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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95화 (1,09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95화

우효열 (2)

‘근데 이 새끼 왜 이렇게 안 일어나?’

혹시 쪽팔려서 계속 자는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가오가 구겨질 대로 구겨져서 도저히 혼자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닐까.

‘왠지 그럴 것 같기도 해.’

실컷 깝치며 그 난리를 피웠는데 두들겨 맞고 기절하는 엔딩이라니, 인간이라면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놈의 안면 철판이 두껍기는 했지만, 이번 경우에는 특히나 더 쪽팔릴 수밖에 없는 상황.

잠깐 자리를 비워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다녀오자 안쪽에서 커다란 목소리와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씨발!”

소리만 들어도 어떤 상황인지 감이 잡힌다. 잠에서 깨어난 우효 녀석이 병실 안의 물건들을 헤집고 있는 것이리라.

‘이 새끼 진짜 쪽팔려서 안 일어난 거임?’

확신할 수는 없지만 타이밍이 공교롭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제길!”

“…….”

“씨발!! 제기랄!! 제길!!”

‘원래 시바. 비이성적인 인간이랑은 상종을 하면 안 되는데.’

일단은 인기척은 내야지.

“…….”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며 문을 연 병실의 안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버린 상황, 성한 물건이 하나도 없다.

자존심 강한 똥개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집 안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지만 이 건방진 새끼는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고개를 들어 나를 확인하는 얼굴에는 적개심이 가득하다.

“뭐….”

“…….”

“뭐 이 새끼야! 뭘 보고 자빠졌어?!”

“…….”

“꺼져.”

이 새끼 괜히 지가 발려놓고 쪽팔리니까. 나한테 이러는 거 봐.

“…….”

“…….”

“일어나셨군요.”

“…….”

일단은 한마디.

‘이거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

입양해 온 강아지였다면 이미 꼬리를 흔들고 있었겠지만 본래 상처 입은 들개를 대할 때 지나친 관심과 사랑은 독이다.

친절함을 친절함으로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녀석의 경계심만 키워주는 꼴.

이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 녀석이 깨부순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약간의 거리감을 가지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먼저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

조금 뻘쭘한 그림이 그려지기는 했지만 녀석의 참을성이 바닥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새끼 어디 있어.”

“…….”

“그 새끼 어디 있냐고 묻잖아! 이 창놈 새끼야. 귀먹었어?”

‘어떤 새끼가 얘한테 내 별명 말했어?’

아무래도 녀석의 구독자 중 한 명이 이쪽의 별명을 흘린 모양이다.

‘확실히 어렵기는 하네.’

템플러 젠이나 템플러 바하무트 같은 경우에는 쉬웠다. 일단 이쪽이 성자 중의 성자의 포지션에 있었다는 것이 우효했으니까.

신앙에 미친 놈들 정도면 빠른 서사 스킵으로 길들이는 것이 가능, 그 외 평범한 놈들은 조금만 능력을 내비쳐 줘도 좋아 죽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현성도 처음에는 우효열과 같은 포지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타인을 믿지 않았고, 자신의 바운더리 밖에 있는 것들을 극도로 경계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김현성은 무리 짓는 늑대고, 녀석은 무리 짓지 않는 들개라는 것 정도.

현성이를 길들… 아니, 현성이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 영혼를 주고받은 친우가 될 수 있었던 것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김현성이 나를 자신의 무리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녀석은 자신의 무리를 챙길 수밖에 없는 성격이었으니까.

‘장기 프로젝트로 봐야 하는 건가.’

“내 말 안 들려? 응?”

일단 한숨 쉬고.

한 박자 쉬고.

“…….”

“무례한 사람.”

“지랄. 무례고 나발이고 닥치고 그 새끼 어디 있는지나 대답해.”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알려드릴 수도 없고요.”

“하.”

“당신은 졌어요. 자신이 파놓은 덫 안에서도 패배한 당신이 지금 그를 붙잡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뭐?”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 원하는 데로 굴린 판이지 않았나요? 저를 찾아왔다는 것부터, 페널티를 받아낸 것까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그를 알고 있었고, 그의 습관이나 검술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였어요.”

“지랄! 네가 뭘 알아! 그 새끼가!”

“검술이….”

“…….”

“바뀌기라도 했나 보네요?”

녀석의 우악스러운 손이 이쪽의 목을 잡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쾅!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몸이 뒤로 밀려난다. 한 손으로 이쪽의 목을 잡고 들어 올린 녀석의 눈에는 광기가 번들거린다.

“너였구나.”

‘똑똑하네.’

“너였어.”

‘좀 느렸지만… 눈치는 있어.’

“이 쥐새끼가… 네가 뒤에서 수를 쓴 거였구나.”

‘눈치는 현성이보다 나아.’

100점을 만점으로 한다면 약 30점 정도의 점수를 줘도 무방하지 않을까.

‘사실은.’

녀석이 아무리 멍청하다 하더라도 금방 깨달을 수 있는 흐름이었다. 2회 차는 1회 차와 너무 많은 게 달라져 있었으니까.

1회 차에서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 갑작스레 초보자의 시련 성적표에 등장한 것과 1회 차와는 다른 윌리엄을 연관 짓지 않았을 뿐이다.

처음 이기영이라는 놈이 튜토리얼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 것에 대해서는 시답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도 전력을 다하지 않은 거라 자위했을 테고, 이기영이라는 사람이 게니우스들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누군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로 한 사람이라고 언질 받았을 테니, 어느 정도 지원을 받고 온 상태라고 생각했겠지.

