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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14화 (1,11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14화

잘못된 만남 (1)

“해… 해냈어….”

“…….”

“해, 해… 해냈다구! 오… 오빠… 소, 소라야. 해냈어!”

“…….”

“히… 히히힛… 히히히히힛! 히히히푸… 푸히힛.”

“…….”

“오, 오, 오빠! 히힛… 히푸히히히힛!”

딱하기도 하지.

“히히히힛… 히히히푸히히힛….”

아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자신뿐만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정의 시선으로 그녀를 지켜보는 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주는 아니지만 로헨 대륙에서는 가끔 일어나는 이야기다.

구태여 특별한 사건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저런 이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마음에 병이 생긴 걸까.’

이유는 여러 가지다. 몬스터 사냥이나 던전 원정을 나가 동료들이나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혼자서 살아남았다든가. 전쟁에 참여해 그 참혹한 참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왔다든가. 정신계열의 몬스터와 마주쳤다든가.

이세계로 소환됐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고, 튜토리얼로 소환된 이후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신력이 약한 사람들이 살아남기에는 로헨 대륙은 차갑고 냉정한 곳이었다.

게니우스들에게 선택을 받지 못하거나 패밀리아와 연결점을 가지지 못한 이들의 결말은 죽음이 아니라면 저런 식이었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동정심을 갖는 이유는 아마 그녀의 복장 때문.

‘원피스에… 하얀색 구두.’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로헨이 아니라 지구에서나 입을 것 같은 복장. 광장의 한가운데에서 혼자 중얼거리며 웃고 있는 여자는 아마 소환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리라.

로헨의 하류 계층에서 닮고 닮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이제 막 대륙으로 들어온 뉴비.

초보자 아카데미에 들어가지 않았거나 퇴교했고 그 이후로 적응하지 못하고 지구를 그리워하다 결국 마음의 병이 생긴 것이겠지.

그녀가 꼭 껴안고 있는 작은 인형 두 개만 봐도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저걸 인형이라고 불러야 할까? 간신히 천을 말아서 만든 인간 형태의 헝겊에는 어린아이가 그린 것만 같은 얼굴이 그려져 있다.

군데군데 바느질을 한 흔적이 눈으로 확인될 정도, 그것마저 쉽지 않았는지 손가락이 더러운 헝겊으로 둘둘 말려 있었다.

행색은 또 어떠한가.

몇 달간 씻지 못했는지 이 먼 거리에서도 악취가 풍겨오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뭉쳐 있다.

하얀색 원피스와 하얀색 구두에는 정체불명의 오물이 묻어 있는 것 같다. 손톱을 물어뜯거나 머리카락을 벅벅 긁는 습관은 덤.

계속해서 도시 밖에서 생활을 하다 이제 막 도시로 들어온 것일까? 어떤 사연일지 알고 싶지는 않다. 그녀가 견뎌야 했던 참혹함을 구태여 알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저렇고 작고… 귀여운 아이가….’

저 정도의 마음의 병을 안게 되었을까. 어떤 상처를 입었길래 저런 모습으로 광장을 돌아다니는 것일까.

“언니. 또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시죠?”

“응?”

“아까부터 저 사람… 계속 쳐다보고 있잖아요.”

“…….”

“저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셨던 거 기억하시고 계시는 거죠?”

“그런 건… 아니야.”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이제… 자리도 없어요. 저희가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더 이상은 곤란해요. 길냥이들이나 떠돌이 강아지들 들이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고요. 하물며 미친 사람이라니.”

“…….”

“대형 패밀리아 정도는 돼야 구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거죠.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하는 작은 파티에서… 저번에 세형 오빠 파티에서 나간 것도 언니 오지랖 때문이었잖아요. 이제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으면서….”

“그래도…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데… 동포들끼리 도와주고 편하게 지내면 좋잖니.”

“동포는 무슨 동포예요! 여기 그런 게 어디 있다고! 그렇게 따지면 저번에 우리 뒤통수 친 것도 동포였어요! 아직도 그 새끼가 우리 재산 가지고 튄 것만 생각하면 심사가 뒤틀려….”

“아무리 그래도 당장 쉴 곳도 없어 보이는데… 이대로 지나치는 건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적어도 하룻밤 편한 곳에서 자게 하고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잠깐이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평생이 되는 거예요. 언니.”

“그래도… 불쌍하잖니. 저대로 가면 일주일도 버티지 못할 거야. 아니… 당장 오늘도 버틸 수 있을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니.”

“…….”

“…….”

“아아악! 언니 마음대로 해요. 진짜!”

짜증 난다는 듯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채령이가 눈에 보였지만 그녀도 내심 자신이 저 아이를 돌봐주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 역시 안 좋은 상태로 자신에게 구조됐었으니… 예전 생각이 나기도 했겠지.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광장으로 향하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야. 너. 잠깐….”

“그렇게 말하면 놀라잖니. 채령아.”

“…….”

“저기…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

“…….”

“저기요… 저기… 저기…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는 한 건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극도로 이쪽을 경계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 앞선 감정은 지워졌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놀란 것은 아닐까. 해칠 의도가 없다는 듯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경계의 눈빛이 조금은 사그라든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겁을 먹었는지, 움츠러든 어깨를 보니 불현듯 가슴이 아파온다. 조금만 더 거리를 벌리고….

