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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13화 (1,11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13화

우효열 (20)

우효열이어야 한다. 윌리엄이나 가녀린 촉수의 마스터.

임청하 혹은 한승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기왕이면 시한부 꽃기영을 구하러 온 녀석이 우효열이었으면 좋겠다.

애초 그 녀석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것이나 다름없으니 어떻게 봐도 녀석이 이곳에 오는 것이 이치에 맞다.

‘분명히 보고 있었을 거야.’

녀석이라면 분명히 이쪽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녀석들은 한발 먼저 제 갈 길을 떠났을 테니 분명히 우효열이겠지.

당장 몸이 고통스러우니 눈도 귀도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시점.

시력이 천천히 그 기능을 되찾을 즈음에 내 눈에 보인 것은 앞서 만났던 놈들과 다를 바가 없는….

“…….”

“…….”

금발 태닝 양아치 하나였다.

‘우… 우효!! 열!!’

다시 봐도 까칠하고 띠꺼울 것처럼 생긴 얼굴, 그 얼굴을 수놓은 피어싱, 껄렁껄렁하고 오만한 자세와 튜토리얼에서 입고 있었던 전형적인 양아치 룩.

물론 그 모든 것보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치 육식동물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다.

차갑지만 내려앉은 눈에는 피식자를 향한 비웃음과 경멸이 들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눈동자에는 약간의 짜증이 깃들어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저 짜증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마 귀찮은 일에 몸소 행차하신 본인에 대한 짜증이겠지.

“너… 너는….”

“지금… 뭐 하고 있는 짓이냐고 물었다.”

“우… 우리는 그냥….”

선배 양아치를 보고 바짝 얼어버린 양아치 셋. 이미 변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새끼들 현행범이야. 딱 잡혔어. 딱 잡혔다구!’

이미 이 사태를 보고 있었겠지만 전후 사정 따지지 않아도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는 너무나도 명백하지 않은가.

두 명의 덩치와 그 덩치를 따르는 놈 하나.

범죄에 성공에 대한 흥분 때문인지 잔뜩 상기되어 있는 얼굴을 하고 있다.

아직 품에 전부 집어넣지도 못한 귀금품들을 그대로 들고 있었고 무엇보다 녀석들의 뒤에는 안면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는 꽃기영이 자리해 있었다.

이 범죄자 새끼들이 꽃기영을 두들겨 팬 이후 금품을 갈취했다는 것은 저놈들의 부모님이 와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실상 설명할 필요 자체가 없다.

“씨발….”

“…….”

“그러니까 우리는….”

‘변명이 먹히겠어?’

“그러니까… 우리는 말이다.”

‘씨알도 안 먹혀요.’

“…….”

“제기랄 덮쳐!”

“뭐? 뭐!”

“저 새끼 죽여 버리라고!”

결국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알아서 자수하든지, 아니면 이렇게 활로를 뚫기 위해 발버둥 치든지.

물론 활로를 뚫는다는 발상 자체가 어리석은 발상이었다.

“아아아아악!”

처음 주먹을 뻗은 녀석의 팔을 고갯짓으로 피한 우효열이 녀석의 팔을 그대로 꺾어버린다.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내 팔! 내… 내 팔!”

“시끄럽군.”

이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비틀린 팔을 보니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곧바로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며 비명을 내지르지만 자비를 모르는 냉혹한 폭력배 우효열은 녀석의 손등을 발로 짓이긴다.

“아으아으어아아아아아아!”

“시끄럽다고 말했다.”

“으으으… 으어어….”

멈추지 않고 곧바로 녀석의 입을 발로 으깨버린 녀석. 흥건한 혈액이 바닥을 물들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지나치게 잔인하기는 한데.’

원래 양학 하는 건 또 양학 하는 대로 보는 맛이 있자너.

사실상 싸움은 이 시점에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두 녀석이 무모한 싸움에 참전하기도 전에 한 놈이 피떡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

애초 레벨 차이가 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겠지만 차이는 너무나도 절망적이다.

그 사실을 저 깡패 놈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정상인으로 보이는 한 녀석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지 않은가.

얼떨결에 범죄 현장에 휘말린 녀석을 생각하면 조금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언제나 후회는 늦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미…쳐서….”

“움직이지 마! 이 새끼야!”

“…….”

“움직이면 이 자식 목 그대로 꺾어버릴 테니까.”

“…….”

“나… 농담하는 거 아니야. 정말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이기영… 이 새끼 목 그대로 꺾어버린다.”

‘그러게 친구를 가려 사귀었어야지.’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었지만 범죄자 놈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이쪽의 목을 붙잡는다.

어떻게 이렇게 뻔한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지….

‘진짜 전형적인 악당이자너.’

“…….”

“움직이지 마! 나… 나 사람도 죽여본 적 있어. 내가 농담하는 거로 보여?”

“…….”

“비켜!”

“…….”

“비켜, 이 새끼야! 뭘 멍하니 보고만 있어? 내 말 안 들려? 거기에서 당장 꺼지라고! 정말로 엿 같은 꼴 보기 싫으면!”

“죽여.”

“뭐… 뭐?”

“나랑 상관없으니까. 어디 한번 꺾어보라고. 죽여.”

“이… 이 새끼… 내가… 내가 못 할 것 같아?”

“그러니까 죽이라고.”

배짱 싸움이 아니다. 비릿하고 입꼬리를 올리는 우효열은 어디 한번 죽여보라는 듯이 녀석을 바라보며 도발하고 있다.

