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197화 (1,19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97화

노을빛의 마왕성 (17)

‘뭐 어쩌라는 거야. 이 새끼는.’

도저히 의도를 알 수 없는 수준의 치고 빠지기.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엉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러고 가버리면 어쩌라는 건데….’

어젯밤 녀석의 행동을 떠올린 것은 당연지사.

네? 라고 큰소리를 외치며 우효열을 붙잡아 봤지만 가오의 화신의 고독한 행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얼마나 빠른 걸음걸이로 사라지던지 정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을 정도.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인 행동의 범주에서 벗어난 행동이었으니 몇 번을 생각해도 당황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사실 어젯밤보다 더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아니, 시바 진짜 얘는….’

다음 날 녀석이 이 모든 것을 모르는 척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아니, 시바.’

“흥.”

‘얘는 도대체 뭐가 문젤까?’

도대체 무엇이 우효열이라는 인간을 가오 잡는 괴물로 만들어버린 걸까.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맞이한 아침 식사 시간.

평소였다면 조금 늦게 일어나 간단하게 혼자 해결했겠지만, 어젯밤의 분위기가 아침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함께 너 나 할 것 없이 모이게 된 상황이었다.

몇몇은 숙취로 고생하고 있는 모습들, 남궁선이 주문을 외우자 그나마 좀 편해진 것 같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담혜와 임채령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으… 너무 오버해서 달린 것 같아요.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갑자기 상황이라도 터지면….”

“사실… 저도 조금 걱정되네요. 이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부파티장님이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되죠. 이미 저질러 버렸는데… 후회하는 건 안 좋아요. 오랜만에 작은 일탈 한 번 했다고 생각하고 즐겁게 받아들여야죠. 하여튼 원래 나쁜 짓도 해본 사람이 더 잘하는 거라고… 지구에 있을 때도 그런 스타일이셨죠? 딱 공부만 하는 스타일.”

“아… 네. 뭐….”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만 하고… 부파티장님은 왠지 딱 그럴 것 같다니까요.”

“하하….”

“사람이 너무 딱딱하게만 살면 오히려 안 좋아요. 어젯밤 같은 시간이 있어야. 리프레쉬가 되고 작업능률도 더 오를 거라고요.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내일 할 일은 안 해버린다는 마인드가 가끔은 필요한 거라고요.”

“쓰레기가 되는 지름길을 잘난 듯이 설명하지 마라. 천둥벌거숭이.”

“아… 진짜! 효열 오빠!”

상태가 좋아 보이는 놈은 우효열 딱 한 명, 진심으로 어젯밤이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 평소처럼 임채령과 이상한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빤히 쳐다봐도 감정의 동요는 없었고 오히려 지가 더 당당하다는 듯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중. 오죽했으면….

‘이 새끼 혹시 덤효열 아니야?’

같은 생각을 할까. 혹시나 어젯밤 만취 상태였던 걸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완전히 까먹은 걸까.

지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스스로 기억을 지운 것은 아닐까.

마음의 눈으로 녀석을 살펴봤지만 역시나 자기세뇌 특성은 보이지 않는 상황, 본인이 실수라도 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본인의 회귀자 고백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거세요?’

어쩌면 다른 파티원들이 함께 있어서 부담스러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다른 파티원들이 뿔뿔이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녀석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부파티장님은 오늘은 좀 쉬시나요?”

“아니요. 저는… 사이드 퀘스트의 진행 상황을 살펴보고… 평소처럼 병사들을 독려하러 갈 것 같아요. 더 이상 침대에 누워 있는 것도 지겨워져서….”

“효열 오빠는요?”

“딱히 다른 일과가 없으신 것으로 알고 있어서… 아마 저랑 같이 움직이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같이 갈 거지?’

구태여 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일단은 동행을 허락한 것 같아 보이기는 했지만….

“효열 씨… 혹시 어제….”

“흥.”

혹시라도 내가 어제의 일을 꺼내려는 낌새를 보이면 귀신같이 입을 꾹 닫고 있다.

언급하지 말고 말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

사실상 회귀자 고백 이벤트로 싱크로율을 끌어올린다는 계획 자체가 물거품이 된 셈이었다.

‘아냐. 성과는 있는 건가?’

방법이야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녀석이 일단 말을 꺼낸 것만으로도 성과가 있는 셈. 심지어….

‘뭐야. 이거… 싱크 좀 올라간 것 같은데?’

착각이 아니었다.

확인 차원에서 슬그머니 짭사설을 발동시키자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어온다.

단편적인 시각만 느낄 수 있었던 것과 다르게 녀석의 촉각이 명백하게 느껴지기 시작.

녀석도 무언가 이상한 점을 깨달은 모양인지 이상하다는 듯이 자신의 몸을 둘러보는 것이 눈에 보였다.

“뭘 한 거지?”

“아무래도 효열 씨와 저의 결속력이 조금 더 강해진 것 같네요.”

“흐음… 그러고 보니 네 그 힘에 대해 묻지 못했군. 그건 도대체 뭐지?”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제 상태창에도 나와 있지 않고요. 이런 정황들을 살펴보면 아마 시스템의 법칙의 위에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할 수 있는 건가?”

“아니요. 이렇게 공유할 수 있는 건 효열 씨가 전부예요. 아시다시피 윌리엄 님에게도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과는 전혀 달라요. 저도 제가 이런 걸 할 수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고요. 아! 그리고… 저는 이걸 영혼 결속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영혼 결속?”

