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17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동료 (2)
하리젤의 전경은 여느 도시들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물론 특색 따위는 없었다.
계획적으로 지어진 대도시라면 랜드마크라든가, 도시 특유의 분위기라든가 타 도시와 차별화되는 다른 특징들이 있겠지만 소도시 정도로 분류되는 하리젤은 모험가들이 거치는 교두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넓은 광장에는 파티를 구인하는 이들과 소모품과 아이템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넘쳐났고 곳곳에서 갈고리에 걸려 있는 몬스터의 사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라든가, 도시의 시민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편의시설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카페도 없자너.’
그나마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주점이나 모험가들이 머무를 수 있는 여관, 아이템의 보수를 위해 마련된 대장간이나 잡다한 것들을 판매하는 상점이었다.
이 소도시가 거주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용역시장이나 일터로 만들어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실제로 거리에서 눈에 띄는 사람들은 모험가가 아니면 상인들뿐이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나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없었다.
“경험 많은 전위입니다! 고블린 사냥 의뢰 가지고 있습니다. 보상은 무려 3골드. 마법사님만 오시면 바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레벨2, 검사와 궁수 대기 중입니다!”
“레벨4 파티에서 1일 대타로 뛰어주실 근접직군 분들 구합니다. 경험, 장비, 직업, 레벨 확인합니다.”
“사제님 모셔요! 사제님 모셔요! 레벨 상관없습니다! 몬스터 부산물 몰아드립니다!”
“레벨3 전사가 사제님 구합니다! 레벨2만 되시면 곧바로 모시겠습니다! 문의사항 있으시면 친절히 답변 드리니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말 걸어주세요!”
“패밀리아 초라한 도적에서 가족이 되실 분들을 모집합니다! 아직 작은 패밀리아지만 게니우스 님께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좋은 분이십니다. 가입 상담받고 있으니 문의 주세요.”
‘저런 데는 보통 함정이자너. 무슨 패밀리아를 길바닥에서 구하고 자빠졌어?’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다면 이 모든 풍경이 새롭게 느껴졌다는 것.
당연하지만 로헨 대륙과 이쪽의 건축 양식들은 미묘하게 다르다. 장비도 마찬가지고 몬스터의 외형도 차이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로헨 대륙은 뭔가 로마 양식에 가깝게 디자인된 것 같은 느낌이라 말하는 것이 맞을까.
석조 건물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고 게니우스들이 많은 만큼 크고 작은 신전들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종류의 신전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면 백이면 백 패밀리아 하우스.
눈에 보이는 목조 건물들 역시 주변의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잘 어우러져 있었다.
‘동상들도 엄청나게 많자너.’
물론 여유롭게 도시를 둘러보고 구경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저기. 거기! 여기 장비들 좀 보고 가세요! 싸게 해드릴게!”
“혹시 파티 있으신가요? 없으시면 잠깐만 이야기 좀….”
“실례지만 어떤 신을 모시고 계시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도쟁이들 진짜 왜 이렇게 많아?’
광장으로 진입하자마자 몰려오는 인파들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
“실례할게요.”
모험가에게서 나는 특유의 악취나, 몬스터 부산물에서 나오는 냄새는 덤.
커피를 마시고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카페들이 눈에 보일 리 만무했다. 여관에서 아침과 함께 나오는 싸구려 커피는….
‘시바 그걸 마시느니 차라리 안 마시고 말지.’
어차피 목적지는 모험가 길드, 사람들로 가득 찬 광장을 꾸역꾸역 몸으로 밀며 빠져나오자 꽤 간소하게 자리 잡은 모험가 길드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도 인간들은 많다.
모험가 길드에서 관리하고 있는 의뢰서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플레이어들과 광장과 마찬가지로 파티를 찾고 있는 플레이어들.
광장과의 차이점은 모험가 길드에서 매칭을 해준다는 것 하나뿐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조금 더 정리된 듯한 느낌이 강했다.
‘시바 이제 숨 좀 쉴 수 있겠자너.’
“저….”
