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116화 (1,11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16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동료 (1)

“일단은 실적을 내는 것, 이게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

“꽃과 풍요와 가녀린 촉수, 그리고 다른 중견 패밀리아에게 받은 자금이 꽤 돼지만 아마 지속적인 투자를 해줄 패밀리아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겠죠. 더욱이 실적을 내지 못한다면 초창기에 받았던 관심들도 점차 사라지고 말 거예요. 저는 물론이거니와 당신도 마찬가지겠죠. 그들은 저희가 굵직한 원정 때 등을 맡길 만한 인선으로 성장하는 걸 바라고 있으니까요.”

“…….”

“제가 하리젤을 첫 행선지로 삼은 이유는 이 소도시가 저희 같은 사람들이 시작하기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워프게이트가 바로 중앙과 연결되어 있지만 안정화나 개발이 전부 끝나지 않았죠. 질 좋은 장비들이 많이 유통되는 장소이기도 하고 소모품들도 싼 가격에 구할 수 있어요.”

“…….”

“무엇보다 하리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중앙으로 진출하고 싶어 하는 인재들이라는 거예요. 가능성이 있는 플레이어들을 키우는 것도 좋겠지만 파티에 필요한 것은 당장 전력이 될 수 있는 베테랑들이에요.”

“…….”

“중앙에서 밀려난 레벨5, 레벨4 플레이어들 정도는 충분히 영입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조금 꺼림칙하게 생각하겠지만 아마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그쪽에서 목매게 될걸요. 제가 찾고자 하는 건,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원석들이고요.”

“…….”

“아! 유일한 변수는… 키리안 왕국과 브리트니안 왕국 사이에 긴장감이 생기고 있다는 것 정도겠네요. 제대로 된 정보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브리트니안 왕국에서 키리안에게 마법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어제 일어난 일이니 자세한 정보는 내일쯤에 드릴 수 있겠네요.”

“…….”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시기상조예요.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하리젤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그쪽으로 움직일 거라는 보장도 없고요. 물론 이 두 국가의 전쟁이 메인스트림으로 분류된다면… 계획에 지장이 생기겠지만… 현 로헨 대륙의 정세를 보면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

“아마 빠르게 움직인다면 파티를 구성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

“아! 파티는 4인에서 5인 정도를 고려해 보고 있어요. 구성은 당신을 보조해 줄 수 있는 사제, 유틸 마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마법사, 도적이나 궁수 같은 레인저 직군, 그리고 전위를 담당해 줄 탱커, 당연한 말이지만 기본적으로 당신을 중심으로 파티가 구성될 거예요.”

“…….”

조용히 팔짱을 끼고 이쪽을 바라보는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은 거만해 보이는 얼굴, 기본적으로 짜증이 장착되어 있는 표정, 태도 역시 어째서 네가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말하는 듯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자너.’

아카데미에서 하리젤로 곧바로 워프게이트를 탄 이후, 함께 모험가 길드에 등록하고 곧바로 같은 여관에 체크인, 참고로 내가 먼저 우효열을 따라나섰다.

어차피 숙소는 한정적이었지만 같은 값이라면 가까운 곳에 지내는 게 유리하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일 아침 만나면서 가벼운 미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어떻게 버릴 수 있으랴.

물론 한 발자국 가까워지면 한 발자국 멀어지는 게 들개들의 습성이었지만 이미 들개는 이쪽 곁은 떠날 수 없을 거라 여겨졌다.

‘자연스럽게.’

집으로 들인 것도 아니다. 당연히 함께 무언가를 해보자고, 너 내 동료가 돼라! 각을 잡고 소리를 친 것도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장애를 앓고 있는 녀석이 부담스러워하는 요소들을 쳐내고, 모든 걸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적절하지 않은 예지만 자연스레 동거를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냥 어쩌다 보니까 서로의 집에 서로의 짐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그러다 월세 아끼자고 살림을 합치게 되고,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다 보니 같이 살게 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유대감도 깊어지고, 그렇게 더 시간이 지나다 보니 가족 같은 형태로 변환되는 이상적인 태세전환.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효열에게 같이 활동하자고 이야기를 꺼내본 적도 없었다.

아직 이기영과 우효열은 미묘한 거리감이 있었으니까.

서로가 서로의 재능을 질투하지만 역설적으로 존경하는 흐름.

이 설정은 버리기 아쉬운 설정이었다.

게다가 이기영은 아카데미에서 일어났었던 작은 사건을 기점으로 우효열에 대한 호감도 포인트를 약 10 정도 올려놓은 상태였다.

눈에 띄면 이야기하거나 함께 일을 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호감도.

녀석 역시 자신이 호감도를 올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그동안 차가운 모습을 보여줬던 이 천재가 갑작스레 살가운 모습을 보일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냥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여관에 딸린 식당에서 마주쳤고,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같은 자리에 앉고, 식사하다가 심심하니까 혼잣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다가 삼 일째에는 자연스럽게 함께 움직이는 플랜을 세우기.

‘이 새끼 아마 우리가 처음부터 같이 활동하자고 한 줄 알 거야.’

물론 우효의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은 쉽지 않다.

“…….”

“분명히.”

“…….”

“나는 따로 볼일이 있다고 했을 텐데.”

‘그래, 그래. 너 따로 볼 일 있지. 그래. 알았어. 알았어. 누가 그거 모른데? 다 이해해요.’

“파티를 만들 생각은 없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한 번 구해줬다고 내가 너와 함께 활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겨우 그런 걸로? 나는 그 자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내가 하리젤로 온 건 어디까지나….”

