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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15화 (1,11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15화

잘못된 만남 (2)

“이… 이! 거짓말쟁이들!”

“아… 어….”

“나쁜 사람들!!! 나, 나, 나쁜 사람들! 벌… 벌 받을 거야! 벌 받을 거라구!”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조건 이곳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옷깃을 꽉 붙잡은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몸이 끌려갈 정도, 굳어 있는 몸을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하지만 공포에 굳은 몸은 자신의 의지를 배신하고 있었다.

‘어? 어?’

기분 탓일까. 갑작스레 하늘이 어둡게 느껴진 것은 이쪽의 기분 탓일까.

분명히 한낮이었을 터인데 어느 순간 밤이 된 것 같다. 갑작스레 어두운 그림자가 도시 전체를 감싸 안고 있는 것만 같다.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는 작은 여자의 분위기에 압도당해서 저도 모르게 이상한 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주변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였다.

정체 모를 공포 때문에 굳어 있는 몸을 되찾을 정도로 패닉 상태에 빠져든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거… 뭐야?”

“도망… 도망쳐….”

“도망쳐! 씨발! 저게 뭐야!!”

“꺄아아아아아아악!”

“도망쳐요! 피해! 피해!!”

“제기랄… 제길… 이게… 이게….”

“살려줘! 살려줘!!!”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도시가 떠나갈 듯 울리는 비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사방팔방 흩어지는 모습.

모두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목적지는 제각각이었지만 어떻게든 광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모습은 이질적인 말로도 부족하다.

광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어버렸다.

상인들이 깔아놓은 노점상의 물건들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지고 달리다 넘어지는 이들은 부기지수, 어린아이들을 꼭 껴안고 있는 이들과 손에 들고 있는 것까지 패대기치며 달리는 이들도 눈에 보였다.

고작 몇 분 사이에 평화로웠던 장소가 지옥이라도 강림한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듯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이들이 대다수이지 않은가.

“이걸… 어떻게… 키리안 왕국 놈들 짓인가?”

“…….”

“전쟁… 이라도 난 거야? 하… 제기랄… 이렇게. 어떻게 이런 마법을….”

그들의 표정 속에 깃든 것은 절망, 자신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압도적인 절망감.

그들의 시선을 따라 자연스레 올려다본 하늘에는….

“언… 언니….”

회색 구름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운석이 자리해 있었다.

“아….”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갑자기 하늘에서 운석이….

‘지금 이거… 꿈꾸고 있는 건가.’

방금 전까지는 분명 하우스로 돌아가고 있는 도중이었는데 왜 갑자기 운석이 떨어지고 있는 걸까.

“거짓말이잖아!!!!!!”

다시 한번 들려온 고함에 그녀를 바라봤을 때, 코피를 줄줄 쏟으며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정하얀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얘야.’

“너… 너희 누구야!! 너희 누구야아아!!!! 이익! 이이이익!”

‘이 여자야.’

“너희가 누군데!!!”

어떻게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주문을 외운 흔적 따위는 없었으니까.

심지어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그녀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아지랑이처럼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그녀의 주변을 감싸고 있다.

태풍이라도 부는 것처럼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도 이곳에서는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지옥이라도 강림한 것 같은 주변과 다르게 자신과 채령이의 로브와 옷깃은 미동조차 없다.

단순한 가정에 불가하지만 어쩌면 지금 이 현상을 만들고 있는 것은 눈앞에 있는 이 여자일지도 모른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그것 말고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채령이 역시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안색을 창백하게 굳히고는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거짓말… 거짓말 아니에요!”

“이익! 이이이익!”

“저희… 저희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에요! 마녀님!”

“웃, 웃, 웃기지 마! 이익!”

“정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저, 저도 들은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제발….”

“웃기지 마!”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 들은 이야기예요! 조금만 이번 아카데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요. 저희 말고도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예요!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믿어주세요! 제발… 잘못했어요. 믿어주세요! 마녀님! 그러니까 살려주세요. 살려… 주세요! 저… 저 아직… 죽으면 안 돼요!”

“나, 나는 안 믿어! 안 믿는다구!”

“설명할 시간을 주세요. 설명할 시간을… 제발! 저희들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에요! 제발!”

“…….”

“제발….”

앙다문 입술, 흔들리지 않는 눈.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딱 한 번만….”

“…….”

“증명할 수 있어요! 저희가 증명할 수 있어요!!!”

“…….”

“저희한테 기회를 주세요! 마녀님!”

그녀의 코에서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코피가 멈춘 것은 바로 그때였을 것이다.

이윽고 천천히 하늘이 다시금 밝아진다.

아까까지만 해도 지옥도로 변했던 소도시는 갑작스레 다시 조용한 분위기의 마을이 되어버렸다.

노점상 아래 몸을 숨기고 있던 사람도, 귀와 눈을 가린 채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도, 어디론가 급하게 뛰어가던 사람들도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소도시 전체에 환상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모두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눈과 몸을 매만지고 있었다.

