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43화
조금 이른 타이밍 (1)
‘집이… 없어졌자너.’
우효 녀석의 안락했던 보금자리.
떠돌이 들개가 처음으로 돌아와야 하는 곳이라 생각했던 장소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모습이 눈에 보였다.
언젠가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이벤트였기는 했지만….
조금은 시기가 이르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정이 든 이후에 사고가 터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느껴지는 상황.
이를 으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단순히 자신의 영역을 빼앗긴 것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돌아갈 집이 없어졌다는 아쉬움 때문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이기는 해.’
애초 하리젤 자체가 반파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가장 처음 찾았던 곳이 우리들 보금자리인 걸 보면… 우효열의 반응이 딱히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모두가 하리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녀석만큼은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오지 않았던가.
“하아… 하아… 같, 같이 좀 가요!”
“파티장님?”
“왜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뛰어가고 그래요?!”
내 쪽에서도 조금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아니, 아마 파티원 모두가 당황했을 것이다. 저 멀리서부터 하리젤에 심상치 않은 일에 휘말렸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을 테니까.
빈약한 성벽은 무너져 있었고, 멀리서부터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하리젤로 들어가는 것을 피하거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더 알아보려고 했을 것이다.
막말로 던전에 들어가 있는 동안 전쟁이라도 벌어졌을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 메인스트림과는 별개로 최근 국경 부근에서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혼자 다짜고짜 뛰어가면 어떻게 해요! 안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조사하는 것보다… 일단 벗어나는 게 먼저 아니에요? 무, 무섭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뭔가 이상하잖아요. 지금 상황이. 갑자기… 갑자기 일주일도 안 돼서 도시가 이렇게 됐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요. 인기척도 안 느껴지고….”
‘그래. 네 말이 맞아.’
“사람도… 사람도 아무도 없고. 보니까 워프게이트도 끊긴 것 같던데. 전쟁 난 거 아니죠? 그런 거죠?”
임채령의 말에 남궁선이 중얼거렸다.
“일단 생존자부터 찾는 건 어떨까요? 부파티장님. 채령아, 혹시 주변에 뭐가 보이는 게 있니?”
‘쟤가 읽을 수 있겠어?’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구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흔하지 않은데… 전쟁이나 몬스터 웨이브가 벌어졌다면… 적어도 몬스터의 시체가 병사들이라도 눈에 띄어야 정상일 터인데. 기영아.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싶구나.”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말씀대로 흔적이 없는 걸 보면 몬스터 웨이브나 전쟁이 벌어진 건 아닌 것 같지만, 도시가 망가졌다는 건 또 신경이 쓰이네요. 어떤 마력적인 초자연현상이 사전에 예고됐고, 사람들이 미리 피신했다고 보는 게 가장 타당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마력폭풍 같은 것 말이냐? 흠…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구나. 건물들이 불규칙적으로 부서져 있는 걸 보면 그럴듯해.”
하리젤에서 상주하는 모험가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한 흔적들은 확실하게 눈에 들어온다. 굳이 레인저들이 흔적을 읽을 필요도 없다.
‘마차의 수레바퀴 자국.’
그리고 내팽개쳐져 있는 짐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모든 흔적이 어느 순간 끊겨 있었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노을빛의 마왕이 악마의 술수를 사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잿빛 하늘은 아직 하리젤에서 먼 곳에 떨어져 있었다.
영역을 넓히지 않는 한, 김현성을 비롯한 21군단이 이곳까지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쪽은 손님 받느라 바쁠 테니까.’
커피를 마시지 않으니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 같은 느낌. 힘든 던전행을 끝내고 짧은 휴식을 취하려고 했건만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 기운이 빠진다.
“효열 씨. 혹시 여관에 맡긴 물건이라도 있었나요?”
“없었다.”
“그럼….”
“…….”
녀석 역시 대화를 거부한 채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 중, 녀석 역시 흔적을 밟고 있음이 분명할 것이다.
“어이, 마법사.”
“…….”
“마법사.”
“…….”
“정하얀.”
“아. 네? 저, 저, 저요?”
“그래.”
하얀이랑 우효랑 말 처음 하는 거 같자너.
용케 이름을 외우고 있었네.
“이거. 마법인가?”
“아… 불, 불, 불에 탄 거 말하는 건, 건가?”
“…….”
“흔, 흔적이 느껴지지는 않는데….”
“…….”
하리젤의 상황에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정하얀이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총총걸음으로 여관이 불에 탄 흔적을 조심스레 살펴보는 모습은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았지만 정하얀의 마력이 한차례 주변을 살피는 것이 느껴진다.
거의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 마력탐지 마법.
“아! 생, 생존자….”
심지어 아까 생존자를 찾아야 된다는 말이 떠올랐는지 마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캐스팅을 외우고 있었다.
우효 녀석이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건 현재의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 와중에 임채령은 긴장이 풀렸는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마력폭풍이 맞으면… 아무튼 인명피해가 있지는 않다는 거죠? 으… 좀, 좀 쉬고 싶었는데… 빨리 목욕하고 싶었다고요.”
‘근데 나도 공감해. 클린 마법이 있기는 하지만 목욕하는 거랑은 다르지.’
“시원한 맥주 한잔하면서 오늘 원정에서 얻은 아이템 정산할 생각에 신났었는데… 워프게이트도 안 되면… 어떻게 해요. 또 텐트에서 자야 되는 건가… 돈도 많이 벌었는데 왠지 억울해….”
