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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47화 (1,14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47화

조금 이른 타이밍 (5)

남궁선의 몸에서 피어나오기 시작하는 빛의 광채는 어느새 주변을 환히 밝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숭고해 보이는 빛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슬프게 보이는 빛이기도 했다.

그녀는 명백하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아무리 커다란 페널티가 있는 신성주문이라고 한들, 고작 3레벨의 사제가 낼 수 있는 출력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미 한계를 맞이한 몸이 아니었던가.

여리지만 똑똑한 23살의 꽃기영은 그 누구보다도 남궁선의 상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단 한 줌의 신성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이미 체력적, 정신적으로 한계를 맞아 금방이라도 리타이어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꽃기영은 분명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그녀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일 거라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이제 전부 끝났다고 말이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걸 바깥으로 표출하지 않았지만 23살의 여린 꽃기영은 분명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남궁선… 씨….”

폐허가 된 도시를 비추는 찬란한 빛. 계속해서 그녀의 주변에서는 신성력이 터져 나온다.

“아… 그만… 그만….”

‘얘는 진짜로 죽는 거자너.’

임채령처럼 극 중 탈락이 아니라 본인이 멋대로 안락사 주문을 외워 버린 것이니 말이다.

물론 굳이 하차하고 싶다면 말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로헨에서 일이 잘 풀리면 공로를 인정해 좋은 자리를 하나 배정해 줄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 쪽으로 데려가 줄 수도 있다.

일이 어떻게 처리될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필멸자 영혼 하나 빼돌리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아아아아아아아!”

그래도 이건 에바기는 해.

잘못하면 임채령이랑 남궁선 둘 다 잃을 수도 있으니까. 괜히 이상한 도박 걸었다가 둘 다 놓치면 새 되는 거지.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쪽처럼 자세한 전후 사정을 알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가 생명력을 태우고 있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리 만무.

“안 돼요… 안 돼요… 남궁선 님.”

노담혜는 중얼거리고 있었고, 정하얀 역시 깜짝 놀랐는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하얀이가 좋아했었지. 쟤.’

당연히 정하얀이 말려주지 않을까 싶었을 때,

뜻밖에 등장한 것은 우효열이었다.

퍼억 하는 소리가 들린 이후에는 그대로 허물어지는 남궁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효열이 그녀를 기절시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임채령에게 언니를 잘 부탁한다 같은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았지만….

‘진심인 거니? 효열아?’

“…….”

‘정말 진심인 거냐구? 진짜 돌봐주려고 그러는 거냐구.’

“끝까지 멍청하군. 천둥벌거숭이나… 이 무능한 사제나 말이다. 하나같이 멍청한 놈들뿐이야.”

울먹이는 얼굴로 녀석을 올려다봤지만 이미 뒤를 돌았는지 등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다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으로 쭉 빠져나가라.”

“…….”

“내 말 못 들었나? 임채령과 남궁선을 챙겨서 하리젤을 당장 빠져나가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시간을 벌어주지.”

“아… 아….”

“정신 차려라. 이기영.”

“…….”

“나는 두 번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

“무엇보다… 너답지 않은 모습이다. 그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지?”

“하지만… 하지만….”

“차라리 평소처럼 건방진 소리를 지껄여라. 네겐 그게 더 어울려.”

‘네가 남게?’

“여긴 내가 맡겠다.”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이 새끼는.

물론 그런 생각을 해준 건 기쁘지만 우효 파티를 우효 없는 우효 파티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여기는 나에게 맡기고 어서 빠져나가는 클리셰적으로 훌륭한 스토리텔링이기는 했지만 이건 우효열의 역할이 아니었다.

“임채령은 아직 죽지 않았다.”

“…….”

“아직 죽지 않았어. 아마 잠시 후면 구조대가 이곳으로 찾아올 거다. 하리젤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는 저 마법사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슬쩍 하늘을 바라보자 하리젤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독수리 몇 마리가 시야에 비쳤다.

이상현상을 감지한 테이머나 레인저들이 이쪽의 동향을 살피고 있는 모양. 우효 녀석도 저걸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효열 씨는….”

“네가. 언제부터. 날 걱정하게 되어 있었지?”

“…….”

“나는 강하다. 네놈의 알량한 머리로 판단하고 있는 것보다 더.”

‘아니, 시바 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케루빔한테 개 털리고 있었자나요. 지금도 피 흘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럴… 그럴 수 없어요. 차라리 전부 같이.”

“말이 통하지 않는군. 병신 같은 놈. 영감. 내 말 들었나? 지금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라.”

잡담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일까. 쓰로누스와 케루빔이 다시금 돌진해 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순간, 케루빔의 낫을 검으로 교차해 막는 우효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비쳐왔다.

예상했던 것처럼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얼굴. 심지어 악어의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이 얼마나 화가 나 있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애초 표정이란 것을 찾아보기 힘든 얼굴은 더욱더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천사들을 바라보는 눈에는 증오가 깃들어 있었으니까.

‘넌 안 돼. 시바.’

아무리 생각해도 효열 없는 효열 파티로 만들 수는 없다.