“흐윽… 거짓말… 이잖아… 히끅… 흐으윽… 흐윽….”

“…….”

“히끅… 끄으윽… 거짓말이잖아.”

남은 것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사람 하나.

아까 봤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작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작은 손은 기도라도 하려는 듯이 꽉 모으고 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아마 버려진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까.

“언니… 방금… 방금 그거….”

“…….”

“언니….”

“가만히 있어 채령아. 절대로 이분을 놀라게 해서는 안 돼.”

“…….”

“…….”

“거짓말… 이잖아… 흐윽… 오, 오, 오빠….”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가요?”

“히이이잉….”

“하얀 씨?”

“그, 그… 그러니까. 소, 소라가….”

“…….”

“나… 나는 소라를 믿어서… 오, 오빠랑 같이… 근… 근데 소라가… 셋이서… 자주 어울렸는데… 어, 어느 날부터 오빠한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았는데… 생… 생각해 보니까. 소라랑 오빠랑 둘이 같이 있… 있는 것도 많이 본 것 같아서… 둘이 이야기도 많, 많이 하고… 가… 가끔 나도 모르는 이야기도 하고… 소, 소라가 오빠 비서로 일했었는데… 계속… 일, 일하고 싶은 것 같았는데… 생각해 보니까. 소라가… 일, 일을 그만뒀을 때 너, 너무 섭섭해해서… 이 이상하다고 느꼈었는데….”

“…….”

“오, 오빠랑… 소라랑… 헤, 헤어지구 나서… 히끅… 흐윽… 어쩐지 연락도 없어서… 날, 날 피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에… 그랬는데에… 히끅… 흐구윽….”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파악하기 어렵다. 일단 울음소리와 섞여 목소리도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고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방금 저 운석을 소환한 것이 그녀였다는 것. 머리카락의 끝부분이 하얀색으로 변해 있다는 것은 명백하게 마력 탈진 현상을 겪고 있다는 증거였다.

“같이… 같이 침대에서 자고 그, 그랬었는데… 그, 그러다 보니까 소라가… 오, 오빠가… 너무… 너무… 흐윽… 히끅….”

“언… 언니. 우리 도, 도망쳐요.”

속삭이는 목소리.

하지만.

‘어디로?’

이 상황에서 도대체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하늘의 운석이 떨어진다면 자신들만 죽는 것이 아니다. 도시 자체가, 아니, 이 지역 전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최악의 선택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게다가.

‘이기영과 한소라?’

그리고 눈앞에 있는 정하얀까지. 이걸 단순히 우연이라고 불러야 할까?

갑작스레 로헨 대륙에 소환된 두 명의 천재와 눈앞에 있는 정체불명의 마법사가 등장한 걸 정말로 우연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자꾸만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단순히 마음에 병을 얻고 있는 여자의 헛소리라고 생각하며 넘기기에는 이 우연이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외된 이들을 위로하는 조용한 빛이 당신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소외된 이들을 위로하는 조용한 빛이 그녀를 이대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느껴요. 조용한 빛 님.’

일단은 천천히 그녀를 살펴보는 것부터.

‘당장 해를 끼치지는 않을 거야.’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해를 끼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녀는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다. 벌써부터 마력을 회복하고 있는지 머리 색이 돌아오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그랬군요.”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은 채로 머리를 조금씩 쓰다듬고,

“마음 아프시겠어요.”

조금 더 용기를 내 꼬옥 안아주자 아니나 다를까 와락 안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 것도 잠시….

“소문이 사실이 아닐지도 몰라요.”

“으응….”

“이… 이기영이라는 분과 약혼하신 사이였다고 들었는데.”

“으응… 아니… 네… 오, 오빠랑은… 대륙… 아… 아! 이, 이건 말하면 안 되는구나.”

“네? 그건….”

“아… 아니… 아무… 아… 아무것도… 아니… 에… 요.”

“아, 아무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봐도 늦지 않아요, 하얀 씨. 한소라 씨도, 이기영 씨도 정하얀 씨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들었는데… 정말로 하얀 씨가 생각하는 두 사람이 하얀 씨를 배신할 사람들인가요?”

고개를 젓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말했던 채령이는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 소문이 진실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아, 아닐 거야. 으… 으응. 아닐 거예…요.”

“그렇죠? 일단은… 일단은 하우스로 같이 가요. 가서 씻고 식사도 하시고… 조금 쉬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후의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요? 너무 피곤하셔서… 좋은 생각을 할 여유가 없으신 거일지도 몰라요. 하얀 씨는 분명히… 오빠를 만나러 가신다고 하신 걸로 들었는데.”

“네, 네….”

‘진정시킨 건가?’

아니, 어쩌면 그저 혼자 있기 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 만약에 진짜면….”

“그럼 그때 가서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요?”

소매를 꼬옥 하고 잡아당기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같… 같이 가줘… 요.”

“네?”

“같이… 가요.”

“어디를요…?”

“…….”

“…….”

“하리젤.”

“…….”

“오… 오, 오빠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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