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31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동료 (16)
“꺼져.”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자,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길 수 없어 보이는 우효열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이 새끼… 많이 당황했자너.’
갑자기 터진 사고에 온 대륙이 당황했겠지만 아마 이 새끼보다 당황한 녀석은 없었을 것이다.
나비효과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변화, 미래가 변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뒤틀려 버린 정도의 사건, 회귀하자마자 한 달도 안 돼서 노을빛의 마왕 에피소드를 마주친 녀석의 얼굴에는 짜증과 초조함이 숨겨져 있었다.
“…….”
“…….”
“여기서 꺼지라고 이야기했다.”
‘근데 왜 쟤네보고 꺼지라 그래. 여기가 지네 집인 줄 알자너. 여기 그냥 동네 숙소예요. 이 사람아.’
본인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은 표현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 꽃과 패밀리아에서 찾아온 손님의 눈썹이 꿈틀거리기는 했지만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녀석들이 여기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을까.
내가 없었다면 예의 없는 애송이를 교육이라도 시켜줬겠지만 녀석들은 우효의 도발에 반응하지 않고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후우….”
“…….”
“아무래도 이후에 따로 연락드리는 게 좋겠네요.”
“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손님 대하는 꼬라지가 아주….’
“저놈들은 뭣 하러 여기까지 온 거지?”
“잠깐 회의에 참가해 줄 수 있냐고 물어오더군요. 그것뿐이었어요.”
“…….”
자연스럽게 가오 한번 잡아준 이후에는 항상 앉았던 자리에 털썩 몸을 앉힌 녀석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별것 아닌 척하고 있었지만 아마 속은 썩어 문드러지기 일보 직전이 아닐까.
지혜 누나처럼 컨트롤 프릭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통제에 벗어난 상황을 반기지 않는다.
회귀한 이후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던 회귀자의 입장에선 그 누구보다도 이번 메인스트림을 반길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쪽 역시 녀석과 다를 바 없는 상태다. 녀석과 내 차이점은 표정을 잘 숨기느냐 잘 숨기지 못하느냐 정도다.
‘솔직히 다시 생각해도 황당하자너.’
괜스레 고개를 흔들자 어느 정도 잡념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침묵하고 녀석도 침묵하고 있자니 분위기가 금방 가라앉는 듯한 느낌.
정하얀의 보호자들은 계속해서 눈치만 보고 있었고 노담혜는 왜 자신이 여기에 앉아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
정하얀은 뭐가 그리 좋은지 옆에 달라 붙어 헤실헤실거리고 있었고, 레이먼 볼트 영감 역시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특히나 노담혜의 맹한 표정이 눈에 띈다. 저 얼굴이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납치당하듯이 끌려왔나?’
우효열의 성격상 이런저런 설명을 해줄 리 만무하니 사실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끌려왔다고 보는 게 맞겠지.
‘이거 될까?’
이거 안 될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정하얀을 데리고 꽃과 풍요로 투신하는 게 옳은 방법이 아닐까. 노을빛의 마왕성을 이 멤버를 주축으로 공략할 수 있을까.
눈치를 보며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본다.
“저… 언제쯤… 집에 가도 될까요?”
여전히 그 표정으로 눈치를 보고 있는 노담혜.
“언니… 저희는 어떻게 해요?”
“…….”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 거예요?”
“일단 조용히 좀….”
귓속말로 수군거리는 남궁선과 임채령.
“허허….”
인자한 할아버지 미소를 띠고 있는 고령의 노전사.
“…….”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구기고 있는 우효열.
김현성과 정하얀, 박덕구, 선희영, 김예리로 시작했던 파티에 비하면 조촐하기 짝이 없었다.
웬만하면 우효열이 주도적으로 회의를 이끌어 줬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녀석에게 그런 능력은 없다.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것이 녀석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큼… 큼.”
“…….”
“일… 일단 함께 활동할 파티원들은 다 모였네요.”
말을 받은 것은 노담혜였다.
“네? 제… 제가요?”
“어느 정도 구성도 갖춰진 것 같고요.”
“제, 제가 뭘 하나요?”
