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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07화 (1,10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07화

우효열 (14)

“우효열 이 피유우웅신 새끼 이거. 별것도 아니네.”

“…….”

“꽃기영 진짜 임팩트 있기는 했어. 그렇죠. 소라 씨?”

“…….”

“반응 좀 어때요? 뜨겁죠?”

“당연히 뜨겁죠. 저도 그때 길드마스터가 각성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패밀리아 꽃과 풍요로 가는 게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라… 이미 그쪽에 접선한 패밀리아 들이 한둘이 아니라던데요?”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근데 걔네는 웃긴다. 내가 언제 들어간다고 말이라도 했었나.”

“안 들어가시게요?”

“…….”

“…….”

“상황을 한번 지켜봐야죠.”

기왕이면 편하게 가는 게 유리한 측면이 있기는 했다. 안정된 곳에서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은 여러 가지 단점들을 상쇄시키고도 남았으니까.

하지만 굳이 저쪽으로 가야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세력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돼 있으니까.’

이제 곧 아카데미 생활이 끝난다. 한소라가 타 패밀리아에 들어가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밟기로 했으니 세력을 일구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다.

몇 년 정도 걸리겠지만 대륙에서 이름을 날릴 만한 패밀리아 하나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얀이만 합류해도 실적이 우후죽순 쌓일 것이고… 한소라의 정치 감각이라면 중앙 쪽에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꽃과 풍요에 들어가지 않아도 메인스트림에 주요 패밀리아로 활동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후를 생각하면 동맹 패밀리아들의 규모부터 늘리는 게 더욱더….

‘유리하겠지.’

게니우스로 꽃과 풍요의 여신을 모시고 있다는 것도 플러스 점수가 될 테고… 다른 패밀리아들에게도 손을 뻗어볼 수 있다.

‘아니야. 그래도… 일단 들어가는 게 좋으려나?’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점 역시 크다.

일단….

“그… 그런데요 부길드마스터.”

“…….”

“부길드마스터.”

“아. 왜요?”

“혹시요… 길드마스터 블랙 넣으셨어요?”

“…….”

“…….”

“…….”

“길드마스터가 블랙 좀 풀어달라고… 계속… 저한테 와서….”

“안 그래도 슬슬 풀라고 했었는데.”

“빨리 좀 풀어주세요. 저 길드마스터 때문에 구독 게니우스들 전부 떨어져 나가게 생겼어요. 이런 말씀 드리기는 싫지만 자꾸 도배를 하셔서… 코인도 몇백 코인밖에 후원 안 하시고… 조… 조금 그래요. 방해만 하시고….”

‘얘는 진짜.’

“걔는 왜 소라 씨한테까지 가서 행패야? 걱정하지 마요. 내가 단단히 일러둘 테니까.”

“아니, 따로 다른 말씀은 하지 마시고 그냥 블랙만 풀어주세요.”

“…….”

“…….”

이쪽에 와서도 계속 행패를 부리더니 결국 한소라 쪽에 가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대놓고 곤란해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노을빛의 검신이 무슨 행동을 한 건지 예상이 갈 정도.

이미 한소라의 구독자가 된 게니우스들마저 나갈 정도라면 분탕을 쳐도 제대로 친 게 분명한 것 같았다.

‘얘는 언제 철들려고….’

“그렇게 할게요.”

“최대한 빨리요. 정말로 급해요. 안 그래도 부길드마스터가 내려준 퀘스트 때문에 코인이 말라가고 있는데… 길드마스터 때문에 진짜 미치겠어요. 이대로면 계획대로 안 될 것 같다고요.”

“최대한 빨리 해준다니까요.”

“말로만 그러지 말고 지금 빨리 해주세요. 진짜 노을빛의 검신 이 새끼 때문에… 이걸 블랙 박을 수도 없고… 왜 나한테 와서 이러는 거야. 진짜….”

