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57화
의혹 (1)
[[…진짜 기영 씨는 어디에 있지?]]
‘이 새끼 미친 건가?’
[[…대답해. 진짜 기영 씨는 어디에 있는 거지?]]
요즘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드디어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상태로 들어간 건가?
[[대답해!!! 이 개자식!!]]
완전히 돌아버렸는지 눈을 부라리며 커다랗게 소리치는 꼴은 가관, 심지어 할키우스는 신경 쓰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이미 불귀의 객이 되어버리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럴듯한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은 절로 동정심이 들 정도.
전형적인 악당퇴장 대사라도 쳐주면서 이번 작전의 끝을 장식해 주면 좋으련만… 김현성은 몸의 통제권을 돌려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진짜 기영 씨는 어디에 있냐고! 이 개새끼야아!!!]
‘뭐? 개새끼?’
너 이 새끼 미쳤어?
지금 내가 꽃기영 폼이라 그래? 너 아카데미 때 한 번 본 적 있지 않았어?
그때보다 폼이 좀 진화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못 알아보는 게 말이나 돼?
용서가 안 돼. 자꾸 이러면 나도 화가 날 수밖에 없어요.
겉모습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꽃기영 폼을 풀어버린 것은 당연지사.
기적을 일으킨 꽃과 풍요의 성자는 지쳤다는 듯이 커다란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좀 알아볼 수 있겠어?’
아까와는 조금 다른 태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기영 씨는 어디에 있냐고… 기영 씨는 어디에 있어! 기영 씨는 어디에 있어!!! 기영 씨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잖아!! 이 개새끼야!!! 너… 누구야…. 넌 누군데!! 그 사람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이 새끼 왜 이래. 진짜.’
두 가지로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로 정신이 나간 것마냥 쉴 새 없이 소리치는 모습은 무언가 공포스럽다.
김현성의 얼굴로 저런 소리를 지껄인다면 웃어넘길 수 있었겠지만 인간 같지도 않은 얼굴로 고함치는 목소리에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다.
광기에 가까운 악의를 정면으로 받는 것 역시 결코 유쾌하지 않다. 갤러리들이 있기 때문에 뭐라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애초에 대화가 통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만큼 김현성은 믿음은 맹목적이었다.
정말로 내가 이기영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한 톨의 의심도 없이 이쪽을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뭐야… 너 갑자기 이러지 마. 진짜.’
[[당장 말해!!!!! 당장!!!]]
심지어는 그 거대한 몸을 이쪽으로 끌고 오기 시작.
세인트 벨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빛의 기둥에 몸이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거대한 몸체를 움직이고 있는 중.
할키우스의 살점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누구야! 너는 누구냐고! 제기랄!!! 도대체 기영 씨를 어떻게 한 거야!!!]]
너무나 격정적인 반응에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당연하지만 김현성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곳으로 소환되기 전에도 녀석의 눈으로 이쪽을 지켜보고 있지 않았던가.
‘소환의식이 잘못된 건가?’
너무 급하게 오는 바람에 기억에 구멍이 생겼나? 아니면 불안함이 너무 커진 나머지 착란 증세를 일으키고 있는 건가.
미루고 미뤄왔던 정병 증세가 드디어 터진 건가? 결국 조현병 같은 게 걸린 거 아닌가?
‘그것도 아니라면….’
네가 진짜 김현성이 아닌 거 아니야?
“…….”
“…….”
복잡하기는 했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니야. 그건… 그건 불가능해.’
더미 김현성이 왔다는 것은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다.
김현성은 더미월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수준 높은 호문클루스를 만들 능력은 더더욱 없다.
혹여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데이터를 들고 와 육체를 부여했다고 해도 21군단장과의 사투가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데이터 김현성이 육체를 얻어 21군단장 바신을 때려눕혔다는 건 이기영이 바하무트를 검술로 이겼다는 것보다도 더 현실성 없다.
‘너 왜 그래. 진짜. 도대체 왜 그러는 거임….’
[[이 개… 자식… 기영 씨를… 내놔… 내… 놔--------]]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몸을 이끌고 지휘부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당연히 거대한 표적이 된 녀석은 플레이어들의 마법과 공격에 노출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내… 놔….]]
‘공포영화야… 뭐야….’
모두가 질렸다는 눈으로 피와 내장의 할키우스를 바라보는 중.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계속해서 꿈틀거리며 손을 뻗고 있다.
김현성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로헨 원정대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비록 세인트 벨을 탈환해 세이프티 존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지만 21군단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들이 얼마만큼이나 맹목적으로, 광기에 찬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지 확인했기 때문이리라.
[[…어디에… 있… 지… 기…영….]]
‘하지 마. 진짜. 무서워 이 새끼야.’
[[기…영…. 어디에….]]
‘…….’
[[절대로… 널… 가만…두지… 않…. 내…놔….]]
‘…….’
[[…절……대…로….]]
‘…….’
[[내… 놔…. 기영…씨…를… 돌…려줘….]]
녀석은 침묵했지만 여전히 적막에 휩싸여 있는 세인트 벨. 얼마나 질렸으면 승리의 환호성조차 들려오지 않을까.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 쉽사리 기뻐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뭔가 한마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쪽 역시 쉽사리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시바. 이게 뭐야… 도대체 뭔데….’
당장 내게 찾아온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다행히 분위기를 반전시켜 줄 사람이 있다. 내가 비틀거리는 것을 봤는지, 고개를 끄덕인 윌근본이 중앙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구태여 할키우스의 목을 자른 이후에 들어 올린 모습.
