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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29화 (1,12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29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동료 (14)

정말로 마르스가 악마 대군주의 끄나풀이기 때문에 방금과 같은 말을 내뱉을 거라고 생각한 놈들은 없을 것이다.

[허허… 희생과 부활의 신님께서 무언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마르스 대협이 대군주의 끄나풀이라니요. 마르스 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로헨을 위해 살신성인하시는 분입니다.]

‘아, 쟤는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뭔 또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혹여 정말로 심마에….]

대답해 주기도 지치자너.

물론 장르를 잘못 찾아온 영감 하나를 제외하고는 대충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것 같았다.

허겁지겁 치매 걸린 노인을 붙잡는 잡신들의 앞으로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유피테르가 시야에 비친다.

파마라도 한 것마냥 곱슬곱슬한 하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녀석은 대충 보기에도 이쪽 파벌의 책임자.

모두가 녀석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잠깐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지만 침묵은 길게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녀석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래. 시바 네 생각이 맞어. 지금 시험하고 있는 거야.’

정말로 이쪽과 손을 잡을 생각이 있는지, 아니면 말로만 입을 터는 건지, 봐 봐. 저 무식한 놈 또 지랄병 났자너.

[이 무례한 놈! 누구보고 대군주의 끄나풀이라는 망발을 지껄이는 것이냐!]

마르스라 불리는 덩치가 다시 한번 고함을 커다랗게 친 그때였다.

마치 벼락과 같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창.

천둥이라도 친 것 같은 굉음이 들려온 이후에 단창을 들고 있는 유피테르가 눈에 들어온다.

[유피테르 님!]

건방진 잡신의 행태를 참을 수 없어 직접 창을 꺼내 들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마르스의 눈빛이 눈에 띄게 밝아지지만 녀석의 눈웃음이 끝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이미지. 순식간에 창은 마르스라 불린 녀석의 목을 꿰뚫는다.

신속하고 거리낌 없는 동작, 김현성 때문에 어지간한 녀석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이쪽이 보기에도 꽤 군더더기 없는 자세와 민첩함이었다.

‘너… 생각보다 세구나.’

[컥… 켁….]

목을 부여잡으며 허물어지는 마르스는 억울하다는 듯이 손을 뻗어보지만….

‘거 더럽게 엄살 부리네. 실제로 뒈지는 것도 아니면서.’

어차피 역소환 되는 거잖아?

물론 대미지는 있을 것이다. 신체를 회복시키는 데 들어가는 코인도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로 타격을 입었다고 보는 게 맞지만, 이쪽이 원하는 종류의 주문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

[마르스에게는 곧바로 합당한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무례는 이 정도 선에서 용서하여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까보다 더 고개를 숙이는 듯한 모습, 얼마 남지 않은 전투 인력을 여기서 잃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느껴진다.

당연히 방금의 행동으로 녀석이 폼으로 파벌의 수장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무력시위이기도 할 거야. 그렇지?’

자신들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정말로 차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들 역시 무언가를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할 거라고 말한 것과 다름없이 느껴진다.

이게 녀석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보였을 것이다. 마르스가 파벌 무력의 한 측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말이다.

“5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계약서 작성하는 게 좋겠네요?”

[물론입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유피테르.

‘너는 꽤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데….’

물론 방금의 무력시위 하나로 녀석의 평가를 재조정하는 것은 이르다.

하지만 본래 하나가 달라 보이면 모든 게 달라 보이는 법이 아니겠는가.

영락없이 비전투직군이라 생각했던 녀석이 창을 꺼내 들었고 제법 괜찮은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은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쪽에게 저자세를 보이는 게 인상적이다. 적당히 예의 바른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통감하고 있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은가.

단순히 보여주기식 사과이겠지만 그것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바보 천치는 아니야.’

게다가 미묘하게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호구가 아닌 게 더 좋은 건가?’

그만큼 유능한 인사가 본인과 운명공동체가 되었다는 게 기뻤던 것인지 계약의 세부사항을 논의하는 과정 역시 물 흐르듯이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그냥 로헨을 뒤집어버리고 싶었나 봐.’

로헨 대륙을 관통하는 시스템은 이상적으로 설계되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수많은 게니우스들이 필멸자들을 후원하며 그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을 기대했겠지만 이미 이 대륙은 온갖 병신들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

본인들이 대륙의 관리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유희를 즐기는 놈들이 대다수였고 발전 기금으로 활용되어야 할 코인이 땅에 버려지는 것처럼 사용되고 있으니….

제대로 생각이 박혀 있는 놈이라면 현 사태를 두고 볼 리 없었다.

혹시 우효열을 회귀자로 선택한 것도 그냥 깽판 쳐 줄 놈이 필요한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찌 됐건 간에 로헨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와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희생과 부활의 신과 운명공동체가 됐다는 건 녀석으로서도 딱히 나쁜 일은 아니었다.

잃어버릴 5할이 뼈 아프기는 하겠지만 현시점에서 이 파벌이 대륙 운용 기금으로 소비하는 코인이 얼마나 될까.

아마 1할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막말로 쟤 입장에서는 차원 전쟁 한번 일으키는 편이 속 시원할 수도 있겠자너.’

전쟁으로 시원하게 밀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

[추가하고 싶으신 조항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러 가지로 편의를 봐주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정확히 어떤 편의를 말씀하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급할 수 있는 코인은 최대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만….]

