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91화
노을빛의 마왕성 (11)
기왕 쓰러지는 김에 한숨 자자. 사실 너무 피곤했자너. 일정 자체도 강행군이었고… 빛 쏴주느라 안도 텅텅 비었고…. 우효열이랑 짭사설도 한 번 하구….
그렇게 시끄러운 와중에도 점점 눈꺼풀이 감기는 것을 보면 확실히 몸이 한계를 맞이한 것 같기야 했다.
“이기영 님! 이기영 님!!”
“너 이 새끼… 지금….”
“사제! 당장 이쪽으로 와! 당장!”
‘그래. 너희들의 그 환호성 기다려 왔자너.’
“꺄아아아악! 부파티장님!”
‘그런 환호성 기분 좋은 울림이자너.’
휘청거리면서 털썩하고 쓰러진 모습은 마치 그림과도 같았을 것이다.
완벽한 각도와 완벽한 움직임, 모두가 내가 쓰러지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비틀비틀 걸어간 이후에는 곧바로 머리를 붙잡으면서 허물어진다.
아프지 않게 이쪽을 받아 드는 쪽으로 넘어지는 것도 필수.
멍하니 있던 윌리엄이 쓰러지는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시선들이 쏟아졌다.
마치 단독 콘서트에 클라이막스를 알리는 듯한 환호성.
표정 변화가 없기로 유명한 우효열 조차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으니 다른 이들의 반응이 어떻겠는가.
‘난리났자너.’
“오, 오빠!”
화들짝 놀란 정하얀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정하얀이라면 내 몸이 정상수치를 달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테니 사실상 논외.
‘게다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정하얀은, 김현성과 함께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이상 현상을 알고 있는 이들 중 하나였다.
만약 내가 가짜라면 아끼는 인형 하나가 망가진 정도의 감상일 테고, 진짜라 하더라도 사전에 언질을 받았을 테니 구태여 정하얀의 반응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허겁지겁 이쪽으로 다가와 상태를 살피는 것이 전부.
노을빛의 마왕성에 운석 하나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했던 이쪽의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신성력… 따뜻하네….’
당연하게도 계속해서 신성력이 떨어진다.
임채령이 우는 소리도 들려오고….
잔뜩 흥분해 이상한 방언을 외치고 있는 윌리엄의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제기랄!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 지금까지! 어째서 이기영 님을… 이렇게까지.”
‘왜 승질을 내고 그래요.’
죄 없는 놈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 녀석의 목소리답지 않기는 했다.
“이기영… 이기영!”
우효열 이 새끼도 큰 소리를 내자너.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서 그냥 눈을 감아도 이상하지 않을 타이밍, 곧바로 미국을 가도 동료들의 성장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이 병아리들은 아직 꽃기영이 필요했다.
설정상 이미 모든 생명력을 소진한 상황, 지금까지 이기영을 로헨에 붙잡고 있는 것은 신들의 욕심과 꽃기영 자신의 의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숨겨져 있는 사연이었다.
물론 꽃기영은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단지 인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
“기영… 님….”
“빨리….”
“아… 이거… 놔!”
그리고.
눈을 뜨자,
푹신푹신한 침대가 나를 반겼다.
‘컨디션 좋고.’
아무래도 캠프를 개설하기로 한 모양, 그렇지 않아도 슬슬 휴식을 취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노을빛의 마왕성에 도착하고 네임드 보스를 네 명 정도 상대했으니 적절한 시기라면 적절한 시기.
마침 내가 기절을 했으니 좋은 명분이 생긴 셈이라 할 수 있으리라.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잠결에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벌써 끝났어?”
“이미 한계야. 다음 사제는….”
“더 이상 남은 사제가 없는데… 어떻게 하지?”
“서브 힐러라도 불러서 채워 넣어야지. 어떻게 하겠어?”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이는데… 무작정 신성력을 때려 부으라니. 숨만 쉬고 있지… 이미 죽은 사람 같은데.”
진짜 쥐죽은 듯이 잤나 보네.
“야. 입 다물어. 윌리엄 님이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제길… 내가 괜히 그러겠어. 답답해서 그런다, 답답해서….”
‘너네… 로테이션으로 힐러들 돌리고 있었구나.’
정확히 왜 쓰러졌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신성력을 계속해서 쏟아붓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신성력이 독이 되는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
‘역시 원시적이야.’
바닥과 벽에 그려져 있는 주문진들도 보인다. 신성력을 증폭시키는 용도처럼 보였지만 이 역시 원시적,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살짝 인기척을 내주자.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안으로 다가온 녀석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총지휘관님.”
“이기영 님?”
“깨어나셨어….”
“이기영 님이… 일어나셨… 어이, 지금 당장 윌리엄 님께 알려.”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밖으로 나갈 거니까.’
“네?”
“움직일 수 있어요. 이제… 괜찮아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지휘관님. 최대한 안정을 취하게 하시라는 윌리엄 님의 지시가….”
“제가 총지휘관이에요. 게다가… 제 몸은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어요.”
이럴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대사였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이 대사를 내뱉고 살아남은 놈들은 소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대사였다.
거침없이 몸을 일으킨 것은 당연지사. 뭔가 바깥이 소란스러운 것 같은 느낌에 사제들을 밀치고 재빠르게 바깥으로 나서자….
‘뭐야.’
회군을 준비하는 병력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이기영 님?”
“총지휘관님이 일어나셨어.”
“빨리 알려!”
‘아니, 뭐야. 뭔데.’
