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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78화 (1,17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78화

주연과 조연 (3)

“지금은 업무가 있으실 거예요.”

“상관없다. 안내해라. 이기영.”

‘왜 형 마음을 몰라주니, 너는.’

너 지금 가면 자존심에 상처만 입는다고.

우효열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대충 보기에도 녀석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며 이전의 폼을 되찾으려고 한 것이 눈에 보인다.

문제는 노력뿐이었다는 것, 누가 보기에도 녀석은 1회 차의 스펙을 쌓지 못했다.

딱 과도기를 거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시간이 아직은 더 필요한 상황, 지금 상태에서 윌리엄과 붙어보겠다는 발상은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입겠다고 발악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이 새끼가 1회 차 폼을 찾아도 윌리엄한테 비빌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500번의 회귀 이후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꽃과 풍요의 근본. 사실상 현재의 윌리엄은 1회 차의 윌리엄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다른 부분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대인전에서는 그랬다.

아직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해 세월이 주는 무기가 없다는 것은 단점이라 할 수 있겠지만 윌리엄의 붉은 꽃은 그 모든 단점을 상쇄시킬 수 있을 정도로 상징성 있었다.

김현성의 노을빛의 검, 윌근본의 붉은 꽃, 희라 누나의 붉은전신, 자신만의 한 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계단 하나를 밟느냐 밟지 못하느냐 정도로 의미가 있었다.

“어째서 윌리엄 님을 찾으시는 건가요?”

“네가 알 필요 없다고 이야기했을 텐데.”

“쓸데없는 싸움을 걸려는 것이라면 자제해 주세요. 중요한 시기이니만큼.”

“중요한 시기이니만큼 놈과 만나보겠다는 거다. 적의 전력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군 전력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꼭 도착하자마자.”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지.”

“아니….”

‘이 새끼 너무 자신감 넘치는데….’

한번 깨져보는 게 좋을까? 너무 깨져서 자존심 상하지 않으려나.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이 우효열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파티원들은 잠깐 멍하니 있기는 했지만….

“소라씨. 파티원들 등록 좀 부탁드려요. 제 이름을 말하면 아마.”

“네. 부길… 아니, 이기영 님.”

“오늘 같이 저녁 먹는 거예요! 부파티장님!”

“네! 시간이 된다면… 우효열 씨 같이 가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는 녀석, 위풍당당하기는 했지만 감성 자체는 옆 학교 일짱을 만나러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효야. 이 어린놈의 새끼야. 회귀해서 나이를 곱절로 처먹은 놈이 나잇값도 제대로 못 해요.’

심지어 꽃과 풍요의 패밀리아가 있는 곳까지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이 학교에서 싸움 제일 잘하는 놈이 누구냐는 투로 중얼거린다.

“윌리엄은 어디 있지?”

“우효열 씨! 여기서 이러지 마세요!”

당연히 꽃기영의 스탠스는 적극적으로 말리는 것.

“성자님. 이건….”

“죄송해요. 잠깐 효열 씨가….”

“내 말 못 들었나? 윌리엄은 어디에 있나?”

소란스러워진다. 갑작스레 이번 전쟁영웅을 불러오라 떼를 쓰는 금발태닝양아치의 모습은 조용했던 세인트 벨에 주목을 불러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했다.

“무슨 일입니까?”

나름 치안 유지하라고 데려다 놓은 경비들도 이쪽으로 다가오고, 타 패밀리아의 수장이나 지휘본부의 간부들도 기웃거린다.

첫 등장부터 원정군의 사고뭉치 역할을 맡으려고 하는 것일까.

“저거 누구야?”

“아마 우효열일 겁니다. 꽃과 풍요의 성자님께서 전에 활동하시던 파티의 파티장으로 알고 있는데… 오늘 막 세인트 벨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근데 왜 꽃과 풍요 사람들 앞에서 저러고 있어?”

“이유는 저도 잘… 아마 꽃과 풍요의 성자님 때문이 아닐까….”

‘그런 거 아니야. 엑스트라 새끼들아.’

