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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23화 (1,12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23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동료 (8)

‘쪽팔리자너.’

가무에는 재능이 없고 즐기는 편도 아니었다.

물론 대륙으로 떨어진 이후 여러 가지 공연을 보며 견식을 높이기는 했지만 단순히 감상하는 것과 그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차라리 베니고어를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는 상황이었다면 조금 더 나았겠지만 시장바닥에서의 갑작스러운 버스킹은 얼굴을 붉히게 하기 충분했다.

대륙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 음악이라는 것마냥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당연히 의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듣기 좋으라고 내는 콧노래가 아니라는 듯,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듯이 살짝 흥얼거리는 것이 포인트.

평소였다면 손쉽게 묻힐 만한 작은 소리였지만 쫙쫙 뻗어 나가는 매혹스킬은 삼거리 캠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콧노래를 각인시킨다.

‘실패하면 어쩌나 했네.’

점차 조용해지는 장내가 포인트. 전사의 노래를 부르며 럼주를 치켜올리던 거지들도 추억을 떠올리며 지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부랑자 놈들도 점차 입을 닥치기 시작한다.

어디에선가 흘러들어오는 콧노래에 집중하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

‘난 모르고 있어야 돼.’

다시 한번 말하지만 꽃기영은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어서는 안 돼.

‘그게 셀링 포인트야.’

의식하고 있다면 추해질 뿐이야.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 심지어 다른 음유시인들 역시 공연을 멈추고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주고 있지 않을까.

효과는 조금 덜 할지는 몰라도 목소리를 보정하거나 기묘한 마력이 들어 있다는 인식은 줄 수 있다. 마치 바다로 뛰어드는 선원들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어?”

아직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꽃기영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주변을 바라본 것은 바로 그때.

많은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갑작스러운 시선 집중에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기는 하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올려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노담혜의 공연장뿐만이 아니라 이기영을 중심으로도 원이 만들어져 있는 상황, 곧바로 여기저기에서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뭐야! 계속해 줘요! 동생!”

“아… 네?”

“조금 더 불러봐요!”

“네… 네?”

자꾸 그렇게 보채지 마세요. 기영이는 혼란스럽다고요. 시바.

“조금 더 해보라니까!”

“아!… 저, 저는….”

“뭐해! 안 부르고!”

“음유시인이 아니….”

음유시인도 아니라고요. 시바. 그냥 흥이 나서 콧노래를 불렀을 뿐이라니까요?

무수히 쏟아지는 악수 요청. 몇몇 여성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광기마저 느껴지기 시작한다.

‘색기영 때만큼의 출력은 안 나오고 있는 거 맞지?’

“…….”

“…….”

‘지금 잘 조절하고 있는 거 맞지?’

당연하지만 노담혜 역시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대박의 기회, 그동안 파리 날리고 있었던 공연과는 반대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집중하고 있으니 기분이 어떻겠는가.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그녀 역시 마력에 홀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기 얘들보다 내성은 있을 거야. 마력 재능이 있으니까.’

결국에는 그녀가 다시 악기를 켜는 것으로 시작.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기영이 당황하든 말든 간에 노담혜는 이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아까의 곡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인파들은 아까의 것을 계속해서 해보라는 듯이 이쪽을 노려보는 중. 그래, 이 새끼들이 시바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부끄럽고, 어눌하고, 분명 어색한 상황이지만 조금은 즐겨보자.

시한부 꽃기영이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

“…….”

결국 작게 울려 퍼지기 시작한 청아하고 맑은 꾀꼬리 소리. 누군가 조금 더 무대와 가까워지라는 듯 등을 밀어준다.

얼떨결에 살짝 밀려 나간 몸이 위치한 장소는 피아노의 옆. 얘도 내 종목이 뭔지 대충 깨달았는지, 템포가 조금 느리고, 어딘가 자그마한 교단에서 울려 퍼질 것만 같은 곡을 켜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흥얼거릴 뿐이었지만 조금씩 조금씩 가사를 입히는 작업을 해야지.

교국에서 유행했던 음유시인들의 시를 대충 장전해 놓으면 준비는 끝.

“가장 깊은 어둠을 작게 비추는 조용한 빛.”

“…….”

“노을 진 어둠을 밝히는 빛.”

“…….”

“그 속에서 우리는 당신이 얼마나 따뜻한지에 대해 목 놓아 이야기하리.”

“…….”

“쓰러진 노을 빛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빛의 아들이 선물한 미래. 눈을 감은 빛의 아들이 찬란한 노을에게 미래를 선물하시네.”

“…….”

“해가 닿지 않는 곳까지 환하게 비추게 하시네.”

당연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박자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가사가 제대로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어색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로 형편없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비웃는 이들은 없다. 얘네들은 이 어눌함이 마음에 드는 거야. 물론 매혹 스킬이 캐리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신성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별이 보이는 하늘,

어두운 캠프와 그것을 밝히는 모닥불,

타닥타닥 소리 외에 다른 소음은 들려오지 않는다.

모두가 적당히 취하기도 했고, 꽃기영 역시 분위기에 취해 있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신성력을 담고, 작은 빛을 조금씩 조금씩 뿌리며 노래를 중얼거린다. 대놓고 힘주지 않고 중얼거린다는 부분이 중요했다.

실수한 부분은 웃으면서 넘기고, 다시 들어가 신성한 목소리로 장내를 가득 채운다.

[노을빛의 검신♥이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노을빛의 검신♥이 10만 코인을 후원합니다.]

[하늘의 문지기♥가 너무 좋은 노랫말이라고 중얼거립니다. 왠지 모르게 슬프게 들려온다고 말하지만 너무나 좋은 노래를 불러줘 고맙다고 이야기합니다.]

