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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34화 (1,13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34화

파장 (3)

“심지어 노을빛의 마왕을 만난 것이 아니라… 검은 용 위에 올라탄 창을 든 여자와 마주쳤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

설마 설마 하기야 했다.

“혹시 전투로그는 있나요?”

“정확히 어떤 전투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그렇다면 혹시 생존자를 직접 만나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마 지하세계의 왕에서는 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을 거다. 그 간사한 놈들이….”

‘정보 공개를 꺼려? 이 지랄이 났는데도 꺼리겠어?’

“아니요. 아마 2차 선발대와 구조대를 보낼 생각이라면 굳이 정보를 숨길 이유가 없을 거예요.”

“하! 뭘 모르는군. 만약 공개를 한다고 하더라도 공포에 미쳐 버린 그 생존자에게 얻을 게 뭐가 있을까?”

“구태여 생존자를 한 명 돌려보낸 이유가 있겠죠.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기 위함이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봐요.”

품 안에 영상 구슬이라도 쑤셔 넣지 않았을까?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뭔가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래 한 번 실패한 던전 공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자에 대해 조사하고 파악하는 일이 아니었던가.

공포에 미쳐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많다. 게다가….

‘이런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지.’

로헨에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 본인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말로 김현성 혼자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조혜진과 디아루기아까지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점점 그림이 명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너무 조직적이야.’

대충 군단장 하나를 때려잡고 21군단을 쟁취했다고 하기에는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조직적이다.

지혜 누나 혹은 벨리알, 혹은 루시퍼가 개입되었다는 가설이 점점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

김현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현성 혼자 이 모든 일을 벌였다기에는 의아한 점이 너무 많지 않은가.

‘혜진이랑 디아루기아까지 불러 왔다고?’

인간이 아니라 악마로서 소환된 것이다.

조혜진이야 오래전부터 신성이 쌓이고 있는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녀가 대군주의 부관으로서 비자를 발급받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일시적으로나마 그녀에게 비자를 발급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놈이 배후라고 봐야겠지.

파란 길드 전체가, 혹은 라파엘과 희라 누나, 카스가노 유노까지 21군단의 일원으로 들어왔다는 것 정도야 유추할 수 있었지만 그 방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전 차원을 뒤져봐도 이러한 경로로 이렇게 소환된 사례는 손에 꼽힐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당연히 시스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시스템의 빈틈을 찾고, 시스템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놈이 김현성에게 손을 거들었을 것이다.

상황이 이랬으니 구태여 생존자 한 명 살려 보낸 것 또한 의문스럽지 않은가.

잿빛 노을 지역으로 최대한 많은 양분을 수급해야 하는 21군단의 입장에서 플레이어들이 겁먹고 틀어박혀 있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터.

아마 아직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말 그대로 패밀리아 지하세계의 왕을 비롯한 1차 원정대원들은 아마 마력공장에 들어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높다.

디아루기아와 조혜진의 정보를 흘리고, 그들을 공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다시금 헐떡거리는 소리와 함께 전령 하나가 회의실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지, 지금… 지하세계의 왕에서 수정구를 보내왔습니다. 공식적으로 이후 만들어질 2차 원정대에 합류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오고 있습니다. 전폭적인 지원을 할 의향이 있다고….”

‘이것 봐.’

이제 막 회의실을 뛰쳐나가려고 하는 타이밍이었지만 어째서 나가지 않느냐 빈정대는 녀석들은 없다.

너무나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수정구에서는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전투준비! 전투준비!!!!

-전방에 정체불명의 적 출연. 전방에 정체불명의 적 출연!

-진영 잡아! 진영!!

-지하세계의 왕을 위하여!

기습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시바.’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검은 용 한 마리와 온몸을 푸르죽죽한 갑옷으로 감싸고 있는 인형 하나가 땅 위에 내려앉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둥지였다는 것처럼 아주 조용하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모양새는 엄숙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시작된 비명.

-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야아아아아아! 죽어! 이 괴물!!!

-이게… 이게 뭐야….

-으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검은 용 위에 올라타 있는 인형의 손에서 창이 쏘아질 때마다 아군 병력의 피해가 누적된다.

검은 용은 거대한 꼬리를 휘두르거나 팔로 계속해서 전위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어려운 패턴은 아니었지만 임팩트는 다르다. 한 번 빛이 번쩍일 때마다 서너 명이 한꺼번에 창에 꿰뚫려 꼬치처럼 바닥에 처박히는 중.

심지어 창에 박힌 인원들이 조금씩 쪼그라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마력, 혹은 생기를 흡수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리라.

-아아아악!

-제기랄! 피해! 전위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마력방패! 마력방패! 뭐라도 좋으니까 아무 주문이나 외우란 말이야!

-저것 좀 막아! 씨… 커헉!

방패 채로 긴 창에 꿰뚫린 놈들만 수십 명, 검은 용이 숨을 내뱉을 필요도 없이 간단한 작업을 무미건조하게 진행되는 인형의 모습은 이질적이다.

형태로 보면 조혜진이 맞았지만 무자비한 속속은 저게 정말 혜진이가 맞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으…아어아아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아! 제발!! 제에발… 여기로 오지 마!

‘너… 도대체 왜 그래?’

그의 긍지를 더럽히지 마를 비롯한 수많은 명대사를 만들어낸 질서선의 대명사 조혜진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벌레들에게 핀을 꽂는 것마냥 창을 던지고 있으니 어떻게 위화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투구로 가린 얼굴에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푸른색 안광이 흘러나오고 있는 눈만이 그녀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콜록… 나… 나… 죽고 싶지 않아. 아아….

