은 대접받는다.
보증만 있다면 어디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여신의 보증을 받고 있는 이쪽의 신용이 어느 정도 인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에밀리아 님.”
“죄송합니다. 지금 에밀리아 님께서는 잠깐 다른 업무가 있어서….”
“아. 그럼 이것 좀 전해주시겠어요? 윌리엄 님께 부탁드립니다.”
“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존재한다.
엄밀히 말해,
우효열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새끼는 무리 짓지 않는 들개였으니까.
자신의 앞을 가로막느냐, 가로막지 않느냐로만 인간을 구분하는 사고방식에 유능하고 유능하지 않고 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사회성 없는 인간은 짐승이나 다름이 없다.
그냥.
‘그냥 들개라고 생각하면 돼.’
들개라고 생각하면….
‘길들이는 것도 간단하지. 뭐’
첫 번째 스텝은 먹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복종 훈련을 시키는 것도 아니다.
일단은 우리 안에 가두어 놓는 게 첫 번째,
여기가 너의 영역이라고 말해주고,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첫 번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