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36화
몰락한 왕의 묘지 (2)
“기본적으로 파티가 두 개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1파티는 효열 씨, 나머지는 전부 2파티입니다.”
“…….”
“사용할 수 있는 전술 카드들은 많아요. 설명드려야 할 것도 많고, 사전에 말씀드린 것 외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2파티가 맡게 될 임무는 무척 간단합니다.”
“…….”
“1파티를 지원하는 것 하나.”
“어떻게… 어떻게 하죠? 어떻게!”
“이야아아!!”
“밀어내요! 밀어내!!”
“막아요! 못 들어오게 막아!”
‘개판이자너.’
정말루 개판이기는 해.
분명히 해당 공간 안으로 들어온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느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파티원들이 보인다.
실상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레이먼 볼트 할아버지가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녀석들을 막아서고는 있지만 전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피떡이 되며 쓰러지고 있는 몬스터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방진이 갖춰지질 않으니 몬스터들이 진영을 헤집는 것도 당연했다.
임채령이 길길이 날뛰며 단검으로 몬스터들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남궁선에게 언데드들이 다가오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정하얀은 따로 말을 하지 않았으니 조용히 마법을 유지하며 제 포지션을 고수하고 있었고, 노담혜는 레이먼 볼트 할아버지의 뒤로 숨어버렸다. 애초에 쟤는 당장 전투원으로 써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니 열외.
“어떻게 좀 해봐요! 씨발! 당신! 뭐 하고 있어!?”
임채령이 우효열을 향해 거친 말을 내뱉었다.
팔짱을 낀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 임채령 입장에서는 열이 받을 만도 했겠지.
당연히 우효 녀석은 임채령의 말을 무시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중, 파티의 상태가 개판이기 때문에 짓는 표정은 아니었다.
아마 정하얀이라는 마법사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지 않을까.
1회 차에서도 유능한 마법사들을 많이 봐오던 녀석에게도 아마 정하얀의 존재는 충격적일 테니까.
실제로 이런 마법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 당연했다.
물론 녀석은 마법사가 아니므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단순한 디버프가 아니라 영역 안으로 들어온 적들의 시간을 느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실상은 디버프 마법의 변형이었지만 술자가 정하얀 하나라는 것만으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정말로 공간 안의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데드들뿐만이 아니라 공간 안의 운동하고 있는 모든 것이 느려진다.
전투 때문에 떨어져 나간 구울의 파편, 레이먼 볼트 영감의 실드 스매시에 튕겨 나간 언데드의 이빨, 스켈레톤 궁수와 메이지들이 날린 화살이나 마법까지.
모조리 공간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2파티의 목적은 1파티를, 즉 효열 씨를 보조하는 것에 있어요. 같은 파티로서 활동하지만 1파티와 2파티는 별개의 파티라고 생각하셔야 해요. 당연히 2파티의 전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동력과 안전성이에요. 파티의 후위 클래스들을 안전하게 해당 위치로 호위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이며 존재 의의라고 판단하시면 될 것 같아요.”
“…….”
“레이먼 볼트 할아버지는 원거리 지원이 가능한 직군이고, 채령 씨 역시 제한적이지만 원거리 지원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아! 파티의 중심은 노담혜 씨입니다. 일반적인 트라이앵글 방진과는 다르게 임채령 씨는 볼트 할아버지의 오른발 뒤쪽에 위치하게 될 거예요.”
“이야아아아!”
‘엄청 필사적으로 싸우자너.’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쪽의 말은 듣고 있는 모양인지, 공간을 만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애초 본인의 스펙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였지만, 움직임이 이만큼 느려진 이들을 상대로 활약하지 못할 정도라면 도둑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그 정도는 해야지.’
“왼쪽은 비워둘 거예요.”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선 언니는? 선 언니는?”
“볼트 할아버지도 끝까지 몬스터들을 붙잡고 계실 필요 없어요.”
