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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18화 (1,11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18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동료 (3)

무엇보다 얼굴에 있는 크고 작은 상처가 눈에 띄었다.

수많은 전장과 사선을 거치고 온 흔적들이 꽤 멋들어진다.

굳이 갑주의 상태나 장비를 보지 않아도 그가 베테랑이라는 사실은 피부로 느껴졌다.

일단 저 나이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낼 만했다.

노화를 막을 수 있을 만한 마력량을 보유하지 못한 것은 아쉽기는 했지만 전위에 중요한 자질은 마력량이 아니었으니까.

우리 돼지 새끼 역시 쥐꼬리만 한 마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던가. 어느 정도 커트라인만 넘긴다면 훌륭한 전위로 활동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물론 박덕구와 저 할아버지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이미… 스탯 하락이 진행 중이네.’

본인 역시 그걸 피부로 느끼고 있는지 몸을 만들어놓기는 한 것 같았지만 이미 시작된 노화는 막을 수 없다.

물론 관리를 잘해놓기야 했다. 진행 중인 스탯 하락을 최소화시킬 정도로.

아마 갑주 안은 근육으로 꽉 차 있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장신에 전위로 활동했던 만큼 몸도 거대해 보인다.

본인한테 부족한 부분을 굳이 채워넣으려고 한다기보다는 다른 쪽으로 노화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흔적들도 보인다.

웬만한 젊은이들은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피지컬은 그가 베테랑처럼 보이게 하는 요소들 중 하나.

물론 바하무트 같은 영웅급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저 나이에 저 정도 피지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이 세계 버프가 있다고 하더라도 뼈를 깎는 노력이 아니라면 저런 피지컬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체적인 스펙을 판단해 보자면 절대 잉여자원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71살.

‘이거 될까?’

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나이이기는 했다.

이미 전성기를 지나도 한참 지난 시기. 부족한 부분은 경험이나 다른 것으로 메운다고 하더라도 영웅급 파티로 성장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

잠깐 쓰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끝까지 끌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인선 이었다.

물론 그만큼 이점은 있다. 단순한 스펙보다 훨씬 더 커다란 이점을 말이다.

무려….

‘할아버지와 손자 롤플 할 수 있자너.’

얼음처럼 차가운 우효 녀석의 심장을 녹일 수 있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유대감 쇼.

이 새끼 분명히 엄마 아빠 없이 큰 것 같은데… 녀석의 소실된 인간성을 되찾기에는 저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시한부 이기영과 노전사의 이야기는 그 어떤 소재보다 더 잘 쓰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래 맞아. 시바. 그냥 유능한 사람 뽑을 거면 애초에 여기 오지도 않았을 거야.’

중요한 것은 캐릭터와 이야깃거리였다.

4인, 혹은 5인으로 구성된 한정된 파티원들로 이야깃거리를 뽑아내려면 노전사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

손자와 할아버지 롤로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 그들이 겪는 크고 작은 사건, 그리고 깊어지는 유대감.

‘노후자금 좀 쥐여주고 적당한 시기에 리타이어시키면 되자너.’

끝까지 끌고 가도 이상적이지만 구태여 끝까지 끌고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기본적으로 파티의 할아버지 포지션을 담당하면서 영화 같은 곳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혜로운 노인으로 딱이지 않은가.

젊은 놈들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고 결국 우리를 하나의 구심점으로 묶어주는 역할.

그게 옳은 노전사의 사용법이었다.

일단 말 한번 붙여보는 게 좋지 않을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지만.

‘으음.’

그렇게 등장하는 것이 정답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저 나이 될 때까지 일선에서 뛰는 이유가 있기야 할 텐데.

고정 파티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나이 때문이라지만, 저런 베테랑을 우습게 취급할 정도로 레벨4가 만만하지는 않을 텐데….

막말로 패기 넘치고 사고 많이 치는 젊은 놈보다는 저런 수많은 경험을 가진 베테랑을 선호할 만한 파티가 더욱더 많을 것이다.

팀을 꾸리기 싫어하는 이유가 있기야 있을 것이다.

돈에 환장할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명예욕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다른 고정 파티에게 배신이라도 당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거로 상처를 받을 정도로 저 노전사의 멘탈이 물렁해 보이지도 않는다.

‘레이먼 볼트.’

“레이먼 볼트… 영감….”

“…….”

“…….”

일단은 이곳에서 벗어나자.

조심스럽게 사람들 틈에 섞여서.

그 이후에는….

“에퀴아 님.”

“네? 이기영 님. 혹시… 벌써 용무가 끝나셨습니까?”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잊었던 볼일이 생각나서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깐 집무실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물론 가능합니다만….”

“윌리엄 님께 편지 한 통을 보내야 할 것 같아서….”

“하하하. 그런 부탁이라면 환영입니다. 그런데… 어찌 통신 아티팩트를 이용하지 않고서….”

이 동네 통신 채널에 아직 믿음이 안 가서. 워프게이트가 있으니까 어차피 금방 가잖아.

“아!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군요. 잊어주셨으면 합니다.”

“아니요. 그러니까….”

“집무실은 오른쪽으로 쭉 가신 이후 두 번째 방입니다. 사람을 통해 편지지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목적이야 뻔했다.

‘더 확실히 해야지.’

[친애하는 윌리엄 님께.]

로 시작되는 편지.

