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12화
우효열 (19)
“그 말! 취소하세요!”
“뭐… 우리가 뭐 어쨌다고… 도대체….”
“그 말 취소하시라고요!”
이 새끼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새끼들이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전후 상황 보지 못하고 날뛰는 천둥벌거숭이들이였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은 타이밍.
일단은 당황하는 듯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갑작스레 난입해 얼굴이 벌게진 채로 흥분하는 이기영이 자신들 눈앞에 있으니….
‘많이 당황한 것 같자너.’
아마 황당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초 꽃기영은 이런 형태로 신경질을 내거나 언성을 높이는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
녀석들과 별 접전은 없었지만 그래도 같은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안면을 익힌 만큼 녀석들 역시 이기영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차분하고, 자주 미소 지으며,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따뜻했던 그 녀석.
욕심 없고 조용하고, 언제나 순수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 녀석이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직접 목도했으니 어떻게 당황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도대체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들이 한 말 취소하세요.”
“그건… 그건 못 하겠는데?”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은 녀석 들 중 자존심이 강해보이는 놈이었다.
‘그래. 그거야.’
딱 보니까. 얘네들 성향도 나쁘지 않아. 한 놈은 좀 정상적인 것 같기는 한데 나머지 두 놈이 삼류 양아치로 성장할 것 같은 가능성이 보여. 예비 범죄자 새싹으로 아주 훌륭해.
일단 커다란 덩치를 가진 것부터 주먹깨나 쓰게 생겼다.
덩치가 크다고 모두 깡패 놈들은 아니었지만 깡패 놈들은 대부분 덩치가 크니, 기대해 볼 만한 포텐을 가지고 있다 여겨진다.
아마 지구에서 약간 거친 삶을 살다가 소환되지 않았을까. 뭔가 충동적인 갱 같은 느낌이 있으니 더욱더 기대감이 차오른다.
“네?”
“취소 못 하겠다고… 애초에 네가 무슨 권리로 취소하라 마라 하는지 모르겠는데… 왜 우리가 못 할 말이라도 했나? 그리고 도대체 네가 무슨 상관인데 여기에 와서….”
“…….”
“네가 그 새끼랑 뭐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귀찮게 하지 말고 갈 길 가라. 우리도 바쁜 사람 방해하기 싫고 너도 할 일 많을 테니까. 쯧. 갑자기 이게 뭔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 자극하지 말란 소리라고… 알아들어? 씨발 짜증 나게….”
“그 사람이 안하무인에 자신밖에 모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신들 같은 사람들한테 모욕받을 만한 사람은 아니에요.”
“뭐?”
“모의전에 결과에 대해 왈가불가, 진 원인에 대해 탓을 하기 전에 자신들부터 직접 돌아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어째서 아카데미의 오퍼를 받지 못했는지는 정말로 모르시는 건가요? 정말로 그게 모의전 하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나치게 흥분해 있다.’
지금 이기영은 지나치게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구태여 자신이 나서서 우효 녀석을 변호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흥분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다.
당연히 답은 내면의 시한부 자아에 존재한다. 일종의 트리거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내면의 시한부 자아는 언젠가 한 번 이런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히 시한부 이기영 역시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있었다.
아니, 틀림없이 이런 일을 겪어봤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고, 우야무야 넘어간다고 하면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사건.
물론 좋게 좋게 해결할 생각 따위는 없다.
‘시바 판을 키워야 돼.’
“결과에 상관없이 당신들이 유능한 자원이었다면 이미 오퍼를 받고도 남았을 거예요.”
‘너네 무능하다고.’
“어째서 전선이 무너진 건지 설명해 드려야 하나요?”
‘너네가 알아들을 수 있다면 내가 설명해 주겠지.’
“당신들이 방어전선을 뚫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너네 탓이라고.’
“누군가가 이끌어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자신들이 이끌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거죠. 당신 같은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식이에요.”