레이먼 볼트를 떨쳐낸 몬스터들은 빈 공간을 향해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자연스럽게 몬스터는 전위가 없는 왼쪽으로 몰려들기 시작, 전위가 없었던 파티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남궁선의 얼굴이 창백해지지만, 본능적으로 주문을 외치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신성한 가호!”
몬스터들이 기본적인 신성 보호마법을 두드리는 사이에.
정하얀이 주문을 외우자.
뇌전이 몰아치며 언데드들을 휩쓸었다.
“아!”
물론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한차례 녀석들이 쓸려나가기는 했지만 아귀 떼처럼 달려드는 녀석들이 다시 한번 빈자리를 채우는 중.
이미 신성한 가호 주문을 써버린 남궁선이 당황하는 사이, 이번에는 정하얀의 마법이 녀석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문은 로테이션으로 돌려쓸 거예요. 뭘 하셔야 하는지 알겠죠?”
“돌아가라! 망자들아!”
사제라면 기본적으로 익히고 있는 턴 언데드 계열의 주문을 외우자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들이 일순간 허물어진다.
기본적인 몰이 사냥이었다.
“물론 대인전에도 같은 방진을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이 파티의 경우에는 지금 위치해 있는 방진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게 좋겠네요. 아! 우효열 씨의 위치는 프리입니다만 기본적으로 왼쪽에서부터 움직여 주세요. 후위와 붙어 있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떨어져 있는 편이 이상적이니까.”
우효열은 외딴 섬처럼 몬스터의 한가운데에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 당연하지만 디버프를 먹은 몬스터들을 상대로 고전할 정도로 놈이 멍청하지는 않다.
녀석은 멀리 떨어진 왼쪽 끝에서부터 몬스터를 깎아내리고, 볼트 영감은 정면에서 왼쪽 방향으로 몬스터를 밀어 넣는다.
결과적으로 생각 없는 언데드들은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끌려올 수밖에 없고, 보호마법과 우효열 사이에 갇혀 발버둥 치는 녀석들에게는 계속해서 공격 마법이 떨어져 내린다.
몬스터들이 비는 사이사이에 우효녀석에게 쏘아지는 버프마법은 덤, 조금 저 여유가 생기면 원거리 지원까지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이것만으로 녀석이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편할 거야.’
딱히 다른 걸 할 필요가 없으니까. 놈은 평소처럼 검을 휘두르고 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몬스터들이 알아서 사지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보통은 보호마법을 로테이션으로 돌릴 수 있는 두 개의 파티로 사용하는 전술이었지만 파티보다 유능한 개인이 있다면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볼트 할아버지 역시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한 모양인지, 계속해서 몬스터들의 파도를 왼쪽으로 밀어내고 있는 중.
우효열이 이동한다고 해서 굳이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해한 모양이다.
조금 몸을 비틀어 축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인 진영은 계속해서 유지된다.
우효열이 시곗바늘의 끝이라면 2파티는 시곗바늘의 중심, 서로 위치한 곳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는 뭘 하면 되나요?”
‘그러게… 너는 뭐 하냐. 아직 그냥 음유시인인데.’
“그냥 음악이나 켜주세요.”
“아… 네.”
“잔잔한 곡으로.”
“네. 네… 그거라면 자신 있어요.”
이 난리 통 속에서 잔잔한 음악을 깔아주고 있는 노담혜를 마지막으로 파티가 완성된다.
조금 우습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 기합 소리와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언데드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깔린 음악이 이렇게 평화롭다는 게.
“할아버지.”
영감은 내 손짓에 커다란 석궁을 꺼내 우효 녀석 쪽으로 후방지원을,
“하얀 씨.”
하얀이는 일일이 지시해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어떤 주문을 외워야 하는지 알고 있다.
당연히 언데드 놈들이 쓰러지기 전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썩 만족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쉴 시간은 없다.
‘웨이브… 한 세 번 정도 오려나?’
“그럼 이번에는 디버프 없이 해볼까요?”
다시금 창백해지는 이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언니!”
