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83화
노을빛의 마왕성 (3)
[던전, 노을빛의 마왕성의 첫 번째 보스. 마수조련사 알프스와 조우합니다.]
이건 잘못됐다.
이런 걸 계속 보고 있다가는 언젠가 미쳐 버리고 만다.
‘차라리 시바 김예리한테 말하지 않는 게 정답이었나.’
카리스마 넘쳤던 본래의 모습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의 대답은 둠희영의 외관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야 가지고 있는 힘에 비례해 악마로서의 각성 절차를 밟았겠지만 마수조련사 알프스가 처음부터 저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짜 김현성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로헨의 인류에게 경험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경험치를 효율적으로 먹이기 위해 김예리 프로듀서님이 고심하고 고심한 것이 바로 지금의 결과물.
저 흉물스러운 비키니 아머만 아니었더라도 조금 더 볼만했을 것이다.
몰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몰입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자꾸만… 자꾸만 알프스의 겉모습과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쫘악!
“흐응~”
쫘악!!
“지옥에서 어떻게 왔냐고 묻거늘 마수조련사 알프스가 보냈다고 답… 답하세욧!”
관객 입장에서도 배우 스스로가 부끄럽고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덩달아 도망치고 싶어진다.
‘저 좋은 컨셉이 저렇게 가는구나….’
알프스가 첫 번째 보스로 나올 것이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마수조련사라는 걸출한 기믹을 가지고 올 것이라는 건 더욱더 예상하지 못했다.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 황금이 될 수도, 똥이 될 수도 있는 기믹이었건만 매혹의 춤을 탄생시킨 김예리 선생님은 기어코 저 기믹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것에 성공했다.
‘이건 김예리 혼자만의 작품이 아닐 수도 있어.’
어쩌면 김예리뿐만이 아니라 박기리의 작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리법사니 피에 미친 광전사니 하는 것들이 전부 그놈들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작품들이 아니었던가.
기어코 알프스도 자신들과 같은 수준으로 타락시킨 것일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정대가 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저 어색한 국어책 읽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마수에 더욱더 신경을 쏟는 것처럼 보였으니 그것 하나만큼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크허어어엉!”
“방패 들어어!!”
“크허어어어어엉!”
하는 커다란 울음소리와 함께 달려온 것은 마치 곰처럼 보이는 마수.
쫘악!
하는 채찍질이 들려오자 커다란 앞발을 크게 휘두르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저게 신호구나.’
쉴 새 없이 채찍을 바닥에 내려치는 알프스의 명령에 따라 거대한 곰은 옆으로 이동하기도, 앞발을 휘두르기도 한다.
‘첫 번째 마수는 별거 없네.’
전형적인 전위 타입의 마수인 것 같았다. 선두에 서 다른 마수들로 향하는 시선을 끌어주고, 길을 막아주며 두꺼운 가죽과 외갑을 지니고 있다.
아군 탱커 여럿이 녀석을 붙잡고 마법사들이 계속해서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지만 곰탱이의 가죽은 좀처럼 뚫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강화된 가죽은 아마 공격력에 특화된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쉽게 대미지를 줄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마수는 커다란 도마뱀.
쫘악!
원거리에서 독액을 계속해서 분사하고 있는 놈의 타입은 당연히 원거리 딜러처럼 보였다.
특이점이 있다면 독액이 뿌려진 자리에 녹색 장판이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는 것.
치이이익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 장판이 평범한 인간의 몸에 좋지 않게 작용할 거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전투가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아군 병력의 움직임을 제한시키는 용도로 보였다.
사제가 가지고 있는 정화 스킬로 오염된 곳을 정화시킬 수도 있을 테지만 전부 지우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저거 지우느라 신성력 다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안 그래도 이곳에 진입했을 당시 마력과 신성력을 많이 소비한 상태. 성역화로 바닥을 정화할 수 있는 건 두세 번이 한계일 것이다.
세 번째 마수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개.