‘그래. 그랬지. 개인적인 용무가 있었지? 으응. 그래. 형은 다 이해해. 응.’

“저도 파티를 결성하자고 말씀드린 게 아니에요. 그냥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 것뿐이죠.”

“…….”

“효율의 문제예요.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구태여 비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필요는 없죠. 던전 조사도, 원정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보다는 여럿이 해결하는 게 효과적이에요. 전투는 말할 필요도 없죠. 원정을 나갔을 때 불침번은 또 어떻고요? 당신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움직이는 게 불편하다 여기겠지만 편하다는 게 효율적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모든 걸 혼자 할 수는 없어요. 시작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인력이 필요한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

“구태여 시간을 버리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나요?”

“뭐?”

받아랏!

“저는 3년밖에 안 남았어요.”

“…….”

“길어야 3년이요.”

“그게…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

“파티를 만들고, 세력을 키우자는 게 아니에요. 동료라는 말보다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뭉쳐서 인력사무소에서 구한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게 편하실 거예요. 따로 패밀리아 하우스를 만들거나, 길드에 파티 등록을 하지도 않을 거고요. 다른 친분 활동이나 원정 후에 피드백을 하는 시간도 없을 거예요.”

“…….”

“물론 다른 파티원들이랑 연락할 필요도 없어요. 당신이 필요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함께 움직일 필요도 없고요. 당신은 저를 통해서 인력이 필요하다고 싶을 때, 말만 하면 돼요. 아니면 제가 물고 온 일거리에 손을 얹는 방식이어도 되고요.”

“흥.”

가볍게 콧방귀를 끼고 있었지만 녀석 역시 내 말에….

‘부정할 수 없을 거야.’

녀석이 하리젤을 시작점으로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겠지만 던전 원정 위주의 활동이 장려되는 하리젤에 뿌리를 내린 이상, 파티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

‘던전 공략이라는 게 하루 만에 뚝딱 되는 것도 아니고….’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개월이 넘게 걸리는 활동이다. 아무리 관련 아티팩트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력이 직접 불침번을 서는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길을 빠르고 안전하게 찾을 수 있는 레인저의 존재나, 언어학이나 룬마법 같은 것들을 배운 마법사가 던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우효 녀석의 머리로는 던전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퍼즐조차 풀기 어려워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성장할 수 있는 루트를 미리 생각해 놨겠지만….

‘그거 다 물거품됐자너.’

왜.

하리젤로 와버렸으니까.

안 그래도 아카데미 때문에 잡아먹은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 놈의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조건도 괜찮아.’

동료의 유대나 친분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되고, 진짜 회사에서 일하는 것처럼 모이고 일 끝나면 헤어지는 드라이 한 파티.

어차피 로헨 대륙을 날라야 하는 꽃기영의 입장에서는 구태여 다른 인연을 만들기도 뭐하니 이것 또한 윈윈이었다.

‘괜히 정들잖아.’

“나는 할 일이 있다고 했을 텐데.”

“할 일 하세요. 저도 할 일 많으니까.”

어차피 김현성 이 새끼도 초반에는 엄청 싸돌아다녔어. 자기 적들 죽이고 가면 쓰레기 찾아다니고 이상한 짓거리 하느라.

당연히 너도 할 일 많겠지.

회귀자들은 초반에 바쁘다. 굳이 이 새끼 개인 활동에 끼어들 필요도 없고, 끼어들기도 싫다.

“…….”

용무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이쪽이 귀찮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몸을 일으켰다.

“…….”

“10시까지 들어오세요. 그때 또 말씀드릴 거 있으니까.”

“흥.”

저건 긍정의 흥이다.

조금이나마 관심이 생겼다는 거겠지.

“너는… 무엇을 할 작정이지?”

“저는 모험가 길드로 갈 거예요.”

‘난 파티 구성해야지.’

“사람들 좀 알아보려고요. 방금 제가 말씀드린 조건에 부합하고 고정파티를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 새끼 시바 싸가지 없게 어른이 말하는 도중에 나가는 것 봐. 진짜 버릇을 단단히 고쳐줘야 돼. 저런 놈들은.’

“11시까지 오겠다.”

“네?”

“그냥 이야기만 들어보겠다는 것뿐이다.”

“…….”

출구 앞에서 한 차례 가오를 뽐낸 이후 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쳐 주고 싶어진다.

‘쟤도 은근 손 많이 가는 스타일이야.’

전투 스타일 역시 그렇다. 녀석으로 정석적인 파티를 구성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넌센스, 검사치고 공간을 많이 사용하며 지랄발광을 하는 녀석의 특성상 다른 전위들과 호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녀석의 움직임은 약속된 움직임이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무언가였고, 그런 녀석의 돌발행동에 대응하며 호응할 수 있는 전위들은 흔하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마찬가지다.

마법사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몇몇 마법사들은 우효열에게 마법이 튈까 노심초사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특수직업군들로 찾아봐야겠어.’

당연히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는 꽃기영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로헨의 회귀자에게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그럴듯한 동료들을 만들어주는 게 진짜 첫 번째 과제였다.

막 바깥으로 나가려 짐을 챙겼을 때.

나갔던 문을 되돌아와 다시금 중얼거리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

“…….”

“그냥.”

“…….”

“그냥 10시까지 모이는 것으로 하지.”

“네!”

당연히 미소 짓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 친해진 거다?’

“…….”

‘베프 된 각인 거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