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37화
몰락한 왕의 묘지 (3)
그만큼 파티의 구성은 이상적이었다. 레벨이나 수치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바라보면 그리 느낄 수밖에 없는 구성이었다.
기본 성정이 온화하고 타인을 잘 위해주는 남궁선, 조금 제멋대로고 어디로 튈지 모르기는 하지만 눈치를 잘 살피는 임채령, 참고로 얘는 막내딸과도 같은 말괄량이 포지션을 맡고 있다.
왠지 모르게 손이 많이 가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키며 파티의 분위기와 비지엠을 맡고 있는 노담혜, 파티의 최연장자로서 어린 파티원들을 잘 이끌어 주는 할아버지 레이먼 볼트.
이쪽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정하얀 역시 남궁채령 듀오와 괜찮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우효열은 애초에 논외다. 원래부터 아웃사이더였거니와 일반적인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찐따였으니까.
하지만 본래 평범한 가정에서도 모난 돌 하나쯤은 튀어나오는 법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이 파티에서 우효에게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밀거나 녀석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녀석을 받아주는 것 같은 분위기.
특히나 말괄량이 막내 임채령은 구석 자리에서 홀로 가오를 잡고 있는 녀석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해주고 있어 이쪽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아까 전에는 왜 가만히 계셨던 거예요?! 얼마나 위험했었는데!”
‘아까 그 이야기 하는 거겠지.’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우효열이 구경하듯 팔짱을 끼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흥.”
“언니? 언니 방금 봤어? 이 사람 봐! 흥이래! 조금 세면 다예요? 저, 저도 던전은 처음이지만 이런 곳에서는 파티원들끼리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들었다고요.”
지나치게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임채령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
딱히 제지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가족끼리 싸우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적당한 갈등은 서로를 더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만큼 이쪽에서도 우효와의 시리어스한 갈등 물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던가.
저 정도야 딱 적정선이다. 일단은 가족 내에서 우효열의 포지션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제멋대로이고 잘 융화되지도 않는다. 매일매일 사고를 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족 모임에도 빠지기 일쑤.
그렇지만 힘들 때는 그 어떤 사람보다 의지하게 되는 존재. 그게 딱 우효열의 포지션이었다.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그래요! 계속 흥흥거리고만 있었으면서!”
“채령아. 그만해.”
“씨이… 선 언니… 따질 건 따 져야죠. 정하얀 님도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오, 오, 오빠가 따, 따로 명령을 내리지는 않, 않았으니까. 저, 저 사람 입장에서는….”
“마법사의 말대로다. 파티가 막 자리 잡는 과정이었으니 이기영의 말이 있을 때까지 대기한 것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
‘하얀이 마법에 넋 놓고 있었다고는 절대 말 못 할 거야.’
물론 이쯤에서는 우효열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맞다.
‘원래 터그 놀이 할 때도 한 번씩 져줘야 하는 거자너. 그래야 우리 애가 재미를 느끼지.’
“우효열 씨의 판단이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을게요.”
“아!”
반응하지 않는 우효열과 눈에 띄게 분해하고 있는 임채령의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여론 자체가 우효열의 잘못이 크지 않다고 흘러가고 있는데 중재자까지 나와 우효열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하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우효열은 아무 말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아마 통쾌한 기분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티를 내지 않고 있을 뿐, 아까부터 계속해서 녀석이 귀찮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미세하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평소의 녀석이었다면 임채령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을 때, 자리를 피하거나 던전을 나갔을 테지만 이미 녀석은 이곳에 묶여 있는 몸이다.
상황상 이 정도 헤프닝은 용인하고 있었겠지만 그게 반갑지는 않았을 터.
어린애 같은 편들어 주기였지만 커뮤니케이션 레벨이 유아기에 머물러 있는 녀석에게는 새로운 경험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 별거 아닌 논쟁이나 말싸움이라도 일단 이기면 기분 좋자너.’
그렇지, 효열아?
“하지만!”
“제가 파티를 두 개로 구분한다고 미리 말씀드렸었죠?”
“으윽….”
“주제도 모르고 천둥벌거숭이같이 날뛰는군.”
“뭐라고요?! 말 다 했어요!”
“흥.”
저 흥은 무시하고 싶다의 흥이다.
“그만 싸우고 식사부터 하세요. 피드백을 하는 건 좋지만… 분위기가 조금 과열된 것 같네요. 채령 씨 입장도 이해가 가지만….”