애초에 회귀자가 여기서 리타이어 해버리면 노을빛의 마왕은 누가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차라리 나를 두고 가 클리셰로 이 이벤트를 마무리하려면 더 적당한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안 돼… 쳐다보지 마.’

“…….”

‘할아버지는 쳐다보지 마.’

“…….”

‘넘 쳐다보고 싶은데… 쳐다보면 안 될 것 같자너.’

기영아 쳐다보지 말자. 그럼 너무 티 나자너.

‘등을 떠밀 수는 없어. 할아버지를 쳐다보지 말라구. 이기영!’

이미 우효열은 케루빔, 쓰로누스와 뒤엉켜 드잡이질을 하는 중.

녀석의 말대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녀석이 내게 허세를 부린 것과는 반대로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워 보인다.

자신만만하게 입을 털었지만 녀석은 최소 동귀어진하다 뒈질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아마 본인도 그렇게 느끼고 있겠지. 차라리 세 명 다 데려가고 끝내겠다고. 본인이 죽든, 살아남든 신경 쓰지 않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본인에게 두 번째 기회가 있는지 없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원래 우효열은 이랬으니까. 이게 우효열이었으니까.

녀석은 원래 항상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해야만 하는 성격이었으니까.

적이 얼마나 강한지, 얼마나 불리한지는 녀석이 신경 쓸 사안이 아니다.

녀석은 이렇게 1회 차를 이겨내고, 살아남아 왔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해왔다.

‘근데 있잖아.’

“…….”

‘2회 차는 그렇게 성장하면 안 돼.’

같은 방식으로 성장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갑작스레 머리를 쓰다듬는 감각이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기영아.”

“할아버지…?”

“…….”

“…….”

“고맙구나.”

“네? 무슨….”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갑자기… 왜 그러세요?”

“다시 한번 내게 살아갈 희망을 주어서 고맙다.”

“…….”

“이 길었던 인생의 마지막이 의미 없게 끝나지 않도록… 내 앞에 나타나 줘서 너무나도 고맙구나.”

“할아버지?”

“끈은 이어지는 법이란다. 유지는 이어지는 법이야.”

“지금 무슨 말씀 하고 계시는 거예요?”

“끝나도 끝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야. 영특한 너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테지.”

“…….”

“오늘 이게 너와 나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거라.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너답게 살아가거라. 네가 하고 싶은 것들, 네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모두 즐기며 이 세상을 살아… 갔으면 좋겠구나.”

“…….”

[황금색 성좌에 앉은 이♥가 레이먼 볼트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동료들을 믿고 사랑하거라. 그리고 그 무엇보다 너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걸 잊지 말거라.”

[황금색 성좌에 앉은 이♥가 4레벨 전사 레이먼 볼트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네가 내게 다가와 준 것만으로도 이 늙은이는….”

[황금색 성좌에 앉은 이♥가 4레벨 전사 레이먼 볼트를 자신의 계약자로 삼고자 합니다.]

“너무나 행복했단다.”

씨익 웃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아….”

황금색에 뒤덮인 레이먼 볼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가 게니우스의 선택을 받아 레벨5로 전진했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분에 넘치는 힘이다. 이미 노화가 시작 중인 퇴물 전사에게 깃들기에는 너무나도 찬란한 힘이 눈에 보인다.

저 노쇠한 육체는 저 힘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다시 한번 인지한다.

뭐라 말을 내뱉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머리를 쓰다듬고는 곧바로 우효열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함께 싸우며 무어라 말을 주고받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소리치고 있었고 우효열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폭음 때문인지, 아니면 체력적으로 힘이 다해서 그런 것인지 제대로 둘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레이먼 볼트가 말한 조용한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23살 꽃기영의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유지는 이어지는 법이라네.”

“…….”

“끈은 이어지는 법이야. 내 끈은 분명 우효열, 자네에게도 이어질 거야.”

“…….”

“그럼. 내 손주를 잘 부탁하네.”

그리고,

할아버지를 뒤로한 채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온 우효열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뭐라 말을 내뱉기도 전에 이쪽을 들쳐 맨 녀석이 빠르게 하리젤을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레이먼 볼트 할아버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발버둥 쳐보지만 점점,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었다.

“할아… 할아버지! 할아버지!!”

적의 습격에 당했는지 우효열과 함께 땅바닥을 나뒹굴었지만 녀석은 금세 이쪽을 부여잡은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레이먼 볼트의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거 놔요… 이거 놔!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

“이거 놔!”

“…….”

“이거 놓으라고 했잖아! 흐윽… 이거 놓으라고요… 제발… 흐으윽… 제발요….”

마침내 전장을 빠져나와 하리젤을 바라봤을 때 마지막으로 비친 것은,

이질적인 파동이 하리젤을 뒤덮는 광경.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린 하리젤의 모습이었다.

“…….”

“…….”

“할아버지이이이이!!!!”

“…….”

“흐윽… 흐으으윽….”

‘생각보다 은퇴를 빨리 하시기는 했는데….’

“할아버지이… 흐윽… 흐으으으윽….”

‘잘 쉬고 계세요. 노후는 걱정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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