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46화
조금 이른 타이밍 (4)
곧바로 피를 쏟으며 허물어지는 임채령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아….”
“…….”
“콜록. 콜록….”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그녀가 쓰러지는 모습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관통된 가슴에서 검이 뽑혀 나오자 그곳에서 울컥울컥하고 피가 흘러내린다.
입에서는 계속해서 피를 쏟고 있었다. 뭐라 말을 내뱉고 싶은 것 같았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
처음에는 당황한 표정으로 가슴을 바라보고 있던 임채령이었지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깨달은 이후에는… 오히려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여기서 끝이구나. 내 모험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그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
흥분하면 안 된다고… 이럴 때일수록 더욱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23살의 여린 꽃기영이 이런 상황에서 냉정해질 수 있을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뒤로한 채로 곧바로 임채령에게 뛰쳐나간 것은 당연지사.
레이먼 볼트 역시 이쪽의 돌발 행동을 예상했었는지 곧바로 파티원들을 이끌고 임채령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파티의 후위가 진영을 이탈하는 것처럼 멍청한 행동은 없다. 만약 볼트 할아버지가 뒤를 봐주지 않았더라면 이쪽 역시 같은 꼴을 당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은발의 천사가 거리를 벌린 이후에는 파티원들이 곧바로 그녀를 둘러싸기 시작.
가장 당황한 것은 그녀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남궁선이었다.
“채령아… 채령… 채령아….”
“언… 언… 언니… 콜록.”
“채령아… 흐윽… 채령아 조금만 기다려. 언니가….”
“나… 나 죽는… 죽는 거야?”
“아니… 아니야. 지금 신성주문을….”
‘이미 바닥났어.’
그녀의 신성력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 최선을 다해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지만 상처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금방 치료해 줄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기다려… 조금만 기다리면… 흐윽… 흐으윽….”
“언… 언니… 콜록. 콜록….”
“이기영 님… 채령이 좀… 채령이 좀 어떻게 해주세요.”
그녀의 손을 꽉 잡아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신성력이… 듣지 않아.’
은색 천사의 검에 서린 악마의 기운이 신성력을 밀어내고 있는 모습.
빛의 화관까지 띄워가며 성자 폼으로 신성력을 쏟아붓고 있었지만 임채령의 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더욱더 빠른 속도로 몸이 식어가고 있다. 마치 이 신성력이 독이라도 되는 것처럼 계속해서 검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당황스러움과 조급함이 얼굴에 묻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 평소답지 않게 손도 덜덜 떨려오기 시작한다.
저도 모르게 눈에는 눈물이 차오르고 하기 싫은 상상들을 하게 된다.
결론을 내리기 싫지만 한쪽 구석에 있는 이성은 이미 임채령을 살릴 수 없다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릴 수 없어….’
이건… 이건….
절망에 빠진 내 얼굴을 확인한 것일까.
“제발… 제발….”
“…….”
“포기하지 마세요. 제발… 채령 씨.”
임채령의 눈이 곧바로 남궁선을 찾기 시작했다.
“언니… 나… 나 잘했지.”
“흐윽… 흐으으윽….”
“이번에는… 잘… 잘한 거 맞지. 이번에는… 제대로… 한 거지… 그렇지.”
“…….”
“부파티장님… 저… 저… 잘했죠. 콜록… 콜록….”
아마 매번 중얼거렸던 2 파티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고 말한 것이 분명하리라.
백번 생각해도 잘했다고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명령도 없이 진영을 이탈한다는 것을 어떻게 잘했다고 여길 수 있을까.
“네. 네….”
“이번에는… 조금… 도… 도움이 된 거죠….”
“네.”
“나… 나… 나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이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쏟아지는 눈물 때문인지, 자꾸만 시야가 흐려진다. 분명 가까운 사이라고 말하기 힘든 관계일 터인데….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어째서 이토록 슬픈 걸까.
“흐윽… 흐으윽….”
“쓸데없는 짓을 했군.”
‘우효 새끼. 시바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꼭… 꼭… 말을 그렇게… 그렇게 해야….”
“하지만.”
“…….”
“나쁘지는… 않았다.”
“히… 히히….”
일그러진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는 임채령. 그리고 굳은 표정의 우효열.
녀석은 녀석답지 않게 천천히 무릎을 꿇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마 이 냉혈한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임채령의 손이 힘없이 올라가고. 그런 그녀의 손이 우효열의 얼굴에 투욱 하고 닿는다.
녀석이 조금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봤을 때, 임채령이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한 방… 한 방 먹였다. 헤… 헤헤.”
“…….”
‘채령아… 시바… 이 정도까지 해줄 줄은 몰랐어.’
“한 방 먹였네… 헤….”
“…….”
“소원….”
“…….”
“소… 원….”
“…….”
“이… 이겨….”
“…….”
“언니를… 잘… 콜록… 잘 부탁….”
“…….”
“가끔… 가끔… 조금… 웃… 웃기. 헤… 기분… 나빠도… 가끔… 웃기.”
“…….”
어깨가 안 떨리구 있자너. 우효 새끼. 시바.
임채령의 한 방으로도 얼어붙은 우효의 마음을 녹일 수는 없었던 것일까.
혹시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조금 이른 타이밍이 아니라 너무 이른 타이밍이었던 것은 아닐까.
‘너무 빨리 썼어.’
동료 잃기 이벤트를 너무 빠르게 시도한 게 문제일 것이다. 조금 더 정을 쌓을 시간을 줬다면 충분히 명장면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였다.
