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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75화 (1,17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75화

몰래 온 손님 (3)

물론 설정상 꽃기영은 김현성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방금 기억 난 그의 이름, 그리고… 흐릿해 보이지 않는 느낌들뿐이었다.

어딘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람, 어딘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 자신이 어째서 김현성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 이름에는 뭐라 설명하지 못할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김현성이… 누구지?’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어째서… 그 이름에 이렇게나 감정이 요동치는 것일까.’

분명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진대… 어째서 이렇게 그리운 느낌이 드는 것일까.

꽃기영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정하얀 역시 자신을 향해 기억을 잃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받아들이는 꽃기영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혼란스럽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워 갈피를 잡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앵무새처럼 계속해서 같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현성 씨를 구해야 해요.”

라고 말이다.

이 또한 세기말 감성의 클래식으로 쓰이는 소재이기는 했지만 고전은 고전인 이유가 있는 법, 아니나 다를까 움찔하고 있는 김예리가 시야에 비쳐왔다.

“뭐라고…?”

“현성 씨가 위험해. 아니….”

“방금… 뭐라고 했어? 오빠.”

“현성 씨가… 현성이를 구해야… 하는데… 현성이가… 김현성….”

“어.”

“김현성이… 도대체 누구지?”

“…….”

“아윽.”

머리 한번 부여잡아 주구, 숨 한번 거칠게 쉬어 주고, 눈물 맺힌 눈으로 계속 헐떡여주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을 깔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 될 지경, 무언가 기억날 듯 기억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해서 머리를 부여잡는다.

찾을 리 없는 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현재의 이기영에게 무리를 주는 행동,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김예리가 나를 제지한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괜찮아.”

“하아… 하아….”

“떠올리려고 하지 않아도 돼.”

“…….”

“지금은….”

“방금은 도대체… 그리고… 그리고 당신은… 누구죠? 아니… 김현성은 도대체 누군가요. 아니… 그를 구해야 돼요. 일단은 그를 구해야만… 그가 위험해요! 그가! 지금 당장 그를 구해야 해요!”

“…….”

“…….”

“역시 그랬던 건가….”

“네?”

“아무것도.”

요동쳤던 감정이 가라앉은 것은 김예리가 침착한 모습을 지켜본 직후였다.

아직도 머릿속이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흥분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단 정보를 얻어야 했다.

“말씀해 주세요. 어째서 이곳에 온 건지, 방금 들고 있었던 이상한 조각은 도대체 뭐고… 김현성은 누군지.”

김예리는 역시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대로 모든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맞는 행동인지에 대해 말이다.

방금 전 꽃기영이 보여줬던 반응이라면 너무 많은 정보를 푸는 것이 해가 될지도 모른다 판단하고 있는 것이리라.

김예리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 더욱더 조심스러워하는 듯한 느낌.

그녀가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기억의 구슬 조각.”

“네?”

“기억이 봉인되어 있는 구슬 조각이야. 어째서 이게 로헨 대륙 곳곳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마. 나도. 잘 몰라.”

“당신은 저를… 알고 계시나요?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무언가 잊고 지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요. 실제로 정하얀 씨도 그렇게 이야기했었지만 도대체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방금 그건 무엇이었는지. 어째서 저를 찾아왔고, 기억의 구슬 조각이라는 것은 건넨 것인지.”

“말해도 믿지 않을 거야. 어차피 알게 되는 일이기도 하고….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오빠는 지구에서 로헨으로 온 게 아니라는 거야.”

“그럼 어디서….”

“그것보다 말해줬으면 좋겠어. 도대체 뭘 본 건지. 어떤 걸 떠올린 건지.”

확인하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 꽃기영이 뭘 보았는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둠둠현성 때를 떠올렸다고 생각하면 현재 김예리가 가지고 있는 예상이 틀릴 수도 있다.

‘근데 예리야. 정답 맞힌 게 맞아.’

지금의 김현성은 자신이 알고 있는 김현성이 아니다.

“어떤 남자가 갇혀 있었어요. 네. 김현성… 아마 그 사람이 김현성일 거예요.”

“…….”

“검은색 그림자 같은 것이 남자를 어두운 공간으로 격리시킨 이후에… 그 남자로 변하는 게 보였어요.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눈 것 같았는데…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요.”

“검은색 그림자가 현성 오빠로 변하는 걸 봤다고?”

“제,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확실한 거야?”

“네. 분명히… 분명해요. 웃음소리가 들렸어요. 커다랗게 고함을 외치는 소리….”

“제길.”

급조한 것치고는 훌륭한 스토리였다. 물론 개연성의 문제가 있기야 했다.

김현성이 어떤 경로로 언제 녀석을 만났는지는 여전히 의문에 싸여 있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이성적인 추론보다 진실된 한 사람의 말이 더욱더 설득력을 얻게 되는 법.

이기영의 존재가 그러했다. 그 누구도 이기영의 진실성을 부정할 수 없다.

‘어차피 적당히 쏴주면 끼워 맞추는 건 저쪽에서 해줄 거야.’

어째서 이기영이 로헨으로 떨어진 것인가?

‘도망치기 위해서.’

누구에게서?

‘짭현성에게서.’

왜 하필 로헨이었는가.

‘이곳에 진짜 김현성이 있으니까. 그를 구해야만 했으니까.’

라는 스토리텔링이 될 수도 있고….

‘최소한 샤넬리아 에르메스 가방 사태랑 만취한 현성이 사태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보다는 더 그럴듯하자너.’

정하얀과 한소라는 이기영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막이라는 흐름으로 유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째서 사전에 파란 길드원들에게 알리지 않았느냐의 대한 답도 뻔하지 않은가.

