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08화
우효열 (15)
“네가 여기는 무슨 일이냐. 우효열.”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형이 하나.
두 사람이 녀석을 경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었다. 지금은 꽤 늦은 시간이었고 어떻게 생각해도 우효열이 이곳에 방문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에는 곧바로 불청객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왜.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나?”
“말장난할 기분 아니니까. 빨리 말해. 어째서 여기 찾아온 거지?”
상황을 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한승윤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가 지금 얼마나 긴장했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와 극도로 긴장한 듯한 떨림.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리는 것을 보니 무기를 찾고 있는 모양이다.
우효열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승윤 동생은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고 있었다.
“…….”
아마 임청하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극도로 집중한 모습을 유지한 채로 우효열을 노려보고 있겠지.
‘근데 시바 이 새끼 왜 왔어? 억울해서 왔나?’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 같은데… 어처구니없군.”
“네가 마지막에 보여준 모습을 생각해 보면 경계할 수밖에 없지. 안 그래?”
“하.”
“그렇게 있는 대로 살기를 뿌리고 다니면 바보가 아니고서야 전부 눈치챌 수 있을걸? 이번엔 내가 물을게. 우효열. 너. 도대체 왜 여기 온 거야? 도대체 뭐가 목적이야? 만약 정말로 내 생각이 맞다면! 너….”
아니나 다를까 임청하의 목소리 역시 떨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기대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무슨 대답을 원하나?”
“…….”
“왜. 만약 내가 저 녀석을 죽이기 위해 왔다고 하면 막을 수는 있나.”
‘얘네 둘이 어떻게 막겠어.’
“고작 너희 두 버러지가 나를 막기라도 할 텐가? 그거 재미있겠군.”
만약 우효열이 작정하고 이쪽을 죽이려고 한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저 둘로서는 막을 수 없다.
거리는 이미 지척, 우효열에게는 몇 초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당장 한승윤과 임청하마저 목이 달아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실전과 모의전은 엄연히 차이점이 있었고 이번에는 지원조차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임청하와 한승윤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이미 지난 모의전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을 테니까.
“쉽게… 쉽게 당해주지는 않을 거다. 개자식.”
“최소한 기영이라도….”
물론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과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
둘은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다.
‘이 새끼가 아무리 병신이라도 설마 나를 죽이려고 여기까지 오겠어?’
정말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패밀리아 꽃과 풍요의 눈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 아직 몸이 완성되지 않은 회귀 초반이었으니 무리한 수를 놓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고 싶을 테고….
무엇보다 당장은 죽일 이유가 없다. 있다면 거슬린다는 것 정도일까. 그 정도 이유로 리스크를 짊어질 정도로 놈은 멍청하지 않다.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지? 그게 걱정된 거야?’
작은 인물 하나가 녀석이 알고 있는 미래를 통째로 바꾸고 있으니 회귀자의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내가 꽃과 풍요에 들어간다는 것부터가 윌리엄이 1회차와는 다른 행보를 밟을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윌리엄뿐만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카데미 학생 중에 중요인물 몇 놈들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르지.
아주 작은 날갯짓도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올진대, 시작부터 태풍이 몰아쳤으니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녀석이 이기영의 불청객이듯 우효열에게도 이기영은 불청객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망치고 있는 불청객.
물론 그것만으로 우효열이 내게 해를 끼칠 가능성은 없다. 이 새끼는 은근슬쩍 이성적인 면이 있었고, 이미 미래가 뒤틀리기 시작했다는 걸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이곳에서 이기영을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무엇보다 이기영은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선택된 인간이 아니었던가.
잠재적인 적은 확실히 아니다. 오히려 잠재적인 아군이라 판단하는 것이 옳다.
‘절대로 못 죽이지.’
그렇기 때문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도대체 왜 온 걸까.
‘왜 온 거야? 진짜.’
무슨 볼일이 있길래 그 귀하신 몸을 이끌고 병실까지 행차하셨을까.
‘뺨이라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었나?’
아니면 낯짝이라도 보고 싶어진 거야?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같은 전형적인 대사라도 날리러 왔나?’
아니면… 제발 천재의 두뇌로 자신을 사용해 달라 빌러 왔나?
타이밍이 조금 부자연스럽지만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이 뻘쭘한 대치를 끝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제 손님이에요. 형. 누나.”
“기영아.”
“일… 일어난 거야? 괜찮니? 몸은 조금 어때?”
당황한 듯한 한승윤과 임청하.
“아니, 이럴 게 아니지. 너무 걱정하지 마. 여긴 우리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그래. 기영아 너는 그냥….”