[심연 속의 가장 낮은 심연♥이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따라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후원도 쏟아지자너.’

기본적으로 방송 자체가 엔터테인먼트니까. 자극적인 내용은 아니더라도 코어팬들은 이런 이벤트를 좋아해 주기는 하겠지.

그사이 내면의 꽃기영은 조금 더 용기를 낸다.

이 상황이 죽을 듯이 부끄럽고 어색하고 민망하기는 하지만, 너무나 생소한 상황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꽃기영은 이 이벤트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점점 템포가 올라가는 선율, 조용히 박수를 치며 박자를 맞춰주는 사람들.

첫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흥겨운 분위기로 전환되는 곡을 따라가기가 버겁기는 하다. 그래도 기영이는 함께 박수를 치며 어색하게나마 노래를 흥얼거린다.

‘어디로 숨고 싶자너.’

내면에 숨어 있는 관종끼도 현시점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 하지만 밝게 웃는 꽃기영에게 끝나지 않기는 바라는 즐거운 시간일 뿐이다.

“휘유!”

집중하고 있던 이들도 조금씩 환호성을 내지르고 다른 음유시인들 역시 질세라 자연스럽게 악기로 치고 들어온다.

‘예술가 새끼들이란. 시바.’

누군가는 바이올린 같은 것을, 누군가는 기타를, 심지어 뿔피리 같은 걸 부는 놈도 있다.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 새끼들이 스스로 흥에 겨워 난입한 상황, 모든 게 콧노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 시바 음악에 미치자.’

로헨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

당연히 가사를 때려 박는 작업도 계속된다. 흥겨운 리듬이라 더 붙이기 힘들기는 하지만….

“별과 함께한 날개가 떠나고 아침이 밝았네.”

“…….”

“죄악의 검들을 떨치고 일어나 영웅이 일어났네.”

“…….”

분위기는 대충 맞다. 이세계 느낌 빵빵 드는 민요풍이고 전통 음유시인들이 환장할 만한 영웅담, 여기 있는 비렁뱅이들도 환장해 마지않는 소재였다.

“영웅의 벗들아 일어나 빛을 밝혀라.”

대충 돌림노래로 쓸 만한 거 던져주면 거지쉑들 환장하자너.

“영웅의 벗들아! 일어나! 빛을 밝혀라!”

“영웅의 벗들아! 일어나! 빛을 밝혀라!”

교국 음유시인들이 떠드는 노래가 계속해서 울려 퍼지니 살짝 우리 대륙 온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떠난 지 조금밖에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오르기야 한다.

[노을빛의 검신♥이….]

김현성도 추억에 젖었는지 계속해서 뭐라 지껄이기야 하는 중.

눈물 한 방울 안 보이게 살짝 떨구어 주고 춤출 시간, 이미 부랑자 놈들도 음유시인들과 호응하고 싶어 몸이 드릉드릉하는 타이밍.

살짝 앞으로 나가 안대를 끼고 있는 여전사 하나를 붙잡고 무대로 끌어들인다.

살짝 부끄러워하기는 했지만 살짝 교태를 부리니 입꼬리가 올라간 모습이 눈에 띄었다.

본격적으로 손을 잡고 같이 방방 뛰면서 구슬땀 흘려주니, 남은 놈들 역시 자기들끼리 어깨동무를 한 채로 빙글빙글 돌고 있다.

나와 애꾸눈 여전사처럼 서로 짝지어 나오고 있는 녀석들도 눈에 띈다.

“이름이 뭐예요? 동생?”

‘아, 플러팅 한 거 아니라고요.’

“텐트는 구했나요?”

‘플러팅 한 거 아니라니까.’

그냥 춤이나 추자고.

애꾸눈 여전사의 한 손을 꽉 붙잡은 이후에는 빙글빙글. 이 정도로 순수한 웃음을 흘리면 방금 내가 지 꼬시려고 한 게 아니라는 것 정도야 깨닫겠지.

근데 이 누나 기어코 손 내려가는 거 봐.

얘는 아니다 싶어 슬그머니 떼어내자 곧바로 다른 사람 하나가 손을 잡는다.

얘랑도 빙글빙글.

노래를 부르는 것도 여기서 끝이다. 애초에 음유시인으로 데뷔를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노담혜의 환심을 사기 위한 장치였으니까.

전력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잠깐 멍 때린 사이에 다른 사람 하나가 와서 이쪽의 손을 채간다.

‘아 시바 손 좀 그만 잡아. 진짜.’

그래도 분위기는 맞춰줘야 되니까.

얘랑도 빙글빙글.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리 돌려지고 저리 돌려지고 있는 상황에 정신이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그만 좀 돌려.’

“꺼져.”

“너나 비켜!”

‘싸우지 말고 같이 하면 되자너. 축제에서 유혈사태 에바야.’

애꾸눈과 두 번째의 손을 붙잡고 같이 빙글빙글. 음악이 점점 고조되고 모두가 웃음 짓고 있는 시점.

아직까지 피아노를 치고 있는 노담혜의 손을 살짝 잡고 빙글빙글. 어차피 악기를 켜고 있는 음유시인들은 많으니까.

“저… 저기 저는….”

‘우리 음악으로 하나 됐지? 그렇지?’

갑작스레 내 몸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일단은 빙글빙글. 즐거운 듯이 춤추기. 노담혜랑은 이따 또 만나겠지, 뭐.

‘근데 얘는 왜 이렇게 손을 꽉 잡아.’

자연스럽게 나를 잡아당긴 인형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어….”

“…….”

“…….”

이를 악문 정하얀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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