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32화
파장 (1)
우리 쪽도 그렇기는 했지만, 로헨 대륙 역시 온갖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 여러 가지 사업이나 원정 같은 것들 말이다.
소형 패밀리아의 경우에는 신경 쓸 것이 그리 많지 않지만 대형 패밀리아의 경우에는 다르다.
전자야 기껏해야 보급품 몇 가지를 챙기는 것이 전부겠지만 후자는 원정 한 번에 어마어마한 재화와 인력을 소모한다.
당연히 이 재화를 벌어들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사업체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나아가 대부분의 집단들은 이런 사업체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원정을 나간 패밀리아의 뒤를 봐준다거나, 고립되어 있는 동맹에게 지원군을 보낸다거나 하는 행동은 로헨뿐만이 아니라 우리 쪽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
당장 파란과 붉은용병, 검은백조가 그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가.
우리 대륙과의 차이점은 이 새끼들의 경우에는 동맹을 맺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다는 것이었다.
이곳의 패밀리아들은 단지 게니우스들끼리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동맹 관계를 맺기도 했으니까.
패밀리아 간의 성향이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방 동맹을 함께 하거나, 패밀리아의 방향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게니우스들의 선택에 의해 억지로 동맹을 맺는 관계도 있었다.
이 새끼들이 딱 그런 경우였다.
패밀리아 꽃과 풍요와 함께하고 있는 다섯 개의 거대 패밀리아.
대도시 스칸디아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맹의 모임.
대형 패밀리아 녀석들뿐만이 아니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중견 패밀리아의 대표랍시고 나온 놈들도 눈에 띄기야 한다.
대형 패밀리아의 수장 놈들 수준은 예전 우리 쪽에 십강보다 조금 낮은 정도, 안개 소환사 천관위나 원거리 저격수 위란보다 낮은 것처럼 보였지만 화려함은 그 이상이었다.
‘돈을 처발랐네.’
단순한 회의실이라고 하기에는 꽤 화려하다. 마지 교황청의 기도실을 보는 것 같았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얼굴에는 하나같이 이 자리에 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명실상부 로헨 대륙의 상위에 있는 플레이어들이었으니 자부심이 가득할 만하겠지.
패밀리아의 대표와 함께 온 부관들 역시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중.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꽤나 딱딱하게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다들 자기들이 제일 잘난 줄 알고 있을 테니까.’
웃음꽃 피는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린델의 회의와는 꽤 대조적이었다.
“패밀리아 지하세계의 왕과 시간의 파수꾼은 벌써부터 원정을 준비 중이라고 하더군요.”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는 군, 정말 이번 메인스트림에 대한 정보를 받지 못한 게 맞는 건가?”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 없었습니다.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이번 메인스트림은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다고 하지만….”
“그 영악한 놈들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알고 있었느냐 모르고 있었느냐는 크게 상관없지 않나요? 미리 정보를 선점했다고 해서 꼭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고요. 메인스트림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에요.”
“계속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일단 브리핑을 듣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물론 이 사태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당연히 회의를 주도하는 쪽은 패밀리아 꽃과 풍요였다.
“꽃과 풍요 패밀리아의 에밀리아라고 합니다. 모든 분께서 아시다시피 금일 5시 45분경에 시작된 메인스트림 노을빛의 마왕이 시작되었습니다. 메인스트림이 발생한 곳은 동쪽 지역 전체이며… 저희는 사실상 동쪽이 완전히 마비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메인스트림이 시작된 직후, 동쪽을 거점 삼아 활동하는 패밀리아들과 대도시들과의 연락이 모두 끊겼으며….”
“…….”
“더불어 해당 패밀리아들의 소식을 얻으러 간 레인저들 역시 모두 실종된 상태입니다. 현재 동쪽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패밀리아 지하세계의 왕과 패밀리아 시간의 파수꾼은 구조대를 보낸다는 명목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가 차는군.”
“그 외 다른 유력 패밀리아들 역시 동쪽으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두 패밀리아들에게 고용되거나 동맹 관계에 있는….”
‘뭐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네.’
정확히 말하면 보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노을빛의 마왕이 떨어진 이후 로헨의 정세에 관한 설명으로 5분, 그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다는 설명으로 5분.
제법 따분한 시간이었지만 이런 과정을 중요시하는 모양인지, 잠자코 듣고 있는 놈들이 눈에 띄었다.
“잠깐 질문해도 되겠나?”
“예.”
“노을빛의 마왕에 대한 정보는? 혹시 꽃과 풍요의 여신님에게 들어온 정보는 없나?”
“현재 꽃과 풍요의 여신님께서도 말을 아끼고 계십니다만… 확실한 것은 노을빛의 마왕이 기존에 72군단 소속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21군단장 바신을 소멸시킨 이후, 그의 자리를 빼앗아 대군주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지 않나? 우리 모두가 본 사실일 텐데 말이야.”
“그가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마 긍정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라 예상됩니다. 목표가 단순히 자리에 대한 욕심이었다면 무리해서 로헨에 강림을 시도하지 않았겠죠. 저희는 그가 모종의 목적이 있을 거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잖아.’
대충 봐도 정보가 부족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이번 브리핑으로 알 수 있었던 건 꽃과 풍요의 입김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저도 한 가지 질문하도록 할게요.”
“예. 프랑수아즈 님.”
“어째서 회의실에 외부인을 초대했는지 알고 싶은데….”
‘언제 나오나 했자너. 뻘쭘하게.’
그녀의 질문에 그제야 이쪽으로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꽃과 풍요의 소속도 아니고, 하리젤에 작은 파티를 이제 막 운영하기 시작한 애송이가 어째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어째서 윌리엄이 이 자리에 저 녀석을 데리고 온 것일까.
