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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89화 (1,18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89화

노을빛의 마왕성 (9)

슬슬 의식을 차려가는 우효열의 귀에도 틀림없이 이 명대사가 들려오고 있을 것이다.

‘이 새끼 분명히 듣고 있을 거야.’

이미 이것저것 생쇼를 늘어놓은 상황이었으니 슬슬 정신을 차려야 하는 시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손가락을 꿈틀거리는 것이 보인다. 아까와 같은 발작 때문이 아니라 분명 스스로의 의지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의식은 있는 거자너.’

더욱더 환한 빛을 내뿜은 것은 당연지사. 자연스럽게 이쪽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만하세요. 부파티장님… 그만하세요. 더 이상은….”

꽃기영은 계속해서 자신의 생명력을 불태운다.

빛의 화관에서는 계속해서 꽃잎들이 떨어지고 마치 마지막 촛불을 타오르는 것처럼 빛은 점점 더 커져 나가기 시작했다.

희생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본연의 모습 그대로, 이대로 빛에 삼켜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위태위태한 모습이 눈에 보이겠지만, 누가 감히 꽃기영을 말릴 수 있겠는가.

“아아….”

무언가 안 좋은 상상을 하고 있는 남궁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녀도 이쪽을 말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필사적인 이기영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소중한 사람을 잃기 싫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이기영의 감정은 그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다.

어떤 심정으로 꽃기영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 어째서 그가 이토록 필사적인 것인지, 그 단편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말릴 수 없는 것이리라.

“이야아아아아!”

괜히 이런 소리 한번 내주고.

“콜록. 콜록.”

자꾸만 울컥울컥 뭔가를 토해내고 부들부들 떨리는 팔과 흔들리는 눈을 부여잡으며 계속해서 커다란 빛을 뿜어낸다.

너무나 따뜻한 빛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빛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에게는 너무나도 차갑다.

저절로 이를 악물게 되는 고통과 두려움.

생명력이 계속해서 소진되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죽음과 함께 살아온 23살의 꽃기영에게도 무섭고 떨리는 일이지만, 그런 두려움은 금방 떨쳐낸다.

‘살려야 해.’

두 번 다시 소중한 사람들을 잃을 수 없다.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

지키지 못한 사람은 레이먼 볼트 할아버지… 한 사람으로도 족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것 같다면 기분 탓일까.

그와의 추억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내가 너무 감상적이 되어버린 것일까.

머리를 쓰다듬어 준 손이, 언제나 꽃기영을 지켜주겠다고 했던 든든한 그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면 그건 꽃기영의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생명력을 태우는 것은 두렵지 않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할아버지를 23살의 꽃기영은 아직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한 것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 번 다시는….”

“…….”

“두 번 다시는!!”

잠깐, 아주 찰나였지만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틀림없이 할아버지가 내 손을 꽉 잡아주고 있었다.

직후 터져 나오는 신성력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직후 그 빛이 전부 사라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지만….

“효열 씨… 일어나세요.”

“…….”

“일어나요.”

“…….”

“이제 일어나란 말이에요!”

여전히 우효열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커다란 가고일이 내게 떨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위험해요! 부파티장님… 피하….”

당황하는 황정연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전투에 열중한 나머지 윌리엄의 공격에 튕겨 나간 녀석을 컨트롤 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윌리엄의 표정 역시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아니야. 오히려 좋아. 이런 장면이 필요했어.’

꽃기영은 피하지 않는다.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이 누워 있는 우효열을 향해 이제는 미약해진 신성력을 계속해서 쏟아붓는다.

그리고.

“일어나!! 우효열!!!”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으로 가고일을 막아낸 우효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효열 씨?”

“효열… 오빠… 오빠?”

기껏 치료해 놓은 상처가 다시 터졌는지 온몸이 다시 피투성이가 된 것이 보인다.

가고일을 막았던 머리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두 팔도 성치 않아 보인다.

“후우… 후우… 후우… 후우….”

녀석은 계속해서 숨을 거칠게 내뱉고 마시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스미스 대령과의 싸움에서 이어졌었던 각성상태에 다시 한번 진입한 것이리라.

아니, 어쩌면 계속해서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누워 있는 동안,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각성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두 눈에는 어두운 이채가 느껴졌으나 녀석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한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녀석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내… 칼.”

“네?”

“내 칼….”

“미… 미쳤어요? 오빠… 지금….”

“내… 칼 가져와.”

‘네 칼 없잖아. 이 새끼야. 흑집사 스미스랑 싸우면서 개 박살 났잖아.’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빨리. 후우… 후욱….”

처음에는 우효열을 말리려는 듯이 바라본 임채령이었지만 그녀 역시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우효열에게 자신의 무기를 건넨다.

그 와중에… 우효열의 시선이 잠깐 내게 닿는다.

“후우….”

여전히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말이다.

“멍청한… 새끼.”

“…….”

“멍청하고… 병신 같은 새끼… 미련한… 새끼.”

‘듣고 있었구나.’

복잡한 감정이 뒤엉킨 것과 같은 표정, 당연히 녀석은 위로의 말이나 고맙다는 말은 건네지 않는다.

그런 낯부끄러운 말을 건넬 수 있을 정도의 성격도 아니거니와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이내 나를 떨쳐낸 녀석은 조용히 황정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숨을 내뱉고 쉬고를 반복하던 녀석은 천천히 팔과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

가고일 하나가 몸을 다시 일으켜 우효열에게 쇄도했지만 녀석의 목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퍼억.