알리는 건 알리는 거고… 왜 갑자기 집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너무 꿀잠을 자고 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태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근처에 있던 병사 하나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저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꽃과 풍요의 패밀리아는 지금 어디에 있고….”
“꽃과 풍요의 패밀리아는 현재 퇴각 루트를 사전점검하기 위해서….”
“네?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총지휘관님이 쓰러져 계셨을 때 윌리엄 님이 단독으로 결정하신 사항입니다. 그것보다 총지휘관님. 일단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이러고 계시면….”
‘안정이고 나발이고 시바.’
“괜찮아요. 잠깐 피곤했을 뿐이니까. 당장 윌리엄 님께 돌아오라고 말씀을 전해주시겠어요? 그리고 우효열 씨는….”
“함께 나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지가지 하네. 진짜.’
“제가 일어났으니 이제는 계획을 변경하겠어요.”
다리를 헛디디자 이쪽을 부축하려고 하는 놈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이전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건지, 아니면 지금 내 모습이 너무 병약해 보여서였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애초에 노린 바이기는 했지만 그 것 때문에 병력을 회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다지 반갑지 않다.
“하지만….”
“제가 이 원정대를 이끌고 있는 총지휘관이에요. 다른 말이 필요한가요? 세이프티 존은 만들어져 있는 것 같으니 이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겠어요. 그리고….”
“…….”
“수집품들은 어디에 있죠?”
이건 중요했다.
“그것들은 따로….”
“제가 봐야겠어요.”
앞으로의 공략에 열쇠가 될 수도 있고, 적합자가 누구인지도 확인해 봐야 했으니 말이다.
아프기는 하지만 평소보다 더 당찬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주변에서 마치 온몸의 뼈가 부서진 새를 다루듯 안절부절못하기는 했지만 이기영의 걸음걸이는 막 병상에서 일어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꿋꿋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기는 말이다.
창백한 안색이라든가, 호흡을 묘하게 불규칙적이다든가 하는 이상 현상은 분명히 존재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의 변화에 민감한 이들이라면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후우….”
“저… 이기영 님. 역시 안정을 취하셔야….”
“저는 괜찮다고… 이미… 몇 번이나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저 옆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이기영 님!”
“성자님!”
우르르 몰려오는 놈들의 정체는 당연히 꽃과 풍요의 패밀리아. 연락을 받았는지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온 것처럼 보였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후우… 정말로… 정말로 무사하셔서….”
라고 손을 꽉 잡고 한마디 한 이후에는….
“뭐 하는 겁니까! 도대체! 이기영 님께서는 분명히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커다란 노호성을 내지르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죄 없는 사제들만 눈치를 보고 있는 중, 윽박지르고 있는 모양새가 뭔가 내게 따지는 것처럼 들려오기도 했다.
“그들에게 소리 지르실 필요 없어요, 윌리엄 님. 제가 괜찮다고 말한 거니까요.”
“여기 이렇게 바깥에 나와 계실 필요 없습니다. 수집품 정리나… 다른 일들은 일단 저희들에게 맡겨주시고.”
일단 조금 쏘아붙이자.
“맡기다니요? 도대체 무엇을요?”
“네?”
“저는… 저는 공략 종료를 선언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도대체 어째서 회군을 명하신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제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더 이상의 공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기영 님이 언제 일어나실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이렇게 곧바로 진행될 문제가 아니에요. 이 원정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걸려 있는지. 윌리엄 님은 이해하지 못하시는 건가요? 다시 이 노을빛의 마왕성에 돌아오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아니, 이 병력을 다시 돌려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해하고 계시기는 한가요?”
“하지만….”
“회군은 없어요. 세이프티 존을 만들었으니 모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공략을 재개할 거예요. 분명 윌리엄 님은 제게 전권을 위임하신 것으로 알아요. 퇴각하는 것은 아군 연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을 때밖에 없어요.”
“…….”
“지금과 같이 제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이 매뉴얼은 그대로 따라주셔야 해요. 그 매뉴얼을 따르는 것이 지휘본부의 존재 의의고요.”
어디 시바 월권을 행사하고 있어?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기영 님. 아시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이기영 님의 몸이 무척 위중하다고 판단되어서….”
“네?”
“이기영 님이 계신다면 분명히 다시 기회가 찾아올 겁니다. 조금 더 먼 미래를 생각해 주십시오. 노을빛의 마왕성을 공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또한 오늘의 원정이 얼마나 로헨에게 중요한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겨우 그것 때문에 이기영 님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겨우?”
“인류는 다시 뭉칠 수 있습니다. 구심점이 있다면 말입니다. 지금 당장 퇴각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이기영 님만 계신다면 로헨은 다시금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뭐 시바? 나보고 이 짓거리를 한 번 더 하라고?’
때려 죽여도 안 해. 진짜.
“따라 들어오세요.”
조금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타이밍. 아까 있었던 방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자, 나를 따라오는 윌리엄이 보인다.
곧바로 침대에 앉자 어정쩡하게 서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이 다시 한번 시야에 비쳤다.
지가 잘못한 걸 아는지 약간은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선택이 틀렸다 생각하지는 않는지 당당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이것저것 재는 것은 필요 없다. 결국은 확실한 팩트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법이니 말이다.
“이기영 님.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무리하게 노을 빛의 마왕성을 공략하는 것은… 이기영 님에게는….”
말 딱 끊고.
“저는 곧 죽어요.”
“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있는 거예요.”
“…….”
“…….”
“그게… 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니, 이해하기 싫다는 듯 표정을 구긴 윌근본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저는. 곧. 죽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