“괜찮아요. 형. 누나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뭐?”
“잠깐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찾아온 걸 거예요. 자리 좀… 비켜주시겠어요?”
“진심이야?”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부탁드려요.”
“기영아. 아직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저 새끼는… 저 새끼는 말이다.”
“형. 정말로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니고요. 미치지 않고서야 여기서 저한테 해를 끼치겠어요?”
“그건 맞는 말이지만….”
잠깐 동안의 침묵.
“그래. 네 고집을 누가 꺾겠냐. 가자. 청하야.”
“뭐? 제정신으로 말하는 거지?”
“기영이가 별일 없을 거라 말했잖아. 그럼 별일 없을 거다.”
한승윤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전에.
“경고하지. 만약 내 동생을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절대로 널 용서하지 않을 거다.”
같은 명대사 한번 날려주고 말이다. 임청하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꼭 불러야 돼.”라고 말하며 그의 뒤를 따라갔지만 내키지 않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주친 두 사람.
우효열은 언제나 그렇듯 거만한 걸음걸이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병약한 기영이는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양새.
곧바로 용건을 말할 것이라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꽤 뜸들이고 있는 모습은 녀석답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굳이 이 자리에서 이기영을 죽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보다는 억지로 말을 삼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슨 말을 할까.’
먼저 말을 내뱉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리라. 불편한 침묵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일단 이기영은 우효열을 혐오하는 포지션에 있다.
녀석은 독선적이고, 제멋대로고 이기적이다. 태생이 선한 이기영에게는 우효열은 섞일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두 사람의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우효열이 입을 연 것은 그 이후로도 많은 시간이 흐른 직후였다.
“넌 뭐지?”
‘뭐야. 이 새끼는 뭔 소리를 하려고 하는 거야?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문제 있어?’
“넌 도대체 뭐야. 이기영.”
‘넌 이 새끼야 도대체 뭔데? 뭔데 내가 누구냐고 물어봐?’
“무슨 대답이 듣고 싶으신 건가요.”
“넌… 누구야. 넌 어떻게 그렇게….”
‘아, 이 새끼 진짜 답답하네.’
도대체 시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저는….”
“…….”
“저는 당신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왔어요.”
일단은 진실부터. 아주 조금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그것 말고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
“저는 로헨 대륙에 소환된 한 명의 플레이어고 당신에게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 일부 게니우스들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당신의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라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알 것 같아요.”
“…….”
“정확히 어떻게 도움을 드려야 하는지는 역시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만… 저는 당신의 아군이에요. 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또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우효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녀석이 듣고 싶은 대답이 이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본인도, 본인이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튜토리얼에서 졌기 때문에, 모의전에서 졌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화풀이를 하러 온 것은 더욱더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녀석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어? 이 새끼. 진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새끼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진짜냐구! 젠장!’
진짜 시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흔들리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뭐야 도대체!’
시바 몰아치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몰아치자. 기회가 두 번 오는 것이 아니다. 길들여지지 않을 것 같았던 들개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데 어떻게 이 타이밍을 모른 척할 수 있을까.
“또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
“…….”
“…….”
혹시 내가 자신을 혐오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한가?
이 새끼가 양심이 있다면 이유야 당연히 깨닫고 있었지만 괜찮은 설정 하나 정도는 던져주는 것이 좋겠지.
그래. 이걸로 하자.
이기영은 우효열을 질투하고 있다.
‘좋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녀석을, 우효열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질투하고 있는 것으로 하자. 그 힘을 잘못된 곳에 사용하는 녀석을 경멸하고 있는 것으로 하자.
녀석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혐오하면서도 질투하고 있는 것으로 하자.
‘떡밥도 하나 던져 줘야지.’
이기영이 어째서 1회차에 없었는지 궁금한 거야? 그것도 해결해 줄게.
“저를… 죽이려고 오신 건가요?”
“…….”
“그게 편하시다면… 죽이시는 것도 좋겠네요.”
왜냐하면.
“어차피… 어차피 몇 년 안 남았으니까요.”
터무니없이 드러나는 진실.
갑작스럽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급 전개.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가슴 아픈 사연.
“뭐?”
“한… 3년… 아니, 2년 정도… 남은 것 같은데….”
“…….”
“죽여주실 건가요?”
힘겹게 웃음 짓고 있는 꽃기영은 시들어가고 있었다.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꽃잎의 뿌리는 역설적이게도 썩고 썩은 채로 문드러져 있었다.
“뭐라고?”
“저…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요.”
“…….”
“그러니까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셔도 몇 년만 참아주세요.”
“…….”
“어차피 나 죽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