흐름을 등장 인물들에게 맡겨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을 보고서도 우효 녀석은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도, 감상에 빠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담담하게 입을 열고 있지 않은가. 고작 나쁘지 않았다가 끝?
이 새끼가 정녕 인간이란 말인가.
인간의 탈을 쓰고서 어떻게 한 사람의 죽음에 이렇게 무감각하단 말인가.
악마는 노을빛의 마왕 김현성이 아니라 이 새끼일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임채령 대사도 우효의 가슴에 닿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치운 이후 몸을 일으키는 모습. 죽어가는 사람을 내려다보는 꼬라지가 사이코패스나 다름없어 보였다.
임채령이 다시 한번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헤… 헤헤… 봐요… 웃, 웃으니까….”
“…….”
“헤… 콜록….”
‘효열아.’
“헤… 잘생겼잖아요….”
‘너… 웃어준 거니?’
“흐윽… 흐으으윽… 채령아. 채령아.”
‘죽어가는 채령이를 위해서… 웃어준 거야?’
우효열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이 통탄스러울 지경.
도대체 어떤 미소를 봤길래. 이렇게 기분 좋다는 듯이 눈을 감을까.
“채령아… 아아… 아아아아!! 채령아! 채령아아아!!”
“흐윽… 흐으으으윽… 끄으으윽….”
아. 나도 울어야지.
“채령 씨… 흐윽… 채령 씨….”
근데 얘 안 죽어요.
“채령 씨…. 흐으으윽… 포기하지 마세요. 제발… 제발 조금만 더…. 포기하지 마세요.”
“…….”
“제가… 지금….”
울컥울컥 쏟아지는 피를 맨손으로 압박한다. 포션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품에서 꺼낸 포션을 꺼내지만 손이 떨려 제대로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수전증이라도 온 것처럼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 만해요… 이기영 님.”
어떻게든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심폐소생술을 이어나간다.
온몸이 땀이 범벅이 되고 손이 피로 물들지만 심장이 멎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흐으으윽… 그만… 그만해요… 그마아아안… 흐으…어어으어어어어엉… 채령아… 채령아아아… 흐으어어어어어엉….”
“…….”
“흐윽… 흐으으으윽… 채령아… 죽었어요. 죽… 죽었다고요… 흐으으으윽… 어어어엉….”
“…….”
‘뭔 소리야 얘 안 죽었어.’
눈물로 범벅이 된 남궁선의 얼굴, 노담혜 역시 죽음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인지 멍하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채령아… 흐으으윽… 미안해… 언니가… 언니가 미안… 해… 흐어어어어엉….”
‘얘 안 죽었다구요.’
물론 치명상이라고 할 수 있는 상처, 과다출혈로 인해 오락가락하고 있겠지만 아마 죽지는 않을 것이다.
외신 4남매는 살인하는 것에 금제가 걸려 있었으니까. 심장을 뚫리지도 않았고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의 급소는 전부 비껴갔다.
아마도 신체활동을 봉인하거나 일시적으로 멈추게 하는 정도의 수를 쓰지 않았을까.
아마 여기에 두고 가면 쟤네가 알아서 살려낼 거야.
‘저 봐. 쓰로누스도 당황했자너.’
저 급식들이 괜히 이쪽에게 이별 타임을 준 것이 아니다.
‘이 새끼들도 지금 깜짝 놀랐어.’
애초 얘네들이 인간을 상대로 검을 휘둘러본 적이 있었나. 그간 은근히 오냐오냐 키워 가지고….
사고방식도, 근본 자체도 인간과 다르기는 외신 꼬맹이들은 우리 대륙에서 인간으로 자라왔다.
실제로 자신이 인간을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멘탈이 갈리기는 하는 모양.
아니, 그냥 내가 울고 있으니까 멘탈이 갈린 것일 수도 있지만 웬만하면 전자로 생각하고 싶다.
“당황하지 마. 쓰로누스.”
“…….”
“우리들이 할 일을, 아버지를 되찾는 것만 생각해.”
“응. 케루.”
“아버지를 회수해.”
이제 막 다시금 녀석들이 움직이려고 했을 때였다.
“아아아아!!!”
거대한 빛이 갑작스레 환하게 주위를 비추기 시작한 것.
서둘러 고개를 돌리자 두 손을 모은 남궁선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녀의 재능으로, 그녀가 가진 힘으로는 발현할 수 없는 출력.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힘이었지만 그 빛을 목도한 순간, 마음의 눈에 찬란한 광휘를 담은 순간, 저도 모르게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일생에 단 한 번,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힘.
“…….”
“…….”
로헨 사제들에게 도시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주문이었다.
실제로 성공할 확률도 희박했고, 성공했다는 사례도, 성공했다는 증거도 없다.
주문의 내용은 신에게 기도하는 것 하나.
자기 자신조차 공물로 바쳐 자신이 모시는 신에게 기도하여 염원을 전하는 것. 겨우 그것 하나.
자기희생 주문.
위에 놈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생각해 보면 그냥 안락사 희망 주문이었다.
‘궁선아… 아니, 선아… 너였니?’
“남궁선 씨…?”
“…….”
‘네가… 가는 거니?’
“선 씨….”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드라마. 과연 누가 하차하게 될지 나조차도 예상이 가지 않는 시점.
꽃기영은 그저 휘몰아치는 광휘를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너무나 무력하게….
너무나도 무력하게 말이다.
‘뭐가… 뭐가 천재야… 뭐가 천재군사고… 뭐가… 꽃과 풍요의 성자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