“간단하게 자기소개부터 하는 편이 좋겠네요. 처음 보는 분들도 있고… 짧겠지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겠어요.”
“…….”
“미리 설명해 드리자면 파티의 리더는 우효열 씨가 될 것 같아요. 아직 제대로 된 방향성에 대해서 논하기에는 이르기 때문에… 파티의 목적성이라든가, 향후 파티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겠지만, 당분간은 이 멤버를 중심으로 고정 파티를 운영하게 될 거라는 건 확실할 것 같습니다.”
“…….”
“본격적으로 말씀을 드리기 전에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할까요? 일단 노담혜 씨부터.”
“저는… 저는 레벨4 음유시인인데… 저… 저는 여기 왜 있는 걸까요? 혹시 저도 같은 파티원으로 활동하게 되는 건가요? 저는… 저는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는데….”
“성함은요?”
“노담혜… 라고 합니다.”
오케, 넌 거기까지.
슬쩍 시선을 돌리자 곧바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레이먼 볼트라고 한다네. 레벨4의 전사로 이 커다란 석궁과 방패를 주로 사용하고 기본적인 무기술을 익히고 있지. 전에는 그늘진 태양왕관에서 활동했었고… 모험가 길드에 있는 퀘스트를 수주하다 여기 이 청년과 인연이 닿았지. 경험은 적은 편이 아니니 많은 도움이 될 걸세.”
다음은 남궁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차분한 분위기다.
계속해서 당황하고 있었던 전과는 다르게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눈치를 챈 모양.
임채령과는 계속해서 귓속말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표정을 보니 이 갑작스러운 만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게니우스한테 언질이라도 받았나 보네.’
물론 정하얀이 아직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레벨3 사제직군의 남궁선이라고 해요. 소외된 이들을 위로하는 조용한 빛 님을 모시고 있고요. 하얀 씨와 만나서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저는 이런 자리인 줄 모르고… 아무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겠죠. 당분간… 잘 부탁드려요.”
“레벨3의 도둑 임채령이라고 합니다. 특기는 자물쇠 따기와 함정 찾기입니다. 단검과 독을 조금 다룰 줄 알고요. 아! 몇 가지 간단한 마법도 할 수 있어요. 언니와 함께 작은 파티를 운영하고 있었고… 또….”
‘전통적인 도둑이네.’
잘 훈련시킨다면 쓸 만할지도 모른다. 가능성으로 따지면 함께 온 남궁선보다 높은 편이 아닐까.
그다음이 정하얀.
“레벨… 4 마법사 정하얀이라고 합, 합니다. 오, 오빠랑은… 아, 아니, 말하면 안, 안 되는 구나… 아무튼… 네. 잘, 잘,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레벨3의 사제직군 이기영이라고 해요. 이번 기수에 소환되어 막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저 알아요! 천재군사! 이기영! 맞죠?”
“조금 부끄럽지만… 네, 맞아요. 채령 씨.”
“유명인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신기하네요. 그렇죠 언니?”
“채령아. 조용히 좀….”
마지막은 파티의 리더.
“레벨3 검사. 우효열.”
물론 이 새끼한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시답지 않은 자기소개는 드디어 끝났나 보군.”
오히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작정으로 입을 열고 있지 않은가.
“…….”
“우습군.”
“네?”
“내 꼴이 아주 우습게 됐다 이 말이다. 다 늙어 죽어가는 노전사 하나에, 몇 년이 지나도록 레벨3에서 정체 중인 사제와 도둑, 자기가 여기 왜 있는지도 모르는 음유시인 하나. 어디서 이름도 들어본 적도 없는 놈들이 네놈이 그렇게 부르짖던 함께 싸워나갈 동료였나? 제대로 플레이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저기 저 마법사뿐인 것처럼 보이는데? 당장 광장에서 발품을 팔아도 이 정도 인선은 쉽게 구할 수 있겠더군.”
‘아 왜 또 까칠해졌어. 갑자기 걱정돼서 그래?’
그리고 노담혜는 네가 데리고 왔잖아요.
“거기, 사제, 도둑에게 묻지. 실전 경험은 얼마나 되지? 던전을 클리어한 경험은 있나?”