-아아아아… 살려줘요… 엄마….

-나… 나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엉금엉금 밖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녀석들의 위에도 어김없이 창이 떨어진다.

-크어어어어어아아아아아아아!!

여기저기에 붉은색 형태의 무언가 흩뿌려져 있다. 어느새 검은 용의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퍽철퍽 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온다. 커다란 비명 소리 대신 희미한 신음 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운다.

잿빛 노을이 드리운 하늘 아래서 일어나는 일들은 단순히 절망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하고 잔혹했다.

“…….”

“…….”

이곳에서 침묵이 드리운 것은 당연지사. 아무리 다년 차 플레이어라고는 하지만 피와 살점이 튀기는 광경을 보고 웃을 수 있는 놈은 없을 것이다.

“무섭도록… 강하군….”

“…….”

“하지만 지레 겁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데….”

‘…….’

“그렇지 않습니까?”

‘난 모르겠다. 시바.’

물론 그렇게 느낄 만한 근거야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 역시 이 정도면 공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첫 번째로 이유는 패턴이 단순하다는 것.

두 번째로는 패밀리아가 앞서 트라이 한 지하세계의 왕이 어느 정도 공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는 것.

‘투창만 막으면 된다 이거지?’

녀석들이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원거리에서 쏟아지는 창을 막아내고, 검은 용 위에서 창을 든 인형을 떨어뜨리는 것이 기본적인 공략법.

손도 못 쓰고 당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스펙이 낮기 때문에 효과를 볼 수 없었을 뿐 공략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기믹이 너무 단순하니까.’

던전 디자인을 하면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보스몬스터의 기믹, 어떤 기믹을 넣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결정되고 전체적인 공략의 방향이 결정된다.

대륙 던전화 때의 진청 같은 경우가 그 좋은 예였다. 모든 던전이 그렇듯, 아마 노을빛의 마왕성 역시 이런 종류의 기믹을 설계했을 가능성이 높다.

점점 난이도가 올라가는 던전의 특성상 첫 번째 네임드 몬스터에게 쓸 수 있는 기믹은 한정되어 있지만….

‘굳이 혜진이를 첫 번째 네임드로 불러와서 이렇게 단순한 패턴을 쥐여줘야 하나?’

전력 낭비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아마 이후 패턴도 단순할 것이다.

검은 용 위에서 인형을 떨어뜨린 이후 두 보스를 동시에 공략하고, 3페이즈 정도로 넘어가면 디아루기아가 하늘로 올라가 브레스를 쏘아대겠지, 뭐. 마지막으로는 혜진이 혼자 나온다든가.

그게 가장 큰 문제이기는 하겠지만 패턴 자체는 단순하다.

‘버리는 패 혹은 단순히 이 멍청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패.’

아니면 조혜진이 이런 역할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울 혜지니의 여린 성정 때문에 이 정도 역할밖에 부여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

가장 많은 인간들을 사냥하는 롤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죽이지는 않아도 되니까.

“만약 2차 원정대를 조직한다면, 패밀리아 지하세계의 왕에서는 어떤 보상을 내걸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있나?”

“당연히 이번 구조 작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많은 보상을 내려 주겠지요. 무엇보다 이번 원정을 우리가 직접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 가능성이 클 겁니다.”

“어디 지하세계의 왕에서 보낸 보상뿐이겠습니까? 메인스트림이기도 하고 그쪽 게니우스들도 코인을 지급한다 광고를 할 겁니다.”

두려워하는 녀석들도 보이지만, 두려움보다 보상에 대한 욕심이 더 큰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패밀리아에서도 전부 참가한다고 하던가?”

“아마 북부와 서부는 확실할 것 같습니다.”

“구조를 기다리는 병력들을 생각해 보면 최대한 빠르게 진입하는 게 맞겠지만… 조금 더 길게 잡아야 할 것 같네요.”

“뭐 그렇기야 하겠지. 아무리 보상에 욕심이 난다 해도 최소한의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멍청한 놈들이… 이번에는 너무 급하게 움직였나 보군. 우리한테는 좋은 상황이야.”

“최대 이 주? 아니… 삼 주는 봐야 하나?”

‘아무리 그래도 이 모지리들한테 털릴 정도는 아니야.’

물론 적당히 져준 이후에 세이프티 존을 만드는 것까지는 허락할 가능성이 높다.

잿빛 노을 지역에 있는 세이프티 존으로 로헨의 모든 플레이어들을 끌어모아야 할 이유가 있으니 말이다.

“윌리엄 님 혹시… 어떻습니까? 생각이 바뀌셨다면….”

윌리엄이 내 의사를 묻는 것처럼 슬쩍 나를 바라봤지만 당연히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얘네들은 답이 없거든.’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겠네요. 이만 가요. 윌리엄 님.”

“네.”

“윌리엄 마스터….”

“…….”

“정말로 참여하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

“지금 이 문을 나서면 정말 후회할 겁니다.”

“…….”

“…….”

“혹시라도 세이프티 존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신다면 거기서 멈추는 게 좋으실 거예요. 제가 드리는 마지막 조언이에요.”

“하!”

“…….”

“끝까지 건방지군.”

혜지니가….

“뭣도 모르는….”

이 새끼들 전부 다 지옥 보내줬으면 좋겠자너.

아마 약속의 이 주가 지나면 이놈들이 인간 꼬치가 된 채로 이쪽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저 멍청한 놈의 말을 믿은 걸 후회하게 될 겁니다! 윌리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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