“아. 정상적으로 파티를 나온 게 아닌가? 원래부터 패밀리아 소속이 아니었지?”

“지금도 패밀리아 소속이 아닙니다.”

“쯧. 쯧. 천재군사니 성자니 했어도 아직 사회경험 없는 게 티가 나기는 하는구만… 원정 직전에 이런 구설수에 오르는 게 좋은 건 아닌데. 그러게, 파티 문제는 잘 해결을 했어야지. 저 양아치놈이 운영하는 파티에 계약이 묶여 있는 모양인데… 아무리 꽃과 풍요라고 해도 이러면….”

저놈들 입 좀 닥치게 만들어야겠다. 순식간에 이전 파티도 해결 안 한 채로 꽃과 풍요의 패밀리아로 입단한 놈이 되고 있다.

“두 번 말하지 않는다. 거기 너. 윌리엄. 불러와.”

꽃과 풍요의 인원들의 눈에 살기가 서리는 것도 당연했다. 감히 윌리엄을 뉘 집 개 이름 부르듯이 부른 것도 그렇거니와 패밀리아의 권위에 대한 도전처럼 비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우효 녀석이 저질렀던 실수와는 결이 다르다.

그때는 이제 막 튜토리얼을 돌파한 애송이의 치기 어린 실수였으니까. 지금 저들이 참고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내가 이 사태를 중재하고 싶다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 하나.

막말로 지금 당장 몰매를 맞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무슨 일입니까?”

꽃과 풍요의 패밀리아의 인원들이 자연스레 길을 열자 방금 목소리를 내뱉은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윌근본.’

당연히 그 정체는 윌근본.

옆 학교 일짱과 우리 학교 일짱의 만남은 갤러리들의 기대감을 증폭시키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아쉽게도 윌근본은 이 갤러리들에게 세기의 대결을 보여줄 생각이 없는 모양인 것 같았다.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이 드라마틱한 상황을 모두가 보고 싶겠지만 갤러리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을 명분도 이유도 없다.

아쉬움을 남기고 최대한 느릿하게 흩어지는 녀석들, 윌근본은 조용히 우효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따라오십시오.”

‘옥상으로 따라와.’

“흥.”

“윌리엄 님. 이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이기영 님.”

“뭘 해결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군.”

“원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제가 생각하는 게 틀릴 것 같지는 않군요.”

“…….”

이 새끼들 여기서 일진물 찍지 마.

“치기 어린 행동이라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이곳에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하니 말입니다.”

“말이 길군.”

“형식적인 질문입니다만… 어째서 찾아왔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 네놈을 밟아주러 왔다.”

“그렇습니까?”

너 밟힐 거야.

윌근본이 배려심이 넘치는 거지. 솔직히.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을 줘도 시원치 않을 상황인데 따로 불러서 타일러 주겠다는 거니까.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이 서로를 맞대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으니까.

윌리엄은 검을 들어 올린다. 우효열은 살짝살짝 몸을 위아래로 점프하며 싸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윌리엄이 검을 들어 올리자마자 우효열의 얼굴에 의문이 들어서는 것이 느껴졌다.

위화감.

저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윌리엄이 아니라는 위화감. 1회 차 때의 윌리엄과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500회의 죽음을 경험한 녀석은 육체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이루기는 했지만 정신적으로 더 단단해졌으니까.

“오십시오.”

“흥.”

하지만 우효 녀석은 도망치지 않는다. 한쪽 손을 역수로 손에 쥐고서는 순식간에 윌근본에게로 쏘아져 나간다.

변칙적이고 빠르고 강한, 한 발자국.

민첩하다는 느낌보다는 온몸의 근육을 이용해 탄력적으로 치고 나간다는 느낌을 받은 녀석의 첫수는 대충 보기에도 훌륭한 한 수였다.

폭발적이고 탄력 있다. 고무줄처럼 제자리에서 튕겨 나간 녀석이 도달한 곳은 윌리엄의 뒤, 순식간에 뒤를 잡은 채로 근본의 몸을 쪼개버린다는 기세로 검을 휘둘러온다.