일단 미사여구로 대충 붙이고, 편의를 봐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한번 갈겨야지.

근황 토크 잠깐 하다가,

바로 본론.

[혹시 괜찮으시다면 모험가 길드의 레벨4 모험가, 레이먼 볼트 님에 대한 조사를 해주셨으면 해요. 아무것도 묻지 말아주시고요. 자꾸만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게 죄송하고 면목이 없지만… 부디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친애하는 윌리엄 님의 앞에 풍요가 함께하길 바라며]

[이기영 올림]

대충. 대충.

기왕이면 넉 장, 다섯 장 정도는 쓰고 싶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간편하게 작성한 편지.

사실상 받을 걸 받는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이기영이 꽃과 풍요의 패밀리아에게 해준 컨설팅을 생각해 보면 이런 부탁 따위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윌리엄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인지 답장은 빠르다.

[친애하는 이기영 님께.]

미사여구 스킵하고, 감사의 인사도 스킵하고, 근황 토크도 스킵하고.

[최대한 빠르게 레벨4 모험가 레이먼 볼트에 대한 조사를 완료해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이기영 님께 꽃과 풍요가 함께하길 바라며.]

[윌리엄 프라우드 올림]

‘너무 시간 끌면 안 좋은데.’

물론 레벨4 모험가 하나 조지는 데 며칠이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레이먼 볼트 영감이 세력이 있다거나 숨겨진 악의 세력이라든가 하는 경우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겠지만, 대기업의 정보망의 우수성을 알고 있는 이쪽의 입장으로서는 아마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괜찮은 보고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말로 레벨5 레인저를 시켜 레이먼 볼트의 발자국만 밟게 시켜도 그럴듯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도 되고, 여러 가지 처리할 일도 많으니 남는 시간을 활용할 방법은 많다.

여러 가지로 시간을 때울 생각을 했었지만.

다음 편지가 도착한 것은 정확히 다섯 시간 하고도 삼십 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미사여구 스킵하고, 아까 했던 감사의 인사도 스킵하고, 아까 전에 했었던 근황 토크 또 스킵하고.

[급하신 것 같아 최대한 빠르게 답장을 올립니다. 말씀하신 대로 레벨4 모험가 레이먼 볼트의 대한 정보를 드리고자 합니다. 정확히 언제 소환되었는지는 추정할 수 없지만 레이먼 볼트는 대도시 자운에서 활동하던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커다란 석궁과 방패를 함께 사용하는 플레이어로써 계약을 맺은 게니우스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패밀리아 그늘진 태양왕관에서 활동하던 경력이 있었습니다.]

[그늘진 태양왕관은 명망 높은 중견 패밀리아였지만 6년 전에 있었던 원정에 큰 실패를 겪어 지금은 해체한 패밀리아입니다. 당시 그들이 공략에 임했던 던전, 고통의 첨탑에서 돌아온 생존자는 레이먼 볼트를 포함해 단 6명뿐이었습니다. 정확히 33명이 사망했으며 그때의 원정은 그늘진 태양왕관이 몰락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레이먼 볼트가 종적은 감춘 것은 그 이후였으며 지난 3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 어떠한 연유로 하리젤로 들어온 것으로 판단됩니다.]

‘급조한 것치고는 꽤 꼼꼼하지만.’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기는 했다. 아마 도시 내에 있는 모험가 길드의 로그나 정보 길드를 통해 알아보면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이지 않을까.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레이먼 볼트가 어째서 혼자 활동하는 것을 지향하는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고통의 첨탑이라는 던전에서의 원정이 문제가 되었던 거겠지.

가족같이 지냈던 동료들을 전부 잃었다면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끼는 것을 원치 않고 있을 것이다.

적당한 거리감이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실제로 더 이상 고정 파티를 만들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꾼 것일지도 모른다.

던전 안에서 다른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뒷내용은 더 괜찮기는 하네.’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정보가 망라되어 있었다. 레이먼 볼트의 사냥터부터, 그가 하리젤로 와서 수주한 의뢰들. 장비의 구입처나 자주 이용하는 식료품점 등 뒤를 밟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대부분 이었다.

[레이먼 볼트가 의뢰를 받은 내용들을 살펴본 결과 그가 펠큰 마을이 관련되어 있는 의뢰나 마을을 지나치는 임무들을 자주 수주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펠큰 마을은 소도시 하리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마을로….]

[결과, 그가 마을 고아원에 주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거네.’

다른 정보들도 함께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당장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정보.

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걸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라 확신 할 수 있었다.

‘이거여.’

자기 먹고살기도 힘들 텐데, 할아버지 참 착하시기도 하네.

노후자금은 제대로 모으고 있는 걸까? 아무렴 좋았지만 이건 호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형아!”

“형!”

“오빠!”

“여기도! 여기도!”

나는 펠큰 마을에 고아원에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봉사활동은 특기자너.’

봉사하면 이기영, 이기영하면 봉사였으니까.

“그래. 그래. 얘들아 잠깐만 기다려 줄래요?”

“응!”

“으으응!”

당연히 고아원에 찾아온 할아버지를 만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왔어?”

“자네는….”

“…….”

“…….”

“처… 처음 뵙겠습니다. 어르신.”

그 어느 때보다도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미소를 장착하며, 청춘의 땀을 흘리는 이기영은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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