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97화
우효열 (4)
“다음 평가로 모의전이 결정됐다.”
“…….”
“이번 모의전은 검술 클래스뿐만이 아니라. 본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사제, 사냥꾼, 마법사와 같은 모든 후위 직종을 포함해 진행될 예정이다.”
“…….”
“모의전은 A조와 B조로 나뉘어 진행되며, 평가 내용은 말 그대로 모의전이다. 조는 랜덤으로 구성됐으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어느 정도의 조정이 있었다는 것을 미리 공지하도록 하겠다.”
‘시바 갑자기 무슨 모의전이야.’
벙찐 것은 이쪽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교육생들이 현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튜토리얼에서 나온 지 3일 만에 모의전을 하라고 던져 놓는 게 말이야?’
“정확한 일정은 아직 조정 중이지만… 아마….”
“…….”
“다들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군. 당연히 갑작스러운 소식처럼 느껴질 것이다.”
‘조금 갑작스러운 정도가 아닌데….’
“하지만, 모든 플레이어들이 준비되어 있는 상태로 전투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능력 있는 플레이어라면 응당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오늘 배운 방진과, 그동안 배운 것들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무슨 시바 좋은 결과야.’
원숭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트라이앵글 방진, 청동기시대 때나 사용했을 별 볼 일 없는 기본 검술, 교육소에 입소한 이후 3일 동안 배운 것의 전부였다.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사실상 교육 기간이 이틀이라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몇몇 특출난 인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튜토리얼의 때가 벗겨지지 않은 애송이들이었다.
‘얘네들을 데리고 무슨 모의전을 한다고….’
튜토리얼에서 빠져나왔다고 해서 전투 인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쪽 대륙보다는 난이도가 높기는 하지만 튜토리얼은 어디까지나 튜토리얼, 사실상 적응력이나 생존력을 시험하는 단계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제대로 파티를 만들어 협동하는 방법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검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무작정 휘두르는 놈들이 부지기수.
튜토리얼 잡몹 역시 평범한 성인의 근력이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게 효과가 있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커리큘럼에 잠깐 동안 로헨 놈들의 무능함에 한탄했던 것도 잠시.
이윽고 들려온 목소리에 허벅지를 툭툭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좋은 결과 말이다. 너희들에게 이건 기회이기도 하다. 많은 패밀리아들이 참관할 예정이니….”
‘역시 그랬자너.’
“로헨대륙 전체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패밀리아, 꽃과 풍요, 거룩한 밤의 여주인, 굵직굵직한 네임드 패밀리아들은 물론, 오랫동안 로헨에 자리 잡아 온 중견 패밀리아, 이제 막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는 패밀리아들 역시 참관할 예정이다. 아무튼 간에 튜토리얼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너희들에게는 절호의 기회라 여겨도 무방하다.”
‘이 새끼들 이거….’
“당연히 각 패밀리아의 스카우터들이 눈에 불을 켜고 너희들을 지켜볼지도 모르지.”
“…….”
“이번 모의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그 누구보다 너희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너무나 속이 보이는 수작질이었다.
모든 히든 퀘스트를 공략하며 튜토리얼 초보자의 시련을 높은 성적으로 마무리한 이기영.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며 아카데미 입소 전부터 모두의 이목을 끌었던 우효열.
소위 말하는 권력자들이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는 라인업이지 않은가.
게니우스들의 압박이 있었을 수도 있고, 관전 컨텐츠를 기획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녀석들이 우효열과 이쪽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에 있었다.
‘궁금하다. 이거지.’
아무튼 간에 갑작스러운 소식을 받은 교육생들은 대부분이 동요하는 쪽, 걱정하는 이들도 많기는 했지만 패밀리아의 스카우터들이 온다는 소리에 정체 모를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이들에게는 이상적인 말처럼 들려올 것이다.
“기회라고 봐도 되는 건가?”
“조금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뭐….”
“망치면 안 되는데… 여기서 잘 못 보이면 전부 끝장이라는 거 아니야?”
“…….”
“…….”
‘우효놈도 대충 눈치챘겠는데.’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자 흥미롭다는 듯이 상황은 지켜보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마치 오매불망 체육 시간만을 기다린 어설픈 양아치 같은 모양새.
이 새끼가 여기 와서 웃는 걸 처음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짧고, 어떻게 보면 무척 긴 시간이다. 누군가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애송이 티를 벗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물론 본 교관은 너희들의 가능성을 믿는다.”
녀석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너희들이 지난 시간 동안 교관에게 보여준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곳에 있는 이들 한 명도 빠짐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새끼는 시바 무슨 인센티브라도 받기로 협의가 된 건가. 시바.’
몇몇 교육생들은 이미 교관의 말에 고취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기분 탓일까.
“자, 그럼 조를 발표하도록 하지.”
“…….”
“A조. 우효열… 아스트리드. 마야 에르넘.
“…….”
“B조 이기영. 임청하… 그리고… 그리고….”
‘놀랍지도 않네.’
대놓고 우효열과 모의전을 펼쳐보라는 스쿼드가 들려왔다.
‘어처구니가 없네.’
나랑 우효열을 떼고 생각해 보면 이쪽으로 조금 유리하게 편성된 것 같은 느낌, 아마 교관의 개인적은 복수심이 반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치도록하지.”
“…….”
“기대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교관은 무책임하게 바깥으로 나가버린 상황,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중얼거리는 소리와 대화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게 끝이야? 미팅은? 뭐 어떻게 하라고?’
“같은 조라서 다행이네. 그렇지 기영아?”