하지만.

앞으로 한 발자국, 옆으로 한 발자국 움직인 윌근본은 너무나도 쉽게 녀석의 기습을 막아섰다.

“하!”

재수 없는 기합 소리를 낸 우효 녀석은 다시금 검을 휘둘러보지만….

‘솔직히… 통할 리가 없자너.’

실력 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 누구보다도 우효열이 그걸 잘 느끼고 있을 것이다.

‘분명 성장했다고 느끼고 있었겠지.’

우효열이 자신의 성장세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녀석의 성장 속도는 이례적이다.

레이먼 볼트의 유지를 이어받은 녀석은 나름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1회 차 이 시점의 자신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어디서 기연도 받고 온 것 같은데.’

“재밌군.”

“…….”

‘진짜 재미있어?’

“재미있어.”

‘하나도 재미없어 보여. 너….’

검과 검이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우효 녀석의 얼굴에는 분노가 깃든다. 윌근본이 지도 대련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리라.

우효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게 목적이라기보다는 노을빛의 마왕성 공략에서 우수한 전력이 될 수 있는 녀석을 성장시키려고 하는 모습.

자존심 강한 짐승의 입장에서는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을 것이다.

“꽃과 풍요의 개자식 주제에!”

시뻘겋게 변해 독기를 품고 있는 눈처럼 녀석의 검도 점점 노골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찌르기가 힘을 쓸 수 없는 초근접전으로 검을 손에서 놓은 이후, 윌리엄의 팔을 비틀어버리겠다는 의도로 놈의 손목을 부여잡으려 하지만 잡힐 리 만무했다.

녀석의 변칙적인 움직임에도 윌근본은 흔들리지 않는다.

우효열이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니 보다는….

‘그냥 눈에 보이는 거구나.’

수준 차이가 난다는 증거였다.

근데….

‘얘도 이상하게 점점 빨라지는 것 같네.’

궁지에 몰리면 궁지에 몰릴수록 힘을 받는 타입인지 간혹 간담이 서늘해지는 공격을 해올 때가 있다.

그저 조용히 녀석의 검을 받아주고 있었던 윌근본의 얼굴에서 점점 여유가 사라지고 있었으니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개자식!”

윌리엄의 품 안쪽으로 파고든 우효열이 튕겨 나가듯이 다시 뒷걸음질 친다.

윌리엄이 본능적으로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우효열을 잡으려고 검을 뻗는 순간, 우효열은 다시금 몸을 앞으로 튕겼다.

‘진짜 신기하단 말야.’

저것 하나만큼은 김현성도 할 수 없는 기예였다. 분명히 역동작이 걸린 상태였는데 어느새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가는 것은 물리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몬스터도 저런 건 못 하겠다.’

그리고 우효열의 몸이 윌리엄에게 닿으려고 했을 때,

예상했던 것처럼.

붉은 꽃이 피었다.

푸화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드라마틱하게 우효의 몸에서 나온 피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제길….”

“…….”

“…….”

‘죽인 건 아니지?’

허무하게 바닥으로 허물어지는 우효열.

억울했는지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물론 이쪽은 크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윌리엄 님!”

“아….”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요!”

잘못은 우효열이 했지만 일단 윌리엄을 다그친다.

“죄송합니다. 손속에 사정을 뒀어야 했는데… 저도 모르게 그만.”

우효열의 편을 들어주고 있지만 아마 자존심 강한 녀석에게는 이런 모든 상황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을까.

녀석은 자신이 배려받는다는 걸 견디지 못하는 타입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결과와는 별개로 이쪽은 녀석을 칭찬해 주고 싶다.

솔직히 붉은 꽃을 꺼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었지만 녀석은….

‘최소한 무기는 꺼내게 만든 거야.’

솔직히 반신반의한 적도 없지만….

우효열도 분명히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진화를 시킬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

“…….”

‘시간 없을 때는 어둠 진화가 제일 효율적이기는 한데….’

스컬 그레이 현성의 악몽이 잠깐 떠오르기는 했지만 우효열에게는 어둠진화가 나쁜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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