그 지원으로 튜토리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거라 생각했을 테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내가 이렇게 입을 연 시점이었을 것이다.

녀석은 윌리엄을 잘 알고 있다. 그게 악연인지 아닌지는 알 바 아니었지만 놈은 확실하게 윌리엄의 검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었다.

‘한두 번 부딪친 것도 아니지? 그렇지?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던 거야. 윌리엄이 바뀌지 않을 거라고.’

여러 번 검을 부딪치면서 녀석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한순간에 개 박살이 난 상황, 심지어 지금보다 더욱더 성장한 윌근본 조차도 아까와 같은 포텐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녀석이 상대한 윌근본은, 윌리엄이 아니라 그의 탈을 쓴 무언가였다.

“…….”

전후 사정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겠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놈 하나가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쪽이 어느 정도 힌트를 던지기는 했지만….

“너… 너 뭐야? 이 새끼야.”

“…….”

“넌 도대체 뭔데. 갑자기.”

‘사실 지가 먼저 나 찾아왔자너.’

“당….”

“…….”

“당신을….”

“…….”

“당신을 봐 달라는 말을 들었을… 뿐… 이에요.”

녀석이 내 목을 놓자 순식간에 몸이 떨어진다. 커다랗게 숨을 몰아쉬고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몸을 일으킨다.

“하아… 그것뿐입니다.”

“…….”

“그게… 약속이었으니까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 새끼 시바 이대로 목 꺾어버리는 줄 알았네.’

사이코패스 살인마 정진호와는 다르게 무의미한 살인을 즐기지는 않는 모양.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거슬린다고 목을 치기에는 본인에게 불리한 점이 많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머리는 굴릴 줄 아는 녀석이니 똥오줌 정도는 가릴 수 있었겠지.

무차별적 구타가 행해지지 않은 것 정도는 감사하고 싶다.

목을 들어 올린 순간 시바 너무 여리여리하고 가볍게 느껴져서 때리면 죽겠다고 생각했나? 뭔가 주물러 줄 마음이 싹 사라졌을지도 모르지.

대신 녀석은 중얼거렸다.

“어떻게 한 거지?”

“…….”

“…….”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

“아니. 다시 말하는 게 좋겠네요. 그게 중요한가요?”

진 건 진 거야.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제가 무슨 수를 썼는지가 중요한가요? 셋업 하는 게 당신만의 전유물이 아니잖아요? 윌리엄 님이 레벨5에 이른 검사라 한들, 이미 당신은 이점을 가지고 간 채로 시작했어요.”

“…….”

“대상이 함정을 파놓았을 거라는 가정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시점에서….”

“…….”

“제가 개입했든, 개입하지 않았든 간에 우효열 님께서는 패배하신 거예요. 주체적으로 움직인 게 제가 아니라 윌리엄 님이었다면요? 지금처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새끼가 어떤 타입인 줄 알아?”

“…….”

“딱 너 같은 쥐새끼들이야. 머리 아프게 주절주절… 입만 번지르르하게… 이해도 안 되는 개소리 하지 말고….”

하.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뭐? 이 쥐새끼가!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더 이상 당신이랑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개새끼가!”

더 이상 엮이기 싫다는 듯 몸을 일으킨다.

“제 역할은 다 했어요. 피차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 듯하니….”

“…….”

“서로 제 갈 길 갔으면 합니다. 우효열 님. 저는 당신의 앞길에 방해가 되지도, 걸림돌이 되지도 않을 겁니다. 당신은 강하고, 저는 약해요. 한마디만 더 드리자면 저는 당신을 응원하고 있답니다.”

깔끔한 마무리.

내 할 말만 하고 치고 빠지기.

의문은 해결해 주지 않고, 적당한 개소리로 궁금증 유발시키기.

도발하기.

선을 넘을락 말락 넘나들면서 때려죽이기 애매하게 만들기.

완벽한 아군은 아니지만 적은 확실하게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마지막으로.

나는 너 같은 종류의 인간을 혐오한다는 눈빛 좀 쏴주기.

‘이대로 끝나기 싫을 거야? 그지?’

이렇게 만남이 끝나는 건 마음에 안 들 거라구. 이렇게 애매하게 끝나는 게 어디 있어? 이대로 영영 서로 안 보면 답답해서 뒤질 것 같을 거 아니야.

아니나 다를까 고함을 치는 목소리와 욕지거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어느새 다가온 충성스러운 패밀리아 꽃과 풍요가 녀석을 가로막고 있다.

아직 부상도 회복되지 않고 레벨 3에 불과한 우효열은 나의 충성스러운 동료들을 헤치고 나에게 당도할 수 없다.

혹시나 꽃과 풍요의 안주인의 옥체에 흠이라도 가지 않을까. 필사적으로 녀석을 진정시키는 인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 지가 어쩌겠어?’

본래대로라면 튜토리얼이 끝나고 윌리엄에게 엿을 먹인 직후, 곧바로 로헨 대륙을 유랑하는 것이 우효의 본래 계획이었을 터.

그 계획은 이미 박살 나 있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녀석이 한 달짜리 교육을 받기 위해 신입들과 함께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은,

아마 놈을 회귀시킨 윗놈들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간단한 교육을 시작하기에 앞서….”

‘갈 수 있을 리가 없자너.’

등 뒤에서 나를 노려보는 우효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번 시간에는 로헨 대륙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습득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사항들을….”

나는 지금 초보자 아카데미에 와 있었다.

“이기영 교육생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네.”

두말할 것도 없이 모범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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