“저는 남궁선이라고 해요. 우리 아가씨는….”

“…….”

“…….”

“…….”

이윽고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직후.

“정, 정하얀….”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예쁜 이름이네요. 하얀… 정하얀.”

“…….”

“실례지만… 어디 머무르실 곳은 있으신가요?”

“…….”

생각보다 더 경계하는 것만 같다.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는 듯한 행동에 마음이 저려온다.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으면….

“하얀 씨…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셨으면 해요. 잠깐… 저희가 하얀 씨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

“머무르실 곳도 제공해 드리고… 식사나… 그리고….”

“도움… 필요 없는데….”

“네?”

“저… 오, 오빠 만나러 갈 거거든요….”

“…….”

“…….”

“네?”

“저… 오, 오, 오, 오빠… 만나러 가요. 아… 아! 소, 소라도 만나러 가요.”

인형을 슬쩍 내보이며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너무나도 해맑은 미소.

“오… 오빠라는 분은… 친….”

“남… 남자 친구. 아… 아아… 아니지. 약, 약혼자… 약혼자… 히… 히힛… 약혼자래… 약혼자….”

“…….”

“여… 여기 올 때는 분명히 같이 왔는데… 중간에 떨어져 버려서….”

“아.”

‘죽은 거구나.’

운 좋게 함께 소환됐지만 튜토리얼에서는 살아남지 못한 모양, 그 충격으로 병을 얻은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녀가 보이는 미소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그녀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껏 굉장히 소심한 태도로 대화에 임했던 것과는 반대로 톤이 조금 올라가 있었고 표정도 밝아 보이지 않은가.

“그렇군요.”

“오, 오… 빠가… 히… 히힛….”

“언니… 얘… 설마….”

“아무 말 하지 마. 채령아… 그… 그럼 하얀 씨. 잠깐….”

“…….”

“잠깐… 잠깐만 쉬고… 목욕도 하시고 가시는 건 어때요?”

“안, 안… 안, 안 되는데….”

“아….”

완강해 보이던 그녀가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왠지 모르게 빤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이내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이 어디인지를 확인하고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쪽 목에 걸려 있는 아이템, 거울의 반향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확실하리라.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황에서도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희망이 있어.’

아직 완전히 미쳐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 시간은 걸리겠지만 어쩌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씻… 씻어야 되는데.”

“…….”

“옷… 옷도 갈아입어야 될 것 같은데….”

“씻고 옷도 갈아입으면 되죠. 약혼자분을 만나러 가시는 거죠? 채령아. 혹시 너한테….”

“네. 있어요. 저랑 체형도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럼 잠깐만….”

머뭇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살짝 끄덕인 모습,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채령이도 한숨을 크게 내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 20분 정도만 걸으면… 아! 혹시 식사는 하시고 오셨나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타이밍 좋게 들려온다. 살짝 얼굴을 붉힌 채로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니 이 상황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들르신 김에 식사도 하시고 가세요. 채령아. 하우스에 연락 좀 넣어줄래?”

“네. 언니.”

당연하지만 원활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이쪽을 경계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도망치거나 발작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오히려 본인이 더 급한지 자꾸만 속도를 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식사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어서 빨리 단장을 하고 약혼자를 만나는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보여 씁쓸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금방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도, 현재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모두 그녀의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막 걸음을 멈춘 것은 조용히 걷는 것에 지친 채령이의 수다가 시작되었을 때였다.

“언니. 근데 그거 들었어요?”

“뭐?”

“이기영 말이에요.”

“아. 이번 아카데미 전체 수석? 그… 천재 군사?”

“네. 결국 꽃과 풍요의 오퍼를 거절했다지 뭐예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쟁쟁한 패밀리아의 오퍼를 전부다 거절했대요. 행선지는 하리젤이라고 들었는데… 소문으로는 막대한 지원을 받고 패밀리아를 창설한다고 하던데요?”

“뭐?”

“걔 있잖아요. 한소라도 마찬가지예요. 러브콜을 전부 거절하고 결국 아헨델로 간다고… 참… 둘이 연인이라고 들었는데… 하는 짓도 진짜 비슷하지 않아요? 너무 완벽한 것 같다고요. 천재들끼리는 천재들끼리 맞는 게 있나 봐. 뭔가 우리랑은 시작점부터가 다르다는 게….”

툭.

“어?”

“하얀 씨?”

“방, 방금… 뭐라고… 했… 했… 했….”

뭔가 잘못됐다.

“어… 어. 어… 히끅… 어?”

“하얀 씨? 하얀 씨 괜찮으세요?”

“소, 소, 소라… 소라가… 오, 오, 오빠….”

꽉 쥔 손에서 흘러나오는 피. 핏발이 선 눈, 계속해서 떨리는 이상한 마력, 마치 고양이 앞에 쥐가 자연스레 떨리는 다리.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압박감에 걸음을 떼거나 말을 꺼내는 것도 할 수 없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를 보았을 때 인간이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 언젠가 게니우스를 보았을 때 느꼈던 공포.

‘뭔가… 잘못됐어.’

그녀의 눈을 본 순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거… 거짓말이지. 당, 당신들.”

‘무슨… 힘이….’

“거, 거, 거!!! 거짓말쟁이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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