‘얘는 은근슬쩍 한 번씩 성질 나오더라.’

“아무튼 오늘 안에 꼭 풀어주셔야 돼요.”

“알겠다니까요.”

“그,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부길드마스터.”

“벌써?”

“저희 아카데미 돌아가잖아요. 모의전도 끝난 마당에 더 이상 볼 일도 없고… 교관한테 잘 말해서 여기 있을 수 있는 거지, 원래는 저도 한참 전에 다른 인원들이랑 합류했어야 됐어요.”

“…….”

“이제 못 볼 것도 아닌데 왜 그러세요. 자주 연락드릴 텐데….”

“스타팅 포인트는 정했어요?”

“일단은 아헨델에서 자리를 잡을까 해요.”

너무 변방인데.

“…….”

내 표정을 잃은 것인지 한소라가 곧바로 말을 이어왔다.

“중앙에서 멀어지기는 하지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직 미개발지역이라는 것도 그렇고… 아직 숨어있는 던전이나 발견되지 않은 몬스터들도 있고요.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해서… 중앙과 그리 멀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죠. 물론 거리상으로는 결코 멀지 않지만 듣기로는 핏빛심연 협곡으로 길을 낼 예정이라고 해요. 아직 말만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니. 그거 확실한 정보예요?”

“네?”

“핏빛심연 협곡에 길을 뚫는다는 거 그거 확실한 정보냐고요. 미개발지역이 미개발지역인 이유가 있을 텐데. 만약 길이 안 뚫리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거긴 워프게이트도 없는 곳인데. 지도 펴봐요.”

“네… 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아헨델에서 시작을 한다고… 아니… 대충 찍어도 거기보다 나은 데가 서너 군데는 더 나올 것 같은데 왜 하필 아헨… 거기 지금 패밀리아들이… 아니 내 이야기 좀 잘 들어봐요….”

막 지도를 폈을 때였다.

‘…….’

뭔가 기가 죽은 것 같은 한소라의 얼굴이 시야에 비친다.

흔들리고 있는 동공. 부끄러운지 목까지 빨갛게 변한 얼굴, 수심이 드리워진 눈이 보였다.

본인 나름대로 판단해 시작지점을 결정했을 텐데 계획을 실행하기 전부터 잔소리를 들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 만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감정은 틀림없이 자괴감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굳이 이럴 필요가 없어.’

이제 막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고 마음먹은 시기가 아니었던가.

빵빵한 지원도 약속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것을 그녀의 독자전인 판단에 맡긴 타이밍.

안 그래도 우효열에게 된통 당해 침울해져 있는 그녀로서는 이쪽의 충고가 충고처럼 들리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아무 말 안 하고 응원하는 게 나아.’

한소라의 능력이라면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최소한 말아먹지는 않을 것이다.

적당히 지원만 해준다면 아헨델도 자리 잡기에는 나쁘지 않은 포인트고….

물론 더 좋은 곳들이 눈에 띄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한소라 역시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아니야. 시바.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 시바.’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미련이 남는 상황, 하지만….

‘좋은 상사가 되자. 시바.’

이번은 한소라에게 맡겨보기로 한 만큼 일단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도를 보니까….”

“네?”

“크게 나쁜 것 같지는 않네요.”

“네? 정… 정말요?”

“잠재력은 있어 보이는데… 물론 핏빛심연 협곡에 길을 내는 게 가장 급선무겠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교두보로 사용하기에는 나쁘지 않아요. 이후 진출을 놓고 봤을 때는 크게 나쁜 선택이라고 볼 수는 없겠네요. 소라 씨… 제법이야.”

“아… 감… 감사합니다. 부길드마스터. 열심히 할게요. 실망하시는 일 없게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소라 씨 믿고 있는 거 알잖아. 그냥 평소대로 하면 돼. 평소대로. 소라 씨 능력을 누가 몰라? 다 알아. 내가 알고 파란 길드가 아는데. 너무 부담가지면서 하면 제 실력 안 나오니까 진짜 편하게 해요.”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이제 가 봐야 된다고?”