‘어디서 시바 버스만 타려고 그래?’
“그거 알고 계시나요? 패밀리아의 스카우터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건 인성이라는 거요….”
‘너네 인성 나쁘다 이 말이야.’
“평생 그렇게 사세요. 어차피… 어차피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어차피 너희 떨거지들은 그러다 죽을 운명이니까.’
“뭐?”
“…….”
“이 새끼가!”
그래 시바 한 대 쳐. 어디 쳐 봐. 빨리 한 대 쳐.
쓰레기로서의 가능성이 보이는 녀석을 바라봤지만 저 새끼는 감히 이쪽에게 손을 댈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진짜… 이 패기도 삼류 양아치 새끼들.’
아마 이기영이 가진 배경과 능력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난 머저리들이 이쪽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다.
마침 적당히 구석진 장소였고, 대부분의 패밀리아들과 유력 플레이어들은 아카데미를 빠져나간 타이밍.
입만 놀리는 애송이를 교육시켜주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어디 있을까.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는 게니우스들이 녀석들을 충동질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놈들이 코인까지 뿌려가며 유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양아치 놈들이 덮쳐오길 기다리고 있지만 이놈들은 도무지 움직일 생각이 없다.
‘아… 얘네들 생각보다 너무 주제파악 잘하는데.’
아쉽기는 하지만 여기서 마무리해야 하나?
‘하….’
“패배자들.”
이라고 말을 하며 돌아갈 채비를 마쳤을 때였다.
“이… 이 새끼가! 네가 뭘 알아!”
라고 외친 한 녀석이 이쪽의 어깨를 팔로 밀친 것.
의외로 큰 활약을 보인 것은 세 놈 중 가장 정상인처럼 보인 녀석이었다.
“네가… 네가 뭘 알고 그런 말을 지껄여!”
문제는 녀석의 행동으로 인해 떨어진 결과였다. 자연스럽게 몸이 밀쳐지며 품 안에 숨겨놓았던 가녀린 촉수의 뇌물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가녀린 촉수의 마스터가 주머니를 강하게 동여매지 않았는지, 안에 들어있는 골드와 보석들이 바닥으로 널 부러진다.
꽤나 드라마틱하게 널 부러진 귀금품들은 마치 일부러 던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정도, 예비 쓰레기들의 눈빛이 변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야! 저 새끼 붙잡아!”
“어?”
“입 막아! 새끼야! 입!”
우악스러운 손길이 이쪽의 입을 막는 것은 순식간, 선빵을 날렸던 정상인 한 명의 얼굴에 당혹감이 감돈다.
“뭐… 뭐 어쩌게… 얘들아!”
‘어쩌긴 뭘 어째 이 새끼야. 그러니까 시바 친구를 잘 사귀었어야지.’
“보면 몰라? 멍청한 새끼. 저거 챙겨. 빨리!”
거대한 덩치를 가진 두 놈이 몸으로 시야를 가리며 입을 막는 훌륭한 범죄자의 몸놀림을 보여준다.
아마 이 새끼들은 여기서 빠져나가도 강도짓으로 먹고 살 새끼들일 거야.
“야… 어, 어쩌게. 이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닥치고 저거나 주워 담아. 이 덜떨어진 새끼야.”
“여기서 이러면….”
“어차피 조금만 달리면 워프게이트야. 아카데미에 사람도 얼마 안 남았고 이거 챙긴 다음에 튀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
“거지 같은 괴물 놈들이랑 드잡이 질 안 하고도 먹고살 수 있다니까. 뭐해? 빨리 주워!”
“어? 어? 어…?”
‘뭐 하고 있어. 빨리 이 범죄에 가담해.’
“읍… 으읍!”
아카데미 아니었으면 아주 시바 노예로 팔아먹었겠어. 이 나쁜 놈의 자식들 이거. 아주 범죄자 그 자체야. 내가 역시 사람 하나는 잘 봐.