“아, 네. 누나! 다행이네요. 그러고 보니 형도 같은 조네요?”
“뭐 다행이지. 안 그래도 너랑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확인하니까. 이제야 좀 안심이 되네. 그런데 참 무책임한 것 같다니까. 모의전에 대한 설명은 이걸로 달랑 끝이고… 정확한 일정이나… 장소나… 따로 공지하지도 않는 건가?”
“심지어 검술반이 아니라 다른 반들은 아직 얼굴도 못 본 애들이 대부분인데… 안 그래? 기영아?”
“누나 말이 맞아요. 아마 따로 미팅할 시간을 주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다른 말이 없는 걸 보면 저희들 끼리 알아서 해보라는 심보로 던져준 거일 수도 있겠네요.”
“그게 무슨 말이야?”
“단순히 모의전뿐만이 아니라 멤버들을 모으는 것부터 준비하는 것까지, 모두 교육생들의 문제라 이거죠. 따로 훈련을 하지도 않을 거예요. 오늘 아카데미의 교육 커리큘럼을 확인했는데, 모의전 연습에 대한 말은 따로 없더라고요. 참관 올 패밀리아 쪽에서는 교관들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런 것 같기는 해… 사실 이 시기에 모의전으로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도 이상하고….”
“그런데 기영아. 그럼 그건 어떠냐. 굵직한 패밀리아들이 온다는 거 말이다.”
“아마 스카웃 목적이 있기는 할 거예요. 사실….”
“응?”
“이번 튜토리얼이 조금… 죄송한 말씀이지만… 조금… 이상하게 끝났잖아요.”
내가 공헌도 전부 독식했자너.
뭔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도 먹을 게 없어 보여주지 못한 놈들이 수두룩하다.
“그렇지. 무려 20만 점을 넘게 먹은 놈이 하나 있었으니까.”
“아! 형!”
“몬스터들이 보이지도 않더라고.”
“거짓말하지 마요. 누나. 저 몬스터는 많이 안 잡았어요. 아니, 못 잡았다구요.”
“호호. 그랬니? 미안.”
“진짜….”
“알겠어. 다 농담이었으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기영아. 아이구… 꼬집고 싶어지게.”
“볼 좀 그만 꼬집어요. 누나.”
“아무튼, 그래서… 스카웃 기회가 정말로 있다는 거 맞지?”
“확실하죠. 눈에만 띈다면야 패밀리아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아마 꽤 큰 이벤트가 될 거예요. 위쪽에 있는 게니우스들도 주목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아. 그렇네….”
“패밀리아 쪽에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도, 게니우스들 눈에 띄면 무조건이니까요. 물론 나쁜 의미로 눈에 띄는 건 지양해야 한다는 거 아시죠?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것도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물론 소수 게니우스들한테는 먹히지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패밀리아에 들이고 싶은 플레이어라면….”
“흐음. 그렇겠네.”
“열심히 하기는 해야겠는데?”
“네. 일단 누나.”
“응?”
“저희 조 멤버들 좀 불러주세요. 검술반 말고요.”
“아….”
“형은 검술반 좀….”
“오늘부터 하게? 오, 오늘은 조금 쉬는 게 어때? 마침 벌어놓은 코인도 있는데 형이 맛있는 거라도….”
“형!”
“…….”
“무조건 오늘부터 해야 되요. 일주일이면 얼마나 빠듯한데요….”
‘빠듯한 정도가 아니자너.’
사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이 병아리들을 사람으로 만들 수 없는 시간이다.
‘말도 안 되는 시간이야.’
적당히 흉내만 내는 것 정도면 몰라도 우효열을 상대하는 파티를 꾸리기에는 터무니없는 시간이다.
심지어 이 새끼 역시 혼자가 아니라 조원들과 함께하고 있으니, 시간이 더욱더 부족하다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이겨야 돼.’
그래야 녀석이 이기영을 더욱더 궁금해할 테니까.
만약 녀석이 느끼기에 별 볼 일 없다고 느낀다면 이쪽에 관심을 느끼는 것도 끝, 이쪽의 발아래 처박혀 있어야 이쪽을 바라봐 주는 타입이니 기왕이면 압도적인 전력 차로 발라줘야 한다.
싱겁게 끝난다면 아카데미에 붙잡혀 있을 명분도 없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까.’
인원들이 1인분만 해준다면 가능성이야 차고 넘친다. 각 조장별로 많은 자유도를 부여한 것이 우효했기 때문이다.
“야.”
“…….”
“…….”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
“야!”
‘아 왜.’
시선을 돌린 곳에는 우효 놈이 삐딱한 자세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
“…….”
“이번에는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새끼야.”
“…….”
“그 잘난 주둥이 계속 놀릴 수 있는지… 한번 지켜보자고.”
못 들은 척 못 본 척해야지. 시바.
삼류 양아치와 다를 바 없는 선전포고.
“뭐야? 저 새끼. 저러면 지가 멋있는 줄 아나 봐. 쪽팔리게….”
“들리겠어요. 누나.”
우효 녀석도 이번 모의전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는 시점.
시간이 흘러 며칠 후,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기영아!”
“…….”
“기영아!!!”
“…….”
“기영아! 소식 들었어?”
“…….”
“타 아카데미에서 모의전에 참가하기 위해서 왔다는 소식 들었어?”
“아! 누나! 저 지금 씻고 있어요! 들어오지 마세요!”
“한소라래! 한소라가 왔대! 이번 튜토리얼 2위! 알지?”
고개를 빼꼼 내밀 수밖에 없었던 소식이었다.
“한소라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