“그죠? 그렇죠? 이해하고 계시는 거죠?”
“방금. 뭐라고 했지?”
이 새끼 지 편 안 들어주니까 바로 눈썹 올리는 거 봐.
“그냥 입장만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다른 뜻은 없고요. 그것보다 어서 드세요. 다 식겠다.”
“저, 저는 조, 조금 더 먹을래요. 오, 오, 오빠.”
“네. 하얀 씨.”
임채령과 우효열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일어난 사이에 정하얀은 이미 스튜 한 그릇을 벌써 비웠다.
‘맛있을 거야.’
요리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할 줄은 안다. 율하는 매일 투정 부리기는 했지만 오차 없는 계량을 토대로 만들어진 안정적인 맛.
대륙에 소환된 이후에 많이 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나름대로 자신은 있었다.
“맛있구나.”
“조금 더 드세요. 할아버지.”
“말씀 주셨으면 제가 좀 도와드렸을 텐데… 힘드셨겠네요.”
“아니요. 힘들긴요. 몇 가지 안 했는데….”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원정에서 이 정도까지 하실 거라고는 생각 못 해서….”
“앞으로 전투식량은 질리도록 먹을 테니… 여유가 있을 때만이라도 영양보충을 해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족 식탁에 전투식량 몇 개 딱딱 올릴 수는 없자너.
일곱 명이나 되는 인원이 얼굴을 맞대고 식사를 하니 침묵이 드리울 틈이 없다.
“이런 방진은 어떻게 구성하시게 된 건가요?”
“아카데미에 있는 병법서를 조금….”
“아아아.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제로 보니….”
‘뭐 천재라고? 나도 알아. 칭찬은 안 해줘도 돼. 선 누나.’
스킬 모닥불 뒤집기.
“근데 볼트 할아버지는… 아! 말 편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하자꾸나.”
임채령 역시 스킬 붙임성을 레이먼 볼트 영감에게 시전한 모양이다.
“그, 그, 그러니까.”
“웨딩행진곡이요? 갑자기요?”
“나, 나중에.”
“아… 네….”
정하얀은 노담혜랑 같이 대화 중,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더 많은 이야기들이 주제로 들어선다.
주제도 바뀌고 함께 대화하는 인원의 수도 뒤바뀐다.
레이먼 볼트 영감님이 노담혜와 남궁선에게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정하얀이 임채령과 귓속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마치 신입생 환영회나 술자리를 가질 때처럼 큰 주제는 없었지만 굳이 대화가 무거울 필요도 없다.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가까워지게 마련이었으니까.
‘이 새끼는 근데 이 와중에도 입 꾹 닫고 구석에서 폼 잡고 있네.’
조금 불편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녀석이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그것만으로도 한 파티라는 인식이 생기니 말이다.
“왜 그렇게 폼을 잡고 있어요?”
‘앗 안 돼. 채령아.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순찰 좀 다녀오지.”
‘이 새끼 도망간단 말이야.’
“다녀오실 필요 없어요. 우효열 님. 세이프티 존도 있고, 불침번을 서는 것으로 충분해요.”
“이기영 님이 필요 없다잖아요. 거기서 그렇게 폼 잡지 말고 같이 이야기 좀 해요. 지구에서 뭐 했는지도 궁금하고… 지구에서부터 막 검술 배우고 그랬었던 거예요? 혹시 지구에서부터 무공을 배우고 왔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왠지 지구에서도 혼자였을 것 같은데… 친구 없었죠?”
‘안 돼. 너무 가까워지려고 하면 안 돼.’
“대답할 가치도 없군.”
아니나 다를까 우효 녀석의 참을성이 슬슬 바닥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당장에라도 이곳을 뛰쳐나갈 것 같은 분위기. 임채령의 입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는 혼자였거든요.”
우뚝.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우효열의 움직임이 멈춘다.
별것 아니라는 듯이 내뱉은 목소리여서 더 현실성 있다. 이미 임채령은 과거에 본인이 어땠고, 혼자였는지는 그다지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
굳이 사연 있는 애들만 모은 것도 아닌데 다들 사연이 있네.
“여기 와서도 쭉 혼자였는데. 선 언니랑 만난 덕분에….”
“더 들어야 하나?”
“으윽! 사람이 모처럼 진지해지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기에요?”
“…….”
“그, 그냥 미안하다고요.”
“…….”