“고개를 드십시오. 영웅들이여.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
“앞으로도, 계속해서, 로헨은 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 세인트 벨이 바로 로헨의 태양이 떠오르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뭐라뭐라 뜻을 알 수 없게 지껄인 연설 이후, 터져 나온 환호성이 귀를 찢어버릴 것처럼 들려왔지만 당연히 승리를 기뻐할 수 없다.
‘왜 못 알아보는 거지? 무슨 문제가 생긴 거야.’
“우와아아아아아!!”
‘갑자기 이게 무슨 개같은 상황이야.’
“이길 줄 알았다고! 젠장!”
‘도대체 뭔데. 김현성. 시바. 너 어떻게 된 건데….’
“이기영 님. 괜찮으십니까?”
“저… 저… 네… 잠깐 혼자….”
“방금….”
“죄송해요… 내일 이야기해도 될까요? 지금은… 지금은 좀 쉬고 싶어서.”
“…….”
머리가 지끈지끈거린다. 엄연히 레일을 벗어난 상황이었으니까.
단순히 예상외의 일이 벌어진 것이라면 평정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이번 건은 명백하게 선을 넘어섰다.
“…….”
‘뭐가 문제인 거지?’
왜 나를 못 알아보는 걸까.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었다.
김현성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소환의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누구와 어떤 계약을 했는지, 혹시나 중간에 사기라도 당하지 않았는지, 별별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로헨으로 넘어오면서 파장 같은 것들이 일그러진 걸까. 그래서 녀석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회사설은 어떻게 된 거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리라. 그만큼 김현성을 진단하는 일은 중요했다.
녀석에게 문제가 없으면 내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로헨으로 넘어오면서 능력치가 너프 되는 과정에서 뭔가 달라진 느낌을 받은 걸까.
하지만 김현성이 그런 것 때문에 혼란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너무 확신하고 있었어.’
혹시나 실수하면 사과 몇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지 못할 개소리를 여러 차례 지껄였다.
실질적으로 이쪽을 위협한 것도 아직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주 약간의 의혹이었다면 녀석은 절대 그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었어. 실제로 본 이후에 이상한 걸 느끼게 된 거야.’
생각하기 싫은 가정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그때.
-누나.
-…….
-누나.
-왜요? 나 바쁜데.
-로헨으로 소환되는 과정에 몸이나 영혼에 이상현상이 생길 가능성이 있을까?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일이나 해요. 아! 거기 정리됐어요? 세인트 벨. 끝났으니까 연락하는 거 맞죠?
-아니, 갑자기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야. 내가 말하기도 어이없는 상황이기는 한데… 현성이가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정말이라니까?
-걔가 퍽이나 그러겠어요. 지 무덤 지가 파는 것도 아닌데.
-…….
-그냥 맨날 마음 졸이고 사니까 드디어 돌아버린 거 아니에요? 정신병이 드디어 터진 거지. 가능성이 없지는 않잖아요. 실제로 김현성 걔 피해망상 같은 거 있잖아요. 누가 이기영을 위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할걸? 너무 오래 묵혀뒀어. 내가 언제가 걔 그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
-드디어 터질 게 터진 거죠.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 조금 진지하게 받아줘. 누나. 로헨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 내가 됐든, 김현성이 됐든, 둘 중 하나가 이상한 건 확실해. 현성이가 이쪽으로 들어오게 된 과정이 궁금한데 혹시 아는 거 있어?
-…….
-…….
-하아….
-…….
-자세히는 모른다고 말했잖아요. 만약 김현성이 그걸 저랑 공유했으면 제가 도미 몸으로 들어왔겠어요? 21군단을 아예 끌고 왔겠지. 아무튼 진지하게 받으라니 진지하게 받기는 해볼게요. 개인적으로는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에요.
-…….
-우리는 뒷문도 아니고 옆문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앞문으로 합법적으로 들어온 거니까요. 최소한 군단장이 현세로 강림하는데 기억에 문제가 생기거나 자기 자신을 잃는 경우는 없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과거 사례들을 뒤져봐도 아마 없을 거고요. 라이오스에서 진 군사가 악마 소환한 거 기억나요? 그때의 벨 이사도 반쪽짜리로 소환됐는데도 다른 부분은 멀쩡했다고요. 군단째로 소환된 김현성한테 문제가 있겠어요?
-…….
-비자가 조금 다르지만 외신들도 마찬가지고요. 차라리 기억에 문제가 생겼으면 생겼지, 특정인물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이상이 생긴다는 건… 너무 황당한 소리라고요. 시스템이 그렇게 허투루 법칙들을 구성했겠어요? 게다가 로헨은 우리 쪽 보다 규제가 널널하다고요.
-내 경우에는 어때?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이쪽이야말로 더욱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서 입국한 건데. 걱정하는 게 뭔지는 몰라도… 하아… 일단 알아보기는 해볼게요. 생각해 보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현성이 못 알아본다는 게 이상한 상황인 것 같고….
-누나가 보기에는 어때? 내가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어?
-그대로예요.
위화감.
위화감이 든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는 그냥 넘겼었지만 이지혜와 대화하면서도 계속해서 이상한 위화감이 머리에 맴돈다.
-그냥 여전해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는 질문이었지만,
일단, 느끼고 있던 위화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 근데.
-네? 왜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질문이기는 한데… 물어볼 게 있어서.
-참….
-누나.
-…….
-왜 여기 온 다음부터….
-…….
-나를 오빠라고 안 불러?
-…….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나는 더미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뇌리에 꽂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