“네.”

“또 봐요.”

“네. 부길드마스터도 잘 지내세요.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연락 드릴게요. 혹시 정하얀 님 소식 들으시면….”

“네. 연락 드릴게요.”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자너. 섭섭하게.’

한소라가 나간 이후에는 곧바로 몸을 침대에 눕힌 다음 눈을 감는다.

공식적으로 이기영은 아직까지 기절해 있는 상태, 언제나 그렇듯 몸에 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신성력에 대한 부담으로 정신탈진 상태에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소라가 나가기 무섭게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괜찮겠지?”

“이미 꽃과 풍요에서 괜찮다고 했잖아. 과로 비슷한 거라던데… 금방 회복하겠지.”

“너는 걱정도 안 돼?”

“왜 안 되겠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꽃과 풍요에서 괜찮다고 하니까 그러려니 하는 거지. 아마 기영이가 직접 괜찮다고 했으면 안 믿었을 거다. 또 걱정시키기 싫어서 혼자 감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혈색도 좋아 보이더만….”

“그런데….”

“왜.”

“기영이 말이야. 결국 꽃과 풍요로 가는 걸까?”

“글쎄 그건 기영이가 결정할 문제지. 아마 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나는 우리끼리 활동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건 좀 그렇지?”

“창창한 애 앞길 막을 일 있어? 우리랑은 이쯤에서 떨어지는 게 나아. 기영이는 더 큰물이 어울려. 너는 몰라도 나 같은 놈이랑 어울리다가는 분명 이번 모의전 같은 일이 계속해서 벌어질 거다. 내가 조금만 더 잘해줬더라도 아마 이런 꼴은 보지 않았겠지.”

어느새 방 안으로 들어왔는지 의자에 앉아 대화를 주고받는 중, 녀석은 손버릇을 버리지 못했는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녀석이야. 아카데미에서 같이 나가자고 해도… 아마 거절하지 못할 거야. 이 녀석은….”

“…….”

“아니, 어쩌면 이 녀석이 먼저 제안해 올지도 몰라. 같이 나가자고. 분명히 우리 애들 중에 패밀리아의 오퍼를 받지 못하는 녀석도 있을 테니까. 책임지고 싶겠지. 누가 기영이 한테 책임지라 외친 것도 아닌데… 그냥 순수한 호의와 책임감 때문에 말이야.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돼.”

“말이 맞아. 정말 바보같이 착하지. 우리 기영이는… 어디 가서 바보처럼 이용당하고서도 좋다고 헤헤 웃을까 봐 걱정이 다 되더라니까.”

“그러니까… 언젠가 녀석의 힘이 되어줄 수 있게. 우리도 노력해야지. 누가 그러더라.”

“뭐라고?”

“이 어린 천재 녀석이 로헨 대륙에 변화를 불러올 거라고. 이 쪼그만 녀석이 언젠가 로헨의 중심이 될지도 모른다고.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대충 들어서 알고 있잖아. 지금 로헨의 상황이 어떤지. 모두가 자기 잇속 챙기는 것밖에 관심이 없어. 악마들이 코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들은 여전히 전쟁 중이고… 플레이어들은 자신들 처우 외에는 관심이 없어.”

“…….”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건 알 수 있을 것 같다.”

“…….”

“이 녀석은 대륙에 선한 영향력을 불러올 거야. 로헨의, 대륙의 구심점이 돼서 우리들을 이끌어 줄 거다. 이 미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몸을 눕힐 수 있는 쉼터가 되어줄 거다. 분명히 말이야.”

“너무 감상적인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지만… 왠지 정말로 그럴 것 같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 직후, 녀석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

“뭐야.”

“…….”

“…….”

“네가 여기는 무슨 일이냐. 우효열.”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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