“아, 아까 전에는 제가 조금 흥분했던 것 같아서. 우효열 씨도 우효열 씨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을 텐데….”
“사과는 받아주지. 그러니 이만 눈앞에서 사라져라.”
“으으으윽! 그 태도는 뭐예요! 이쪽에서 미안하다고 하면 그쪽에서도 사과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무슨 사람이 저래!”
“후우….”
“으으! 열 받아! 아! 열 받아!”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어!’
얼어붙은 우효의 마음을 녹이는 것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레벨2의 도둑, 대화 내용이 생산적이지도 않았고, 올바른 표현도 아니었지만 우효 녀석에게는 생산적이지 않은 양분이라도 뿌리는 게 중요하다.
“알겠어요! 당신이 이겼다구요. 우효열 씨가 하늘에 떠 있는 별이고 저는 바닥에 박혀 있는 자갈입니다. 그러니까 저… 저 싸우는 법 좀 가르쳐 주세요!”
‘갑자기?’
“귀찮다.”
“으아!! 진짜!”
“누구를 가르쳐 본 적도 없고, 설사 내가 손을 써본다고 한들, 네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 그건 나도 알지만….”
“하지만….”
“네?”
“대련 정도라면 나쁘지 않겠군. 조건은 그래.”
“…….”
“재잘거리는 그 일을 다문다면 상대해 주는 것으로 하지.”
“이 사람이 진짜!”
“…….”
“두고 봐요. 내가 꼭 한 방 먹여줄 테니까!”
“웃기지도 않는군.”
‘이건 좀 의외기는 하네.’
정말로 임채령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게 목적인지. 아니면 이 파티에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와 훈련을 함께 해준다는 게 꽤 고무적이다.
‘이 새끼 그냥 훈련 핑계로 두들겨 주려고 그런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악의적으로 그녀를 두들기는 것 같지도 않다.
식사가 끝난 이후 정말로 빈 공간에서 대련을 하고 있는 모습은 내가 눈을 다 비비게 만들 정도.
“꺄아아아악!”
“느려. 자세가 엉망이군.”
“으으윽!”
“호흡도, 단검을 쥐는 것조차 어설퍼.”
“이야아아악!”
“몸을 뒤트는 꼴이 역겹기가 그지없군.”
“이야아아아아아아아!”
‘말로 패고 싶어서 그랬나?’
물론 짧은 시간이다.
“꼭 한 방 먹일 거야!”
“정말로 한 방 먹일 수 있다면 소원이라도 들어주지.”
“허억… 허억… 그거 약속한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찾아온 변화가 믿기지 않는다. 내 생각보다 난이도가 낮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 새끼 설마….
‘설마 생각보다 더 쉬운가?’
쇠사슬 꽁꽁 묶어 놨지만 사실은 자물쇠가 헐거운 녀석이었나.
내가 이미 자물쇠를 열어버려서 내성이 좀 약해진 건가?
당연하지만 상담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불침번 서면서, 모닥불 뒤집으면서.
“…….”
“…….”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후,
“으응… 으응… 오, 오빠… 안 돼요. 안… 거기는… 아… 돼요… 돼요… 돼요….”
“…….”
“아… 히익… 히히힉… 푸히히히힛… 히히히이….”
언제 들어온 지 모를 정하얀의 팔을 살짝 밀쳐내고 텐트의 밖으로 나서자 먼저 모닥불 앞에 위치해 있는 우효열의 모습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제가 좀 늦었네요. 죄송해요.”
“혼자서도 충분하다.”
“아니요. 불침번은 두 명이서….”
‘이쪽은 보지도 않네. 새끼.’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이 일렁인다.
생각에 잠긴 듯이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는 우효열의 모습은 귀찮으니 말을 걸지 말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지만… 이쪽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빨 털려고 불침번을 붙여놨으니까.
“오늘은 조금 어땠나요? 파티는?”
“쓰레기 같더군.”
‘이 새끼.’
“콜록! 콜록! 콜록!”
“…….”
“콜록… 콜록!”
녀석이 뭐라 말을 내뱉기 직전, 재빠르게 오른손에 묻은 혈흔을 감춘다.
“안, 안이… 조금 서늘하네요.”
“네놈….”
하지만 우효의 시선은 이미 피가 묻어 있는 오른손에 집중되어 있다.
‘이제는 기침만 해도 막 피가 나오고 그래.’
“콜록! 콜록! 콜록! 우욱…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