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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54화 (1,15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54화

작전명은 여명 (3)

‘신기한 사람이다.’

정말로 신기한 사람이었다. 첫 만남부터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이 사람은 정말로 신기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그의 능력이나 그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기영이라는 사람 자체가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기영 님, 명령을.”

“…….”

“…….”

“네. 윌리엄 님.”

생각해 보면 이처럼 인간적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따뜻하고 따사로운 종류의 인간이었다.

바보 같을 정도로 사람들을 좋아하고, 바보 같을 정도로 유약한 인간이었다.

지구의 때가 덜 빠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천성이 그러했다.

이기영이라는 사람은 약하고 쉽게 눈물을 흘리고 감정에 잘 휘둘린다.

23살의 어린 나이라는 것이 영향이 있었겠지만 그는 보기보다 더욱더 감성적이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출정식 때 역시 그랬다. 그는 자신이 상처받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얼굴을 눈과 기억 속에 담았다.

자기 자신이 무너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감내하고자 했다.

이곳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죽어갈 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최대한 많이 기억하고자 했다.

당연히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이다.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보통의 인간들은 같은 아픔을 다시 한번 느끼려 하지 않았으니까, 자신의 책임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사람은 다르다.

이기영은 자신이 본 이들 중 가장 약한 사람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강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도 아파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

본인이 상처받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주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

힘들 거라는 걸 알면서도 모든 이들을 전부 품에 안고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

자신이 망가질 수 있음에도… 결국에는 아픔과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한 사람.

그 어떤 인간들 보다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었지만….

‘…정말로 인간이 맞는 건가?’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은 그의 인격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기영이라는 사람이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능력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위와 같은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천재.’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는 표현으로도 지금의 일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종이 다른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

정하얀이라는 마법사가 비추고 있는 커다란 거울 수십 개를 바라보고 있는 눈에는 흔들림이 없다.

한 번의 수십, 수백 가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중 가장 합리적인 돌파구를 찾아낸다.

애초에 어떻게 저것들을 모두 시야에 담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돌격! 돌격!”

“전군! 전진하라!”

이번 작전의 목적은 간단했다. 잿빛노을로 오염된 지역을 정화해 세이프티 존을 만드는 것 하나. 딱 그것 하나였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번 메인스트림의 난이도도 난이도이거니와, 크게 세 가지, 작게는 스물네 가지, 더 촘촘하게는 백여 개가 넘는 퀘스트를 완료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탓이다.

불가능해 보였던 작전, 어떤 기적이 일어나야 클리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작전을 너무나도 간단하고 쉽게 해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전명 여명, 희망의 빛이 퍼져 나가기로 한 장소는 종교도시 세인트 벨.

고개를 앞으로 올리자 도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병력들이 시야에 비쳐왔다.

신전의 수용을 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계획도시이자 위성도시였지만 종교도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높은 성벽도, 도시를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도 없다.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냐고 묻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아마 로헨의 권력자에게 세인트 벨에 대해 묻는다면 백이면 백 이렇게 대답하리라.

‘상징성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라고.

자신이 느끼기에도 세인트 벨의 가치는 상징성이 전부였다. 입지적으로 완벽하지 않고, 세이프티 존을 만들어내기 적절한 장소라고 볼 수 없다.

도시 자체가 품고 있는 신성력이 높아 잿빛노을 지역을 정화하는 것에 유리하다지만,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위성도시가 세인트 벨밖에 없는 것도 아니었다.

로헨의 대도시들은 주로 이런 종류의 위성도시들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어째서 세인트 벨이었을까 했던 의문은 전투가 시작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돌격! 돌격!”

“성벽은 없다! 최대한 빠르게 도시 안으로 진입해!”

“준비! 하급 마물이다!”

병력들이 도시로 들이닥치자. 마물들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지르며 병력들을 막아선다.

한 번의 부딪침 이후에 마법들이 쏟아져 내리고 여기저기에서 비명과 함성이 튀어 나왔다.

순식간에 밀려나는 마물들이 보인다. 저 괴물들이 힘 싸움에서 밀린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는 디테일이었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 아니,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있다.

‘보통 지휘관들은… 이런걸, 이렇게 할 수 있는 건가?’

분대 단위의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는 타이밍, 시전하는 속도 따위의 것들을 맞출 수 있는 건가?

전사들이 대미지를 입었을 때 곧바로 신성주문을 준비하게 할 수 있는 건가?

적의 원거리 공격이 날아오는 경로를 미리 알 수 있는 건가?

초 단위로 변수까지 계산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가.

아마 아닐 것이다. 스스로를 지휘관으로 칭했던 인사들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말도… 안 돼.”

“방금은….”

마치 잘 짜인 연극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미리 대본이 쓰여 있는 전쟁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전사들이 상처를 입은 곳에 곧바로 신성마법이 떨어지고, 적의 마법이 떨어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보호막이 생성된다.