“개 같은 놈. 천재 군사는 지랄. 뭐 패배자?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야. 다시 한번 지껄여봐.”
“누….”
발버둥치자 입을 막은 손이 잠깐 떨어지지만 대신 한 녀석이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시바 진짜 때릴 건가 봐.’
“입 닥쳐. 이 새끼야.”
이쯤 되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이 범죄자의 팔을 누군가가 붙잡아 주지 않을까.
원래 결정적인 순간에 도와주는 게 국룰 이잖아.
다른 애들은 이쯤 되면 딱딱 등장하던데.
하지만,
퍽.
“으읍!”
즐거운 상상을 했던 것도 잠시 녀석이 들어 올린 팔을 이쪽의 얼굴을 향해 내뻗는다.
퍼억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고통을 느낄 새도 없다. 무릎으로 곧바로 복부를 올려 차는 범죄자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게 된 것은 당연지사. 안에서 뭔가 올라오려는 느낌이 있었지만 다시금 입을 막은 손 때문에 넘어오려는 것을 그대로 삼켜 넘긴다.
고통을 표현할 수조차 없다. 배를 잡고 뒹굴뒹굴 구르고 싶은 심정.
그 와중에도 한 놈은 귀금품을 담기 바쁜 모습을 보니 순간적으로 화가 치솟는다.
‘이 인정머리 없는 새끼들.’
[노을빛의 검신♥이 비명을 내지릅니다.]
‘현성아. 시바. 현성아. 나 맞았어.’
[노을빛의 검신♥이 [email protected]!#^#%&@!]
[노을빛의 검신♥이 상상할 수 없는 분노를 표현합니다. 저놈들을 당장에라도 찢어 죽이고자 합니다. 입술이 찢어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 당신의 적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합니다.]
‘이 새끼들이….’
[노을빛의 검신♥이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잠깐 샷 건 좀 그만 쳐.’
김현성뿐만이 아니다. 갑작스레 일어난 사고에 단체로 메시지들이 불이 붙은 듯이 올라왔다.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당연히 분노하는 쪽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꽃과 풍요의 여신이나 하늘의 문지기, 심연 님이나 황금 님 같은 경우에는 당연히 분노하는 쪽.
가녀린 촉수 얘는 왜 갑자기 5만 코인을 후원하는 것 일까. 거룩한 밤의 여주인… 너도 왜 코인 쏘고 그래.
“이… 이기영은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해? 버리고 가야지 야. 몸 좀 뒤져봐. 뭐가 더 나올 수도 있으니까.”
‘착실하네. 이런 건 또 똑똑해.’
“이 새끼. 어지간히 받아 쳐먹었구만.”
“만… 만약에 이기영이 우리 신고하면….”
“이런 곳에서 신고한다고 우리를 잡을 수나 있겠어?”
‘여기에도 레인저들은 있다더라. 이 새끼들아.’
“워프게이트 아무 곳에나 들어간 다음에 튀면 그만이야. 당분간 숨어 있으면 돼. 당분간만… 어차피 높으신 양반들은 메인스트림이니 던전공략이니 뭐니 하는 걸로 바쁘고. 그 놈들이 고작 우리 잡으려고 변방으로 찾아올 일도 없으니까.”
“…….”
“지금 나를 보고 있는 분께서 지원해 주기로 약속했다니까.”
[노을빛의 검신♥ ^&[email protected]##!DGAXPQ9182YN]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넌 시바 칼로 쑤시기도 했자너’
순식간에 몸이 땅바닥을 나뒹군다.
“악!”
마지막 한 방을 더 갈기고 싶은지 쓰러져 있는 이쪽의 몸을 다리로 퍼억 하고 차버린 녀석은 서둘러 주운 귀금품을 주머니에 넣은 이후 범죄 행각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어디로… 어디로 갈까?”
“일단 빨리 따라오기나 해.”
다시 한번 배를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던 타이밍.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지금….”
“…….”
“뭐 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