정말로 이쪽이 죽든 말든지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겠다는 모양새.

조금 빈정이 상하기는 했지만 이 깡패 놈이 이쪽을 죽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목을 꽉 잡은 손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이 새끼… 우효열!!”

눈 깜빡할 사이에 발을 크게 구른 녀석인 순식간에 이쪽의 앞으로 다가와 내 목을 붙잡고 있는 범죄자의 안면을 발로 차 버린다.

엑스트라의 몸이 벽에 부딪히고… 친구를 잘못 사귄 녀석이 잔뜩 쫄은 채로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비교적 소동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것이다.

‘그래도 눈치 볼 줄은 아네. 죽이지도 않았고. 아무래도 아카데미 안이니까 경비병들한테 맡기는 게 가장 덜 귀찮은 방법이지. 암. 그렇고말고.’

“…….”

“…….”

“…….”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시작됐다.

어째서 나타났는지, 어째서 도와줬는지 묻기에도 뻘쭘한 상황.

시한부 이기영은 선뜻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마 이기영이 녀석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은 아마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자신이 한심스러울까. 천재 군사라고 모두가 치켜세워주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뭐라도 할 것 마냥 패밀리아들의 오퍼를 모두 거절하며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사고가 터졌다.

만약 우효열이 이기영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이곳이 아카데미가 아닌 소도시의 슬럼가였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으로서 이기영은 무력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가장 도움받기 싫은 종류의 인간에게 도움받고… 자존심 때문에 감사의 표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최악이야.’

정말… 최악이다. 꽃기영… 너… 너 이런 애였니?

가슴 한구석에 피어오르는 자괴감, 우효열에 대한 질투, 온갖 추악한 감정들이 뒤섞여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다.

‘정말… 정말 나… 최악이구나.’

물론 우효열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다친 곳은 없냐고 물어보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겠지만 아쉽게도 이 새끼는 정상인이 아니다.

자신이 어째서 여기에 왔는지도 의아해하고 있을 테니, 괜찮냐는 말 한마디 건네는 게 어렵기는 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녀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녀석은 결국 어렵사리 한마디를 건넸다.

“한심하군.”

“…….”

“정말로 한심해.”

툭 하며 녀석이 주워 던진 귀중품 주머니가 앞에 떨어진다.

이기영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슥슥 닦는다.

우효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무게를 잡으며 이쪽을 지켜볼 뿐이었다.

“저도….”

“…….”

“저도 한심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

“그리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틀비틀거리며 우효열을 자연스럽게 지나쳤을 때였다. 한심하다 이후에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녀석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온 것이다.

“어째서.”

“…….”

“어째서 끼어든 거지?”

‘이 새끼 보고 있었구나?’

그래 내가 보고 있을 줄 알았어.

“너와는 상관없는 일 아니었나?”

“…….”

“어째서 끼어든 거냐.”

“당신… 보고 있었군요.”

“내 말에 대답해라. 이기영.”

‘너 지금 형 이름 불러준 거니?’

뭐라고 대답해야 적절할까. 선택지는 많았지만 너무 감동적인 멘트는 부작용을 낳기 쉽다. 그냥 드라이하게 가는 것이 가장 적절한 선택지겠지.

아무 감정 없는 말투로 그냥 담백하게 중얼거려보자.

“그냥…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에요.”

이 정도로 충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당신 탓만 하는 저놈들이 꼴 보기 싫었을 뿐이에요.”

굳이 주석을 달아보자면 이 정도.

“그래서… 저도 모르게…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됐어요.”

대답은 듣지 말자. 굳이 뒤를 돌아 녀석을 바라볼 필요도 없다. 그냥 내 갈 길을 가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원래 들개 새끼들은 한 발자국 다가서면 한 발자국 물러난다.

어느 정도 시점이 오기 전까지는 먼저 손을 뻗는 것은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

양아치 놈들은 우효열이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 이쪽은 곧바로 워프게이트로 향하는 게 맞겠지.

그렇게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얼굴도 엉망, 기분도 엉망이었지만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고 생각하면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바보 같은 일에 휘말렸고, 바보 같은 행동을 했다. 평소의 꽃기영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멍청한 짓이었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맞은 곳은 욱씬거리기는 했지만 자신이 싫어하는 타입에게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돌이켜보니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이대로 끝은 아니지? 효열아. 그렇지?’

부디 방금의 사건이 네가 좋은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을 줬으면 하는데.

‘기대… 저버리지 않을 거지?’

이번에 떨어지면 너무 오래 떨어져 있게 되는데… 다시 만날 때도 이 새끼가 혼란스러워할 것 같지는 않은데.

‘제발.’

“중앙 워프게이트입니다. 어디로 전송해 드릴까요?”

“하리젤로 부탁드려요.”

“네. 하리젤로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그때.

다시 한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리젤. 한 명 더.”

슬그머니 뒤돌아본 것에 자리한 것은 어김없이 갑작스레 나타나는 그 녀석.

멀어질 때 즈음에 슬그머니 발걸음을 내딛는 그 녀석이었다.

내가 뭐라 묻기도 전에 녀석이 다시금 중얼거렸다.

“…….”

“…….”

“…….”

“착각하지 마라.”

“네?”

“우연히 행선지가 겹쳤을 뿐이니.”

‘우효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여어어어어얼!’

“…….”

‘이럴 줄 알고 있었다구!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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