궁수들이 쏘아 올린 화살은 적의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틀어박히고 적의 공격은 아군의 방패를 두드린다.

봐주기 대련을 보는 것보다 더욱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미리 짜 맞추고 공격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 완벽하게 타이밍이 맞지 않을 것이다.

병력과 병력이 한꺼번에 부딪히는 순간, 2초, 3초 남짓한 짧은 순간에도 그의 말 한마디에 많은 것들이 뒤바뀐다.

“밀어붙여! 밀어!!”

“뚫어내! 뚫어내!! 이 새끼들아아아!!”

“키에에아아아아아아악!”

“머리 치워! 이 새끼야!!”

“진입한다! 진입합니다!”

“들어가! 도시 안으로 들어가!”

멀리서 떨어진 곳에서 보기에는 너무나도 쉽게, 병력들이 종교도시 세인트 벨로 들이닥친다.

그가 입을 움직일 때마다 마법들이 터져 나온다. 내뱉은 말은 그대로 수신기에 수신되어 병력들의 길을 열어준다.

고작 전초전을 봤을 뿐이었지만 도시 내에 진입해 시가전을 펼치는 병력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가 각자 지정된 위치로 망설임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아군 블록과 적군 블록이 마주치고 전투에 들어서자 주변에 있는 다른 병력들이 전투에 합류한다.

신전 하나하나를 범위로 설정해 마치 땅을 가르는 것처럼 착실하게 적 병력에 대미지를 주고 있다.

-전투 돌입했습니다! 2분대. 전투 돌입했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명령을!

“31분대는 우회해 2분대를 지원합니다. 마법분대는 말씀드린 좌표로 마법을….”

-네.

“그리고.”

-신전 확보했어요. 지휘관.

“A구역은 지금부터 방어전에 들어갑니다. 전 병력, 다시 임무를 전송할 테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네.

-넵!

“작전 보고.”

-저희는 클리어했습니다. 지휘관님.

-이쪽도 설치 완료했습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겠습니다.

-전투 중입니다. 지원병력 요청을… 아니, 지원병력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휘관.

“네.”

-8분대 임무 실패. 말씀드립니다. 8분대 임무 실패.

“확인했습니다. 8분대 작전 변경합니다.”

-확인했습니다.

시가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평야에서 대회전을 펼치는 듯한 느낌, 아카데미에서 봤던 것과 같다.

그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전장의 모든 것들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손바닥으로 주무르고 있었다.

처음 기괴한 형태의 악마들을 보고 두려움에 떨던 이들의 눈에 어떤 확신과 함께 놀라움이 감돈다.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부 파악하고 있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겠지만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조립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별것 아닌 행동이 전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지휘관의 유능함이 문제가 아니야.’

이건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순히 병력을 지휘한다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전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오죽하면….

‘함께 싸우고 싶다.’

저 전장에 함께 설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까.

“윌리엄 님?”

“…….”

“윌리엄 님?”

“네? 네. 죄송합니다. 이기영 님.”

“네임드 개체예요.”

“네?”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린 곳에는 다른 악마들보다 더욱더 기괴하게 생긴 악마가 자리해 있었다.

이미 생명체로서의 무언가를 완벽하게 벗어난 형태. 거대한 피와 내장의 살덩이가 두 발로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고위 악마. 피와 내장의 할키우스….]

‘강하다.’

[어리석은 필멸자들… 감히 노을빛의 군주의 영토에 발을 디딘 죄, 죽음으로 보상하라. 가아아암히…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21군단의 군단장의 땅에….]

외관에서 느껴지는 것보다 더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

“아마 이 구역의 관리자인 것 같네요.”

“네. 그런 것 같군요.”

[네놈들의 피와 내장을 그분께 바치리라. 진정한 악마 대군주, 노을빛의 마왕의 발아래 바치리라.]

“추정 레벨 5, 아니, 아마 6에 근접한 것처럼 보이네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윌리엄 님.”

“그렇다면… 병력을….”

“아니요. 병력을 물리지는 않을 거예요. 저건… 윌리엄 님께 맡겨도 될까요.”

“…….”

“…….”

“두려운 것은 아닙니다만 이기영 님. 아마 단신으로는….”

“아뇨. 윌리엄 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세요. 제가 길을 열어드려도 될까요? 함께 싸운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제대로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가능하실 거예요.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아마 윌리엄 님이라면….”

“그렇다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번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저번이라면….”

“효열 씨와 대련했을 때요.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명령을 최우선으로. 어떤 명령이 오든지. 의심하지 말기.”

“네?”

“다녀오세요.”

확신에 가까운 목소리.

그리고.

-움직이세요. 윌리엄 님.

“뭐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

“하…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게… 정말로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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