잘라냈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날아갔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그대로 분리되며 가고일의 목이 땅바닥에 처박힌다.

‘시바. 시바. 강해졌자너. 스미스랑 싸울 때보다 분명히 더 세졌자너.’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하게….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아.’

아니, 이미 돌아온 건가. 전조는 스미스 대령과의 일기토 때부터 있었다.

1회 차 때의 우효열이 어느 정도였는지, 어째서 유피테르 사단이 녀석을 회귀자로 선택한 것인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전투였다.

스펙 자체가 완벽하게 되돌아 온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우효열은 1회 차 때의 감각을 손에 넣은 것처럼 보였다.

“후우… 후욱….”

검을 쥔 손을 꽉 쥐고 녀석은 발걸음을 옮겼다.

콰직.

바닥이 움푹 파일 정도로 강한 한 발자국을 내딛고는 순식간에 격전이 펼쳐지고 있는 장소도 쇄도한다.

‘폭발적이네.’

김현성처럼 민첩하거나 빠르다거나 하는 표현보다는 말 그대로 폭발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순식간에 온몸에 힘을 터뜨리는 것처럼 녀석은 한 발자국으로 황정연의 근처까지 닿았다.

“수집품 9번. 아이기스의 방패 조각.”

녀석의 검이 방패조각과 부딪친다. 으직으직 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신화급 수집품의 성능을 이길 수 없었던 모양인지 반탄력으로 몸이 튕겨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녀석은 튕겨 나간 벽을 밟고서는 다시 한번 황정연에게로 뛰어오른다.

콰아아아아앙!!

“윽.”

이를 악문 마도사의 모습 위로 마력의 구체와 붉은 꽃이 재차 떨어지지만….

“수집품 2번. 루텐의 커다란 시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붉은 꽃도, 마력의 구체도, 수많은 화살과 마법도, 위치를 옮기는 전위나 사제의 신성력도, 모든 것이 느려진다. 황정연은 그 가운데에서 천천히 중얼거린다.

“가라.”

허공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수집품들.

대충 세어봐도 수십 가지. 본인이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는 수집품의 개수를 전부 꺼낸 것이라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마지막 페이즈?’

저절로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

그녀의 몸에 장착되어 있었던 수많은 수집품들도 기괴한 소리를 내며 하나하나 발동되기 시작했다.

차마 뭐라고 설명하기도, 알아보기도 힘든 거대한 무언가.

몬스터 웨이브 때 좁은 입구로 꾸역꾸역 몸을 들이미는 몬스터들처럼.

마력으로, 혹은 어떤 초월적인 힘으로 만들어진 적의가 순식간에 쏟아져 내렸다.

각기 다른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혼돈은 어느새 그 덩치를 키워 로헨의 희망들을 향해 손을 뻗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우워어그르어아아아아아아아아!!!

정하얀은 주문을 외워 본대를 보호할 수 있는 커다란 막을 생성하고, 다른 마법사들 역시 계속해서 벽을 쌓는다.

윌리엄은 이를 악문 채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우효열을 그것들을 향해 다시 한번 발걸음을 옮겼다.

‘하….’

윌리엄은 자신의 옆에 선 우효열이 자리를 박차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중.

자신도 튀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는지 순간적으로 움찔한 녀석이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나는 녀석을 향해 곧바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자리를 지켜라.’

라고.

윌리엄은 움직이지 못했고, 기회를 저버렸다.

단 한 번의 망설임. 나는 그것이 윌리엄이 선택받지 못했고 우효열이 선택받은 이유라고 생각했다.

아마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윌리엄은 이미 수차례 죽음을 겪었고, 그것을 이겨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녀석이 멈춰서 그것들을 바라본 이유는 그저, 어디까지나 자신이 돌파해 낼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다. 녀석이 좋은 눈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관계없이 윌리엄은 스스로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

지금 보이는 광경은 윌리엄이 생각하고 상정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넘어섰다.

당연하지만 이는 우효열에게도 마찬가지인 이야기.

녀석의 경우는 윌리엄보다 더할 것이다.

눈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어떻게 저걸 뚫어내야 할지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녀석이 자랑하는 육감이나 본능 같은 것들은 저렇게 압도적인 혼돈 앞에서는 무력하다.

우효열이 자리를 박찬 이유는 어디까지나 녀석의 기벽에 의거한다.

우효열은 멈춰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녀석은 움직여야 했고, 발버둥 쳐야 했다.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패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했다.

머뭇거리거나 멍하니 커다란 것을 바라보는 것은, 단지 녀석의 스타일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으면 검을 휘두르고, 뚫어낼 수 없을 것 같은 것이 있을 때면 마력을 쏟아낸다.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이를 악물었고, 기다리며 상황을 파악하기보다는 두세 발자국을 더 움직였다.

“씨이…발!!!!”

피투성이가 된 채로,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다리가 마비되어도 녀석은 여전히 계속해서 전진한다.

체력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출혈이 너무 많다거나 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미스 대령과 싸울 때와 마찬가지로 녀석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었다.

‘시바 무슨 전투 민족이야?’

나는 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뚫어낼 수 있는 길을 제시했고, 이겨낼 수 있는 방향성을 제안한다.

우효열이 알 수 없었던 정보들을 계속해서 전달한다.

우효열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놈의 얼굴은 분명 환희에 차 있었다.

“괴물 같은… 자식.”

분명히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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