“던전 클리어 경험은 아직 없어요. 언니는 한 번 있고요! 파티 사냥이라면… 제법 성공률이 높은 편이고….”
“하.”
곧바로 나를 바라보며 띠꺼운 표정을 짓는 녀석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이것 보라는 얼굴, 얘네들을 뭘 믿고 던전공략에 나가겠냐고 묻는 듯했다.
“어떤 몬스터를 사냥했는지는 뻔하군.”
“그, 그럼 우효열 씨는 던전 클리어 경험이라도 있나요? 제가 알기로는 우효열씨도 이제 막 아카데미에서 졸업한 걸로 알고 있는데.”
“…….”
“실례예요. 저희는 엄연히 우효열씨보다 먼저 로헨에 들어와 먼저 로헨을 경험한 선배라고요.”
회귀자의 입장에서는 기가 찬 소리겠지만 할 말은 없을 것이다. 대외적으로 녀석은 뉴비였으니까.
“제기랄. 애초에 여기 오는 게 아니었는데.”
라는 혼잣말밖에 지껄일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저것도 마음에 없는 말이겠지.
일단은 한번 이쪽을 믿고 따르기로 결정을 내렸으니까. 당장 바깥이 소란스러우니 불안한 것뿐이었다.
‘내가 이 새끼였어도 제정신 차리기 힘들기는 했을 거야.’
당장 여기저기에서 떠들썩한 소리들이 들려오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멀쩡할 놈은 없다.
여기에서 파티플레이니 뭐니 시답지 않은 이야기도 나누기 싫을 거고 최대한 빨리 성장해 이번 메인스트림에 대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지 않을까.
사실 이 자리에 나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당장에라도 짐을 들고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이곳이 자신의 집이라는 걸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일단 이 새끼 좀 안심시켜야 겠다.’
이대로 녀석을 놔둔다면 계속해서 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볼지도 모른다.
“아마 혼란스러우실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 발생한 메인 스트림 노을 빛의 마왕이 원인이겠죠. 조금 어수선하기는 하지만… 저희는 이번 이벤트에 휘말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휘말리지 않겠다니?”
“말 그대로예요. 저희는 이번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전까지 이 메인스트림에서 완전히 손을 뗄 거예요. 외곽이라도 돌며 기여도를 노리기에는 이번 일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하니까요. 크게 보면 저희 파티에게는 불리한 이야기도 아니죠. 로헨 대륙 전체의 관심이 마왕성에 쏠려 있고, 상대적으로 많은 던전들과 사냥터들에 여유가 생길 테니까요. 대형 패밀리아나 중견 패밀리아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던전에 대한 정보들을 싼 값에 처분하려 할 테니 던전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쉽겠죠.”
“메인스트림을 놓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고 있나?”
“놓치는 게 아니에요. 기다리는 거지. 장담하건대 노을빛의 마왕성으로 원정을 나간 패밀리아들은 백이면 백 실패할 거예요. 저희는 빠르면 내일, 늦어도 내일모레 즈음에는 가까운 던전을 공략할 겁니다.”
“던전 이야기는 됐다. 근거는? 실패할 거라고 보는 근거가 있나? 네놈이 그렇게 아끼는 꽃과 풍요 역시 이번 원정에 참여하려고 하겠지. 아까 온 멍청이들이 지금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그런 연유 때문이 아닌가?”
“꽃과 풍요는 원정에 참가하지 않을 겁니다.”
“뭐?”
“꽃과 풍요는 물론이거니와 그들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패밀리아들은 이번 원정에 참여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
“…….”
너무나도 뻔뻔하고 자신만만하게 이빨을 털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의 조급함이 조금은 사그라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까 그 띠꺼운 표정 역시 조금은 사그라든 것을 보면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노선을 취할 겁니다.”
“…….”
“…….”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 웃기는군! 천재군사? 윌리엄 마스터. 정말로 이 정신 나간 작자에게 우리 동맹의 운명을 맡길 생각이십니까?”
이런 새끼들이 꼭 하나씩 튀어나오게 되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