“키에에에에에엑!”
“신성한 가호!”
“죽어 이 징그러운 새끼들아!!”
“저 그러니까 다음 곡은, 다음 곡은 뭐로 들려드리는 게 좋을까요?”
“힘들구만… 허허….”
“영감님! 그쪽으로 가요!”
“…….”
“조금 더 몰아도 돼요.”
“우효열 씨는 괜찮으세요? 지금 어디….”
“제가 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야아아아아아!”
“…….”
“…….”
“…….”
“이제… 이제 진짜 못 움직여… 씨이… 진짜 못 움직인다고… 차라리 날 죽여요.”
“하악… 하악….”
‘괜찮네.’
역시 친해지려면 이렇게 같이 한번 싸워보는 게 좋기는 해.
무척이나 어색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은 거리감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 차례 등을 맞대고 싸웠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임채령 얘는 그중에서도 특히 붙임성이 좋은 성격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랑은 그새 대화도 하고 그러자너.’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치를 보고 있는 모습, 혹시나 한 번 더 전투가 벌어질까 불안한 듯한 얼굴이었다.
‘몇 시간이나 했지?’
한 다섯 시간 정도 했나?
사실 예정되어 있던 몬스터 웨이브는 이걸로 끝이었다.
조금 더 진행할까? 싶기도 했지만 지나친 욕심은 독, 이미 체력적으로, 특히 정신적으로 한계를 맞이한 이들을 더 몰아붙이는 건 지양하는 것이 맞다.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특히 파티의 전투방식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게 입꼬리를 올릴 만한 부분이 아닐까.
본래 가장 중요한 건 기본이다. 세세한 명령도, 수많은 전술 카드들도 기본적인 형이 바탕이 되어야 써먹을 수 있다.
성에 차는 것은 아니었지만 디버프가 걸린 언데드들을 상대로 헤맸던 것에 비하면 박수를 칠 만한 성과라 할 만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묶고 가는 게 좋겠네요.”
그제야 뚜벅뚜벅 이쪽으로 걸어오는 우효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녀석 역시 이쪽과 마찬가지로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 겉으로 보기에는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괜한 시비나 딴지를 걸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가능성을 느낀 것만은 확실했다.
애초 시비를 걸 이유도 없다. 파티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위화감조차 느끼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나쁘지 않군.”
이라고 중얼거린 목소리.
‘내가 이럴 줄 알았자너.’
일단 신뢰도 10포인트 상승,
“그런가요?”
“…….”
당연히 호감도 작업도 빼놓을 수는 없다.
던전 공략도 던전 공략이었지만, 정을 쌓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으니까.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싸우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고. 소소한 이벤트를 함께 하며 천천히 뼈대를 만들어 가는 것.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였다.
“다른 분들은 뒷정리를 부탁드릴게요. 물론 우효열 씨도 함께요.”
“…….”
“사실 하얀 씨가 세이프티 존을 만들 수 있어서 불침번은 필요 없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2명씩 짝지어서 불침번을 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
“식사 준비는 제가 할게요. 힘든 하루였던 만큼 전투식량으로 때우는 것보다는 직접 조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
“드시고 싶으신 음식은 있으신가요? 아! 참고로 오늘 전투에 대한 피드백은 식사시간에 하도록 할 테니 모두 참석하셔야 해요.”
물론 남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이쪽의 마음부터 먼저 여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밝은 목소리, 왠지 모르게 기뻐 보이는 얼굴, 약간은 고조된 표정.
이미 이기영은 이들을 가족처럼 느끼고 있었다. 아니,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상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을 이토록 아끼고 가족처럼 여길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23살의 꽃기영이라 한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스스로 답을 내놓기 힘들었지만….
어째서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굳이 개연성을 채워보자면….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할 수 없는 흐릿한 추억 때문에 생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뒷정리는 그만하시고 모이도록 해요. 와서 식사들 좀 하세요.”
생각해 보니 이 미소는 어딘가 슬퍼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