“이 허여멀건 한 샌님은 뭐야?”
“네?”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기웃거리지 말고 저리 가쇼. 물건 같은 거 안 사니까.”
‘아니, 시바. 이 털보 새끼는 뭐야? 길 좀 비키라고.’
“어머. 미안해. 끌리기는 하는데 이번 원정은 조금 그렇네. 남창을 데리고 가기에는 조금 험한 곳이라… 어디에서 나왔니?”
‘넌 또 뭐예요? 시바.’
“이 근방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새로 들어왔구나? 나중에라도 찾아가고 싶은데 혹시 어디 즈음에….”
“그런 거 아니에요.”
“어! 어머… 죄송해요.”
정리된 게 이 정도다. 온갖 인종들이 다 섞여 있고, 별별 놈들이 다 있다 보니 별별 상황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노래를 부르는 놈들도 있고, 길드 한쪽에 비치된 자리에서 벌써부터 술을 퍼마시는 놈들도 있었지만, 이 모든 새끼들의 공통점은 이쪽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것. 대놓고 낄낄거리는 놈들의 비율이 꽤 높다.
‘코디를 잘못 했나?’
그냥 깔끔하게 입는다고 입었는데 아무래도 모험가들과는 거리감이 조금 있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사제복을 입고 왔으면 이런 해프닝은 벌어나지 않았으리라.
살짝 속이 상하기는 했지만 놈들이 이쪽을 우러러보기까지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길드 안으로 들어온 이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기영 님?”
“아!”
“일찍 오셨군요. 미리 맞이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혹시… 에퀴아 님 맞으신가요?”
“예. 처음 뵙겠습니다.”
“굳이 나오지 않으셔도 되는데….”
“패밀리아 꽃과 풍요에서 받은 은혜가 많습니다. 어떻게 윌리엄 님의 가족을 소홀히 대할 수 있겠습니까?”
‘내 인맥이 이 정도라 이 말이야.’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당연히 들려온다.
소문에 민감한 놈들이면 이기영 석 자 정도는 들어봤겠지. 들었어? 시바 이게 나야. 모험가 길드 관리자랑도 친하다 이 말이야.
“그럼 위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릴게요.”
이후 시야에 비친 것은 레벨4의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전용 공간, 여기는 그나마 봐줄 만한 곳이었다.
기본적으로 주점의 형태를 하고 있었고 나름 바텐더처럼 보이는 직원도 눈에 보인다.
게시판을 둘러보는 인원들은 여유 있게 의뢰서를 읽고 있었고 아래쪽과는 다르게 파티원 매칭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듯했다.
당연히 의뢰서의 퀄리티도 차이가 있다.
원정을 나가는 패밀리아에서 외부인력을 고용한다든가, 아랫동네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던전 조사 의뢰라든가 혹은 레벨4 인원을 모아 위험지역으로 사냥을 나간다든가.
아래층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내용을 담은 의뢰가 대부분이었다.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커피 한 잔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
게다가 커피도 나온다.
‘참은 보람이 있자너.’
심지어 먹을 만하다.
레벨4의 플레이어라고 한다면 이쪽을 기준으로 영웅 등급 정도에 랭크되어 있는 플레이어. 어느 정도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졌다.
물론 이 등급 안에서 개인차가 심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희귀 등급 딱지를 뗐다는 건 칭찬해 줄 만하니까.
애초 레벨3 이하의 플레이어는 우효 녀석과 함께 움직일 수도 없다.
‘손이 많이 가기는 해.’
대충 파티원을 구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직접 현장에 나와봐야 했으니까.
새삼스레 생각해 봤지만 김현성은 수월한 편이었다. 얘는 그래도 김예리나 조혜진을 영입하지 않았던가.
회귀자라면 미래에 함께 싸울 동료들을 선점해 영입하는 것은 기본이다.
김현성이 괜히 회귀를 시작하자마자 정하얀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다.
유능한 동료를 먼저 선점하는 것은 회귀자의 덕목 같은 것이다. 기본 중의 기본, 베이직 중의 베이직.
