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05화
우효열 (12)
절대로 튜토리얼에서 막 빠져나온 애송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포텐이 아니었다.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모의전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소형 패밀리아는 물론이거니와 대형 패밀리아도 마찬가지겠지.
‘천재라는 건가….’
“내가… 막 아카데미를 졸업했을 때는 뭘 하고 있었더라.”
이제야 겨우 검을 휘두르는 방법을 깨달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카데미가 무능하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로헨 대륙에서 플레이어들을 받아들이고 아카데미가 생겨난 이후부터 그들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어떻게 하면 더욱더 효과적으로 플레이어들을 교육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지, 많은 패밀리아와 국가들은 아카데미 커리큘럼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메인스트림에 진입하는 플레이어들이 많을수록, 그들의 생존력 또한 올라갈 테니 이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그들을 교육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에서의 교육은 효과적이었다.
로헨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부터, 기초 전투,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법까지, 자신이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만큼….
그것을 폄하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이는 받아들이는 이들의 문제였다.
아카데미가 얼마나 좋은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관계없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그 한 달 이라는 시간을 적응하는 것에 모조리 소진한다.
검이나 마법,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나오는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에 그친다.
자신이 상상했던 아카데미 교육생들의 모의전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었다.
한소라도, 우효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력도 충격적이었지만, 눈에 띄는 것은 이기영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이끌고 있는 조원 전체였다.
‘도대체 올해 기수들한테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거지?’
“망설임이 없네요.”
“아무리 죽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무섭지 않은 건가? 이제 막 대륙에 들어온 병아리들이? 저 몸놀림은 뭐야.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들 모두가 이미 완성된 전투원이나 다름이 없게 느껴질 정도.
강하다 약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병아리 티를 벗어나 있다.
검을 휘두르는 것도,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시위를 당기는 것도, 어설프지만 각자의 병기에 숙달되어 있었고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이번 아카데미 교관이 누군가요?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궁금하시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최설아 님. 교관이나 아카데미의 커리큘럼과는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니… 무슨 뜻인지 알겠네요.”
병아리 티를 벗은 건 이기영과 함께하는 플레이어들뿐이다.
“예. 아마 그가 중심이 되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런 건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의외네요. 아무리 봐도 핏덩이처럼 보이는데. 저 나이에 능숙하게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것도 그렇고… 어디 사관학교라도 입학한 전적이라도 있었대요?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
“아니, 사관학교를 나왔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전직 군인이었던 사람들도 지천으로 널린 마당에…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이해할 수 있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웃기지 않아요?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이기영이라는 병아리가 로헨이 만들어온 아카데미 커리큘럼을 순식간에 쓰레기로 만들어버렸다는 건데.”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일주일인가요? 일주일 안에 저 많은 인원들을 자기편으로 만든 거로도 모자라서 따로 훈련까지 했다고요? 그리고… 저건… 저건 어떻게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
“천재라는 말로밖에는….”
“우효열도 천재예요. 한소라 역시 천재고요. 꽃과 풍요의 윌리엄도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이고… 부끄럽지만 저도 천재라고 불린 적이 있었는데… 아니, 로헨 대륙에서 한 번쯤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을 모두 봐왔지만… 이렇게 이질적인 감정이 든 건 처음이에요.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요?”
“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인간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예요. 도대체 저런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까요. 그거 알아요?”
“어떤….”
“재능 있는 프로 바둑기사들이나 체스 기사들은 굳이 판을 보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로 그게 신기하다고 느껴졌었는데… 지금 저걸 보세요. 저 큰 전장이 저 자그마한 머릿속에 있다고 상상해 보자고요.”
“…….”
“심지어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지 움직이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는 말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
“소름이 돋지 않나요? 저런 걸 같은 인간으로 봐도 될까 싶을 정도예요. 위에 계신 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잘나신 게니우스들도 저런 건 듣도 보도 못했을 거라고요. 몸을 움직이는 법을 알고 있거나 마력에 선천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보다 더 황당한 재능 아닐까요. 저런 걸 진짜 천재라고 부르나 봐요.”
“…….”
“아마 이 모의전을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깨닫고 있을 거예요.”
“무엇을 말입니까?”
“좋든 싫든 간에, 로헨 대륙은 그를 받아들이려고 할 거예요. 저걸 누가 손에 넣든 간에 그를 중심으로 모든 게 바뀔 거예요. 메인스트림, 국가 간의 전쟁, 패밀리아들의 항쟁, 악마들과의 전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첫 번째 도화선은 모두 저 남자의 머릿속에서 시작될 거라고요.”
“이해는 합니다만… 그건 너무….”
확대해석하는 거 아니냐고?
결코 확대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 절대로 자신은 저것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대접받을 만한 가치가 있어.’
각 구역에서 시작되는 전투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지난 모의전의 결과도 충분히 충격적이었지만 이번 대전 역시 만만치 않다.
병력들의 움직임, 전술, 그리고 전투체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같았지만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저 남자의 생각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하나였다.
이해하지 않아도 간단히 알 수 있었다.