언제나처럼 이기영 이 착한 녀석이 모든 걸 혼자 끌어안기로 결심한 것이리라.

김현성을 봉인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가 적이라면 파란 길드원들도 승리를 점칠 수가 없다.

어떤 방향으로 작전이 진행되든지 간에 위험성을 동반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로헨에가 봉인되어 있는 김현성을 구해야 했고, 가짜 김현성에게 대항할 힘을 모아야 했다.

이기영은 파란을 지키고자 로헨에 왔다.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충분이 이렇게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기억을 완전히 잃은 것과 김현성으로 변한 무언가가 파란 길드원들을 전부 데리고 로헨으로 왔다는 것은 예상하기 힘든 사건이었지만….

‘퍼즐이 차곡차곡 완성되고 있을 거야.’

김예리는 바보가 아니다.

힌트를 이 정도나 줬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상황들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긴가민가하는 얼굴은 확신으로 뒤바뀐다. 당연히 눈치챌 수밖에 없는 흐름이리라.

지금의 김현성은 김현성이 아닌 무언가였고, 대륙의, 로헨의, 파란의 적이었다.

“혹시 현성 오빠가 봉인되어 있는 장소는… 알아?”

“기억나지 않아요. 깜깜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소였어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로헨이라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그건 느낄 수 있어요. 김현성, 그는 지금 로헨에 있어요. 정확한 위치를 떠올리고 싶지만….”

“기억의 구슬 조각.”

“네?”

“계속해서 기억의 구슬 조각을 흡수한다면 진짜 현성 오빠가 봉인되어 있는 장소가 있을지도 몰라.”

“아!”

진도 한번 빠르다.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습관을 김예리에게서 보는 게 조금 놀랍다.

아무래도 머릿속으로 타임라인을 정리하고 향후 계획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모양, 김현성이 가짜라는 게 밝혀진 이상 심각해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노을빛의 검신을 봉인하고, 희생과 부활의 신의 기억을 빼앗아 간 존재.

적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신들만으로는 건드리기 힘든 폭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래. 지금 당장 미쳐 날뛰어도 얻는 건 없어. 얘가 참 냉정할 때는 냉정해.’

“가짜 김현성도 기억의 구슬 조각을 찾고 있어.”

“아!”

“응. 아마 기억의 구슬 조각을 선점해서 오빠의 기억을 찾지 못하게 하려는 게 분명해.”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우리들로는 그 가짜에게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해.”

“…….”

“현성 오빠가 봉인되어 있는 장소를 찾아 봉인을 풀고, 오빠도 기억을 찾아야 돼.”

“네?”

“우리는 오빠가 필요해.”

“하지만….”

“노을빛의 마왕성으로 찾아와. 우리는 당분간 이 사실을 모르는 척할 거야. 평소대로 그 가짜를 진짜처럼 여길 거야. 그러니 오빠와 로헨의 인류가 던전 공략을 진행하면 우리와 맞부딪칠 수도 있다는 건 알아 두는 게 좋을 거야. 우리는 던전에 묶여 있거든.”

“그렇다면 당신과 싸워야 한다는 건가요?”

좋은 흐름.

“아니. 우리가 길을 열어줄게. 묶여 있는 던전에서 페널티를 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식적으로는 로헨의 인류는 던전 공략에 성공하며 가짜에게 향하게 될 거야. 최대한 싸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니까.”

‘얘가 확실히 박덕구 강화 계획에 한번 참여해 본 전적이 있어서 제대로 하네.’

말인즉슨 자신들이 경험치가 되어 준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예리 많이 똑똑하구나.’

노을빛의 마왕성이 기본적인 던전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면 앞의 보스를 클리어하기 전에는 뒤의 보스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짜고 친다면 노을빛의 마왕에게 다가가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로헨의 인류에게 경험치를 계속해서 먹이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선희영을 한 번 겪어봤기 때문에 메인스트림에서 주는 버프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지 않았던가.

3가지? 아니, 4가지만 더 받아가도 충분해. 그래 봐야 대륙에 비하면 아쉬운 수치이기는 하지만 그 외 얻을 수 있는 재화나 경험치가 함께 한다면 로헨의 수준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그전까지는 계속해서 기억의 구슬 조각을 가져다줄게. 만약 구한 이후에 그 가짜의 눈을 속일 수 있다면….”

“솔직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잘 이해는 되지 않아요.”

“이해해.”

“하지만… 당신이 적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버림받은 성녀와 마찬가지로 말이에요.”

“응. 우리는 가족이니까.”

“…….”

“로헨의 패밀리아 같은 거로 묶인 게 아니라 진짜 가족.”

얘가 감수성이 풍부해진 것 같은 기분도 드네.

하지만 나쁘게 들리지 않은 말이었다.

‘괜히 기분도 좋아지고….’

김예리의 새로운 일면을 본 것만 같아 기쁘다. 매번 박덕구 안기모 이 새끼들이랑 놀러 다니느라 허송세월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상황을 캐치하고 통제하려는 판단력이 나쁘지 않다.

선희영에게서 모든 결정권을 얻어온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자신이 얻은 정보로 파란 길드원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란 길드에 새로운 자리는 한소라가 아니라 얘랑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왜 이렇게 잘 자랐니. 우리 예리.’

“시간이 될 때마다. 계속 찾아올 거야.”

“네.”

“그리고….”

“네?”

“미안해.”

“…….”

“매번 짐 덩이가 돼서.”

‘아냐. 그런 거 아니야. 울먹이지 마.’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되지 못해서.”

‘너 왜 그래. 감정 과잉이야. 지금.’

“매번… 오빠가 힘든 일을… 힘든 상황을 겪게 해서….”

“…….”

“이번에는 우리가 지켜줄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