‘이 새끼는 기본이 안 돼 있어.’
정적들 뚝배기는 있는 대로 깨고 다니겠지만 이 찐따는 1회 차의 인재를 자신의 품으로 끌고 올 생각이 없다.
아니, 아예 파티 자체를 만들 생각이 없다. 내가 1회 차의 인재라고 생각하는 놈들을 잡아다 와도 이 새끼가 그들을 포용할 거라는 보장조차 없다. 오히려 경계하지 않을까. 녀석이 윌리엄을 경계한 것 역시 그 연장선일 수도 있다고 여겨졌다.
그런 의미에서 1회 차의 영웅 같은 건 필요 없다. 물론 있으면 좋겠지만 로헨의 회귀자에게 필요한 파티원은 영웅이 아니라 녀석과 어느 정도 거리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함께 정신적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동료들이 아닐까?
‘모자란 능력은 내가 메워주면 되고, 마음의 눈이 있는데 사람 찾는 게 문제겠어.’
그게 모험가 길드로 온 이유였다.
보통 레벨4로 모험가 길드를 들락거리는 놈들은 어딘가 하자가 있는 놈들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이쪽 대륙에서도 보통 영웅 등급의 모험가들은 소속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은 클랜이나 길드에 소속되어 있거나, 대륙민들에게 소속되어 있거나.
소속이 없는 영웅 등급의 모험가들은 보통 하자가 있거나 아픔이 많은 이들뿐이다.
집단에게 배신을 당한 경우도 있고, 성격에 문제가 있어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경우, 아니면 캐릭터를 망캐로 키워 쓸모가 없다거나….
극단적으로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놈들도 많다.
‘정상적인 애들로 채울 거면 여기 안 왔지.’
윌리엄에게 추천을 받거나, 정식적인 루트를 통해 구인했을 것이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주변을 한 번 쓱 둘러본 것은 당연지사.
레벨4에 랭크된 플레이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꽤 좋기는 한데… 뭐 벌써부터 취한 것 같아?’
파티에서 음주 문제로 쫓겨난 새끼일 수도 있으니 아웃.
‘성장이 정체된 쪽도 아웃.’
“이봐, 내가 말이야… 저번에… 오우거 3마리와 전투를….”
‘허세 부리는 놈도 아웃.’
“이야기 들었는데. 꽃과 풍요에서 왔다고?”
“…….”
“혹시 꽃과 풍요에서 인원을 뽑는 게 맞다면…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꽃과 풍요에 관심 보이는 놈들도 아웃.
능력치와 직업, 성향과 기벽, 아이템 수준이나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확인하고 분류한다.
여유가 되는대로 아래층까지 살피면서….
‘기벽 외로운 늑대 이런 것도 괜찮네.’
성향, 침묵하는 사색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아.
물론 단시간에 분류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모험가 길드에 죽치고 앉아 있다 보면 한 녀석 정도는 눈에 차는 놈들이 있을까 싶어 최선과 차선을 분류하고 있을 때였다.
아래층에서 사람 하나가 올라오는 것이 시야에 비친 것이다.
“…….”
“…….”
‘베테랑이네.’
굳이 마음의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장비, 무장 상태, 소모품을 따로 넣을 수 있는 벨트도 있고, 그 벨트에는 유사시 사용할 보조 무기가 장착되어 있다.
누가 봐도 세월이 느껴지는 장비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다는 것 역시 플러스 점수.
보통의 플레이어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꼼꼼함이었다.
특히나 저런 종류의 판금 중갑의 경우에는 장비들을 관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저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생존력을 높여주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리라.
성향도 괜찮고… 기벽도 정상적이고 왜 이곳에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돈데… 너 왜 여기 있어?
‘마음에 드는데?’
물론 사연 없는 무덤은 없는 법.
어째서 저 베테랑이 이곳으로 매일 아침 출근하는지는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
“…….”
‘너무 어르신인데?’
하얀색 수염, 백발의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노전사 하나가 시야에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