전형적인 근접 딜러 타입이었지만 머리 하나는 화염, 나머지는 냉기, 전격 브레스가 장착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얘 같은 경우는 사실 너무 전형적이라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일단 마수의 디자인은 합격점.
곰에게서는 썩어 문드러지는 악취가 풍기고, 도마뱀은 기형적인 종기 같은 것들이 있었다.
지옥에서 정말로 마수가 산다면 저런 형태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조금씩 리폼 되어 있다.
이를테면 발바닥이나 이빨의 크기 같은 것들, 눈동자나 털의 배합 같은 것들.
큰 예로 곰탱이는 눈이 4개였다.
‘생각보다 잘 짜여졌는데….’
괜찮지 않은 것은 마수조련사 본인의 디자인뿐이었다.
쫘악!
콰아아앙!
“온다! 쉴드! 쉴드!”
도마뱀이 뿜어낸 독 구체를 확인한 한 명이 계속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녹색 구체가 본진에 떨어지기 직전, 투명한 막이 병력들을 감싸 안았다.
곰이 앞발을 휘두른 것은 바로 그때.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유지되고 있던 쉴드가 깨져 나가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상대적으로 작은 몸을 가지고 있는 삼두견은 그 틈에 병력의 안으로 들어와 진영을 헤집는 중.
개 짖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섞여 들려오고 있었다.
“탱커 뭐 하고 있어! 어글 잡아! 어글!”
“제길! 지금 이 곰 새끼가!”
퍼엉!
“쉴드! 쉬일드!”
“제길! 이쪽이다!!”
‘이 새끼들 정신을 못 차리네.’
그만큼 알프스가 이 병력의 약점을 잘 파고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구성이 괜찮아.
지금의 로헨이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복잡한 패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곳곳이 녹색으로 물들어 밟을 바닥도 마땅치 않고 쉴드로 원거리 공격을 막아야 하는데 자꾸만 곰탱이가 쉴드를 깨부순다.
앞으로 나아가자니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탱커가 보이고 개새끼는 계속해서 진영을 헤집으며 여러 가지 특수능력으로 야금야금 병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호오호호… 호호홋!”
‘웃음소리 그만.’
“호홋홋홋! 콜록! 나의 사…랑스러운 마수들이 오늘 포식…하겠군요! 콜록! 콜록!”
‘기침 자제해.’
갑작스러운 전투였고 제대로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잠깐 흔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하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흔들리는 것 같은 모양새.
‘그래도 이렇게 계속 얻어맞고 있을 정도는 아니자너.’
첫 번째 보스니 당연히 쉽게 디자인되어 있다.
쫘악!
쫘악!!
계속해서 바닥을 내려치는 저 채찍 소리가 신호였으니 패턴을 파악하면 금방 적의 동선과 타이밍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기믹이었지만 아쉽게도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저 채찍 소리에 집중할 생각이 없는 모양.
공략이고 나발이고 일단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피하는 데에 급급해 보였다.
“약해! 너무나 약해요! 겨우 이 정도 수준으로 노을빛의… 마, 마왕성에 찾아오셨다니요! 만용은 용기의 차이점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아둔한 것이군요! 호오홋홋홋… 홋… 이 멍청한 돼… 돼지들!”
쫘악!
“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기대되는군요!”
쫘악!!
“어디 이것도 버틸 수 있을지… 확인… 해볼까요?”
쫘아아악!!
“이기영 님… 이건….”
그래. 이건 도와주면 안 되겠다.
“하아… 하아….”
“이기영 님?”
“죄, 죄송해요. 윌리엄 님… 갑자기… 머… 머리가… 이상해요. 갑자기….”
“제길….”
“머리가 깨질 듯이….”
“괜찮습니다. 분명 괜찮으실 겁니다. 잠깐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이건 도와주면 안 될 것 같아.
절대로 이 무대 위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가 도와주면 너희들 레벨 업 시키는 데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이 일련의 과정들은 당연히 로헨 인류를 성장시키는 것에 있다. 알프스가 저렇게 굴욕적인 모습으로 얼굴을 붉히며 배역에 몰입하는 이유도 어디까지나 로헨을 성장시키기 위함이다.