위에서 전장을 보고 있노라면 한쪽 병력이 압도적으로 한쪽을 끌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각 전투원의 수준 차이도 수준 차이였지만 기본적으로 우효열 쪽의 병력들은 이기영 쪽의 병력을 이기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건 전투가 일어나는 지형의 차이일 수도, 확보된 시야의 차이일 수도, 전투에 임하는 플레이어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유기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이기영 측과는 다르게 우효열 측의 병력은 항상 끌려다니는 쪽이었다.
도화선의 불을 붙이는 것은 이기영 쪽이고, 그 반대쪽은 떨어진 폭탄을 수습하는 데에 급급했다.
심지어 우효열 그 역시도 거미줄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헌신적입니다. 저 남자 말입니다.”
“한승윤이라고 했었나요?”
“네.”
“꽤 끈끈했나 보네요.”
“그런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과야 어찌 됐든 간에 저쪽 인원들 중의 하나는 데려와야겠어요. 이기영을 품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가 아끼는 사람들이라도 품에 안아야죠. 어쩌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거대한 빛기둥이 떨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무래도 우리 게니우스님께서는 저 남자를 손에 넣을 능력이 없으신가 봐요.”
“그가… 게니우스를 선택했군요.”
“네.”
다들 입을 벌리고 그 기둥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말이다.
누군가가 게니우스에게 선택을 받는 것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닐진대, 오히려 로헨에서는 굉장히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일 텐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입을 벌리고 멍하니 한 곳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하.’
갤러리들의 표정들이 눈에 밟힌다.
몇몇은 대놓고 아쉬운 표정을 보내고 있었다.
같은 게니우스를 선택했다고 해서 같은 패밀리아에 들어가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보통 한 게니우스를 모시는 이들끼리 뭉치는 것이 당연시됐으니 말이다.
좋은 인재를 눈앞에 두고 놓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속이 쓰릴까. 당장 자신조차도 이렇게 배가 아플진대.
우리들과 대비되는 것은 패밀리아 꽃과 풍요의 모습이었다.
표정이 없기로 유명한 윌리엄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함박웃음을 보내는 중.
꽃과 풍요의 여신의 기운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저렇게 기뻐하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가 꽃과 풍요의 여신을 게니우스로 선택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빛이 걷히고 난 이후의 그의 모습은….
‘…….’
휘황찬란한 빛무리의 중심에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
뭐라고 할 말을 잊게 만들 정도였다.
그의 몸에서 피어나는 신성력들이 마치 수백 송이의 꽃이 만개하는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백금색의 빛으로 만들어진 꽃 화관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는 모습은 천사의 고리마저 퇴색되게 만들 만큼이나 아름답다.
두 눈은 계속해서 빛나고 있었고 여전히 걸음걸이에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진다.
그는 자연스러웠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저 빛이 마치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조용히 손을 뻗어 만개하는 빛들을 어루만진다. 그 모든 행동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신이시여….”
저도 모르게 내뱉은 목소리.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집어삼켰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다.
경외감.
신성하고 거룩한 무언가를 목도했을 때,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경외감.
종교적인 예술 작품을, 걸작이라 불리는 미술품을 눈앞에 뒀을 때 나오는 순수한 감탄.
그가 조용히 팔을 모아 기도를 드리자 전장 전체에 퍼져 나간 신성한 꽃잎이 그를 위해 희생했던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듯한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신들이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이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흩날리는 빛의 꽃잎을 보며 웃음 짓는다.
마치 잘 짜인 각본 같지 않은가. 모든 것이 그를 위해 만들어진 무대와 같지 않은가.
‘광역신성마법.’
쓰러져 가던 이들이 몸을 일으킨다.
승부는 이미 오래전에 났다고 생각했지만….
‘변수는 없어.’
오죽하면 저 우효열이라는 전사가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분한 표정, 일그러진 얼굴, 처음 자신감에 넘쳤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그의 조원들은 이미 대부분이 리타이어했다. 회복한 병력들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별다른 활약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적군 병력이나 주요인물들을 줄였다면 그에게 한 줌의 희망이라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역전의 발판을 노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패착이었다.
한승윤이라는 평범한 전사에게 발목을 붙잡힐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첫 번째 패착이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발 밑아래에 있다고 생각했던 전사가 자신의 공격을 막으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었을 때, 자신이 신경 쓰지 않았던 떨거지가 이런 모습을 보여줄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아니, 그가 이기영 이외의 다른 인간을 염두에 두기나 했을까.
그가 한승윤이나 다른 인원들이 재능이 있다고 판단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들의 스펙은 저 우효열에 비하면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별 볼 일 없을 거라고, 금방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저 짐승 같은 남자는 본능을 우선에 두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없이 계산적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의 계산에 뭐가 빠졌던 것일까.
‘이기영이 게니우스에게 선택받은 것?’
아니면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더 영리했다는 것?
우효열이 변수로 책정할 수 있는 것은 한없이 많을 것이다.
“몇 가지만 빼고 말이야.”
믿음.
그리고 신뢰.
“이기영과 네가 뭐가 다른지 깨닫지 못한다면 장기 말은 될 수 있어도 영웅은 되지 못할 거야. 우효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