“…….”

[…….]

“그것 말고도 해줄 수 있는 일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뭘 원하는지 궁금하시겠지만 그쪽에서 뭘 해줄 수 있으신지 먼저 들어봅시다.”

[저희 파벌에서 관리하고 있는 레벨4 이상의 던전 정보, 아이템은 시스템이 허용하는 선에서 지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원하시는 클래스가 있으시다면 파벌 내 게니우스를 통해 최대한 유사하게….]

“나쁘지 않네요. 그리고….”

[제외한 물질적인 지원은… 최대한 노력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의지만 이어받으신 겁니까?”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베니고어 때와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1회 차의 의지만 이어받은 상태인 것 같았다.

베니고어의 것보다는 더욱더 많은 것은 이어받은 것 같기는 했지만 이들에게 반가운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눈을 뜨니 커다란 빚이 쌓여 있는 상황, 베니고어를 필두로 소수의 관리자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늦었지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전폭적으로 뭘 지원해 줄 건데요? 쥐뿔도 없으면서….”

[그건….]

“내가 인생 선배로서 충고 하나 해줄게. 다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요?”

[…….]

“썩은 부분은 도려낼 줄도 알아야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그건….]

“여기는 쓸모없는 놈들이 너무 많아. 쳐내야 되는 놈들은 쳐내야 한다니까. 악마 대군주가 떨어졌다는 데 막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놈들이 몇이나 있어? 물론 인정해요. 동생.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것처럼 보이기는 하겠지. 그럴 리가 없다고, 로헨이 망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자위하는 놈들 심정도 알겠는데… 품지 못할 거면 쳐내는 게 맞아.”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지만… 파벌 간 무력항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누가 너희보고 드잡이질하라고 했어? 그게 가장 좋기는 하겠지만 방법이야 많잖아. 그지?”

[희생과 부활의 신께서는 지금… 인간들의 분쟁을 유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 그게 정답인 것 같아?”

[…….]

“그게 정답인 것 같지. 그렇지? 게니우스를 죽이는 게 꼭 파벌 간 항쟁만 있는 건 아니니까. 크게 보면 네 말도 정답에 가깝기는 하겠네.”

이 새끼 무슨 악마 보는 듯한 눈으로 보고 있자너.

“그리고 게니우스들 간의 분쟁은 누가 금지한 건데? 아까 네가 그 덩치 목 날린 것만 보면 시스템이 허용하지 않는 건 아닌 것 같은데….”

[…….]

“그리고, 굳이 무력을 쓰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다음은 나중에 하지 뭐 계약서는 이쯤 되면 될 것 같고… 뭐해? 지장 안 찍어?”

[…….]

“계약 안 하게?”

무슨 악마와 계약이라도 하는 것 같은 모양새.

이야기를 하면서 대충 작성한 계약서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녀석의 동공이 떨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지금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일까.

물론 이 새끼는 결국 계약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후 노을빛의 검신으로 일어날 사고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는 조항이 떡하니 붙어 있거든.

애초 이 새끼들이 몰려온 이유이자 전부였다. 차라리 차원 전쟁을 하면 차원 전쟁을 했지, 로헨에 똬리를 틀어버린 노을빛의 마왕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한테만 떠넘기면 어떻게 하나. 동생도 동생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아무튼 오늘 여기까지 행차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어. 마르스인가 뭔가 하는 그 덩치한테 안부 전해주고….”

[네.]

“그러니까… 고생하셨어요. 유피테르 님.”

[네. 희생과 부활의 신께서도 고생하셨습니다.]

“아! 던전 정보는 곧바로 넘겨요. 아마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도 들어가야 될 것 같으니까.”

[네.]

‘일정이 조금 앞당겨지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막말로 김현성이 언제 쳐들어올지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외신 비자를 타고 온다고 가정하면 몇 년, 대군주 비자를 받고 들어온다면 몇 달 정도가 걸리지 않을까.

아무리 빨리 들어온다고 해도 분명, 몇 주는 걸릴 것이다.

‘시간은 많아.’

대군주 비자를 받고 들어온다고 해도, 소환된 대군주는 일정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 소환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노을빛의 마왕은 고립될 테니 힘을 키울 시간은 충분하다. 물론 그래도 빠듯한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막 성소에서 벗어났을 때였다.

갑작스레 거대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새로운 메인스트림이 개방됩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이미지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악마 하나가 축 늘어진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다.

곧 뒤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던 녀석의 모습은 평범한 악마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녀석보다 눈에 띄는 것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놈을 짓밟고 있는 인형 하나였다.

계속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모습, 격렬한 전투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상처는 얕지 않았지만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다.

한쪽은 쓰러져 있었고 한쪽은 서 있었으니까.

잠시 후, 인형은 놈의 얼굴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퍽 콰직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악마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나간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한 참이나 내려친 이후, 기괴한 악마의 움직임이 점차 멈출 즈음에….

익숙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21군단장, 바신이 소멸됩니다. 새로운 21군단장, 노을빛의 마왕이 로헨 대륙에 강림합니다.]

[레벨 판정 불가 던전 ‘노을빛의 마왕성’이 개방되었습니다.]

[동쪽 지역 전체가 잿빛 노을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

“시작….”

“…….”

“시작하지 마….”

[메인스트림 노을빛의 마왕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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