내가 하나하나 코치를 해 준다면 공략하는 것은 쉽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수조련사 알프스라는 네임드 자체가 채찍 소리가 공략의 단서라는 기믹을 깨달은 순간 자연스럽게 공략을 할 수 있게 되는 구조였으니….
‘이건 맞으면서 배워야지.’
심지어 공략 방법이 그것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두껍고 질긴 가죽을 가지고 있는 곰은 도마뱀이 만들어낸 독 바닥을 밟지 않는다.
개새끼 역시 오염지역을 향해 화염을 뱉는 것을 조심하고 있었다.
‘곰은 독으로 공략할 수 있고, 오염된 바닥은 화염으로 태울 수 있다는 구조네.’
물론 한꺼번에 태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곳을 불바다로 만들 수는 없으니 말이다.
병력을 한쪽으로 밀어 넣고 독을 태운 이후에 다시 자리를 잡는 방식이면 공간을 만들기 쉬워진다.
개를 전담하는 특임대를 따로 구성해서 개를 제대로 드리블하는 것이 핵심.
화염으로 독을 태우고, 빙결로 플레이어들이 움직일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주고, 전격으로는 곰을 마비시키면서 싸우는 것으로 공략은 마무리가 된다.
세 마리의 마수가 밀접하게 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가 서로의 약점이 되는 셈이었다.
물론 공략 방법을 알고 있는 것과 그걸 실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지만….
‘그래도… 이건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 돼.’
너무 주입식으로 교육시키는 것도 안 좋아. 스스로 생각할 줄도 알아야지 좀.
원래 모르겠으면 맞아서 배우는 게 맞아.
절대로 이 무대 위에 올라가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제길! 흔들리지 마! 이대로 무너질 거야?!”
“으아아아악!”
“개새끼부터 막아! 개새끼부터!”
“흐응~”
“쉴드! 쉴드!”
쫘악!
‘힌트도 주고 있잖아. 애초에 저 댕댕이가 문제인 거야.’
병력이 제대로 진영을 갖추려면 우선 저걸 틀어막는 게 먼저라고요.
저걸 상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략 방법에 대해서 깨달을 테고 말이야.
“에밀리아.”
“네.”
“꽃과 풍요의 패밀리아는 개 쪽을 상대합니다.”
“네.”
‘그래. 그거야.’
“일단 아군 병력이 진영을 재정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네.”
앗 하는 사이에 곧바로 꽃과 풍요의 패밀리아가 삼두견에게 향하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패밀리아의 마법사와 궁수들이 녀석에게 원거리 공격을 몰아넣고 있었고, 꽃과 풍요가 움직인다는 소식에 다른 병력들도 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튀어 나간 윌리엄이 개를 몰아넣는 것이 눈에 보였다.
쫘악!
“곰 새끼 못 오게 막아!! 막아!!!”
“쉴드 유지해! 꽃과 풍요가 움직일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라!”
‘감각 좋네.’
아직 지들이 뭐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어찌어찌 퍼즐은 풀어가고 있는 것 같아.
“오염지역이 개의 화염에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윌리엄 님.”
“네. 몰아보겠습니다.”
약 100여 명 정도가 전투불능이 된 시점이었으니 빠르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있어 보였다.
그렇게 나 홀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수신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2연대. 지하수로 투기장 투사 벨리에와 조우했습니다.
그리고.
-보고 드립니다! 3연대 현재, 흑집사 스미스와 조우했습니다.
“…….”
“…….”
‘스미스 대령은 말만 신입이지 구르고 구른 베테랑이잖아….’
-지원 요청! 지원 요청! 아아악!
‘짬밥만 보고 쟤를 초반에 배치하면 어떻게 해?’
“…….”
“…….”
‘그리고 무슨 집사 캐릭터가 지하수로에 짱박혀 있냐고.’
명백한 설계 미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