“네. 틀린 말이 아니니까요.”

‘워딩이 중요하니까.’

기술명부터 영혼 결속이기까지 하니 녀석과 이쪽 사이에 뭔가 특별한 연결점이 있다는 떡밥을 계속해서 풀어나가도록 해보자.

“아마 효열 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해하게 되셨을 거예요.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가 보고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마치 영혼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효열 씨뿐만이 아니라 저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단편적인 시각밖에 공유할 수 없었지만….”

“흥.”

“지금은 촉각도 공유하는 것 같네요. 아마 저를 로헨으로 이끈 의지가 준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잠깐. 그러고 보니 너는 나를 돕기 위해서 왔다고 했었지.”

“네.”

“조금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나?”

‘아니 시바 지는 말 안 하면서. 개 빡치네. 진짜.’

“사실…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래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뭐라고?”

“처음부터 효열 씨를 도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게 제가 이곳에 온 이유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어요. 누군가가 가르쳐 준 것도… 알려준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게 게니우스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왠지 알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효열 씨… 어젯밤에… 중요한 이야기를….”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군.”

‘이 새끼도 진짜 난놈이다. 난놈이야.’

대놓고 외면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계속해서 대화를 단절하는 스탠스를 취하는 것을 보면 녀석으로서도 이게 쉽지만은 않은 주제인 모양.

석고대죄 김현성 정도는 아니었지만 녀석 나름대로 회피하고 싶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관련해서 혹시나 나쁜 소리를 듣게 되거나, 녀석답지는 않은 행동이었지만 어쩌면 이쪽과의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회피할 이유가 없자너.’

믿음, 신뢰 키워드에 취해 자신의 일부분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녀석의 무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꺼림칙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녀석의 회피성 도피의 근간이 되는 이유는 정답을 알기 싫다는 심리 때문인 셈.

혹시나 부정적인 상황이 도래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좋은 쪽으로 해석했을 때, 나쁜 쪽으로 생각하면 우효열이라는 인간의 이유 없는 변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도 있게 되기 때문에 이쪽에서도 영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후자가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도 해.’

지금까지 보여준 행실을 보면….

‘아니면 설명하는 게 귀찮을 수도 있고.’

자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애초에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간에 우효열과 이쪽은 과업 아닌 과업을 행하는 중. 병사들을 독려하거나 이후의 행보에 대해 회의하는 시간이었다.

정신을 차리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에서 목소리 들려왔다.

“정하얀 님과 한소라 님께서 저주받은 엘프 여왕의 정원의 결계들을 거의 다 해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오늘 오후나 내일 즈음에는….”

“그렇군요.”

“정찰대가 새로운 길을 찾았다고 연락이 왔습니다만….”

“보고서대로라면 그림자의 복도를 통과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네.”

“그렇군요.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그림자 복도를 통과하는 건….”

“혹시 성자님의 고견을 먼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사실….’

원정대의 스펙이 짱짱했다면 구태여 통과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수백 갈래로 뻗어 나가는 복도를 공략하는 것 위험하기도 하고….’

“…….”

‘보상도 짤 것 같고….’

하층에서는 세이프티 존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상층에서도 이 정도의 캠프를 구성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최대한 전력을 아낀 이후에 위로 올라가는 것이 옳은 선택지인 것이 분명하기야 했다.

게다가 그림자 암살자 리안은 아무리 봐도 개털 네임드.

진흙탕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장소도 장소였고 개털 네임드답게 짜증을 유발하는 패턴으로 무장하고 있을 터.

어렵다기보다는 힘들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구성일 것이 분명했다.

우회 통로를 따라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마왕성 자체 내에서도 꼭 공략할 필요가 없는 네임드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아직 경험이 더 필요해.’

“우회 루트가 얼마나 안전한지 확인되지 않은 이상… 쉽게 결정할 수는 없어요. 조금 돌아가더라도 그림자 복도를 지나가는 게 옳은 선택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목적지는….”

“아마 저주받은 엘프 여왕 엘레나의 실내정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대로 봐야 알겠지만 공략 난이도는 수집품 관리자보다 약간 낮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고요.”

“그렇군요.”

“문제가 되는 건 이다음이에요. 남은 셋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광기의 의회. 사실상 이 던전에서 마왕 이전에 만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네임드가 될 거예요.”

‘그래서 스펙 업이 중요한 거고….’

괜히 사이드 퀘스트를 돌리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혹시 출발은 언제쯤 하실 생각이십니까?”

“결계가 열리는 타이밍에 맞춰서 출정을 계획하고 있어요.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은 이틀 뒤에 출발할 예정이니 그때에 맞춰 병력을 준비시켜주셨으면 해요.”

“네.”

“네.”

조금 길어진 회의를 마치고는 다시 저녁.

김창렬 구출 작전을 떠났던 원정대가 돌아온 것은 다음 날 아침.

‘이 새끼 오늘도 모른 척하려나.’

한쪽 눈에 갑작스러운 통증이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무심코 거울을 확인하자 한쪽 눈이 금안으로 반짝이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그리고.

“뭐야… 씨발… 뭐야….”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다시 저녁이 찾아왔다.

어처구니없게도… 하루 동안의 기억이 완전히 비어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야….”

4