‘따뜻한 커피 한잔하면서 책 좀 읽고 싶었다구.’
“입 다물어라. 천둥벌거숭이.”
“으윽….”
“아직 무슨 일이 있는지 확실시된 게 아니니까. 주변에 마력이 느껴지지 않아. 마력폭풍 같은 자연현상이었다면 이미 끝나고도 남았을 시간이야. 도시가 계속 지금과 같은 상태였다면 모험가들이 진작 하리젤로 복귀했을 거다.”
“아.”
“피난민들이 어디로 향하지도 확인되지 않았어.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을 본 적이 있나? 삼거리에 있는 캠프에는?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었나?”
“아… 아니요.”
‘그 말이 맞아.’
“심지어 중간중간 흔적들이 읽히지 않는다. 평범한 상황이 아니야. 이런 건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어.”
개인적으로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법이나 특수능력 따위의 이능이었다. 적어도 국가 단위로 설계됐다고 판단해도 될 정도의 마법.
우효 녀석 역시 나와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예측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어차피 하얀이가 알아서 답을 내려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이 하얀이가 말을 이어왔다.
“사, 사람들… 사람들 있다.”
“네? 어, 어디요?”
“여… 여기 밑에.”
정하얀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바닥이었다.
“네?”
“여기… 밑에 사, 사람들 있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마녀니….정하얀 님?”
“아. 그, 그리고 마, 마법이라고 물, 물어봤었지. 참… 참….”
“…….”
“말, 말하면… 정상적인 마, 마법은 아닌데… 굳, 굳이 분류하자면 이, 이걸 마법이라고 봐도 될지 모르겠는데… 방, 방식은 전이 마법과 비슷한 것 같아요오.”
“전이 마법?”
“네, 네… 사, 사람들을 옮긴 거예요….”
“그게 가능한가? 이 도시 전체의 사람들을 전부 옮길 수 있다는 게?”
“아, 아주 먼 곳까지는 불가능하죠. 이, 이건 미, 미리 만들어놓은 아공간…으로 집어넣은 거니까. 내. 내가 말했잖아요! 여, 여기 밑에 사람들 있다구….”
“뭐라고?”
“웜홀 같은 게 여, 여기 바닥에 있다고 상상하면 되지 않을까 싶… 싶은데… 미리 상자를 만들어놓고, 웜홀을 열어서 그 상자 안에 인간들을 차곡차곡 집어넣는 거죠. 그, 그 상자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걸 기본적인 공간이동 마, 마법이라 부르지만… 이, 이 마법? 아, 뭐, 뭐라고 불러야 되지. 권, 권능? 권능의 술사는 그,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 것 같은데… 아공간 안에 사, 사람들을 가두는 게 한, 한계였나 봐. 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도움도 받은 것 같고… 방식도 쪼끔 조, 조잡하기는 한데….”
“…….”
“여기 있는 마, 마법사들이 수, 수준이 낮았나 보다. 이, 이건 저항할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바… 바보들이었네… 바보들… 푸… 푸힛….”
‘안 웃겨 하얀아. 그거.’
“터무니없는 소리로군.”
“안 터무니없는데. 진, 진짠데….”
정하얀의 말에 무심코 마음의 눈을 활성화시키며 주변을 바라보자.
‘시바….’
확실히 검은 공간 아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간들이 시야에 비쳐온다.
‘으으. 시바 소름 끼쳐.’
어떻게든 위로 올라오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마치 물속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처럼 손으로 계속해서 검은색의 벽을 두드린다.
완전히 얼어버린 호수의 위에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 같은 느낌.
저쪽에서도 이쪽을 볼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꺼내줘.
‘입 모양으로 말하지 마. 시바.’
-꺼내줘!!! 꺼내줘!!!!!!
‘…….’
-꺼내줘어어어어어어어!!!!!
“어, 어디서 이런 거 비슷한 거 본 적 있었는데. 마, 마법은 아닌데….”
“…….”
“비, 비슷한 거… 본, 본 적 있었는데… 아….”
한참이나 인상을 찌푸리던 정하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도미….”
“생선이요?”
“아, 아니, 그건 아…아니고….”
그리고 내 눈에도 검은색 공간에 떠다니는 하얀색 깃털들이 들어왔다.
“도망쳐요.”
“네? 부파티장님?”
“도망… 도망쳐요!”
‘시바.’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은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소년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게 눈에 보였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마냥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인다.
갑작스레 벽을 뚫고 등장한 녀석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파편들 사이에서 기다란 검을 뻗고 있다.
목표물은 우효열, 순식간에 이쪽을 스쳐 지나간 은색의 소년과 눈이 마주친다. 물론 이쪽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효열아!”
녀석도 바보는 아니다. 쾅 하는 소리에 몸이 반응했는지 허리를 뒤로 젖히는 것으로 녀석의 검을 피한 이후, 발로 녀석의 손목을 올려 차는 중.
은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천사는 순간적인 공격을 허용했지만 검을 놓치지는 않았다.
다시 한번 격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첫 기습이 먹히지 않자 순순히 거리를 벌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만나면 안 됐는데.’
아직 안 됐는데.
그리고.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미. 찾았어.”
“…….”
“…….”
“응. 나도 보고 있어. 쓰로.”
“…….”
“…….”
“아버지야.”
“아버지야.”
푸른색 머리카락을 한 소년과 갈색 머리를 한 소녀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