아마 이기영 이름 석 자는 들어보기야 했을 것이다.
“쓸데없이 이런 자리에서 로헨을 떠들썩하게 만든 천재를 데리고 올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대답해 드리기 전에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이기영 님은 외부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현재는 하리젤에서 활동하고 계시지만 꽃과 풍요의 여신님을 섬겼으니 엄밀히 말하면 저희 패밀리아의 가족입니다. 모두들 이를 염두에 두고 이기영 님께 예를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역시 이 새끼가 근본은 있어.’
이쪽을 외부인이라고 지칭했던 프랑수아즈 역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윌리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는 제스처.
“제가 실례했군요. 사과를 받아주시겠어요?”
라고 말하기까지 하니, 애초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지만 괜스레 호감을 느끼게 된다.
“흐음….”
이쪽을 평가하는 듯이 위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저 엑스트라 녀석과는 다르게 말이다.
“분명히 들은 적은 있지. 로헨에 천재 군사가 소환됐다는 것 말이야. 당장 저번 주만 하더라도 꽤 대륙이 떠들썩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심지어 나도 그 모의전을 따로 받아 봤었지. 꽤 놀라기는 했어.”
“…….”
“전장을 바라보는 통찰력, 자신을 과시하는 듯한 퍼포먼스, 도대체 머리에 뭐가 들어있는 건지, 같은 인간이 맞기는 한 건지… 궁금하기는 했지. 혹시 머릿속에 지도를 하나 가지고 다니나? 아니면 전장을 굽어보는 눈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아! 대답할 필요는 없다. 네가 유능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다.”
“…….”
“하지만 윌리엄. 네 손님이 유능한 것과 이번 건은 엄연히 다른 문제야. 이제 막 소환된 애송이한테 동맹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겠나? 부관으로 데뷔시키기에는 나쁘지 않은 무대겠지만….”
‘부관으로 데뷔를 해? 내가 시바 부관으로 데뷔할 짬밥은 아닌데?’
“이번 작전을 전부 떠맡기에는 부족해 보이는데?”
‘뭐래? 나도 너희들 캐리해 줄 마음 없어요.’
이쪽이 누군가의 부관으로 데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 당연히 이 집단을 전부 떠맡아 똥을 치워 줄 마음도 없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기영 님을 이 자리에 모셔온 이유는….”
“…….”
이제 내 차례야?
“여러분들을 말리기 위해서예요.”
순식간에 장내가 침묵에 휩싸인다. 윌리엄과 그의 부관 에밀리아 역시 조용히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내 뜻을 전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직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 원정은 승산이 없는 싸움이에요.”
“…….”
“패밀리아 지하세계의 왕, 패밀리아 시간의 파수꾼의 원정은 대패로 돌아갈 거고 겨우 몇몇 생존자만 건사한 채로 돌아오게 될 거예요. 심지어 생존자가 있으면 기적이라고 봐도 되겠죠. 다들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갑작스러운 메인스트림에 로헨 전체가 패닉에 빠져 있죠. 갑작스럽게 원정을 준비하기 위해 대형 패밀리아들은 골드를 풀고 있고, 보급품들은 동이 나고 있는 상황이겠지만 이건 일시적인 현상이 될 확률이 높아요.”
“…….”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질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
“천재가 아니라 예언가였나 보군.”
싹수없는 엑스트라의 농담에 회의실에 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에 계신 분들의 평균 레벨은 5 정도겠죠? 중견 길드의 부관분들은 레벨4 상위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지만… 악마대군주의 기본 레벨은 7 정도로 예상되고 있어요. 현세로 강림한 페널티를 안고도 말이에요. 그 휘하에 있는 부관들은 최소 레벨6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레벨7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은 분들을 위해 설명해 드리자면….”
“…….”
“게니우스님들께서 현세로 강림한다 가정했을 때도 레벨7이에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차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는 더 크다고 생각돼요.”
“…….”
“1차 피해 인원을 최소화시켜야 하는 이유는 악마 대군주들의 소환을 유지하기 위해선 제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고요. 동쪽 지역에 있는 인간들로 소환에 필요한 마력을 충당하고 있다고 말하면 이해하기 편하시겠죠?”
“…….”
“적들은 제물로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어요. 지금은 동쪽뿐이지만 아군 측 피해가 누적되면 누적될수록 잿빛 노을이 뒤덮은 범위가 넓어질 거예요. 노을빛의 마왕이 현재 상처 입은 상태라는 것도, 적 방어선을 지키는 병력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함정일 가능성이 커요.”
“…….”
“…….”
“그 많은 정보를 어디에서 얻으셨습니까?”
“서적이에요.”
내가 시바 걔네들이랑 잘 알아서 알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증거랍시고 가져온 두꺼운 책들 수십 권. 흑마법사들이 집필한 서적과 과거 로헨 대륙에서 실제로 일어났었던 악마소환사태에 관련된 서적들이었다.
“그 책에 악마 대군주의 레벨이 7이라 써져 있기는 합니까?”
“물론 서적에 대군주의 레벨이 7이라고 나와 있지는 않아요. 쓰여 있는 정보를 통해 독자적으로 해석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레벨7으로 평가하기에도 부족해요. 전에 이곳에 소환된 적이 있었던 대군주는 서열 58위에 불과했으니까요.”
잠깐 동안 침묵에 휩싸인 장내. 조금은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려나 생각하던 찰나였다.
아까부터 눈에 거슬리던 녀석이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하하.”
당연히 무례하게 비칠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지만.
‘이 새끼가….’
그것보다 더 무례했던 것은 이후에 이어진 말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천재군사님께서는 로헨 대륙을 책으로 배우실 생각인가 봅니다?”
동시에,
다시 한번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 이 새끼들….’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핫!”
“농이 과하십니다! 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 정도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